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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16. 2020

결혼? 그게 뭐죠?

연애 이야기- 꽃신, 나빌레라(4)


20대 막바지에 곰신짓에 열중하던 나.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러다 헤어지면 그 나이에 어쩌려고?"였다.

나는 쿨하게 대답하곤 했다. "헤어질 게 무서우면 연애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는 "어차피 군대에 있어서 모를텐데 소개팅이라도 해보지? 금방 늙는다?"였다.

이마저도 나는 쿨하게 거절하곤 했다. "남자친구를 속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보통 이러한 대화 끝에는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라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이쯤 되면 나는 "지금 이렇게 안하면 후회할 것 같은데"라며 한껏 센 척을 하곤 했었다. 


지금 와 돌아보건데, 이렇게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가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상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탓이 큰 것 같다. 결혼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머릿 속 내 미래는 '두루뭉술'했다. 둘이 아껴 살면 어떻게든 살테고, 다들 잘 살아가니 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사랑하면 '어떻게든 될거야'라는 막연한 상상. 그게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청사진의 전부였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너와 나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늘어나고.

놀랍게도 내가 상상한 결혼은 그것이 전부였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가 있는 집이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아파트라면 어느 동네에 있는 몇 평 공간인지. 그 몇 평의 집을 무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마련하려면 얼마의 금액이 필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같이 마련해야 할 지, 그리고 그 집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할 지 등등. 

그런 구체적인 생각들이 전-혀 없었다. '직장갖기'에 혈안이 되어 살았던 터라 그 다음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연애만으로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결혼은 갑자기 내게 '들이닥쳤다'.(임신으로 인한 결혼은 아니었다)


첫 휴가를 나온 그는 그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나를 초대했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만난 적이 없던 나는 벌벌 떨며 그 자리에 가 좋은 인상을 주려 애썼던 것 같다. 아버님은 내 나이를 듣고서 "결혼은 생각하고 만나는 거냐?"는 질문을 던지셨고, 나는 "일단 제대하고 차차 생각해보려고요" 등으로 어설프게 대답하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군생활과 휴가.

휴가가 이어지며 몇 차례 더 그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어느날부터인가 아버님은 꾸준히 결혼 이야기를 꺼내셨다. 여전히 분홍빛 세상에 빠져있던 나는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라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아버님의 거듭되는 요청(?)을 내 선에서 계속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남자친구의 주장이 제기됐다. 

제대 후 직업을 가지고 자리를 잡으려면 1~2년은 흐를텐데 그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었다.어차피 몇 년 후에 결혼을 할 거라면, 더 늙기 전에 같이 지내면서 직장을 잡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리고 꾸준히 내 나이를 걱정해줬다. 제대 후 만약에 헤어지면 넌 서른이 넘는다, 차라리 안정되게 같이 사는 편이 네 입장에서 더 좋은 거다 등등.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이야기도 그 때 처음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25일이므로 25살까지는 어떻게든 팔리겠지만, 그 이후에는 팔리지 않는다는 '놀라운' 비유였다. 


어찌됐든 거절을 해도 계속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기에 나는 가족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의 나이'와 '노산의 위험성'에 대한 아버님의 의지를 전해드렸고, 가족들은 '알아서 해라'로 의사를 전달해왔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미 여러차례 그와 다툼이 있었던 상황. 다툼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기에 '일단 상견례라는 걸 해야 하는 건가?', '다들 이렇게 결혼을 하는 건가?', '계속 거절하는 것도 이상한 거지. 기분은 나쁘시겠다' 등으로 생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심플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결혼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군복무 중 상견례가 이뤄졌다. 그리고는 날짜 선정. 그 다음엔 급물살. 급류에 휩쓸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떠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라, 하면 다음 단계. 어라, 하면 또 다음 단계.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미션을 처리하는데 급급했고,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시간은 놀랍도록 차근차근 흘러갔다.  


군 복무 중인 남자와 직장인 여자의 결혼 준비가 순탄할 리 없었다. 제대 직후로 결혼식 날짜는 잡혔으나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상황. 날짜에 맞춰 결혼식을 무사히 치러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 그 목표에 맞춰 미친 여자처럼 결혼식을 준비했다.(미션이 주어지면, 일단 열심히 처리하는... 이 놈의 성격은 큰 도움이 됐다) 그가 군대에 있는 동안 혼자 여러 웨딩플래너를 만나고 드레스샵을 가고 인터넷 검색으로 밤을 새는 등 온갖 조사를 해 둔 후에, 그가 휴가를 나오면 결재를 맡듯 하나씩 결정들을 해 나갔다. 결혼'식'과 결혼'생활'은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당시의 나는 오로지 결혼식만을 생각하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행사를 무사히 치러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결혼식을 치렀다. 





곰신 카페에서는 제대 할 때까지 기다린 여자친구를 '꽃신'이라 부른다. 꽃신. 참 예쁜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제대로 꽃신을 신었다.

그것도 웨딩슈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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