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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쥔 손으로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by 청리성 김작가

며칠 전부터,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몸살이, 이제 왔나 싶었다. 보통 몸살이 오면, 세게 왔다가 하루이틀 만에 사라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리 세진 않았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하루이틀이 두 번 정도 지나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도 안 먹었다. 그리 심하게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틀이 지날 때쯤, 빨리 가셨으면 하는 바람에, 집에 있던 약을 먹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개운하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살 기운이 심하진 않았지만, 개운하지 않은 컨디션 때문인지, 에너지가 낮은 상태였다. 올라가지 않았다. 에너지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고 아내도 느꼈다. 아내는 처음부터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으라고 했다. 그래야 빨리 낫는다고 말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주사를 맞거나 수액을 맞으면 금방 기운을 차린다. 약을 먹더라도 일반 의약품보다는 처방 의약품이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집 때문이다.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다는 내 고집 때문이다. 자주 약을 먹으면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그랬다. 평소에 몸살이 났을 때 하루 앓고 나면 금방 나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라 여겼다. 평소에 약을 잘 먹지 않아, 약이 잘 듣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며칠을 버티다 몸살 기운이 싫어, 아

내 말을 듣기로 하고 병원을 갔다.


수액을 맞는 게 목적이었다.

수액이 제일 효과가 빠르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증상을 말하고 몇 가지 질문에 답했다. 마무리될 때쯤 목적(?)을 말했다.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실비보험이 되냐고도 물었다. 수액을 그냥 맞기에는 부담됐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 수액은 영양제라 실비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독감 수액은 가능하다고 했다. 독감 수액은 치료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독감 검사 여부를 물었다.

독감 검사 비용이 있기는 하지만, 독감이 유행이라고 하니 확인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수액을 실비로 맞을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다. 검사를 받기로 했다. 진료실을 나가 검사를 받는데, 코로나 검사와 같은 방법인지 몰랐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무를 수는 없는 일이라, 눈 한번 질끈 감고 참았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코안에 눈물샘이라도 있는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호명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독감입니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선생님이 결과를 알려주셨다. 요즘 유행하는 독감은 A형인데, B형 독감이라고 했다. 다행인 건, B형은 증상이 약하다는 거다. A형은 증상이 심해 매우 힘들어한다고 했다. 며칠 간의 증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증상이 약했나?’ 심하지 않았던 증상들이 B형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진료실을 나와 수액을 맞고 약 처방을 받아 병원을 나왔다. 아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버텼다면, 독감인 줄도 모르고 생활했을 거다. 별일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더 심해졌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옮겼을 수도 있다. 일반 수액도 실비보험이 된다고 했으면, 독감인데도 일반 감기 수액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고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치관과 철학의 중심이 흔들릴 때는 그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야 할 때는 고집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른 좋은 몫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움켜쥐고 있는 손으로는 다른 무언가를 잡을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원리이자 진리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원리와 진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고집을 부릴 때가 그렇다. 고집을 부리면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 그렇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내려놓아야 할 때 고집을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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