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말을, 필요한 시점에 하는 사람은 참 멋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때로는 부럽기도 하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습니다. 한발 늦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말을 했다는 것에, 질투심이 올라옵니다. 그 사람은 이런 지혜를 어디서 얻었을까요? 하늘에서 떨어졌을까요? 땅에서 솟았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자기도 모르게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 이야기가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하늘로 가는 나그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김길수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한국천주교회사’의 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한국천주교회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을, 딱 5년 전에 읽었는데요.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기억된다는 건, 간직할 만한 이야기라는 말이겠지요?
박해 시대였습니다.
관에서는 천주교 신자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그중 하나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땅에 놓고 밟고 가게 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보고 머뭇거리는 사람은 천주교 신자라고 판단하고, 거리낌 없이 밟고 가는 사람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거죠. 박해를 위한 방법이지만, 참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줄로 서서 한 명씩 검사를 받으며 지나갔는데요. 어떤 분이 당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것이지요.
아마도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으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당신 차례가 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눈을 질끈 감고 십자가를 밟아 목숨을 보전했을까요? 아니면, 머뭇거려서 천주교 신자임을 밝혀지고 잡혀갔을까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거라 짐작할 겁니다. 하지만 지혜는 어떤가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이외의, 기발한 선택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분은 십자가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봤다고 합니다. 포졸들이 봤을 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살피는 모양이었던 겁니다. 포졸들은 계속 둘러보던 이분을 무엇이라 판단했을까요?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냥 보내줬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정말 감탄스러운 지혜 아닌가요? 표현이 좀 저렴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말이 딱 적용됩니다.
가끔, 스스로가 감탄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발휘할 때인데요.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그렇습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대견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이런 지혜는 어디에서 올까요? 평소에 읽은 책이나 경험 등이 잘 버무려져 나올 수도 있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오르기도 할 겁니다. 모두 경험에서 왔다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경험하지 않았던 지혜가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기 자신도 놀라는 거죠. ‘내가 이런 생각을?’이라며 말이죠.
필요한 것을 얻는 방법은 간절함을 유지하는 겁니다.
간절함을 유지하면서 그것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오는 것이지요. 언제까지 집중하고 생각하면 될까요? 떠오를 때까지입니다. 한 인디언 부족의 기우제 이야기처럼 말이죠. 이 부족의 기우제는 100%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으니 가능했다고 합니다.
싱거운 이야기인가요?
너무 간단하니 가볍게 치부할 일인가요? 아닙니다. 끝까지 유지하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가요? 해볼 만하지 않은가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쓰러질 정도로 힘든 일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끝까지 하는 것뿐입니다. 언제까지요? 얻을 때까지요. 그 순간의 짜릿함을 기대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