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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23. 2020

퇴근한 아빠 얼굴을 그리라는 숙제

소장은 두 달째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폐문부재’라는 방패를 집배원은 뚫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었다. 작성된 소장은 PDF 파일로 주고받으면서, 전달은 또 아날로그 방식이라니. 과연 21세기와 세기말의 일 처리 방식이 공존하는 소송 과정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카톡이나 문자로 소장을 보내면 안 되는지, 카톡에 ‘1’이 없어지면 소장이 전달된 걸로 간주하면 안 되는지를 변호사에게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했다). 변호사는 기다리라고 했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그저 일상을 살아갔다. 



코로나 시국. 아이 학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갈팡질팡 이어갔다. 육아휴직을 낸 건 백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휴직할 수 없는 보호자들은 이 시국을 대체 어떻게 넘기고 있는 걸까, 궁금할 지경이었다.월요일 오전 8시 45분.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줌에 접속했다. 여덟 살짜리 아이 스물여섯 명이 화면 안에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서글프고 안쓰럽고 미안했달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 핸드폰 배터리 없어.” “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려요.” “엄마, 배고파.” “엄마, 엄마.” 아이들 소리에 묻혀 선생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결국엔 선생님이 아이들 목소리를 음소거하고 출석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대답해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음소거가 해제되니, 또 여기저기서 온갖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도 짖고, 아기도 울고, 우당탕탕 뭔가 넘어지는 소리도 났다. “엉망이네. 이건 엉망 수업이야.” 아이가 마이크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깊이 동의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집중해 봐. 네가 소리를 내면 선생님 말씀이 더 안 들리잖아.” 타이를 수밖에. 



화상수업 중엔 아이 옆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마이크, 스피커 볼륨 등 도와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카메라 앵글 밖에 앉아 수업을 참관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아빠 얼굴 그리기’라는 수업 주제. 퇴근하고 집에 온 아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리는 게 숙제로 주어졌다. 하아, 하필 콕 집어 아빠 얼굴일 건 또 뭐람. 난감했다. 스물여섯 명 중에 아빠가 집에 없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우리 아이가 유일할까, 신경이 곤두섰다.


“아빠 보고 싶다.” 마이크에 대고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연이어 “아빠 집에 안 간 지 얼마나 됐지?”라며 나를 향해 물었다. 자연스럽게 대답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순간 잔뜩 굳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마이크 볼륨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화면 속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에게 들렸을까. 아무도 못 들었을까. 들렸는데 티를 안 내는 걸까. 나의 우려와 달리 수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아빠가 요즘 바빠서 얼굴을 잘 못 봤지?”라며 애써 크게 대답했다.   경직된 모습으로 뚝딱거리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혼을 왜 숨겨. 나부터 당당해져야 한다고 수십 번 생각했으면서도 아이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내 주변에 이혼을 알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 주변만큼은 달랐다. 이혼 가정임을 밝히는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가서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산다고 말하지 마’라며 입단속을 시켜야 할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제 1학년. 앞으로 어떻게 하라고 알려줘야 옳은 걸까. 정말, 답을 모르겠다. 그날 밤,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그리라고 할까, 상상해서 그려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다 관둬버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쯤 숙제를 거르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숙제를 모르는 체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이를 생각한다는 내 감정에 빠져, 열등감과 자격지심만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늘 다짐하지만, 아이 문제 앞에서는 끝없이 휘청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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