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마음을 불러오고, 의로움을 찾게 하는 온몸으로 듣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원래 들었던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이유도 있고, 조금 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살을 덧붙여봤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무심하게 넘기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 더. 원래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하나의 메시지를 더 붙여봤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있어서 그런지, 그런 방향으로 메시지를 찾게 된다. 그리고 발견하게 된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다른 의견이 나오듯, 같은 이야기 안에서 찾는 메시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야기는, 몸에서 각 역할을 하는 친구들(?)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많은 일을 해. 일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고, 취미 생활도 주로 내가 도움을 주지.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그렇게 말하고 두 손은 반대쪽 양쪽 옆구리로 향했다. 눈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인정! 하지만 내가 없으면 너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일하기도 어렵고 취미 생활도 그렇지. 밥을 먹고 싶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제대로 먹을 수나 있을까?” 말을 마친 두 눈은, 왼쪽 위를 향해 치켜떴다.
이번에는 입이 말을 꺼냈다.
“그래. 손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많은 일을 하네. 그런데 말이지,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일하든 취미 생활을 하든, 내가 없으면 소통이 안 되니 답답해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특히 밥은? 나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 들어갈 수 없지 않나?” 입은 의미심장하게 양쪽으로 벌어지다가 오른쪽 위로 삐죽하니 올라갔다. 그렇게 서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한창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눈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냥 가만히 있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발이 보였다.
“넌 도대체 하는 일이 뭐니?” 눈이 발을 향해 묻자, 입과 손이 일제히 아까 취했던 동작을 취했다. 입은 오른쪽 위로 삐죽 올라갔고, 두 손은 양쪽 반대 옆구리에 착하고 감겼다. 발은 머뭇거렸다. 자신이 보더라도, 앞서 말한 친구들(?)보다 하는 게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발이 수줍게 말을 꺼냈다. “그래. 나는 너희들과 달리하는 게 별로 없네. 근데 너희들이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내가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 없지 않나? 그러면 너희들의 능력이 별 소용없어질 것 같은데….” 발이 말을 마치자, 더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발의 쓸모다.
제일 아래서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별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발이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 없으니, 아무리 뛰어난 기능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공기와 물처럼 평소에는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없다고 생각하면 암담한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 드러내지 않는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경청의 쓸모다.
좀 생뚱맞게 들린 순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거다. 경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표정과 몸짓 등 몸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경청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경청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그 밑을 바쳐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겸손함이다. 상대의 메시지를 온전히 듣겠다는 겸손한 마음 없이는 경청이 어렵다. 경청은, 내 안에 있는 내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말과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그게 어렵다.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코칭을 배우면서 가장 도움이 된 건, 경청하려는 마음과 노력이다.
코칭을 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 대화할 때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경청이 잘 됐다는 결과는,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올리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겸손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워가고 있다. 이 마음이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진정한 코치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겸손함으로 경청을 실천하고 그 경청이 곧 의로움을 찾는 일이라면, 참 보람된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