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남겨지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이승만은 아니기를 간곡히 기도했건만.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은 목숨이 징그러웠다. 강제로 병실에 갇혀 약에 취해 잠만 잤다. 가물가물한 의식 사이로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나이 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스한 음성이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깨어난 후에는 집중 치료를 받았다.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한 주먹씩 약을 삼켰다. 파리한 몰골에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가져다 달라고 책들과 휴대전화를 부탁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다행히 산책은 가능했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을 때마다 병원 속 작은 공원을 거닐었다. 걷다가 지치면 벤치에 앉아 주워온 나뭇잎들을 만지작거렸다. 소용없는 이어폰을 귀에 걸고 들리는 척 상상했다. 유독 바흐의 푸가들이 떠올랐다. 도망자다운 선곡이로군, 중얼거리다 불쑥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레퀴엠이 아니라니. 아이러니 중 아이러니 아닌가.
언제부터인지 창백한 여자애 하나가 곁을 서성인다. 하루, 이틀… 우연인가 싶었는데, 퇴원할 즈음 나에게 말을 건다.
「암 환자에요?」
「아니.」
「하지만 눈빛이…」
「??」
「곧 죽을 나보다 먼저 갈 것 같아요.」
「아가미 없이 태어난 물고기라 그런가.」
「누가 봐도 사람인데.」
「모두들 산송장이라고 놀려.」
「죽으려고요?」
「그마저도 쉽지가 않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왜?」
「당연한 것에 이유가 어디 있어요?」
불발된 죽음의 탄흔을 육체에 새겨 넣은, 자신에게조차 버려진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어린 학생도 아는 이치를 다 큰 어른이 깨닫지를 못하다니.
우리가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마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살고 싶은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생이 끝날 것 같은, 끈질기게 고개를 쳐드는 서글픈 예감. 그럴 바에는 일찍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고, 끊어질 뻔한 손목을 다시금 어루만진다.
그런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소녀. 도리도리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래, 그래. 세상천지 어리석은 사람은 나뿐인 듯하구나.
**Erika Hayasaki 《죽음학 수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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