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보다 고속도로가 운전하기 훨씬 편해."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고속도로가 운전하기 편하다고?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60km라고 붙어있는 시내도로도 60km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차가 40km/h를 넘어서 슈웅- 달리기 시작하면, 뭐랄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영역으로 자동차와 함께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속도가 빠를 때 핸들을 돌리면 차선 밖으로 차가 튕겨져 나가거나 옆으로 누워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압도돼 겁이 났다. 그런데 고속도로라니. 100km/h로 달리는 게 편하다고? 속도내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안전지향형 인간. 놀이공원에 가도 범퍼카 정도를 즐길 뿐이었다. 청룡열차나 바이킹을 타면서 즐거워하는 그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주고 저걸 왜 타지, 저렇게 긴 줄을 기다려서 저 무서운 걸 왜 타지. 고속도로 역시 딱 그런 마음으로 바라봤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처음 고속도로로 간 날에는, 동승자가 있었다. 운전을 잘하는 회사 동료였고, 그와 함께 시외 출장을 갈 일이 있었기에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자처했다. 내 차를 몰고 가겠다고 주장도 했다. 회사차도 있었지만, 내 차 아닌 다른 차를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첫 고속도로 주행을 위해 하이패스도 신청했다. 톨게이트에서 "Hi~ 나야 나"하면 그냥 "PASS" 할 수 있는 그 신문물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목적지를 향해가는 2시간 남짓 동안,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더 밟으세요, 100km 도로예요"
"더 밟으면 큰 일 날 것 같은데요??"
"이 속도로 가면, 진짜 큰일 나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지만, 밟으라니 밟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 달리면서 내 몸은 점점 더 핸들 쪽으로 다가갔다. 차가 달리는데 왜 내 몸에서 땀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차와 이렇게나 교감을 하는 게 가능한 건가. 차가 힘들어할 것 같은 순간에 대신 땀을 흘리다니. 어쨌거나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 돌아올 때는 더는 운전을 할 수 없다며 뻗어버렸다. 온몸이 너무 아팠고(돌아온 뒤에도 며칠 동안 어깨와 다리 통증에 시달렸다) 2시간 여를 다시 운전할 힘 따윈 정말 없었다. 아하하. 안전을 위한 것이니 협조를 부탁할 수밖에.
이후 꾸준히 시외로 갈 일이 생겼다. 고속도로를 타야 할 때 가장 힘든 건? 내 경우에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그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복잡한 시내 도로에서 점점 한적한 곳으로 길이 이어지다 톨게이트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인데, 시내 도로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톨게이트 진입 전까지의 시간이 내겐 가장 어려웠다. 인생에 늘 함께하는 물음이 여기서도 따라왔다.
"이 길이 맞아??"
내가 서 있는 도로가, 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맞는지를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분홍/파랑을 도로 위에 굵게 칠해 서로 목적지가 다른 길임을 친절하고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체계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분홍/파랑 둘 중 어느 곳이 내 목적지로 이어지는지를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분홍길에 몸을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파랑길로 가야 했고, 파랑길로 진입하려고 하면 이미 달리기 시작한 차들이 도무지 멈춰주질 않았다. 고속도로 진입 때는 늘 혼잣말이 늘어났다. "여기야?", "아니야?" 난리부르스 후에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톨게이트 통과 이후부터는 정말 신세계가 펼쳐졌다.
언젠가부터 나 역시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시내 주행보다 고속도로가 운전하기 편하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NO 멈춤, NO 신호, NO 체증. 와우! 정말로 편했다. 1차선에는 힘껏 기량을 자랑하시는 빠른 분들이 계셨으므로 굳이 갈 마음이 없었고, 2차선 즈음에 차를 둔 이후부터는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면 됐다. 놀라운 건, 그렇게나 속도내기를 두려워하던 내가 속도에 대한 감각을 살짝 놓기까지 한다는 것.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다 보면 어느새 120km/h로 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많았다. 신기할 지경이긴 했다. 이렇게나 잘 적응하다니. 고속도로 만만세.
