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행복
배움의 세 번째 대상은 죽음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행복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실패했지만 괜찮아 다시 해봐야지'라고 먼지를 털어내게 된다. 다시 시도할 수 있어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기차가 서면 정거장에 내린다. 여러 곳을 들러 본다.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과의 만남은 기억된다. 즐거움, 괴로움, 질시, 부러움. 슬픔, 고독, 기쁨, 권태, 후회, 혼란, 무질서에 상처받고 사랑과 우정으로 위로받는다. 그 감정도 고스란히 기억된다. 신들이 펼쳐놓은 화려한 잔치 상위의 음식은 짜고 맵고 싱겁고 쓰고 때론 달콤하다. 그 맛도 기억된다.
잊었다고 잃은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목적지가 정해진 기차여행이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각자 내려야 하는 역이 다를 뿐이다.
하버드 의대 아툴 가완디 교수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강렬한 번역의 원제는 'Being Mortal'이다. 우리는 유한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책의 본질적인 질문은 귀향을 전제로 유한의 생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이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커다란 도움을 준다.
다음 세 가지는 모두 알고 있다.
첫째, 당신과 나를 포함해 모두가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
둘째, 고향에 도착하면 혼자 내린다는 것.
셋째, 기차에서 내리는 순서는 나이, 인종, 성별, 직업, 부, 명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것.
원하지 않아도 내려야 한다.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두 알고 있지만 준비하고 있는 이는 적다.
다음 세 가지는 아무도 모른다.
첫째, 언제 고향에 도착할는지.
둘째, 어떻게 고향에 도착할는지.
셋째, 어디서 고향에 도착할는지.
이를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준비하려면 여행 내내 깨어 있어야 한다. 당황하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과연 더 늦기 전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
셋째, 그 의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자신만의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광화문은 어떻게 가죠?"라고 길을 물으면 "왼쪽으로 돌아나가 3번 출구로 200미터 나가면 된다"라고 바로 쉽게 대답할 수 있도록.
깨어 있음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