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손으로 만져, 사물을 판단하는 모습을 말하는 거다. 손에 잡히거나 어느 정도 움직여 전체를 만질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건 없다. 문제는, 코끼리라는 사실이다. 코끼리 전체를 만진다는 건 무리가 있다.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만져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보가 한정적이다.
장님 여럿이서 코끼리를 만지며 이런 반응을 보인다.
“코끼리는 커다란 기둥과 같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사람의 의견이다. “널찍하고 얇은 판과 같다.” 귀를 만진 사람의 의견이다. “단단하고 묵직한 무와 같다.” 상아를 만진 사람의 의견이다. “긴 밧줄과 같다.” 꼬리를 만진 사람의 의견이다. 이 외에도 코를 만진 사람이나 배를 만진 사람 그밖에 다른 부위를 만진 사람들도, 각자 자기가 만진 느낌을 통해 코끼리를 판단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볼 수 없고 손으로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자신이 판단한 것을 사실로 여긴다는 거다. 스스로 경험했으니 그렇게 여기는 게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것을 넘어, 누군가에게 확신하며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달받은 사람은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믿게 된다.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알게 된다는 거다. 한번 들어온 정보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입견이 무섭다고 하는 거다. 한번 들어온 정보를 바꾸려면,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첫인상이 그래서 중요한 거다.
사람 관계에서도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 관해 들을 때가 있다. 한 명이든 두세 명이든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그 사람에 관해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 판단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자주 들을수록 그 사람에 관한 이미지는, 마음에 서서히 굳어간다. 어느 정도 이미지가 굳힌 상태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보통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듣고 그렸던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느낌 혹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다. 전자는 듣던 대로인 거고, 후자는 듣던 것과는 다른 거다.
처음에는 그렸던 이미지로 그 사람을 바라본다.
말투와 행동 등을 그렸던 이미지에 계속 접목하는 거다. 맞는 부분이 있다면 ‘아! 이래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구나!’라며 속으로 동의한다. 이미지와 어긋나는 모습이 보이면, ‘어? 듣던 것과는 좀 다른데?’라며 기존의 정보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따져본다. 잠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기존에 알던 이미지를 조금씩 수정한다. 좋게 들었던 이미지를 안 좋게 수정할 수도 있고, 안 좋았던 이미지를 좋게 수정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에 관한 이미지를 정립하고 앞으로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를 선택하게 된다.
처음 이미지를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인지할 때 혹은 전달할 때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누군가한테는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수정하는 정보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사람에 관한 문제라면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이미지를 전혀 다르게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별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누군가한테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자기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라고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대답이지 않을까 싶다. 도움을 주기 위해 어느 정도 포장하는 것은 좋지만, 쓸데없는 말로 곤란하게 하는 건 옳지 않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하는 말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