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혼자가 아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비슷한 또래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는 게 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아이가 몇 살인지 등등이다. 물로 이외에도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는 하지만, 앞에 세 가지는 꼭 질문하거나 받게 된다. 최근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앞선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아이의 나이를 말할 때면, 사람들이 놀란다. 첫째가 올 해, 고3이라고 하니 말이다. 스물여덟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직은 내 나이로 보이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가 보이면, 우리 아이들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만한 나이 때 있었던 기억 말이다.
아이를 키울 때,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일도 있지만, 의도하는 일도 있다.
의도한 일이란, 아이의 성장에 맞춰서 필요한 경험을 시켜주기 위한 목적으로 한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딸에겐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에 수록된 이야기 중 하나다. 첫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모처럼 쉬는 휴일 아침, 늦잠을 자고 싶었던 나에게 아이가 졸라댔다. 빵을 먹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이불 속에 있는 달콤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아! 이제 혼자 갈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귀찮은 생각은, 아이의 교육으로 이어졌다. ‘그래! 이제는 혼자 다닐 때도 됐지!’
자신감을 심어주자는 게, 교육 목적이었다.
혼자서 가게 시켰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고 가뜩이나 딸인지라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서 아내와 작전(?)을 짰다. 아이를 혼자 다녀오게 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 내가 동행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내가 지켜보지 못하는 순간을, 집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나와서,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지켜봤다. 다행히 멈춤 없이 로비까지 내려갔다. 나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5층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아이는 멀리 가지 못했다. 들키지 않게 뒤에 조심히 따라붙었다. 뒤에서 봐도 긴장한 모습이 느껴졌다. 좀 짠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아이가 슈퍼에 들어가 물건을 사고 나왔다.
이번에는 다른 길로 해서 아이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다. 엘리베이터가 보이는 1층과 로비 중간에서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 올라갔다. 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는 데 집중하면서. 아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들어왔다. 혼자서 다녀왔다는 사실이 본인도 대견했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혼자서 가겠다는 당당한 포부도 밝혔다. 그렇게 아이 혼자서(?) 다녀온, 첫 심부름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좋은 계기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자! 이 상황을 우리 현실로 가져와 보자.
힘들고 어려운 일과 마주했을 때, 나만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 모든 힘든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돌이켜보면 당연히,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떤 남자가 죽어서 하늘로 갔다. 하늘에서 하느님과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평소에는 4개의 발자국이 보였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2개의 발자국이 보였다. 이 남자는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따졌다. “저것 보십시오! 제가 힘들 때,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하느님은 이 남자의 어깨를 도닥여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발자국이 2개인 이유는,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남자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울음을 멈췄다가, 더 크게 울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위에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발버둥 치기보다, 잠시 기대어 쉴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거다.
“이 어려움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금 내가 힘든 이유가 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가?”
그러면 무거웠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막연하게 바라봤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힘듦은 대부분, 막연함에서 온다.
두려움과 힘듦은 대부분, 막연함에서 온다.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한다는 막연함, 어떤 상황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막연함, 내가 할 수 없다는 막연함 등이 그렇다. 막연함은 질문하지 않음에서 온다. 막연함이 느껴질 때, 앞서 언급한 질문을 나에게 해보자. 하나씩 천천히.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초조할 필요가 없다. 원래 시간이 걸린다. 하루 이틀 때로는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막연함이 벗겨진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벗겨진다. 답을 찾는 순간부터는 막연함이 차지했던 자리를 자신감과 자존감이 채우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목마를 때 마시는 한 모금의 시원한 냉수처럼 그 맛을 꼭 느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