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진다

정거장 다섯 - 교차로

by 강바다

노신사가 다시 입을 뗐다.

"햇살이 그리 세지 않으면 그만 찡그리고 이거 하나 드셔 보시게."

삶은 달걀 한 개를 내게 건넸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검은 돌이 박힌 은반지가 그의 두툼한 손가락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짤막한 거절과 함께 작은 배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신사가 들릴 듯 말 듯 혼자 소리로 중얼거렸다.

"점심을 거른 빈속이어서 그런지 아주 맛있는걸!"
입맛까지 다셔가며 달걀 껍데기를 벗겨내는 그의 모습 위로 친근하고 그리운 얼굴이 일순 겹쳐졌다.


삶은 달걀은 아버지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음식이었다. 외아들이었던 아버지는 1.4 후퇴 때 어머니 그러니까 내 할머니로부터 등을 떼다 밀리다시피 해서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남하했다. 당시 열네 살이었던 아버지는 영양실조에다 폐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지게에 업고 함께 내려가려 했지만 1월의 엄동설한에 삼팔선 이남까지 걸어서 내려간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인민군으로 징집된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함께 내려가겠다고 아버지를 반 우격다짐 끝에 설득한 할머니는 아버지가 떠나는 날 새벽,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달걀 한 줄을 구해 정성스레 삶아 볏짚으로 겹겹이 싼 다음 아버지의 봇짐에 넣으셨다. 아버지는 그 달걀들을 짐에서 꺼내 가슴에 품었다고 했다.
그 후 아버지에게 삶은 달걀은 신포에 두고 온 할머니였고, 할머니의 소중한 사랑이었으며, 삶의 각오를 일깨우는 무기가 되었다. 밤새 고기잡이를 나간 날들을 빼곤 아버지는 30여 년 전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매일 새벽마다 달걀을 삶아 내 도시락에 넣으셨다. 언제나 내 도시락엔 두 쪽으로 잘라진 삶은 달걀 네 개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그것이 소풍날엔 각종 해산물과 함께 교장 선생님 두 줄, 담임선생님 한 줄, 내 몫으로 따로 한 줄 모두 네 줄로 늘어났다. 선생님들이야 삶은 달걀 따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이른 새벽 도시락을 싸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다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삶은 달걀 남았거든 하나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노인이 반색했다.

“그럼요. 더 있고 말고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그가 내 오른손을 덥석 잡더니 달걀 한 개를 내 손안에 쥐어 주었다. 그리곤 물었다.

"삶이 무엇인지 아시오?"

느닷없는 질문에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넉살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삶이란 말이오. 바로 이것이오. 이 달걀, ‘삶’은 달걀! 하하하."

한참 만에 그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린 내가 피식 웃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것 봐요, 젊은이. 웃으니까 보기 좋지 않아요?”

복숭아 빛의 건강한 얼굴색, 매끄러운 피부 위에 박힌 굵은 주름들, 길쭉하나 단단한 턱 선을 따라 부드러운 미소가 배인 그의 얼굴 위로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견뎌온 강인함이 언뜻 스치듯 지나갔다. 온기가 남아 있는 따스한 달걀을 잠시 두 손으로 보듬다가 껍질을 벗겨내고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내 먹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사소한 달걀 한 개지만 맛있게 먹고 웃는 힘을 크게 키워 보시구려. 허허허."

사실 난 미소는커녕 웃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본래부터 낙천주의자가 아닌 데다, 살면서 기분 좋게 웃을 일들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뷰 파인더에 대고 왼쪽 눈을 찡그리다 보니 어느새 미간 사이에 굵은 주름이 생겨버렸다. 그 주름이 찌그려진 인상으로 굳어지면서 내 얼굴이 되었다. 누구나 나를 처음 보면 침울한 표정, 화난 얼굴, 매서운 눈초리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첫인상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강조하지만 남들의 시선이나 생각 따위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왜 항상 인상만 쓰고 있느냐’는 힐난과 비아냥거림에 이미 익숙해진 나로선 앞 좌석에 앉은 낯선 노신사의 지적이 그다지 새로운 얘기도 아니었다.

