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포함한 교만에 반대말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다.”
동의하는가? 사람 관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겸손이다. 경청과 배려와 함께 매우 중요하다. ‘칠죄종’*이라는 것이 있다. 그 자체가 죄이면서 다른 죄와 악습을 일으키는 일곱 가지 죄의 종류를 말한다. 그중에서 가장 첫 번째 위치하고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하는 죄가 바로 ‘교만’이다. 그러니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겸손이 지나치면 교만이라니. 바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겸손의 정의는 이렇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 겸손의 조건 두 가지가 보인다. 두 가지라고는 하지만 서로 다른 조건은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을 존중하는 것과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존중에 대해 살펴보면 이렇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언제인가? 배려 받을 때다. 나를 먼저 챙겨주고 내가 먼저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타인을 존중한다는 건,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는 어떤가?
앞서 말한, 존중하는 태도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존중하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을 수도 있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존중에 시작일 수 있다. 어쩌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겸손에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지나치면 교만이 된다고 한다. 내세우지 않는 건 좋지만, 너무 빼는 건 옳지 않다는 말이다. 빼는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누군가 어떤 제안이나 부탁을 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공동체에서는 어떤 직책을 맡아달라고 하거나 역할을 해달라는, 제안이나 부탁이 있을 수 있다.
제안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직책이나 역할을 하기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안하는 사람들도 그렇다는 판단이 서지 않고서는 절대 제안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된 결과를 낼 수 있고, 제안한 본인들이 고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고맙게 여겨야 한다. 본인을 인정했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라면 정중하게 고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좀 힘들겠다 혹은 귀찮다는 생각으로 고사를 한다면, 이것을 겸손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다. 겸손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이게 바로 교만이다.
교만은 겸손의 반대말이다.
겸손의 정의가 뭐라고 했나?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라고 했다. 남을 존중한다는 건 앞서 말한 부분도 있지만, 남의 의견을 잘 새겨듣는 것도 존중이다. 하지만 남의 의견을 잘 새겨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고 곧, 겸손의 반대말인 교만이 되는 거다. 그래서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다.”라고 하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나친 겸손’이라는 표현을 바꿀 필요는 있겠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겸손’이라고 말이다.
*칠죄종: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