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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Jun 09. 2018

Bali에서 얻은 깨달음

관계 -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교차점 

9개월 만에 발리를 다시 찾았다. 2주간의 휴가였다. 떠나기 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재충전이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경험 이전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붓 (Ubud) 밑 작은 농가 마을 끝에 있는 빌라에 다시 머물렀다. 발코니 바로 앞에 펼쳐진 갈색의 논, 그 너머로 어김없이 지는 일몰을 보면서 머리를 비웠다. 입을 닫은 침묵의 시간과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명상이 수많은 잡상들로 무거워진 머리를 비워내게끔 도와주었다.


비워내니 홀가분하고 내려놓으니 가볍다.


비단 무거운 머리뿐이 아니었다. 불안과 실망, 후회와 기대, 걱정과 갈망으로 얼기설기 꼬인 마음도 푸른 자연 앞에서 민낯을 드러낸 채 활짝 열렸다. 시원한 바람도 들어왔다 나가고, 사람들의 얼굴들도 불쑥 나타났다 사라진다. 일과 프로젝트, 향후 계획들이 울타리 너머에서 분주한 농부의 몸짓 마냥 낯설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비친다는 내심외경이란 말 그대로 고단한 육체가 편해지고 마음이 가벼우니 일상이 단순하다. 만사가 간단하니 생각도 명료해진다.

늘 책과 여행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책에서 얻는 지식과 여행을 통해 터득한 경험을 써먹는 대상, 즉 사람과의 관계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졌더라면, 거추장스러운 관계는 과감히 끊어 버린다, 나를 스스로 채우고 그 누구로부터 어떤 기대도 갖지 않는다, 상대에게 불필요한 관심 또한 주지 않는다는 등 이기적인 인맥의 기술 따위는 흘러버렸을 것이다.

                                                                                          <사진=강바다>

발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구스 (Augus)는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개인 투어를 해줬다. 자신의 차로 총 10시간 동안 발리에서 그가 추천하는 곳과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식사 때엔 식당 밖에 쭈그리고 앉아 우릴 기다리고 있길래 초대해 같이 먹었다. 멕시코 식당이었는데 퀘사딜라와 살사를 듬뿍 친 버리토스, 타코 샐러드에 코로나를 곁들였다. 멕시코 음식은 난생처음이라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교사이고, 그가 개인 관광 가이드를 전업으로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되었다. 은행원의 평균 월급이 US 400달러인데 이에 많이 못 미치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태어나고 자란 발리를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리면서 돈까지 번다면서 언제나 웃는 낯이다. 그런 그가 좋다. 

로컬들이 먹는 Nasi Goreng이나 Mie Goreng이 뉴질랜드 돈으로 1.50달러 불과하다. 저렴한 물가를 만끽하는 외국인들보다 소득이 낮고 저개발 된 국가에서 사는 그들이 형편없이 불행하다거나 불우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숙소에서 일하는 직원들, 운전사 카덱과 마덱, 카페와 식당, 시장에서 만나는 이들의 얼굴엔 언제나 순박한 웃음이 있다. 거리에서 처음 본 꼬마들이 수줍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사진=강바다>

우리는 물질이 아닌 관계로부터 배운다.

책 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보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왔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얼마나 많은 재물을 축적했는지 보다 상대에게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결점과 약점을 거꾸로 알아내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백범 선생의 말처럼 지옥과 천국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쉽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면 된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린다.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달려 있다. 상처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의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한 반응은 내 몫이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백범 김구 -

우리가 관계로부터 배운다는 말의 속뜻은 결국 나를 다스리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일상에 충실하는 나처럼 내 옆에 있는 나의 이웃도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이것은 경주와 경쟁이 아닌 동행이 아닌가. 이것을 인정하고 속 깊이 받아들이면, 상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보상 없이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관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써 나 또한 그들 못지않게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겨울비가 스산하게 뿌린다.

발리에 다시 가고 싶다.

                                                                                            <사진=강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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