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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Nov 23. 2020

나의 결정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

변호사 사무실에 다녀온 후 한동안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온갖 뾰족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 앞에선 차분한 척 연기를 했다. 낮에는 비교적 멀쩡한(?) 엄마였으나 아이가 잠든 밤이 되면 또 다른 자아가 등장해 나를 잠식했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철철 울다가 씩씩거리다가 안정을 찾았다가 다시 찔찔 울었다. 모노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계약서’가 이렇게 큰 파문을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 발로 찾아가서 직접 작성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계약서를 썼을 뿐인데, 이제 시작일 뿐인데 감정의 파도가 너무 거세서 조금 두렵기도 했다.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과정들은 내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게 될까. 




변호사가 요청한 ‘진술서’도 작성해야 했지만, 손도 못 댄 채 며칠을 허비했다. 제출해야 할 서류도 챙길 여력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뤘다. 이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게으르게 굴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나는 지금 이혼소송 중’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버지가 남긴 ‘부의금’으로 변호사를 선임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움직여야 했다. 무브, 무브, 무브!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주민등록등본,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무슨 무슨 증명서 등 아무리 읽어봐도 뭔지 모를 온갖 서류를 나와 남편, 아이 각각의 것으로 발급받아야 했다. 변호사가 적어준 서류 목록 그대로를 동사무소 직원에게 건넸다. 목록을 쭉 훑은 직원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배우자와 같은 주소에 계세요?”라고 물었다.‘아저씨는 안 와 봐도 돼요?’와 ‘커피 한 잔 주실래요?’에 이은 기출 변형 질문. 당황스러웠지만 나 놀란 적 없어, 나 지금 되게 자연스러워, 하는 느낌을 유지하며 말했다. “아니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던 것 같기도 하다.그 순간 떠오른 건 아이 얼굴이었다. “배우자와 같은 주소에 계세요?” 따위의 별것 아닌 질문에도 나는 깜짝 놀라는데, 내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님 따로 사셔?” “부모님 이혼하셨어?” 같은 직설적인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게 될까. 그럴 때마다 아이는 얼마나 상처받을까. 그런 말을 처음 들을 때엔 너 역시 당황할 테고, 나이가 들면서는 그 질문에 익숙해지고 담담해지게 될까. 너에게 그런 걸 물어본 사람들은 아무 편견 없이 너를 대해줄까. 지금의 내 결정이 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너는 나를 많이 원망하며 살아갈까?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밀려오는 참담한 심정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치유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동사무소 직원은 한참 동안 서류와, 서류와, 서류들을 프린트했다. 그러고는 ‘정말로’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게 건넸다. 발급 수수료가 만 원 넘게 나와서 깜짝 놀랐다. 동사무소에서 이렇게 큰돈을 쓸 일이 있을 줄이야. 그와 내가 법적 부부임을 알려주는 서류가 이렇게나 많을까.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내 손에 들린 묵직한 서류들이 말해주고 있었다.그날 저녁부터 미뤄뒀던 진술서도 쓰기 시작했다. 





변호사에게 진술서를 보내고 2주쯤 지났을 때, 내 진술서를 토대로 작성한 소장을 PDF 파일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쓴 진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테니 내가 모르는 내용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첫 장부터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사건본인’ 그곳엔 아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고는 나, 피고는 남편, 소장 내내 아이는 ‘사건본인’으로 불렸다. 이런 문서에 아이 이름이 나오는 것도 불편한데, ‘사건’이라는 단어와 함께 꾸준히 언급되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처참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걸까. 지금이라도 이 소송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를 사건에 끌어들이고 사건본인으로 불리게 하다니. 나 하나 살자고 이게 뭐 하는 짓일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자괴감이 밀려왔다. 판단력이 갈피를 잃고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장을 읽고 난 후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수십, 아니 수백 번은 했던 것 같다. ‘소송 취하하면 남편이랑 다시 엮여야 해. 할 수 있겠어?’ ‘아니’ ‘할 수 있겠어?’ ‘아니’ ‘다시 생각해봐. 할 수 있겠어?’ ‘… 아니’ ‘마지막으로 생각해봐. 할 수 있겠어?’ ‘아니, 아니, 아니’ 남편과 엮인 법적 관계를 끊어내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은 여전했고, 지금 소송을 취하한들 앞으로의 내 삶에 남편을 다시 들이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아이가 무엇이라 불리든,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이날 이후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소장을 받은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 너무 두려웠다. 집으로 찾아와 대화를 요구하고, 그러다가 내가 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책, 대책이 필요했다.집 안과 현관 밖에 CCTV를 설치했다. 전화 통화 혹은 대면 대화를 대비해 녹음기도 준비했다. 비상시에 허둥대지 않고 경찰을 부를 수 있도록 휴대폰 긴급구조 기능을 익혔다. 문밖에서 인기척만 들려도 현관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고, 아이와 외출할 일이 생기면 바깥 동태를 먼저 살핀 후에 나오기도 했다. 집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까지 유심히 살펴보며 다녔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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