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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Apr 18. 2018

오늘을 치열하게 사는 법

선물에 감사하다

아침 출근길에 R과 K를 만났다.

R과 K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온 부부인데 두 사람 모두 교사다. 2주간 방학 후의 첫 출근이라고 했다. 휴가 중에 뭘 했느냐고 물었다. 네팔에 다녀왔다고 했다. 전날 밤 11시 30분에 도착, 짐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3시. 잠시 눈을 붙이고 지금 8시까지 출근하는 길이란다.

"나라면 토요일쯤 돌아와서 일요일 하루 쉬고 출근할 텐데 어찌 그렇게 휴가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 썼느냐"라고 했더니 "휴가니까"라며 웃는다. 그 웃음엔 ‘넌 왜 일 년에 20일씩 가고 싶은 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유급 휴가도 제대로 못쓰고 있는 거야’란 힐난이 담겨있다.

“난 참 노는 게 익숙하지 않아”라는 혼잣말을 허공에 뱉었더니 “노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 그가 받았다.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내가 말하는 노는 것이란 계획 없이 별 일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는 것이고, 그가 말한 쉬는 것이란 일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즐기는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의 직장생활 중 7월 말에 가는 1주일의 여름휴가(주말 포함)와 3일간의 겨울 휴가에 익숙하던 나는 지난 5년 넘게 일한 이곳 뉴질랜드 직장에서 ‘넌 도대체 왜 휴가를 그렇게 안 가느냐’는 농담 비슷한 비난을 자주 들었다. 그것이 비난이었던 이유는 ‘아무런 재충전 없인 결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가 단순 상식이기 때문이다. 연 20일(토 일 제외)을 바락바락 다 쓰거나 매년 일정 기간씩 모아 두었다가 한 번에 두 세 달씩 사라지는 그들로선 쌓여 가는 휴가 일수를 쓰지 않고 일만 하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했다.

R과 K 부부는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조금씩 돈을 모아 좋은 집과 멋진 차를 사는 대신 그 돈으로 실컷 여행한다. 일이 아닌 휴가니까 마지막 1분 1초까지 남김없이 힘들게 ‘쉬는 것’이다. 가끔씩 그런 얘기를 나누었다. R이 우기다시피 해서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치러 다닌 스쿼시 게임 중간에, 록 클라이밍을 함께 하자고 등산 장비까지 내 사무실에 가져와 보여주며 설명하던 그에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일상을 대하는 모든 선택의 밑바닥에 그의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오늘이란 우리가 당연하게 받는 권리가 아니거든.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 그건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야. 어떤 사람은 오늘 받았지만 내일엔 못 받을 수 있는 그런 아주 소중한 선물.”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R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캐나다에 있을 당시 17세의 조카가 희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부터였다. 자기보다 20년이나 어린 한창나이 조카의 힘든 투병을 6개월 가까이 지켜본 후 R과 K는 평소에 꿈꾸던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 그들의 직업은 자신들의 꿈을 가능케 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그들의 ‘일’은 하고 싶은 것들, 안 해 본 것들, 미처 몰랐던 일들을 매일 해보는 것이다.

네팔에서 해발 6천 미터까지 오르면서 고산병에 시달렸고 거울보다 더 반짝이는 눈 때문에 얼굴 일부가 화상을 입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연약해 보이는 K는 감기 몸살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안 갔더라면 평생 후회했을 엄청난 경험"이라며 웃더니 “안주하면 더 안주하고 싶어 진다”라고 했다. R이 덧붙였다.

“오늘이란 시간을 매일 거저 주어지는 나의 권리로 당연시하는 순간부터 일상의 소중함은 허물어지게 마련이거든.”

그것이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원칙이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내가 맺고 있는 각양각색의 인간관계 중 관계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그 사람과의 관계에 금 가기 시작했다는 걸 많은 만남들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지지해줄 때,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 때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어 버리는 건 오만이다. 그 관계가 탄탄해졌다고 소홀히 대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내 뒤에서 멀어진다.


지금 막 다가와 펼쳐진 아름다운 오늘처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내가 잘나서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보석처럼 나를 찾아 준 귀한 선물이라는 것에 감사하면, 무료한 일상도 삐걱거리는 인간 관계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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