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식도락가' 카수미처럼
Netflix에서 사무라이 식도락가 (Samurai Gourmet)라는 시리즈를 보고 있다.
요샌 근무 중 언뜻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퇴근 후 그 프로그램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효과적이다.
18분짜리 단막극이 열두 편까지 나와 있는데 세 편까지 봤다. 입에서 달달하게 녹는 오리지널 허시 초콜릿처럼 한 조각씩 배어 음미하고 있다. 심야 식당(Midnight Diner: Tokyo Story)과 번갈아 며칠에 한 번씩 본다.
몇 해전 아내와 오사카를 여행하면서 기껏해야 6명 정도나 들어갈까 하는 동네 이자카야 몇 곳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그땐 너무 작아 보여서 또는 답답할 것 같아서 유명 맛집들만 찾아다니느라 못 갔다. 그 '소문난'라는 타인의 입맛에 따른 척도에 의존한 것이 잘못이었다. 누가 뭐라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분위기가 있는데 말이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다음 일본 여행에는 만사를 제치고 동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자카야 순례라도 할 참이다. 저녁노을이 무심하게 질 즈음 하루의 여행을 마치고 허기라도 달랠 겸 아니면 그저 작은 하루를 보람차게 마쳤다는 소박한 뿌듯함으로 오코노미야키에 차디 찬 생맥주 한 잔도 좋고, 사케에다 고등어구이도 맛날 것이다. 술 한 잔 하면서 서툰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될 게 틀림없다.
사무라이 식도락가 세 번째 편은 '아침에 먹는 고등어'라는 제목이다. 은퇴한 60세의 카수미는 친구네 집에서 바둑을 두다 막차를 놓치고 만다. 평생직장 생활하면서 단 한 번도 예정 없는 외박을 한 적이 없는 그는 역 근처 바닷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출근의 스트레스 없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난 그는 해안가로 아침 산책을 다녀온 뒤, 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나자 허기를 느낀다. 이때 여인숙 주인이 차려 준 아침 밥상이 바로 다음 사진이다.
오븐에 구운 고등어, 다시마 무침, 자그마한 사기 밥그릇에 푼 하얀 쌀밥, 대파에 들어간 미소국에 나토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돌았다. 그 음식 하나를 조리하는 과정들이 영상에 담겼고, 은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카수미는 한 젓가락마다 음식의 맛깔스러움을 그의 얼굴 표정으로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입맛 다시는 나를 보더니 아내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당신이 바라는 그대로의 아침 식사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정말 그렇지 않아. 맞아. 맞아.."
다음날, 카수미완 달리 은퇴가 아직 많이 남은 나는 단잠을 자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샤워를 마치고 늘 먹는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 달걀 두 개를 기대하고 식탁에 앉은 내 앞에 펼쳐진 아침 상은
다음과 같았다.
이날 오후 2시까지 난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 고소한 고등어구이, 파가 잔뜩 들어간 미소국, 김과 오이 무침을 얹은 쌀밥의 포만감이 쉽게 가셔지지 않은 때문이다.
행복한 하루였다.
카수미처럼 맛난 아침 상을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아침 상을 차려줄 수 있는 센스 있는 아내가 내 옆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