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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3시간전

봉헌하는 마음

 어릴 적, 새해가 되면 어른들께 세뱃돈을 받았습니다.

돈의 쓸모를 알게 된 나이가 됐을 때, 많이 주시는 분을 좋은 분이라 여겼습니다. 더 친절하게 인사하게 되고 말도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찾아갈 때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가게 됐는데요. 예상과 맞으면 기분이 좋았지만, 적게 받으면 서운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다른 분들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았는데도, 감사한 마음보다 금액이 적어진 것에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거죠.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또 달랐습니다.

몇만 원을 주는 분도 고마웠지만, 어딘가에서 꺼내주시는 할머니의 꼬깃꼬깃한 천원 몇 장이 더 값지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당신이 쓰고 싶으신 거 참으면서 아끼고 아끼신 돈일 텐데, 손자 주시겠다고 거침없이 꺼내시는 모습에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릴 때는 많은 돈에 마음이 쏠렸지만, 좀 크고 나서는 돈 자체의 가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게 된 거죠.     


군 제대하는 날도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동기 몇몇과 신천에서 맥주 한잔하며 그동안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백령도로 들어갈 때 잠깐 보고, 제대하는 날 보게 됐으니까요.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테이블에서 어떤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왔습니다. “몇 기?”라고 물었는데요. 우리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고 기수를 외쳤습니다.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줬습니다. 반가움은 잠시 갑자기 밖으로 불러내더니 얼차려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제대하고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아직 군기가 살아있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다시, 가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가라며 10만 원권 수표 한 장을 주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20년도 더 전이니까, 꽤 큰 돈이었죠. 공돈이 생겼다는 건 좋았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한탄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슬금슬금 다가왔습니다. 서빙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분 손에는 담배 몇 갑이 들려 있었습니다. 자기는 몇 기라고 소개하면서 이것밖에 줄 게 없다며,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테이블에 담배를 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인사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나가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우리도 저런 선배가 되자는 말을 나눴습니다. 돈의 가치로 따지면, 담배 몇 갑보다 10만 원이 20배도 더 컸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담배 몇 갑이 더 큰 가치로 느껴졌습니다. 20년도 더 된 일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지 싶습니다. 돈은 매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닿을 때는 말이죠.      


내 것을 내어놓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봉헌’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가진 것이 없어 내어놓을 게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가진 것 이상으로 그리고 없는 것을 내어놓는 것이 봉헌이 아닐 겁니다. 가진 것 중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을 내어놓으면 되는 거죠.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역량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것을 내어놓는 것이, 진정한 봉헌이라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정성을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요. 봉헌하는 마음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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