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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Dec 11. 2020

나는 부모님의 어떤 부분을 닮았을까

나는 어머니를 닮지 않았구나. 아이를 낳고서야 확신했다.

목소리가 어머니를 닮았구나, 성격이 어머니를 닮았구나, 하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들었던 터라 '어머니를 닮았네' 하며 살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한 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다 닮은 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어머니는 항암치료 중에도 꽤나 숱 많은 머리카락을 자랑했었다. 엄청나게 빠진다고 속상해 하시긴 했지만, 풍성한 브로콜리같던 머리가 시금치 다발이 된 정도의 '느낌' 변화였고, 나도 그 피를 받았으니 웬만한 일에는 머리가 빠지지 않을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마용실에 갈 때마다 "아이고~ 이만한 딸이 있으신데 머리숱이 엄청 많으시네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수줍은 듯 아닌 듯 "어우, 관리하기 불편해요" 같은 대답을 했었다. 이어지는 말은 "딸도 어머니 닮아서 머리숱 많네요" 같은 것이었고, '아, 나도 어머니 나이가 되어도 풍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착각이었다. 아이를 낳은 직후 엄청나게 빠지길래 '나는 어머니를 닮았으니 곧 나겠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모유수유가 끝나면 더 나겠지' 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잔디처럼 머리카락이 솟아오를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머리카락은 계속 더 빠졌고, 아이가 8살인 지금은 '큰일났다. 이 비어버린 정수리를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도 닮지 않았구나.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정수리 오른쪽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처음엔 빛이 반사된 걸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눈에 좋다는 루테인을 챙겨 먹어도 눈이 이렇게 가는구나, 노안이 벌써 오는건가 하면서 유심히 머리카락을 살폈다. 세상에. 흰머리 '더미'였다. 내가 모르는 곳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작정하고 내 머리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 한 두개가 아니라 흰 머리 군락이 '허가도 없이' 내 머리에 조성돼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정말 별 게 다 지랄"이라며 모조리 뽑아댔다. 족집게를 들고 희번득하게 정수리를 노려보며 뽑았다. 며칠에 걸쳐 틈날 때마다 정성 들여 흰머리 군락을 파괴했다. 눈알이 빙빙 돌아갈 것 같았지만 버텨야 했다. 소리 없는 전투 끝에 1차전을 치러내고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그 군락에선 꾸준히 흰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씨를 말려 버리겠다며 손톱만큼 올라오는 녀석들도 제거해 버렸다. 그런 전쟁이 벌써 여러 번. 끝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꾸준함에 장사 없다더니, 지치지도 않고 계속 자라는 녀석들에게 백기를 들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까만 머리카락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돋보일 정도였다. 60대 중에서도 머리가 까만 편이었다. 군데군데 하얀 색이 보이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소박한 수준.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도 그랬다. 구부정한 등과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까맸다. 제사상에서 사진으로 뵌 증조 할아버지 역시도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구분이 갈 만큼 머리가 까만 편이었다. 이쯤되니 '아 유전인가보다' 생각했고, '나도 흰머리가 잘 나지 않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적인 기대는, 역시 허황될 때가 많음을 깨달았다.




중학교 무렵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술에 취해 있지 않은 저녁이었다. 밥상 메뉴가 뭐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화 주제는 기억이 난다. 그 날의 화두는 내 피부였다. 여드름이 용솟음치던 때였고, 이렇게까지 말하기는 나도 싫지만 멍게 같았다. 멍게같은 딸이 밥 먹는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얘는 누굴 닮아서 피부가 이 모양이고?”

큰소리조차 잘 내지 않던 어머니가 이날만은 발끈해 대답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얼굴에 뭐가 난 적이 없다.”

어머니도 살면서 뾰루지 한 두 개쯤은 났었겠지만, 당시 어머니는 어딜 가든 피부 좋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왠지 믿음이 갔다.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한 두 개 뭐가 올라오긴 했어도, 이렇지는 않았다.”


사춘기 딸을 앞에 두고 서로 본인을 닮지 않았다고 진지하게 실랑이를 벌이시는 부모님. 지금 생각해봐도 우습지만, 당시에도 몹시 진지한 두 분의 모습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웃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니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 갑다. 아무도 안 닮았네.”

그렇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 


멍게 같은 딸을 주워 왔다고 결론 내버렸던 부모님 생각을 하다가, 어쩌면 지금도 두 분이 하늘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우리 집안은 원래 흰 머리가 없다” 하는 아버지와 “나는 항암치료에도 수북했던 머리다” 하는 어머니.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시며 “쟤는 누굴 닮아서 머리가 저 모양이고?” 하실 부모님. 상상하니 우습다. 본인은 안 닮았다고 상대 탓을 하다니. 나 닮아 잘된 거라고 서로 우길 수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면 좋을텐데 생각해본다.


거울 앞에서 '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일까' 고민하다가, 혼자 웃으며 머리를 헤집다가, 눈물이 핑 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문득문득 그때가 그립다. 철 없이 굴어도 됐었던 그때가 그리운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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