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이어라
연애 이야기- 꽃신. 나빌레라(1)
입사 2년차. 내 앞가름 하기도 벅찼던 첫 사회생활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단기 인턴직원이었고 당당하게 사무실로 들어오던 그 순간과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나이도, 연차도 내가 앞섰다. 그래서 챙겨주고 싶었다.......지만, 어느 순간 나는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연하가 어떻게 남자로 보이냐던 내가, 연하남 마음에 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고민하고 있었다. 연애에 별 관심도 없던 나였기에 친구들은 환호했고 통화를 할 때면 '짝남'의 안부를 물을 정도가 됐다.
나는 우유부단했고 소심했으며 회사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억지로 웃었다. 그는 강단있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 다음엔 나와 달라서, 그 다음엔 나와 다른 점을 닮고 싶어서, 갖가지 이유로 나는 그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그간 몇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내가 먼저 마음을 품고 안달을 내는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 그렇게 덜컥 짝사랑을 시작해 버렸다.
찍은 남자를 단 한번도 놓쳐본 적 없다는 주변의 '전문가'에게 고충을 털어놓았고 술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흘러흘러 구체적 지침을 받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간질거리고 우습고 부끄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지만 나는 절실했다.
그 전문가 언니는 점심시간에 맞춰 전화받기 스킬을 '코칭'해 주었다. 언니는 무려 2주간, 점심시간이 한창 무르익을 12시 15분 경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로 바꿔놓은 휴대전화를 굳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어색하게 점심먹기 연기를 하던 나는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내장까지 짜내어 열연을 펼쳤다.
전문가님의 섬세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그 지시에 따라 우선 벨 소리에 깜짝 놀라며 휴대전화를 바라보고(액정에 뜬 이름을 잠시 보고) 약간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화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내 표정이 보일 만한 위치까지 걸어가 어색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가끔은 아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전화의 상대방이었던 전문가님은 세세하게 전략을 지시했다.
"어색한 표정으로 테이블 쪽을 바라봐, 그남자 너 보고 있니? 눈 마주치면 한 2초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바로 돌려도 안되고 좀 쳐다보는 느낌으로 눈을 마주치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웃어. 예쁜 미소!!"
"언니, 언니처럼 예뻐야 예쁜 미소 전략이 먹히는 거 아닐까?"
"야, 웃는 얼굴에 침 뱉겠냐. 박장대소 말고 수줍은 미소. 그런 거 연습 안 해봤어?"
"....아니, 수줍은 미소같은 걸 연습을 왜 해."
"참 나, 뭘 믿고 그런 걸 연습을 안 해. 고등학생 때부터 갈고 닦아야지! 시키는 대로 해봐!"
대충 이런 식의 대화였다. '전문가' 언니의 주장은 간결했다.
"남자는 육식동물이야. 별 관심없던 먹잇감도 다른 육식동물이 넘본다는 생각이 들잖아? 그럼 다시 보게 되어있다고. 저게 맛있는 거던가? 어라, 이러다 먹이를 빼앗기겠는데? 나중을 위해서라도 일단 킵해둬볼까? 하게된다고. 그리고 회사에서 본 표정이 아닌 다른 표정을 보잖아? 새롭네, 밖에서 만나면 저렇겠네-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다고."
웬.... 육식동물?
바짝 말린 건어물에 가까웠던 나는 언니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웬 육식동물? 이런다고 마음이 움직인다고? 그러면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모르잖아'하는 생각에 늘 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는 심심했던 것 같고, 난 예나 지금이나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그저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감정이었다. 분홍색. 상큼함. 베스킨라빈스의 애플민트. 솜사탕... 그런 온갖 샤랄라의 대향연.
나름은 이성적이라 자부하던 내게는 너무나 낯설었던 감정의 파도들.
그가 웃어주면 '어라, 설마 나와 비슷한 감정인가' 싶다가
그가 스쳐지나가면 '역시. 나만 이래. 그만 해야 해'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빠졌었고..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완전히 빠져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