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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16. 2020

행복한 연애의 끝은 결혼일까?

연애 이야기- 꽃신, 나빌레라(6)


잘 떠오르지도 않는 연애시절 이야기를 구구절절 소환했던 것은 딱 하나, 그저 관계의 시작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이 문장은 너무나 빈약했기에 조금 더 살을 찌우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더라? 어떻게 결혼했지? 돌아보고 싶었다.


사랑의 기억 위로 너무나 많은 세월이 쌓였고 그 세월만큼 나쁜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엉겨붙어 있었다. 기억을 파 내려가 그 깊숙한 '시작'을 꺼내드니 '찬란했던 순간'이라 생각했던 조각들이 공기 중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꺼내드는 기분. 책 표지엔 먼지가 가득 쌓여있다. 툭 하고 건드리면 먼지가 폴폴.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니 오랜 시간 방치해뒀던 종이가 부서진다. 손 끝에서 바스락. 바스라지며 부서지고 흩어진다. 작은 조각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뻗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산산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조각들.





10여 년이 지나 꺼내보는 내 사랑의 기억은 초라했다. 고작 이런 것을 사랑이라 불렀구나. 현재의 내가 바라본 과거의 나는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스스로의 감정에 빠져 아무것도 안보려 애쓰는, 어리석은 아이같았다. 

사랑. 

그런 이름을 당시의 내 감정에 붙여줄 수 있을까? 돌아보건데 그것은 집착이었던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내 감정을 지켜내고 싶었던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강박과 집착. 입 속에 들어온 사탕이 너무나 달콤해 그 단맛만은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 어린 욕심.


사랑, 그 달콤한 단어. 무엇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다만 한 가지. 그것은 순도 높은 '감정'의 결정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저 감정. 상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상대의 일을 내 것처럼 걱정하고, 상대를 위해서라면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

이 순수한 사랑의 단계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끝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애를 하면서 둘의 사랑은 조금 더 복잡다단하게 진화하게 되니까. 사랑에 빠진 것이 연인이라지만, 그 시작이 사랑이었을 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양한 감정으로 사랑은 변화한다. 집착이든 책임감이든 다양한 모습으로.

나는 사랑했고, 연애했고, 결혼했다. 처음 품었던 그 사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가 힘들어졌다.


결혼 전 읽었다면 크게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를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는 '불안정 애착'과 '회피 애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결혼생활 중 만난 이 글을 곱씹고 또 곱씹었었다.

나는 회피 애착, 그는 불안정 애착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첫째는 ‘불안정 애착’이라 명명한, 두려워하고 집착하고 지배하는 행동 양식이고, 둘째는 ‘회피 애착’이라 명명한, 방어 및 후퇴 작전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파트너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질투심을 분출하고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깝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쉽다.
한편 회피적인 사람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때때로 성적 친밀함에 대한 요구를 힘겹게 느낄 수 있다. 부부 상담을 구하는 환자의 70퍼센트가 불안정하거나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대개 회피적인 파트너와 불안정한 파트너가 부부를 이루고 있어,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하락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불안정 애착의 징후는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즉시 모욕이나 악의적인 공격과 같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 경솔한 말, 부주의를 파탄의 전조라도 되는 양 불길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느낀다.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은 와 닿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그들이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심술궂다거나 성마르다거나 잔인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회피 애착 유형은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해 도개교를 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 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뒤에 숨어 있는 이유들은 안개 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 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불안정 애착 남자와 회피 애착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식을 치렀다.

회피 애착 여자는 결혼식이라는 대사건이 지나간 후, 연애의 끝은 결혼이 아니라 '결혼식'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화려하기만 한 피날레. 드레스. 웃음. 부케. 찰칵찰칵 기념사진.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연애의 끝을 기념한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마냥 웃고 또 웃고, 그 날만을 기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어디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을까?


동화가 감추고 있는 그 부분이 바로 현실이다.

연애는 화려한 피날레 행사로 마무리 되었고,

결혼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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