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으로, 단단하게 다져야 할 마음
사람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사례를 열거하면 끝이 없겠지만, 그 사례들이 가리키고 있는 많은 이유는, 이런 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존중받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생각이 점점 깊어지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이런 친구들이 꼭 있었다. 누가 봐도 정말 친한 사이인 친구였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 날부터는 서로 남남처럼 지내는 친구 말이다. 그렇게 아예 멀어진 친구들도 있고, 이런 관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듯 사람 관계는, 축적된 데이터로 섣불리 짐작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오해로 관계가 틀어지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다.
오해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자존감이 낮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마음으로 앓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예는 이런 거다. 어떤 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은 빵이 있어 몇 개 사 가지고 왔다. 맛을 보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맛있게 먹은 느낌을, 이 사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빵을 건넸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막, 밥을 먹은 상태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연히, 건네주는 빵이 반가울 리가 없다. 그렇게 사양한다.
여기서 질문.
배가 부른 이 사람은 빵을 사양한 것인가? 빵을 건네는 사람을 사양한 것인가? 무슨 질문이 이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당연히 빵을 사양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식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에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그때는 거부할 수밖에 없다. 같이 밥을 배부르게 먹었는데, 디저트라며 빵을 한가득 놓고 먹을 사람을 볼 때 어떤가? 지금 상태에서 빵이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보는 것만으로도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따라서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건네는 것이라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면 사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가 발생한다.
빵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거다.
부득이하게 빵을 거부한 건데, 자신의 성의를 거절한 것으로 확대해서 해석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거부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니 이 사람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속상해하거나 억울해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잠시 일었다가 식지 않는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져 점점 더 커진다. 당연히 안 좋은 방향으로. 그렇게, 혼자 병을 키우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고 임의로 판단한다. ‘더는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그렇게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계는 일방적으로 멀어진다.
사람 관계는 잘 살펴야 한다.
나를 부정하는 것인지, 내가 제안한 것을 부정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제안한 것을 부정하는 것인데,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더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자존감이 낮으면, 부정적인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몰아간다. 긍정적인 부분도,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안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 넘기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필요하다. 자존감을 다지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면서 단단하게 다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