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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잘 발휘하길 소망하며

by 청리성 김작가

어릴 때, 동네 형들과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또래도 있었지만, 주로 형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후였으니까요. 골목에만 나가면, 놀 수 있는 또래나 형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놀지 합의했는데 인원이 부족하면, 골목에서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외쳤죠. 알았다며 나오는 친구도 있었고, 엄마가 대신 안 되는 이유를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함께 있는 인원과 그 인원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조합해서 놀았는데요. 아무것도 없으면,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서 놀기도 했습니다.


공터에 가면, 놀 수 있는 환경이 더 좋았습니다.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었는데요.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좋았습니다. 뾰족한 나뭇가지 혹은 돌을 가지고 그릴 수 있었죠. 선명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드라마가 나오면서 유명해진 ‘오징어 게임’부터 땅따먹기 등 장난감이 없어도 잘 놀았습니다. 구슬 놀이도 많이 했습니다. 곳곳에 구멍을 내고 단계별로 그 안에 구슬을 넣는 게임이었습니다. 삼각형을 그려서 그 안에 구슬을 모아놓고, 구슬을 던져서 맞추는 게임도 했습니다. 삼각형 바깥으로 나간 구슬을 따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소소하게 놀거리가 참 많았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놀이가 있었는데요.

야구였습니다. 그냥 아무나 불러서 하는 야구가 아니었습니다. 두 팀이 있었는데요. 각 팀에 고학년 형 한 명씩이 있었습니다. 각 팀은 2명의 선수로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둘씩이 한 팀이 된 겁니다. 고학년 형들은 감독이었던 거죠. 왜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팀원들이 한 명이 늘어갔는데요. 감독 형들이 섭외해 온 겁니다. 형들은 자기 팀 선수들(?)을 훈련했습니다. 도구는 미약했습니다. 배트같이 생긴 나무 막대기, 글러브 한 개, 테니스공이 전부였습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헬멧 하나가 등장했는데요. 타자는 헬멧을 쓸 자격을 얻었습니다. 출루할 때 헬멧을 벗어 던지고 달렸죠. 다음 타자가 써야 했으니까요.


야구를 처음 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배트 잡는 법, 공 던지는 법 그리고 잡는 법 등등을 배웠고 야구 규칙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들기도 힘겨운 배트를 휘두르는 것조차 어려웠는데요. 거의 매일 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는, 테니스공이 아니라, ‘홈키공’이라고 불렀던 야구공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러브도 아이들이 하나둘씩 가져왔고, 진짜 야구 배트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처음 야구 배트를 보고, 모두 신기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인 야구가 아니라, 동네 아이들 야구를 한 거죠.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방과 후에 야구를 즐겨 했습니다. 도구가 빈약하면 빈약한 대로 그냥 했습니다. 반끼리 대항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요.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 부러웠던 거죠. 야구부에서는 반 대항 야구대회를 개최했었습니다. 4학년 때부터 했는데요. 모든 학년에 출전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6학년 때는 야구부에 들어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야구 선수의 꿈을 끼웠던 거죠. 부모님께 편지를 쓸 정도로 절실했습니다. 꿈을 접었지만 말이죠.

야구가 아닌, 축구를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축구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야구처럼 배우면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공을 차면서 놀았던 거죠. 축구를 더 많이 그리고 배우면서 했다면,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다면 더 그랬을 테지요. 야구를 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죠. 어릴 때는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 의해 끌려가듯이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유 의지를 발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거죠.

원하는 것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 그리고 머무르는 환경이, 곧 내 미래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원하는 삶의 방향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그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고 해서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 원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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