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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대화로부터 이어집니다.

by 청리성 김작가

우리 집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집에는 다 있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집은 인원수 별로 있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무엇일까요? TV입니다. 결혼할 때부터 사지 말자고 다짐했던 물건입니다. 본가에 함께 살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분가하고 나서는 아예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대화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TV가 없으면 자연스레 대화할 것으로 여겼던 거죠. 기대했던 대로 됐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으니 당연히 그런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이들이 좀 컸을 때는 기다란 식탁을 갖췄습니다.

그곳에 모이도록 유도한 거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휴일 아침, 아이들은 눈을 비비고 나와서 자연스레 식탁에 모였습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는 아빠 주위로 모였는데요. 자기들도 뭐라도 하나씩 들고 자리에 앉아서, 읽거나 쓰거나 했습니다. 각자 할 것을 하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그에 답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중학생이 된 아이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조기 교육(?)의 효과라 믿고 있습니다. 시대를 잘 만난 덕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활성화되기 전이었으니까요.


TV가 없는 집을 상상해 보셨나요?

지금은 상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핸드폰이나 PC가 TV의 역할을 대신하니까요. 그래도 TV가 없다는 집은, 지금까지 한 가정 정도 말고는 없습니다. 아직 필수품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없으면 허전하니까요. 잘 보지 않아도 그냥 틀어놓는 집도 많다고 합니다. 조용하면 어색하니까요. 조용하면 대화하면 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대화한다고 해도, TV에 나오는 상황이나 장면으로 할 뿐, 일상을 소제로 대화를 끌고 가기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단답형으로 끝나고 마는 거죠.

대화가 이뤄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평소에도 좋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그 힘을 발휘합니다. 가족은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부딪히며 살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아예 말하지 않거나, 신경 끄고 살면 모를까요. 아! 이 또한 쉽지 않겠네요.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가지고, 한바탕 난리가 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평소에 대화한 관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화로 풀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데이터가 있고, 그것을 통해 서로에 관해 조금은 이해하는 폭이 있기 때문이죠. 가정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다툼은, 순간적인 감정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이걸 대화로 풀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오랜 시간 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더 깊게 곯아가는 거죠.


대화할 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식사도 좋고 기타 함께 하는 활동도 좋습니다. 제일 좋은 건, 정기적인 자리가 좋습니다. 최소한 한 달 정도 간격으로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거죠.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겠네요. 포함해서 가족의 생일 때는 모두 모입니다. 필수 자리입니다. 이 외에도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짧게라도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신앙입니다.

모두 같은 신앙을 가지고 그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전례가 있는 날에는, 함께 미사 참례를 합니다. 축일 미사도 함께 챙겨줍니다. 아이들이 커서 일정이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한 명 정도 빠지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모입니다. 두 달 전부터는, 저녁에 함께 모여 묵주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이후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던 계기는, <이노주사>라는 가톨릭 찬양단 활동입니다. 10여 년 전, 우연히 만나게 된 지도 신부님을 통해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함께 찬양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더 끈끈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에 <이노주사>가 없었다면, 지금 끈끈함이 조금은 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고자 하니,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대화하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활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노주사>를 만났습니다. 하고자 마음먹으니 필요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은총을 받았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함께 있는 것 자체로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대화하면서 끈끈하게 이어가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애써야겠습니다. 하고자 하면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얻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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