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날엔 Nov 14. 2020

연애의 맛

연애 이야기- 꽃신. 나빌레라(2)

최선을 다해 직장 선후배 관계를 '연기'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출근 준비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고 새옷을 사입고 그의 곁에서 얼쩡얼쩡 거렸지만 직장 후배에게 품을 수 없는 감정을 품고서

매일밤 혼자 싹을 잘랐다가

(내일부터는 이 감정을 없애고야 말겠다!)

혼자 꽃을 피웠다가

(혹시 그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닐까?)

무수히도 난리지랄염병(.......)을 했던 것 같다.


지랄염병에 시달리던 그 어느 날, 나에게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다. 어색한 자리는 싫었고, 소개팅에 나갈 만한 순수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기에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한 번 만나 밥이나 먹으라는 어른의 거듭되는 권유에 더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약속을 잡았다. '전문가'님의 도움으로 회사 곳곳에 "소개팅합니다"라며 소문을 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개팅을 한 그날 밤, 그가 연락이 왔다. 업무 외 시각에 연락이 와도 늘 업무 관련 이야기를 묻던 그가!

소개팅 결과에 대해 물어왔다. 한껏 신이 나서 처참한 실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던 것 같다.


소개팅 자리에 나온 남자는 "어머니가 키 큰 여자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듣다듣다 처음 듣는 신박한 이유로, 면전에서 나를 거절했다. 키가 나보다 조금 큰 정도였던 남자였기에 '종자 개량'을 원하는 어머님의 간절한 소원이 있으신가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좋게 일어서려 했지만... 남자의 어머님이 식당 예약을 하면서 미리 식사를 '코스'로 주문해 뒀다고 했다.

아들의 소개팅을 예약해주는 어머님의 섬세한 사랑에 깜짝 놀라 당장 발을 빼는 것이 옳았지만, 머리로는 상황을 잘 판단하고 있었지만, 어렸던 나는 코스요리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 눈이 멀어버렸다. 만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를 퇴짜 놓은 그 남자는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라며(아마도 혼자 앉아 2인분의 코스를 감당하기는 버거웠으리라) 뜬금없이 식사를 권했고, 나는 마음이 여렸고, 안타깝게도 식탐이 강했다.  

이 코스요리가 생애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대화도 거의 없이 빠른 속도로 '음식대탐험'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나 역대급 대탐험에 긴장했던 몸뚱이는 집에 오자마자 먹었던 것들을 모조리 뱉어내기 시작했다. 변기를 붙잡고 한참을 웩웩 거리다 기진맥진해있던 찰나에 받은 전화였다. 그런 이야기를 악에 받쳐 전했고 그는 웃었다.


그 후 몇 번의 퇴근 후 전화.

"만나서 저녁 먹을래요"로 이어진 대화.

퇴근 후 화장을 지운 민낯으로 뭉쳐진 먼지덩어리처럼 굴러 다니다가 그의 전화 한 통에 미친 사람 마냥 꽃단장해 뛰쳐나갔던 그날들. 그리고 술 한 잔 두 잔. 둘 다 술을 좋아했기에 저녁식사는 곧 술자리가 되었고 반주로 시작됐던 자리는 1차, 2차, 3차로 이어지고. 그리고 대화, 대화, 대화. 설렘. 웃음.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고.  그렇게 우린 연인이 되었다.


.........세상에나! 꿈만 같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내 커플이 나의 이야기가 되다니.

출근해서 함께 있고, 퇴근하면 몰래 만나 함께 있고,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는 평일들을 지내고 나서 주말에 또 만났다. 같이 걷다 멀리서 회사 사람이 보이면 골목으로 숨었고 첩보 작전이라도 펼치듯 민첩하게 움직이고는 눈이 마주치면 꺄르르 거리며 웃었다.

'즐거운 날들이었다'....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시간들이었다.

업무 시간에 문자를 보내고,

옥상에서 몰래 만나 뽀뽀하고,

계단에서 몰래 만나 뽀뽀하고,

둘만의 신호를 주고 받고. 꺄르르 꺄르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구나! 연애 만세! 월급도 준다! 만세!를 외쳤던 귀여운(......사장님, 죄송합니다)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인턴기간이 끝났다.



이전 02화 사랑, 사랑, 사랑이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