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2부 4월 4일]
노점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팔리지 않는 푸성귀들을 걱정스레 뒤적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걸음을 멈추고 채소 더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호박이 참 잘생겼네요, 싱거운 나의 농에 당신이 직접 기르고 거둔 놈이라며 못난이라도 맛은 좋다오, 자랑을 한다. 자판에 있는 물건을 모두 사겠다고 했다. 값을 치르고 돌아서기까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묵직한 두 팔만큼 가벼워진 발걸음.
버릇처럼 아주머니 댁으로 향했다. 천국에 간 그녀를 대신해, 가족처럼 함께 자란 외동딸이 나를 맞이한다.
「이 자식, 찬거리는 왜 자꾸 사다 나르니. 애먼 사람 귀찮게 말고 결혼을 하려무나.」
놀리듯 타박을 늘어놓는다. 듣고도 말없이 웃기만 했다.
「웃지 마, 바보야.」
나의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린다.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돌아서는 불청객을 기어이 앉힌다.
상을 차리는 동안 거실을 둘러보았다. 장식장에 진열된 러시안 인형들이 눈에 띄었다. 오랜만이네. 가장 친했던 막내 녀석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던 아이가, 저 인형들하고는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유년의 나를 회상할 때면 언제나 눈시울을 붉히던 아주머니.
미안해요. 여전히 저는 숨바꼭질 중이에요. 홀로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요. 아직도 사람보다는 사물이 편하답니다. 참 못났지요?
「아프지 마.」
「괜찮아.」
「괜찮다는 말, 사실 아프다는 뜻이잖아.」
「아파도 괜찮아.」
「아직 죽고 싶니?」
「살아 볼게. 되도록.」
식탁 주위를 뛰놀던 어린 조카가 제풀에 비틀거린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찰나, 나의 바짓단을 낚아채 용케 버텨낸다. 잡은 채로 우리를 올려다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해맑은 표정이 아주머니를 쏙 빼닮았다. 안아주고 싶었다. 일어나 번쩍 아이를 들어 올렸다. 나의 귀에 웅얼웅얼 무언가를 속삭이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불현듯 느껴지는 낯선 온기. 하지만 반가운 따스함. 품 안에서 울리는 타인의 고동에 덩달아 들썩이는 나의 헝겊 심장이여, 뭉클하기 짝이 없구나.
…이제 술래는 내 차례인가.
image_©Charles Spencelay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