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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Oct 19. 2023

어쩌면 자동차는 육아템이 아닐까?

"우리 엄마 차에선 벨트 매야 해!! 안 매면 큰일 나! 죽을 수도 있어!"

아이는, 진지했다. 친구와 함께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아들은 벨트를 안 하려는 친구에게 기어코 벨트를 권했다. 친구가 귀찮다며 매지 않자, 직접 벨트를 둘러주는 친절함까지 선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 

"진짜 다칠 수도 있어. 우리 엄마 차 탈 때는 벨트 꼭 해야 해."

이 아이가 원래 이랬던 건 아니었다. 초반에는 벨트 매라고 잔소리를 해도 갑갑하다며 하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고작 몇 달 만에 아이는 변했다. 이유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거나 앞차가 갑자기 서거나 하는 순간들. 잔뜩 긴장한 몸은 브레이크를 콱콱 밟아댔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는 가볍게도 튕겨졌다. 끼익- 하고 차가 멈추면 튕겨져 나온 아이가 "아야!"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몇 차례 벌어졌다. 그리고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벨트를 잘 매는 어린이가 되었다. 옆좌석에 앉은 친구에게 반강제로 벨트를 해줄 만큼 훌륭한 안전지킴이로 성장했다. 역시... 교육은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겪어봐야 되는 거였다. 





아이와 단둘이 다녀온 곳 중 단연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영천 천문과학관. 당시 아이는 한창 행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1시간 남짓 거리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무려 고속도로도 몇 차례 다녀온 후였기에 1시간 거리쯤이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초행길이니 당연히 몇 번이고 지도앱을 들여다봤다. 천문과학관으로 가는 길은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긴 했지만, 그 부분만 잘 통과하면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주차장도 엄청나게 넓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맞아 들어갔다. 예상시각보다 일찍 도착했고, 평일이었기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미리 일기 예보를 확인한 덕에 하늘도 맑았다. 계획형 인간은 이런 순간에 짜릿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굴러가고 있군', '이 계획 세운 나란 인간, 꽤 훌륭하잖아!' 

믿음과 의심, 행복과 불행. 정반대 단어들이 묶여서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불행할 땐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행복해지면 언제 불행이 찾아올까 불안해하는 마음처럼,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현재 상태를 설명하기 어렵기에 또 다른 단어들이 등장해 입체성을 더해주는 것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철철 흘러넘칠 땐 의심이 등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붕 뜬 마음을 의심으로라도 진정시켜야 했었다. 


산길을 잘 올라갔으니, 잘 내려오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관 주차장을 벗어나는 순간, '장난 아닌데?' 하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굽이굽이 산길은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아무리 캄캄하다 한들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데 별 일 있겠어?' 생각했지만 이 길을 가다간 정말 별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운전을 못해도 생명의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길을 내려오면서는,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심이 꽤 실체감 있게 다가왔다. 10여 분쯤 내려오다가 차를 세웠다. 누군가를 불러서 아이라도 태우고 가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캄캄한 산길은 길 바로 옆이 낭떠러지였는데, 한순간 방심하면 그리로 차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가장 두려웠던 건, 내가 운전을 하다가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쫑알쫑알 떠들어대던 아이도 차가 멈추자 조용해졌다. 

"왜, 엄마? 왜 서?"

"너... 너무 캄캄해서. 잠시만 있다가 가자."

이 시간에 누굴 부르랴. 그리고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섭긴 했다. 사고 가능성도 무서운 것이었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산짐승도 귀신도 무섭긴 매한가지였다. 몇 분 뒤 차를 다시 움직이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천천히 가보자."

아이의 종알거림이 뚝 멈췄다. 떠들던 아이가 입을 다물 만큼, 내 긴장감이 차 안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산길을 내려와 평평한 도로를 만났을 때, 그 길에 가로등이 밝게 빛나는 걸 봤을 땐 절로 인류애가 샘솟았다. 전기를 발견한 인류는 정말 위대한 존재였다. 그 위대한 인류 중에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그분은 더 위대한 분이 맞는 듯했다. 위대한 사람들이여, 어둠을 밝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 신발을 벗었을 땐, 현관에 털썩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그제야 아아, 집에 왔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 이 세상 모든 신들이여, 감사합니다. 무사히 집까지 오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아서... 집에 돌아왔어... 애도 무사해... 엉엉. 신의 보살핌을 받는 자, 그게 바로 나였구나. 살아서 돌아왔어..! 


다음날 아침, 기력을 회복한 몸은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그 길은 너무 위험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인데, 그렇게 위험하게 가로등 하나 없으면 안 되지!  

검색을 해보곤 알게 됐다. 천문대가 있는 곳, 그러니까 별을 관측하기 위한 시설이 있는 산에서는 모든 가로등에 갓을 씌운다고 했다. 별을 더 잘 보기 위해 빛을 일부러 막는다는 거였다. 별을 보러 호기롭게 떠나기 전 알았어야 할 기본 상식. 가는 길과 주차장에만 집착했던 나는, 상식을 챙기지 못한 거였다. 





