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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Park May 01. 2023

하늘 냄새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가끔, 아니 사실은 꽤나 자주 하고 싶은 말들이 역류할 때가 있습니다. 한참을 게걸스레 떠들어대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떠들고 있습니다. 깊이도, 넓이도 가지지 못한 팃검불같이 무용한 말뭉치들입니다.


자꾸만 나를 보여내고,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약에도 쓰인다던 개똥만도 못한 나 자신을 공치사하는 게 후안무치한 일인 줄도 모르고 여봐란듯이 떠들고 다닙니다. 속이 비어 소리만 큰 깡통입니다. 나보다 더 조야한 사내를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타인의 고통은커녕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으로 무슨 깊이를 논할 수가 있을까요.


살면서 조금씩 나를 알아갈수록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던 내 주위와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도 덕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나를 발보이고 싶어 안달이 나려 할 때마다 현자의 말보다 범부의 침묵이 낫다는 말을 한 숟갈 떠먹습니다.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살고 있지 않은 듯 살고 싶습니다. 죽은 듯이 살고 싶습니다.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를 통해 나의 나 됨이 아닌 내 뒤에 있는, 내 위에 있는 것들을 보이고 싶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것보다 내가 더 나은 것을 내보일 자신이 없습니다.


창이 투명할 때
우리는 창을 잃는 대신 그 창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다.

창이 투명하기를 그칠 때
우리는 창을 얻고 그 대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이승우,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중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지만, 자신을 통해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저자가 쓴 투명한 창입니다. 지고한 의미의 삶이란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삶이고, 결국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삶일 것입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에는 금그릇이 있고 은그릇, 유리그릇, 질그릇도 있습니다. 

요리사가 선택하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박희준, <하늘냄새> 전문



참조: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신어림, 1995). 이승우,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복 있는 사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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