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난한 너를 위하여 [2부 4월 4일]

by 성냥팔이 소년


센터피스로 커다란 작약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검붉은 빛깔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물 대신 와인을 먹고 사는가 넋을 놓고 바라보다, 손등으로 꽃잎을 쓰다듬었다. 살갗에 닿는 서늘한 감촉이 보기와 달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향은 어떨까 얼굴을 가까이 대자 옆에 앉은 지기가 웃는다.


「식사는 들지 않고 꽃만 보면 어째.」


「제철도 아닌데 제법 곱네.」


「이 사람아, 가는 길에 한 다발 사줘?」


「꺾인 것보다는 살아있을 때가 좋아.」


학회가 끝나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헐거워진 오후의 틈 사이로 노을이 쏟아지고 있었다. 취기도 날릴 겸 무리에서 떨어져 잠시 걸었다. 낡은 공원 곁을 지나는데, 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셔츠 위에 얌전히 앉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당벌레였다. 콩알보다도 작은 무당벌레. 반질반질한 붉은색 딱지날개가 참으로 앙증맞았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여차하면 도망칠까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필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반동에 놀란 벌레는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몹시 아쉬웠다.


마지못해 확인한 발신자는 출판사였다.


「여보세요.」


「작가님. 지난번에 보내주신 원고, 대표님께서 출판 계획 잡아보자고 하시네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출간, 미리 축하드려요.」


버그에 걸린 로봇처럼 한참을 멈춰있었다. 떨림으로 두근거리는 심장만이 제 몫을 할 뿐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나의 인생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니.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던 중, 헤어진 무당벌레가 생각났다. 녀석이 타고 오르던 앞섶을 따라 손가락을 더듬거렸다. 그 방향이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구부린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 왼쪽 가슴에 올려두고는 눈을 감았다. 쿵쾅거리는 불규칙한 박동이 느껴졌다. 살과 뼈 아래서 힘차게 솟구치고 있을 동맥혈을 그려보았다.


작약, 노을, 무당벌레, 심장, 붉은.


그래. 꺾인 것보다는 살아있을 때가 아름답겠지. 푸른 핏줄 아래 붉은 피가 흐르듯, 죽도록 살아야 한다고.


Life goes on.




image_©WanJin Gim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9화청출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