운전하기 편하다는 이유 외에도 고속도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선, 고요함이 좋았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주변으로 펼쳐진 산, 그리고 그것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달리는 순간. 차 안에 들어차는 그 독특한 고요함이 편안했다. 차 안에서 핸들을 붙잡고 도로만 보고 있는 나는 멈춰 서 있는 기분인데, 눈에 보이는 풍경이 자꾸 변했다. 마을을 휘감는 도로를 통과하고 있을 뿐인데, 시간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다른 곳에선 느껴본 적 없는 '속도감 있는 고요'. 그 묘한 기분이 기이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줬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 그건 바로 휴게소! 휴게소는 정말 엄청 매우 좋은 곳이었다. 휴게소의 가장 큰 매력은? 1순위로 음식을 떠올린 사람이 많겠지만, 나 역시 그렇지만, 음식보다 더 좋은 게 바로 휴게소 '주차'였다. 세상에! 처음 휴게소에 주차를 했을 땐 정말로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전진하던 방향 그대로 스윽 머리를 들이밀면 끝.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아슬아슬 쫄았던 기억이여 안녕. 이쪽저쪽 사이드미러를 보며 난리를 치던 후진주차도 굿바이. 우리나라 모든 건물이 이렇게 주차장을 만들어두면, 나 같은 초보운전자의 수명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최고였다. 여유 있게 차에서 내려, 우아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들고, 비어있는 벤치로 가서 엉덩이를 붙이면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여보게~ 쉬었다 가게~'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정말 현실세계를 떠나온 듯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 휴게소의 시간만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온갖 메뉴들까지 가득! 휴게소는 여러 모로 엄청난 휴식처였다. 이 좋은 곳을 여태 못 누린 게 억울할 만큼.
고속도로 얘기가 나온 김에, 그 길 위에서 내가 자주 하는 생각도 한 번 말해볼까. 나는 고속도로에 갈 때마다 이 과정이 참 인생길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목적지에 맞는 도로를 찾아 그곳으로 진입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처럼, 삶에서도 그 '길'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는데, 내게 맞는 길을 어떻게 찾으란 말일까. 지나고 보면 그 과정이 필요한 것임을 깨닫지만, 헤매고 헤매는 그 시간을 보낼 때에는 정말 버겁기만 했었다. 10~20대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전혀 없는 건, 돌아봐도 그 시간이 힘들었기 때문. 뭘 해도 참 불안했었다. 여기가 맞나 끝없이 의심하고, 남들 눈치를 보면서 뱅뱅 돌고, 때론 이 선택이 아닌 것 같아 돌아 나오기까지 좌충우돌. 지나온 내 시간은 정말 그랬다.
그리고 운 좋게 고속도로에 진입.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가 버린다는 30~50대의 삶이 고속도로 주행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살기 위해서는, 앞을 보고 달려야만 했다. 도로 위 모두가 힘껏 달리는 상황, 나 홀로 속도를 늦출 수도 없었다. 달리는 것도 정신없는데, 아이는 자라고 부모님은 늙어간다. 휙휙 바뀌는 주변 풍경처럼 삶의 상황이 정신없이 변했다. 닥쳐오는 온갖 과업들을 쳐내다 보니 어느새 마흔. 내 나이를 말할 때마다 스스로 깜짝 놀라곤 한다. 언제 이렇게나 늙어버린 거지?! 고속도로 위에서 주행속도를 보며 깜짝 놀라는 것처럼.
그리고 목적지 근처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에는, 속도를 낮추며 일반도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퇴라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천천히 천천히, 새로운 삶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고속도로 속도와 비교하면 한없이 느리지만, 평생 그 속도로 앞만 보며 달릴 수는 없는 일. 신호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다른 차의 끼어듦도 받아들이면서 느릿느릿한 주변의 흐름에 내 속도도 맞춰야 하는, 이런 게 은퇴 이후의 시간이지 않을까. 고속 주행을 옛일로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 주억거리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리라.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 고속도로 위 차들의 목적지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인생길 목적지는 단 하나. 그 최종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지금,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 살면서 자주 할 수 있을까? 육아와 직장으로 시간을 쪼개 사는 나는, 사는데 별 도움 안 되는 이런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속도로였다. 펼쳐진 길을 따라가며 온갖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그게 바로 고속도로의 최고 매력포인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