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밖에 것으로, 집착하면 오히려 더 좋지 못한 열매를 맺는 것
테니스를 시작한 지 5개월 정도 됐다.
말이 5개월이지 실제 테니스를 친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지인에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마침 운동을 하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였다. 달리기나 근력운동도 중요하지만, 재미있게 땀을 흘릴 운동이 필요했다. 스포츠의 매력이 이거다. 재미있게 몰입해서 움직였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의 느낌. 단연 최고다. 요즘 테니스 인구가 많이 늘었고 클럽도 많이 생겼는데, 클럽에 가입하는 게 만만치 않다. 대부분에 클럽이 테스트를 거쳐서 가입을 받는다고 한다. 게임을 할 정도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지인이 소개해 준 클럽은 다 받아줬다. 심지어 지인이 라켓도 빌려줘서 수월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데리고 온 죄로, 지인이 나를 가르쳐줬다.
라켓을 잡는 방법과 어떻게 스윙을 하는지 알려줬다. 그리고 볼을 던져줬고 시간이 좀 지나서는 가볍게 라켓으로 넘겨줬다. 체육을 전공한 나로서는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근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근력을 많이 요구하는 스포츠 말고는 그렇다. 스포츠는 형태만 다를 뿐 공통에 원리가 있다. 그래서 원리만 빨리 깨달으면, 거기에 맞게 움직여서 몸에 익히면 된다. 모든 깨달음도 그렇지 않은가? 그 맥을 같이 하는, 진리 혹은 원리가 있다. 그 맥만 빨리 잡으면 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게임을 뛸 수 있게 됐다.
잘해서 그런 건 아니고, 게임을 뛰면서 감을 익히라는 클럽 분들에 배려 덕분이었다. 발이 빠른 덕분에 치기 어려운 코스에 공을 가끔 넘기게 되고, 시야가 넓은 덕분에 빈 코스로 공을 보내서 포인트를 얻었다. 계획한 대로 그리고 노력한 대로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면 정말 짜릿하다. 어제도 오랜만에 테니스를 쳤는데, 코트 앞에서 하는 발리 플레이가 잘 맞아 포인트를 많이 얻었다. 평소에 게임을 하면 이긴 적이 거의 없는데, 어제는 거의 다 이겼다. 아! 물론 함께하신 분이 너무 잘하신 덕이 결정적이긴 하다.
테니스를 치는데, 가끔 허무할 때가 있다.
어려운 코스에 떨어지는 공을 받으려고 열심히 달려갔는데 받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런데 공은 아웃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몸을 날리지 않아도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나 뭐했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치기 쉬운 공이 와서, ‘됐다!’ 싶은 마음에 마음 놓고 때렸는데, 어이없는 곳으로 공이 날아가 아웃이 된다. 그러면 잠시 일시 정지가 된다. ‘나 뭐했니?’ 동료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외에도 허무한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어쩌면 그게 스포츠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실력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거기에 숨겨진 불확실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불확실성은 변수다.
어쩌다 몇 번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노력과 실력은 변수가 아니다. 변수와는 반대로,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예상한 결과를 낸다. 그렇다면 변수에 힘을 실어야 할까? 아니면 노력에 힘을 실어야 할까? 변수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말이다. 노력에 힘을 실어야 한다. 노력에 따른 결과가 허무할지 몰라도, 우리는 노력에 힘을 실어야 한다.
항상 다 좋을 수는 없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고 해도 불량률이 제로인 기계는 없다. 불량률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지,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되지 않는다. 아니, 될 수가 없다. 몇 개에 불량을 보고 기계가 엉터리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에 오류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당연히 노력에 불량이 발생한다. 하지만 일부다. 그 일부를 보고 노력을 접는다면, 앞서 말한 불량 몇 개로 기계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희망을 두면서 말이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결과는 하늘의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얽매여 어찌할 수 있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사람이 뜻을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