“자. 커피도 한잔 마셔 봐요. 아직 따뜻할 테니.”

바닥에 놓인 녹색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더니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보온병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자, 그가 지그시 눈을 감더니 서서히 번지는 커피 향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커피 냄새를 맡는 사람처럼 소리 없이 들이마셨다가 서서히 내뿜기를 두세 번 반복하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떴다.

“커피 향만큼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냄새도 없어요. 삶은 달걀 하나가 우리를 웃음 짓는 부자로 만들어 주듯이 말이죠."

슬쩍 나를 쳐다보더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기까지 보였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굳이 산골의 외딴 절간이나 수행을 위해 멀리 인도까지 일부러 찾아갈 것까지 없습니다. 이 북적거리는 기차 안에서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가 건넨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그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해보았다. 차창 밖의 잔설 쌓인 숲과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강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를 들먹인 탓인가? 불현듯 강가(Ganga)가 떠올랐다. 내친김에 얘깃거리를 조심스레 꺼내 보았다.

“혹시 인도엘 가보셨습니까?"

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가봤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나 재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아름다운 곳이죠."

적잖은 사연이 서린 듯 들렸다. 인도 얘기가 나오자 은근히 신이 났다.

"추억을 만들기 좋은 곳이죠, 인도는."
"아름다운 인생이란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위해서 생의 의미나 참 행복을 찾으러 인도로 갑니다.”

“그곳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사진은 많이 찍었나요?”

내 옆에 놓인 카메라 가방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한국을 뺀다면 인도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이 나의 발길이 닿은 곳이다. 그런 나를 아내 진영은 '인도 중독증 환자'라고 놀리곤 했지만, 그 누구도 인도의 마력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갠지스 강의 더럽고 불결하고 시끄러운, 그래서 처절하게 성스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특유의 꼬질스런 냄새와 함께 스쳐 지나갔다.

"많이 가봤던 게로 군."

그가 대뜸 확신했다. 새삼 이 정체불명의 은발 신사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검은색 울의 터틀넥, 청바지에 군청색의 고급 캔버스화, 그 옆엔 짙은 갈색의 재킷과 자주색 목도리가 아무렇게나 접혀 있다. 언뜻 보면 쉽게 놓치지만 차근차근 뜯어볼수록 세련미가 자연스레 밴 중후한 멋을 풍겨내고 있다. 맑고 인자한, 그러나 왠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든 눈빛, 부드럽지만 힘 있는 어투, 관대하지만 절제된 에너지가 발산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을 묘하게 잡아끌고 있다.


이때 옆에서 '쿵' 하는 소리와 '아이코' 하는 비명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커다란 기타와 가방을 들고 비좁은 통로를 지나가던 여학생이 우리 옆 뒷자리에 앉은 대머리 사내의 머리를 기타로 돌려 친 모양이었다. 화가 난 대머리 사내가 소리를 백 지르자 내 앞의 신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여학생과 대머리 사내 사이를 가로막고 대신 사과했다. 머리가 허연 노신사가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용서를 구하자, 대머리 사내도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잠시 구시렁대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여학생이 안절부절못하자 그 노신사가 여학생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다. 희수야. 괜찮니?"

당황하던 여학생이 그제야 물안경처럼 두꺼운 안경을 고쳐 잡으며 반가워했다.

"어머. 회장님."

"그래. 많이 놀랐지. 이제 다 괜찮아."

회장님으로 불린 은발 신사가 여학생의 기타를 대신 들더니 나를 돌아보며, "잠시 내 짐 좀 봐주겠어요? 금방 돌아올 테니"하고 부탁했다. 내가 그러겠다고 하자, 주춤거리는 여학생의 어깨를 감싸며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딸 보호하듯 조심스럽게 다음 칸으로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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