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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Nov 04. 2024

타인을 살리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일이다?

 “타인을 살리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일이다.”

요즘 많이 들리는 말입니다. 고전에 이런 표현이 있다고 하여, 회자하고 있는데요.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뜨겁게 공감할 수도 있고, 차갑게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경험으로 체득된 마음으로 갈리게 됩니다. 이득을 본 사람과 피해를 본 사람인 거죠. 미지근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책으로 읽어서 알거나 누군가한테 이야기를 듣고 안다면, 그럴 테지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까지 진동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머리에만 머물면, 행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내려와야 행동이 나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하신 명언이 있지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습니다.”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와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데, 70년이 걸렸다는 말씀으로 해석되는데요. 한평생을 사랑으로 사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진정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평생의 숙제로 여겨집니다.

    

처음 언급한 말로 돌아가 봅시다.

이 말이 참 좋은 말인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에 큰 울림이 일어나지 않아, 행동하는데 주섬주섬해서 문제지요. 하지만, 이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말 그대로 타인을 위해서 한 행동이,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행동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에 들었는데,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 꼭 떠오릅니다. 가장 극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옛날, 두 친구가 산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는데요. 옷도 변변하게 챙겨입지 못해서, 추위에 떨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 밑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직 목숨은 붙어 있었습니다. 두 친구는 어찌해야 할지 의논합니다. 한 친구가 말합니다. “우리도 이미 기력이 다 떨어져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데,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안타깝지만 그냥 지나치자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그냥 가나?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 확실한데 말일세.” 한 친구는 사람 도리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두 친구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의견처럼, 두 친구도 서로 갈라져서 이동하기로 합니다. 한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쓰러진 사람을 둘러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기력이 다했지만, 있는 힘을 다해 한 걸음씩 옮겼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다 잠시 쉬려고 나무에 기대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사람 형태로 보이는 무언가가 눈 속에 묻혀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업고 있던 사람을 나무에 기대게 하고, 눈을 치웠는데요. 그만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먼저 가겠다고 한 그 친구 말이죠. 기력이 다해 쓰러졌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얼어 죽은 거였습니다. 슬픔에 빠졌던 친구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몸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겨울에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는데, 몸에 열이 나고 있던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신이 힘겹게 업고 온 사람으로 인해, 열과 땀이 나고 있던 겁니다. 타인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한 일이 자기를 살리게 된 거죠.   

  

극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타인을 위해서 했는데 나에게 득이 된 일이 한 번쯤이 있지 않나요? 살린다는 막중한 임무까지는 아니더라도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념품을 챙겨놓았는데, 가지라고 줄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고생할 듯하여 나서서 대신해 주었는데, 더 크게 고생할 일을 피한 적도 있었고요. 작게 샀는데 크게 얻어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더 있겠죠?

크게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누군가를 챙기려는 마음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아니, 느끼게 됩니다. 이런 느낌들이 모여 다시 행동하게 합니다. 선순환의 반복인 거죠. 감사함에서 오는 선순환입니다. 감사함을 느끼고 행하는 일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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