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잠재의식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오랜만에 라운딩했을 때다.

몇 달 만에 잡은 클럽이라 걱정이 됐다. 아예 맞추지도 못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샷했는데, 맞추긴 맞췄다. 다만, 풀 속으로 들어간 게 문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이 들어간 곳을 찾았는데, 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수확이라고 하면, 그곳에 떨어진 쓸만한 공을 다섯 개 정도 확보했다는 거다. 공은 나갔지만, 많은 공을 확보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아래로 내려왔다. 이어서 몇 번 스윙하는데,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느낌이 아니었던 거다. 예전에도 그리 잘 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원인을 찾아야 했다.

스윙하면서 어떤 것이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하게 하고,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게 하는지 스스로 살폈다. 2~3홀을 돌고 깨달았다. 하체의 균형이었다. 예전에는 하체를 이동하면서 스윙해도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감각이 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체를 고정했다. 클럽과 허리 회전만을 의식하고 공을 끝까지 본다는 생각으로 스윙했다. 제대로 맞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그랬고 공이 날아가는 모습도 그랬다. 뿌듯했다. 그 감각을 살려 다음 스윙도 그렇게 이어갔지만, 모든 공이 다 잘 맞아 나간 건, 아니다. 그랬으면 프로를 했겠지?


골프는 매 홀 정해진 기준 타수가 있다.

‘par’라고 하는데, 홀마다 몇 번을 쳐서 공을 홀에 넣어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이다. 보통은 par 3홀, par 4홀, par 5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가끔 par 6홀이 있는데, 이번에 간 곳도 par 6홀이 있었다. par 3홀을 제외하고는 모두, 드라이버라고 하는 가장 길고 헤드가 큰 클럽으로 친다. 드라이버가 잘 맞아야 다음 플레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보통 죽었다고 표현하는, 해저드와 오비가 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벌타를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살아야 한다.


드라이버가 잘 맞아 나가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파란 하늘 아래로 날아가는 하얀 공을 보기 위해, 골프를 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기분 좋게 치고 나갔는데, 두 번째 샷도 잘 맞아 나가면 기대하게 된다. ‘버디’라고 하는,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샷과 퍼팅을 망쳐서, 버디는커녕 한두 타수가 넘어갈 때가 대부분이다. 맑음이었던 기분이 흐림으로 바뀐다. 그 기분이 이어지면 다음 홀에도 영향을 준다. 처음과 두 번째 샷을 망친다. 죽지 않아 다행이라 위로한다. 하지만 그다음 샷과 퍼팅을 잘해 그나마 선방할 때도 있다. 첫 샷과 다음 샷으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타수보다 적게 나오면 그렇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 드라이버와 두 번째 샷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샷과 퍼팅이었으면 금상첨화였겠는걸?’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그래서 평균의 법칙이 적용되는 거구나?’ 누군가 그랬다. 평소보다 전반에 스코어가 안 좋으면 후반 스코어가 잘 나온다고 한다. 반대로, 전반 스코어가 좋으면, 후반에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평균 타수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게, 평균의 법칙이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소보다 월등하게 잘하거나 무너지는 날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체로 평균 근처에 머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각 홀도 그렇다. 한 홀에서 치는 샷 모두가 좋을 때도 있지만, 잘 치는 샷과 그렇지 못한 샷이 함께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인생도 이렇지 않은가?’

라운딩을 돌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처럼 인생도, 잘 풀리는 구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구간도 있다. 그래서 힘든 인생도 자기 인생이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거라고 말이다. 인생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하루도 그렇다. 모든 게 다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섞여서 하루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늦은 준비로 부랴부랴 나갔는데, 마침 타려는 버스가 온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평소보다 차가 막혀서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다. 그러면 운이 없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무엇이든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안 좋은 상황이 한두 번 발생한 것을 두고, “난 왜 이리 재수가 없냐!”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그런 일만 생길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럴까? 그렇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거야?”라고 말하면 어떨까? 다음이 기대된다. 다음은 좋은 일이 일어날 예정이니 말이다.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길 원하는가?

지금 내가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걱정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기도라는 말이 있다. 원하지 않은 그 방향을 계속 바라보고 초점을 맞추니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원하지 않는 방향이 있다면 고개를 돌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의식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잠재의식에 심는 거다. 원하는 방향이 잠재의식에 심어지면,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원하는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잠재의식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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