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자가 되고 싶다

기차 여행 - 에필로그

by 강바다

몇 해 전 4월부터 6개월 동안 매주 이태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토요일 아침, 따뜻한 침대를 박차고 나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기초반을 수강했다. 제1장 ‘Buongiorno’에서 “un caffe, per favore”를 떠듬거리면서 시작했다. 영어로 배우는 이태리어가 쉽진 않았지만 매주 숙제도 빠뜨리지 않았고 복습도 빈틈없이 했다. 수업 도중에 이태리 원어로 나오는 대화를 CD로 들으면서 좌절도 많이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단어 하나, 숙어 한 마디를 보게 되면 ‘이걸 이태리에 가면 꼭 써먹어야지’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곧게 새겼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이태리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일 먼저 로마 엘 갈 것이다. 그곳에서 에디와 다시 만날 것이다. 에디와 함께 쓰기로 약속했던 책 얘기를 다시 나눌 것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각 문화의 죽음 예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14세기쯤에 지어진 낡은 건물 지하에 들어선 카페에 앉아 키 안테를 마시며 지난 세월의 공백을 채울 것이다. 로마를 떠나선 차근차근 이태리를 돌아보며 낯선 풍광들을 무수히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자동차와 기차 여행이 좋을 듯싶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나폴리를, 베수비우스산을, 움브리아와 투스카니를 둘러볼 것이다. 별빛이 쏟아지는 까만 밤 베로나의 야외 음악당에서 베르디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이태리 특집기사를 읽었던 병원에서의 그날을 새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계속 꿈을 꾼다. 시에나의 이름 모를 언덕 위에 앉아 적황색 단풍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꿈, 지중해 연안을 1년쯤 여행하다가 남부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 두 번째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꿈, 넝쿨나무 잎새가 외벽을 덮은 이층 작은 방에서 저녁노을을 내려다보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도보 여행을 계획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카프리 섬도 꿈꿔본다. 베일 듯이 따가운 햇살과 시린 눈살을 파고드는 새파란 하늘 속의 흰 뭉게구름을 한껏 안으며 내게 주어진 자유와 평안함, 하나의 진리를 얻게 된 희열에 부르르르 나도 모르게 온 몸을 떨 것이다. 그렇게 내게 일어난 기적의 힘과 그 의미를 하나씩 하나씩 되새길 것이다.


그 해 겨울, 수술을 받고 웰링턴으로 다시 돌아온 다음날 아틀리를 찾아뵈었다. 아틀리는 ‘우리의 인생은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고 비유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글에는 ‘가까운 친구’라고 썼지만 친구라기보다는 인생의 스승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 될 것이다.

겨울비가 구슬프게 내리던 그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내가 주일미사도 잘 나가지 않던 사이비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 ‘난 철저한 이기주의자’라고 자랑스럽게 떠벌이던 때가 있었다는 것, 성경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등의 부끄러운 고백부터 야망과 성공을 꿈꾸며 치열하게 경주했던 시기,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차라리 손을 놓아버리는 게 더 편하겠다’며 절망마저 포기하려 했던 고통의 시간들까지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울퉁불퉁한 돌멩이 하나, 바위 틈새에 핀 거친 풀꽃 하나, 얼굴을 적시는 빗방울, 귀를 스치며 지나는 바람 한 줄기, 각양각색의 낯선 얼굴들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대뜸 “네가 겪은 경험을 글로 써보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것이 바로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퍼뜩 뇌리를 때렸다.


지난 경험을 더듬으며 그간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고통의 순간순간 깊숙이로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경험을 공유하겠다는 의도는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삶의 친숙한 울타리 안으로 되돌아왔다는 기쁨이나 안도감, 또는 그로 인해 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것인가를 강조하려는 차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또다시 죽음이란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순서 없이 받아야 할 선물 같은 것이다.

마지막 순간임을 알았을 때 창자까지 토해내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치고 도망치기보다 기꺼이 후회 없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생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역설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주된 의도 역시 잘 산다는 것이란 육신보다는 우리의 영혼을 한껏 살찌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같은 진리를 많은 사람들이 일깨워주었다. 그들의 세심한 마음과 사려 깊은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이웃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애쓰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한편으론 글 쓰는 내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중에 이 글을 읽으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겠구나’ 하는 생각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런 귀한 경험을 거치고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면서 여태껏 고작 그렇게 밖에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느냐고 힐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힐난받아 마땅하다. 나 스스로가 보기에도 아직 멀었다. 그 지경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회생했건만 여전히 감사에 인색하고 너그럽지도 못하다. 도대체 과거와 다르게 얼마나 성숙하고 나아졌는지 의문스럽고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또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 매일매일 새로 시작한다.

부끄럽게도 몇 해전에야 비로소 차고에 쌓아놓았던 재고들을 ‘집 없는 거리의 사람들’을 위한 천주교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비우고 나니 아쉽고 허전할 줄 알았는데, 막힌 속이 뻥 뚫린 느낌이다. 내 피와 땀이 적셔진 옷들이 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이웃들의 따뜻한 바람막이가 된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비워내니 홀가분하다

내려놓으니 가볍다

조금씩 더 낮추어 가면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매번 다시 시작할 때마다 지난번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려 본다. 무엇보다 잘못들을 툭툭 털어내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겨서 기쁘다. 나의 보잘것없는 작은 미소가 하루의 어느 시간 의기소침해있는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난 아름다워질 것이다. 정녕 아름다운 남자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런 아름다운 남자가 되고 싶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남자,

밝은 남자,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걱정해주고,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서는 남자,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이의 부족함과 실수에 관대한 남자,

너그럽고 겸손한 남자,

따뜻한 남자,

부드러움이 자연스레 배어 흐르는 남자,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은 남자,

그런 아름다운 남자가 되고 싶다.


안다. 누군가 혀를 쯧쯧쯧… 차면서 비아냥거린다 하더라도 “나도 잘 알아. 난 아직 멀었지”라고 싱긋 미소 지으며 맞장구 쳐줄 것이다. “갈 길이 멀고도 멀지만, 옛날의 나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담담하게 말해줄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아틀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 글을 읽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그래서 기차 여행 중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에게 허물없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필자에겐 더할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겨울비가 차갑다. 그 차디찬 얼음비를 견딜 수 있는 꿈을 가질 수 있어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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