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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비둘기 Dec 15. 2016

GRAND OPEN

외딴섬 이야기

“GRAND OPEN”,

곳곳이 행사와 사람으로 가득하고, 모두가 웃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어울리듯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카트 위에 놓인 기다란 가스통 세 개. 행사란 그에겐 선릉역 앞에 밤만 되면 뿌려지는 향락 선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선전지들은 구미가 당길 때도 있다는 점에서 더 나은지도 모른다.

그는 가스 세 통을 끌고 다음 가게로 - 모두에게 판매하는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일하는 곳이 되는 곳으로 – 향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볼래. 

단호한 목소리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 어린아이는 최대한 단호하게 말해보려고 노력했으리라.

“어서 더 보고와.” 아이의 노력은 더 단호함 앞에서 바스러져 버렸다.

어디를…

주변을 걸어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아이에겐 이곳저곳은 무의미했다. 그녀에겐 아빠의 푸근함이, 아니 그저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도 이를 모르지 않았으리라.

“한 바퀴 더 돌고 여기로 다시 오라고.” 그의 표정과 말투는 매우 단단하고 굳세었으나 묘하게도 울먹거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결국 아이는 무의미의 미로를 한 바퀴 더 돌기 위해 작은 어깨를 더 낮게 떨구었다.

아버지는 가스통 하나를 내려놓고 납입부를 꺼내어 들었다. 자신의 키만 한 가스통은 전혀 무겁지 않아 보였다. 다만, 지금 이 모든 시공간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 곁에 있고 싶어 하는 단 한 사람인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가스통을 끌어야 하는 그 마음이 너무 무거웠으리라. 

그래도 그는 아이의 떨어진 어깨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납입부에 오늘의 날짜를 적으며 바랐을 것이다. 아이가, 왜 한 바퀴 더 돌아야 했는지를 자각하는 날이 더디게 오기를-


오가는 시끄러운 인파 속에 외딴섬 두 개가 덩그러니, 적막하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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