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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Hong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 그녀를 통해 난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녀도 나를 통해 그녀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단 한 명의 아픔과 상처를 우리의 사랑과 예술로 채워드릴 수 있다면...

그걸로 나의 예술은, 우리의 예술은 충분하다.


어린 시절 지독한 상처는 나의 독립성과 도전 정신 그리고 끈기에 큰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사실 이러한 상처는 겪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보다는, 세상의 뜻대로 내가 이끌려지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부딪히고 아프지만, 배우면서 성장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도달하지 않을까... 그 곳이 어떠한 곳이든 지금의 나로서는 부족하니, 열심히 다치고 다친 만큼 성장해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재즈는 내게 특별하다. 자유로움과 반항,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위태로움, 그런 자유로움 속에서 보이는 연약함... 이 위태롭고 연약함으로 인한 슬픔을 이제는 재즈라는 예술로 분출해보려 한다. 용암이 들끓는 방식이 아닌, 가뭄에 내리는 빗줄기처럼 그 빗줄기에 나의 눈물과 자유를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보고자 한다.


모두가 똑같이 학창 시절에는 사회가 정해놓은 공부를 해야했다. 즉 생각할 시간이 없이 우리는 그저 좋은 대학을 위해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대학교 진학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똑같이 군입대를 해야했고, 똑같이 취준을 해야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해진 대로 가야하는 길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인간미가 있는 곳으로... 정말 참된 나의 역량을 일깨울 수 있고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여 살아갈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나야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장마가 세 달 가까이 내리다가 마침내 끝났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것들을 지키고 요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난리통 속에서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뛰놀고, 자연은 오랜만에 목욕을 한 것 마냥 무지개를 벗삼아 초롱초록한 줄기와 잎사귀를 뽐내었다. 각박한 회색 세상에서, 비로소 인간의 향기와 자연의 향기가 조화롭게 풍겨 나오는 아침이었다. 이게 내 지바센 마을 생활의 시작이었다.



지바센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자연' 때문이었다. 자연은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해방감을 주는 존재였다. 나무와 새, 꽃들과 풀 등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현실이 잊혀지고, 평화롭고 몽환적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다 향기, 숲의 향기, 새벽 밤 공기, 겨울 이른 아침 공기 등 자연의 향기는 나를 감싸주고 채워주는 힐링 그 자체였다. 그래서 지바센 마을로 정했다.



지바센 마을을 처음 상상했을 때, 아름답고 광활한 숲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의 해맑게 떠들며 웃는 미소를 떠올렸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렸을 적 정서적 결핍이 지바센 마을이라는 환상으로부터 채워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변화와 도전을 위해 나를 통제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뎠다.



지바센 마을로 올 때 난 소중한 낭만을 가슴에 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그 낭만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내 현실적 사회적 목표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황금같은 청춘의 시기에 커리어 면에서 가진 목표는 결국 나의 낭만을 가슴 속 한 곳에 묻어두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낭만을 잊어버린 채 나는 지바센 마을에서도 결국 이전과 같이 짜여진 루틴대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제3자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짜여진 루틴이 아닌, 내가 직접 짠 루틴의 삶을 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이 인턴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 어떤 재즈 밴드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재즈에 대해 잘 몰랐지만 분명 이들의 버스킹은 재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그루브를 타게 되는 리듬감에, 음악에서 어우러져 들리는 뮤지션들의 행복한 소리가 재즈를 잘 모르는 내게도 이것이 재즈다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전달되었다. 난 그렇게 5분, 15분, 30분 멍하니 그들의 공연에 매료되어 감상하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광장 옆 벤치에 앉아있던 노부부가 자연스레 손을 잡은 채 버스킹 뮤지션들 앞으로 걸어나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한 바퀴 자연스레 돌린다. 화려한 스킬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너무나 행복하게 한 바퀴 돌고 지긋이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어려운 동작도 없었고 강렬한 퍼포먼스도 없었지만 이 둘 노부부가 추는 춤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춤이었다. 그 순간, 난 내가 잊고 지냈던 내 낭만의 한 면을 꺼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재즈에 추는 춤이라는 예술과 동행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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