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이 세 배로 늘어난 순간
"어릴 때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죠."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 (YiYi: A One and a Two. 2000)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난 Ota가 차 안에서 NJ에게 하는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왜 우리는 처음을 두려워하는 거죠? 우리 인생의 매일이 처음인데.. 매일 아침도 처음이잖아요. 우리는 똑같은 날을 두 번 산 적이 없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왜 처음을 두려워하는 거죠?"
일상을 사는 우리는 매일 삶의 수수께끼들과 만난다.
대개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러면서 단조롭고 재미없다고 불평한다.
때론 앞에 걸린 수수께끼들을 풀어 내려다가 좌절한다. 만사가 불공평하고 불확실하기에 불안해한다.
8살의 양양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내가 볼 수 있는 걸 왜 아빠는 볼 수 없어요? 아빠가 볼 수 있는 걸 왜 나는 못 보는 거죠?"
그런 아들에게 NJ는 카메라를 준다. 양양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고 그 사진을 뒤 머리가 찍힌 사람들에게 준다. 스스로는 뒷모습을 못 보니까 그걸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절반의 진실밖에 볼 수 없기에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하나 그리고 둘'이 아닐까.
아무런 선악의 대결 구도도, 감각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3시간 가까이 천천히 흘러가는 이야기는 우리가 체험하는 매일의 일상처럼 NJ와 민민 부부, 그들의 자식인 팅팅과 양양, 그 주변 사람들의 속내를 담는다. 각자의 이야기와 그들과 연결된 다른 사람의 소소한 사건들이다.
그러다가 앞에 인용한 Ota의 대사처럼 섬광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천둥처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첫사랑과 우연히 만나는 순간
자신의 하루가 보잘것없어서 매일 똑같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고 좌절하는 순간
사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순간
헤어지는 순간
용서받는 순간
일상의 여백과 불완전함, 그에 따른 불확실함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버리고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미련과 한계에 차츰 익숙해져 간다면 섬광처럼 찾아온 그 순간들로 그 여백을 조금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여행자의 일상을 살아가면 모든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속 민민처럼 내 하루가 보잘것없어서 할 얘기가 없다고 털어놓는 사람과 마주하고, NJ처럼 인생에 두 번째 기회가 오더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선선히 인정하는 사람, 그렇게 영혼의 결이 비슷한 사람에게 아무도 묻지 않아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속절없이 밀려드는 허무와 미련, 막막함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혼자이지만 외로움을 감춘 한 사람이 그런 또 다른 한 사람과 만나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나하나가 둘이 되면 어쩔 수 없는 고독함을 공감이라는 마음의 여유로 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어차피 반쪽의 진실밖에 볼 수 없는 한계를 가졌다고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실지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어서가 아니라 음악으로 인생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그 선한 마음이 우리 스스로를 보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