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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n 22. 2021

평생 부자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도, 가장 가난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스무 살 때가 떠오른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서빙 아르바이트 정도였다. 여름방학이 되었지만 휴가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오빠는 군에 있었다.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서빙을 했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몇 푼 남지도 않았던 그때. 냉방도 취사도 되지 않는 방에서 뒹굴며,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 시간을 기다렸었다. 일을 하러 가면 에어컨이 나왔고 밥을 주셨다. 메뉴 선택권 따윈 없었다. 가장 싼 재료로 만든 어묵탕과 밥과 김치. 질리기는커녕 매일매일 맛있게만 먹었다. 


새벽 2시 퇴근길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편의점 앞을 지나갔다. 700원이던 삼각김밥. 그 하나를 사 먹을지 말지를 끝도 없이 고민하며 집으로 향했다. 살도 더 찌기 싫었지만 돈도 아껴야 했다. 매일 밤 편의점 앞을 지나가며 깨달았다. 뭘 살 지, 뭘 먹을지 고민이라도 해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돈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단출했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보통은 먹지 않기를 택했기에 수많은 삼각김밥 중 하나를 고르는 사치 같은 건 누리지 못했다. 돈이 있어야 선택을 할 수 있구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게 돈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배웠다. 





'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순간은 또 있다. 오빠도 나도 취업을 한 20대 후반의 어느 날(무려 10년 전), 남매는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만남을 가졌다. 뭘 먹을지 고민할 수 있었고, 뭘 선택하든 결제도 할 수 있었다. 당시 '무려' 대기업을 다니던 오빠였으므로, 오빠를 만나기 전엔 더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뭘 사달라고 하지?'

내가 "뭐 먹을 건데?" 물을 때마다 "비싼 거. 너 먹고 싶은 거"라고 대답해주는 '분'이셨기에 그날도 메뉴를 고민했고, 삥 뜯는 여동생의 마음을 가득 담아 소고기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안동갈비'라 불리는, 1인분에 2~3만 원을 내야 하는 비싸고 비싼 집이었다. 너무 비싸서였을까. 금요일 저녁 시각임에도 가게 안은 한산 했다. 아무도 없었다. 


너무 조용한 가게에 들어서면 순간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맛이 없는 곳인가? 나가야 하나? 

딱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오시며 "어서 오세요" 하시길래, 엉거주춤 구석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장님. 그 포스가 대단했다. 50대 즈음이실까. 실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20대였던 나도 소화하기 어려울, 말 그대로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사장님이 움직이실 때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맛단이 찰랑였고, 귀걸이도 찰랑찰랑 움직였기에 마치 드레스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차림 그대로 시상식에 가셔도 될 것 같은 느낌. 여자인 나도 힐긋힐긋 쳐다볼 만큼, 군살 하나 없는 몸이 의상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민소매 밖으로 나온 가느다란 팔에는 까만 가시덩굴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밖에선 보이지 않는, 몸 안 어딘가에는 장미가 피어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는 선명한 그림이었다. 갈색의 긴 머리카락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로 틀어 올려져 묶여 있었다. 아름다운 분이었다. 


감히 다른 곳으로 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홀린 듯 주문을 하고 술을 마셨다. 사장님 포스에 눌려 처음엔 작게 작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며 사장님의 존재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사회 초년생답게, 그날 대화의 대부분은 회사 욕이었다. 진짜 싫어, 진짜 이상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살짝 취기가 올라오던 그즈음이었다. 조용한 공간에 우리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기에, 사장님도 아마 우리의 대화를 어느 정도는 듣고 계셨으리라. 고기를 뒤집어 주시러 다가오신 사장님은 조용히 질문을 던지셨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외모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


잠시 고민하던 술 취한 남매는, 또다시 포스에 눌려 그저 솔직하게 대답했다. 

“갖고 싶은 걸 사려고요.”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사장님은 불판 위 고기를 뒤적이고 자르신 후에 심드렁하게 말씀하셨다. 

“아니야. 살아보니까, 돈은 보기 싫은 사람을 안 보고 살기 위해 필요한 거야.”


우린 그 말을 이해하려 잠시 침묵했다. 사장님은 집게를 탁 내려놓으시곤 아무 일도 없는 듯 뒤돌아 가셨다. 그 후로도 우린 생각을 했다. 그분 말에 담긴 무게가 너무나 묵직해서, 철 모르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를 몰랐다. 2차에서 우린 그 사장님의 삶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마구마구 펼쳤다. 어딘가 '무서운' 곳에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셨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 힘들고 버거운데 그놈의 돈 때문에 계속 일을 하셨고,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아 저 가게를 차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회사가 힘든 건 대부분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 일은 그저 배우고 익히면 되는 것인데, 이상하게 여겨지는 상사를 매일 만나야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돈이 있다면?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될 테고, 그럼 그 상사를 안 만나도 되는 거 아닌가? 고작 상사가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그게 고객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별거를 시작하려 결심했을 때, 돈이 왜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보기 싫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거처를 마련하는 데는 돈이 필요했다. 보란 듯이 멋진 곳에 자리 잡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내게 선택지로 주어지지도 않았다. 평생 가져본 적도 없는 억억. 그 액수가 너무나 익숙하게 불려서 차라리 부루마블 게임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200만 원으로 땅도 사고 건물도 살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어디서 살아야 할지'가 고민이었지만, 선택지 자체가 몇 없었다. 돈은 보기 싫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요즘은 궁금하다. 돈은, 대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돈이 있으면 원하는 선택지들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예쁜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건 행복한 고민이지. 안 예쁜 것들 중 하나를 고르는 게 힘든 거야."

맞는 말이었다. 맘에 드는 것들을 선택지로 두고 뭘 고를까 고민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 


꿈이 부자인 적도 없었다. 그냥 세 끼 굶지 않고 뭘 먹을지 고민하며, 쫓겨날 걱정 없는 작은 보금자리나 하나 있으면 되겠지,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스스로를 엄청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이 목표는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큰 목표였다. 진지하게 묻고 싶어질 때도 있다. 다들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내 목표가 높아서 이렇게 허덕이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 다들 다른 어떤 신묘한 방법으로 돈을 만들어내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때로는 허탈하기도 한 것 같다. 나름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여전히 돈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가 한심해 보인다. 


그럼에도 배부른 상상은 해본다. 로또든 뭐든 억! 소리 나는 돈이 생기면 어떤 기분일까. 끝도 모를 만큼 돈이 많아지면 어떨까? 저 큰 아파트도 살 수 있고, 이 작은 빌라도 살 수 있다면. 그걸 모두 손 위에 두고 고를 수 있다면? 그런 삶은 또 선택지가 너무너무 넓어져서 힘들지 않을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듯, 돈도 가져본 사람이 그 맛을 알겠지. 뭐든 적당한 게 좋을 것 같은데, '적당한 돈'이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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