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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산행을 통해 깨달은 사실

by 청리성 김작가

오랜만에 아내와 등산했습니다.

아내가 등산을 꾸준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년에 등산화를 사줬는데요. 이제야 개시했네요. 가끔 낮은 산을 오르기는 했지만, 등산화를 신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산을 오를지 고민하다, ‘천마산’으로 정했습니다. 집에서 멀지도 않고, 오르기에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건, 다 오르고 나서 알게 됐지만 말입니다.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내려와서 입구에는 있는 두부와 막걸리 한잔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몇 번을 올랐었는데요. 그때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등산 코스로 가자고 합의하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이 참 좋다는 것은, 올 때마다 느낍니다.

신선한 공기와 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새들이 우는 소리 등 모든 것이 좋습니다. 가끔 올라오는 흙냄새도 좋고요. 아내도 생각보다 잘 올랐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곳은, 나무 받침으로,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내는 계단 오르는 것을 힘겨워했습니다. 쉬엄쉬엄 올라가면서, 지금까지 올라왔던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후부터는 아스팔트 길은 없고 등산로만 있는 길인데요. 이번에는, 일단 오르는 데까지 오르자며 그곳으로 진입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영양 보충도 했습니다.

사과를 깎아 반쪽씩 나눠 먹고 물도 마셨습니다. 그렇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경사가 높은 계단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아내가 오를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됐는데요. 계단의 중간 평지까지 오르고 나서, 아내는 도저히 힘들겠다며, 저보고 올라갔다 오라는 겁니다. 사실 이번에는 정상을 찍어보자고 다짐하고 왔는데요. 그 생각을 실행할 기회가 온 겁니다. 정상까지 1km 정도 남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오랜만에 격하게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가파른 경사 지점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처음에 올랐던 많은 계단보다 더 많고 높은 계단도 만났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단숨에 올랐을 텐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이왕 마음먹은 거, 정상을 찍고 말겠다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계속 올랐습니다. 600m 남았다는 팻말을 보고서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한참 온 것 같았는데, 360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조금 기운이 빠졌습니다.

그래도 점점 줄어드는 거리를 위안 삼아 계속 올랐습니다. 다음은 270m 남았다는 푯말이 보였습니다. ‘아직?’ 그리고 또 걸었습니다. 200m 푯말을 지나 140m 그리고 ‘정상’이라고 적힌 푯말을 만났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옆에 누군가 펜으로 적은 ‘10미터’ 글씨가 보였는데요. 옆에는 돌을 밟고 올라가라고 친절하게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밟고 조금 더 올라가니 진짜 정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산이든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전경은 그야말로, ‘와우’입니다. 가장 높은 곳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는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 때문이 아닐지 싶습니다.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정상에 올라오는 길에, 언제 오느냐고 계속 메시지가 왔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아내이기에 그랬고, 계단 경사가 가팔라서 더 그랬을 거로 생각됐습니다.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뛰다시피 내려갔는데요. 앞서가던 사람들이 발걸음 소리를 듣고 옆으로 비켜줬습니다. 한 아이는 “우와”라는 감탄사로, 내달리는 저를 응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갔는데, 왠지 길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초행길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낯설었습니다. 여러 계단을 올랐지만, ‘이 계단을 올랐었나?’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낯선 계단도 있었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관리사무소’라고 적힌 것이 보였습니다. 표지판을 신뢰하며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오고 있냐며, 전화하기도 했습니다. 천천히 내려가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더 빨리 내려갔는데요.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왔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푯말을 보니 정상까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미 아내를 만나고도 남았을 높이였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산을 거의 다 내려온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한쪽에 서 있는 등산 코스를 봤는데요. 느낌이 싸했습니다. 지금 있는 위치와 처음 출발한 위치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침, 올라오던 아저씨께 위치와 상황을 말했더니, 다시 올라갔다 가려면 어두워지고 있어 안 되고, 계속 내려가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택시로 15분 정도 걸린다고 말이죠. 등산 코스를 보니, 정상 방향으로 1km 정도 올라가서 다른 길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심지어 핸드폰 배터리는 4%밖에 남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내려가서 택시 타고 그곳으로 갈 테니, 일단 천천히 내려오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다른 입구로 내려갈 때쯤 핸드폰은 방전되었습니다. 그 입구는 도로만 있지 인도도 없는 길이라, 큰길 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내려와 보니, 가끔 캠핑 갈 때, 지나간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연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아내가 얼마나 겁을 먹을지 걱정됐습니다. 일단 통화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편의점에 들어가 핸드폰을 좀 쓸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을 빌려주는 것도 꺼림직할 거라 짐작은 했지만 서운했습니다.


편의점에서 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기사님께 조심스레 사정을 얘기했더니,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침착했습니다.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지금 가고 있으니 천천히 내려오고 있으면 금방 올라가겠다고 하고 끊었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5분 정도 올라갔을까요? 아내가 기운 빠진 모습으로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걱정과 두려움에 떨었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렇게 3시간가량 진행된 등산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3시간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머릿속으로 많은 일이 벌어졌기에 짧지만은 아닌 시간이었습니다. 오를 때 먹자고 했던 두부와 막걸리는 물 건너갔습니다.


이번 일로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을 절대 쉽게 보면 안 된다. 조금 큰 산은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 여러 갈래니, 잘 살펴야 한다. 핸드폰 배터리는 항상 충분하게 유지해야 한다. 특히 충전할 곳이 전혀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산에 오르고 내릴 때는 일행과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 정도로 요약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잘못된 길로 내려왔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도 계속 생각했는데요. 결론은, ‘맞겠지’라는 막연함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맺었습니다. 방향 표지를 잘 살피지 않은 것이지요. 급하다는 마음에 그냥 내달린 겁니다. 표시가 잘 되어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올라가면서 찍은 표지판을 다시 보니 잘 적혀 있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이지요.


주변 사람의 말도 그렇습니다.

생각이 막혀있으면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이고 보지 못한 이유는, 생각으로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로막은 생각으로 전하고자 하는 말을 막고 있는 겁니다. 듣기는 하지만,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례나 증거들이 있더라도, 보고자 하는 마음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번에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이점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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