올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가보고 싶던 곳은 바다였다. 아이는 바다를 좋아했다. 모래놀이도, 파도가 움직여주는 튜브를 타는 것도 즐거워했다. 단둘이 바다를 간 적도 없었고, 내가 운전을 해서 가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해수욕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내 경우엔 해변을 따라 길게 길게 평행주차된 차들이 떠올랐다. 지난해 여름에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바다에 갔었다.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운전능력자 친구는 해변에 평행주차로 차를 세웠었다. 그때 생각했다. 평행주차를 못하는 사람은 바다에 오면 큰일 나겠구나. 

그렇게 해수욕장을 멀리 하던 내게, 회사 동료가 고급 정보를 알려줬다. 포항 월포해수욕장에 가면 주차장이 엄~~~ 청나게 넓어서 빈자리가 많고, 주차장에서 바다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다고 했다. 나의 무능력함을 잘 아는 회사 동료는 심지어 로드뷰로 월포해수욕장 주차장을 찾아서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많고 많은 해수욕장 중 콕 집어 월포로 향했던 건, 딱 하나 주차 때문이었다. 


월포로 가기로 한 날, 물총과 튜브 등을 열심히 챙기던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모래놀이는 무거워서 못 가져가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갈 때마다 아이에게 했던 말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가 잔뜩 챙겨 온 장난감들을 보며 무거워서 못 가져가니 꼭 필요한 1~2개만 챙기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날은 달랐다. 집 주차장까지만 내려가서 차에 실어버리면 되는데 굳이 짐을 줄일 이유가 무얼까. 

"아니! 엄마 차 타고 갈 거야. 트렁크에 넣으면 되니까 다 챙겨!!"

햇볕 한 번 본 적 없던 모래놀이 도구들이, 드디어 집 밖으로 옮겨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은 정말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고 무사히 귀가했다. 인간의 뇌가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한다는 건 정말 사실인 것 같다. 나빴던 일, 위험했던 일을 기억해야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런 기억만 더 오래 더 강하게 간직하게 된다고 했던가? 

별을 보러 천문대에 갔다가 하늘의 별이 될 뻔한 날의 기억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캄캄한 산길, 저 멀리 보이는 이정표, 산 속에 아이와 나만 있는 듯한 적막감까지,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바닷가의 기억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남겨져 있다. 운전한 건 기억나지도 않고, 아이가 물 안에서 노는 걸 해변에 앉아 지켜봤던 기억만 사진처럼 남아있다. 이런 제 멋대로인 뇌 같으니. 나쁜 걸 선명히 각인시켜 두는 게 생존에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순간들이 흐려진다는 건 왠지 억울했다.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천문과학관에서 우리는, 망원경으로 달을 보고 토성의 고리도 보는 훌륭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무사히 귀가했다. 이런저런 위태로운 순간들만 선명히 남아있긴 하지만, 그런 위기를 잘 극복하고 어떻게든 무사히 살아 돌아왔던 거였다. 그 중요한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매일매일 '무사 귀가'를 쌓아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일일지도 모른다.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었음에도 그 모든 가능성과 확률을 뚫고 오늘도 무사 귀가를 하다니! 오늘도 무사 귀가를 해낸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만한 존재인 거다. 






초1 아이의 하굣길이 떠오른다. 교통사고를 낸 후 차를 팔아버리지 못했던 것에는 이 하굣길의 대화가 꽤나 큰 영향을 미쳤었다. 학교 운동장에 서 있던 정글짐. 초1 때 아이는 그 정글짐을 올라가고 싶어 했었다. 체육시간에 친구들이 우르르 뛰어가 정글짐에 올라가는데, 자신만 한 칸도 못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었다. 하굣길, 아이를 밑에서 밀어주고, 발 하나하나의 위치를 잡아주며 매일매일 정글짐을 올랐었다. 

'매일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결국 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이 단순한 이치를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가장 낮은 1층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날은 2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한 층씩 한 층씩 밟아 나갔다. 아이를 응원하려 이런 저런 말들을 했었는데, 당시 내가 매일 노력하던 것이 운전이었기에 아이에게 여러 번 했던 말이 있었다. 

"엄마도 운전 아예 못했는데, 매일 너 데려다주면서 하니까 처음보다 잘하게 됐어!"


그런 말을 했던 주제에, '이제 운전 안 할래'하고 모른 척 하기가 어려웠다.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엄마로 보이고 싶었달까. 아이는 이제 정글짐을 잘 타고 논다. 겁이 많아서 부들부들 떨기는 하지만. 나 역시 부들부들 떨면서도 운전을 하고 있다. 남들 눈엔 '고작 그게 뭐' 싶은 수준일 수 있겠지만, 우리 둘은 나름의 성장을 그 안에서 느끼고 있다. 때론 사고도 날 테고, 때론 눈물 날 만큼 무섭기도 하겠지만, 그런 매일매일이 쌓이다 보면 아이도 나도 조금씩 더 잘 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을까. 우린, 매일 무사 귀가를 이뤄낸 엄청난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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