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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Dec 16. 2020

"날 원망해라" 어머니의 그 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기억들이 아직도 조각조각 남아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다. 바로 어제의 일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그 기억들은 움켜쥔 채 살아가고 있다. 잊고 싶지 않아서인지, 각색된 기억인 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조각조각들. 그 조각 중 하나에 남아있는 문장이 최근 떠올랐다. 

"살다가 너무 힘들고 엄마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면, 엄마를 원망해."




어머니가 암을 진단 받았을 땐 이미 전이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별 성과없는 수술을 했고, 그 수술 후 의사는 드라마 한 장면처럼 "6개월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런 수술 후 어머니는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하는 게 좋다는 주변의 의견으로 두어 달 가량 산골 생활을 하셨다. 어머니가 그곳에 계시는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핸드폰도 있고 메일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선택한 건 편지였다. 주로 일상을 전하는 가벼운 내용들이었지만, 그 편지들 중 하나에 어머니는 "엄마를 원망하라"는 글을 남겼었다. 


그 편지를 받은 당시에는 실제로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다 포기한 듯 말하나, 희망을 가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왜 미련하게 병을 키웠나 등등 온갖 원망을 가득 품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어머니의 삶을 잡아먹은 아버지를 향해 원망을 퍼붓다가,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붓다가 하면서 미워할 대상을 찾아 헤맸다. 누구든 원망하고 미워해야 버틸 수 있었다. 슬픔에 잡아먹힐 것 같은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며 원망할 대상을 마음에 품으면, 묵묵히 슬퍼하기만 할 때보다 버티기가 수월했다.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다가 울다가 하며 시간들을 흘려 보냈다. 날선 감정들은 서서히 퇴화돼 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찌꺼기같은 감정들은 모두 잊혀지고 오롯한 그리움만 남았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문득 어머니의 편지가 떠올랐다. 내가 선택한 이혼이라는 이 길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지 걱정하느라 끙끙 앓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전의 나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왜 원망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죽는 것도 억울할텐데, 왜 원망까지 떠안고 가려 할까' 막연하게 궁금했다. 죽음의 무게를 겪지 않은 나는, 지금도 어떤 마음 깊이였는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혼 소송을 앞두고 아이 걱정을 너무 하다보니 어머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 마음을 완벽하게 헤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조금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적어도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엄마로서는 아이에게 단 하나뿐인 엄마로서는, 최악은 아닌 존재로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아이가 어려움을 겪으면 막아주고 싶었고, 상처를 받을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손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 나 때문에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 하늘이 먼저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떠난 어머니는, 나에게도 좋은 사람 좋은 어머니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죽음이 나와 오빠에게 미칠 영향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눈 앞에 닥친 죽음이라는 현실을 본인은 받아들였더라도, 그 현실을 함께 겪어야 할 자식들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했을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는 없는 현실. 그 앞에서 자포자기한 마음 끝에 나오는 말이 '원망'인 것 같다. 



내 앞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은 내가 떠 안으면 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막을 수가 없다. 시간을 함께 보내고 힘을 내라 도와주고 싶지만, 도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되어 버려 너무나 미안하다. 지금 이 상황이 아이들 삶에 분명 영향을 미칠 텐데, 그것 때문에 힘이 들면 모두 내 탓을 하면 좋겠다. 너무 버거울 땐 미움도 힘이 되니까. 아무 잘못 없는 애들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나를 원망이라도 하면 좋겠다. 모두 내 탓을 하고, 그 원망을 에너지 삼아 버텨내길. 이런 아픔을 준 나를 용서하지 말기를. 어떻게라도 버텨내서 살아가길. 



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나는 요즘 그저 바랄 뿐이다. 내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가 생기지는 않기를. 이런 선택을 한 나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좋으니, 그저 너는 잘 살아가기를.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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