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단풍 을 보며 나를 보며.
4월 시작. 이젠 가을이 시작되나 보다.
며칠 동안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더니.
어제 출근길 길거리 나무들은 물기를 촉촉이 가득 품고 잎들은 전부 단풍색으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단풍은 더욱더 눈부시게 노랗다.
나무들에게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밤새 땅으로 떨어진 노랑 단풍을 손으로 만져보니 물기 있는 촉촉함에 아직 싱싱하고 탱탱하다.
어제까지는 잘 있었다는 뜻인데..
우리 집 입구 동네 나무 끝에 매달린 노랑 단풍, 땅에 떨어진 노랑 단풍들 구경하면서
아 이 노랑 색깔은 참 화려하구나 라는 순간… 어느새 내 마음도 노란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손안에 따뜻함이 전해져서 또 한 번 나무를 쳐다보고 떨어진 낙엽을 다시 만져본다.
Christchurch , NZ
왜 떨어졌을까
땅에 떨어지고 싶었을까
아님 나뭇가지에 끝까지 붙어 있고 싶었을까
어차피 떨어질꺼라면
빨리 땅으로 떨어지는 편이 더 났다고 판단했을까
십오 년 전쯤, 스님 한 분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하면서 하신 말이 생각났다
“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서는 먼저 손바닥을 다 활짝 펴야만 합니다…”
단풍은 이 스님 이야기를 벌써 들었나 보다.
스스로 내려놓는 법 과 그 타이밍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쉽다는 게 잘 안 되는 나는 이 노랑 단풍이 부럽기만 하다.
다시 손바닥 안에 놓고 조금씩 더 만져보았다.
노랑 단풍에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 수도.
아니면
요즈음 계속 이멜로 신경 쓰이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던 영국의 거래처 Graham 그놈 때문 일수도
치열한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의 “패”을 먼저 읽고 있어야 내가 이긴다는 고스톱의 원칙은 30년째 계속 써먹어야 하고
상대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나의 필살기? 독심술까지 간간이 사용해야 하고 ~~
상대를 알려면 나부터 내려놓고 온전히 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그 간단한 논리는
이 나이 먹도록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직 이론일 뿐 아직도 힘들고 어렵다.
화사하고 화려한 노랑 단풍에서
멀리 유학을 간 큰 딸 , 둘째 딸 얼굴이 보인다.
이젠 성년이 되어 멀리 가 있는 딸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뭔지.
잘 살고 있을까?
그래도
오랜만에 딸 생각도 하고
마음 비우는 연습도 하고
이렇게 글까지 썼으니..
노랑 단풍 때문에.
오늘 저녁엔 어묵국으로 소주 한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