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남겨지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출입구 앞에서 구급 대원들과 한 노인이 실랑이를 벌인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의식을 잃고 실려오는 도중에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가 굽어있던 노파는 응급실에 가지 않겠다며 연신 고집을 피웠다.
「할머니, 빨리 검사받으셔야 해요.」
「왜 데리고 왔어! 그냥 뒤지도록 두지!」
「이러다 정말 큰일 나요, 어르신.」
「저승보다 치료비가 더 무섭다! 놔라!」
죽음보다 삶이 두렵다면서, 어찌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한지. 실은 살고 싶었는가. 굵게 파인 주름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번진다. 주어진 수를 누리는 것조차 죄가 된 기구한 운명이 뺨을 타고 흐른다. 꺼이꺼이 곡을 하는 노인의 쉰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니.
부끄러웠다. 도망치듯 끝을 도모한 것이. 그럼에도 회생한 것이.
신이시여, 이제라도 나의 내일을 거두어 저이에게 주소서. 방관자라는 억울한 누명이 지겹지도 않습니까.
부끄러웠다. 죽어가는 나를 발견한 것이 너라서. 떠나는 네 발목을 붙잡은 내가.
꽃다운 시절이 시들어가도록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사내는, 감히 '함께'라는 미래를 입 밖에 낼 수 없었고. 괜찮다는 하얀 거짓말로 서로를 속이는 짓 따위 이제 그만.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온, 실격된 인간이 뒤늦게 고백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들어줄 그대는 곁에 없는데.
랭보여, 가진 것도 없는 빈손이 이토록 무거운 까닭을 아시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자신의 영혼조차 받들지 못하는, 보채지 않는 젖먹이가 여기 있소.
**Dazai Osamu 《인간 실격》 中
image_©Enrique Martínez Cel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