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가지 재앙, 왜 열 가지나 필요했나?

by Andy

하나님은 못한다는 모세를, 안 가겠다는 모세를 설득해 겨우 파라오 앞에 세우셨다.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사흘길을 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 오겠다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말을 전했지만 오히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노역을 더 고되게 할 뿐이다.

때문에 히브리인들의 반발도 더 심해졌다.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출애굽기 5장 20절 ~ 23절)


그리고 이어지는 모세의 좌절과 불평이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출애굽기 6장 9절)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출애굽기 6장 12절)


모세는 한 번에 모든 일이 해결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부르실 때 한 번에 이루어질 일이 아님을 알려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출애굽기 4장 21절)


심지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음이 파라오의 완악함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기 때문이라고까지 세세하게 알려 주셨다.


그럼에도 고작 한번 해보고 원하는 대로 안된다고 불평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더는 못하겠다 포기하려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려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왠지 모세의 성향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거 부당하게 학대받는 동족을 구하려고 이집트의 관리를 때려죽이고 모래에 묻었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아 일단 저질렀으나 문제가 생기자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이전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모세는 도망쳐 광야에서 40여 년을 지내면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이유, 다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슈를 38,928개쯤 만들어 스스로를 설득했지 싶다.


바로 앞에 딱 한번 섰다. 해결이 아니라 문제가 커지자 모세는 또 도망친다. 못하겠다 한다.


이는 동족 히브리인들도 마찬가지다.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출애굽기 4장 29절 ~ 31절)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애굽기 5장 21절)


모세와 아론이 히브리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었다. 하지만 닥친 어려움에 감사는 이내 불평으로 바뀐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명하시고 다시 파라오 앞에 서라 하신다.

못하겠다 불평하던 모세는 결국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파라오 앞에 서게 된다.


이때부터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는 대로 이적을 행한다. 아니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적을 행하셨다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아론이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술사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론의 지팡이로 만든 뱀이 이집트의 순사들, 즉 여러 명이 만든 여러 마리의 뱀을 삼킨다.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장 11절 ~ 12절)


이 상황을 상상해 봤다.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는 일은 누가 봐도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모세는 자신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이 준비시킨 이 이적에 내심 놀라고 하나님을 신뢰케 되고 따르게 되는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집트의 여러 술사들을 불러 자신이 의기양양하게 행했던 이적을 별거 아니라는 듯 행하는 것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망! 했! 다!


고작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잡술로 파라오를 겁박하려 했던 것에 매우 민망하고 창피하고 속된 말로 쪽팔림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내 반전이 일어난다.

아론의 지팡이가 변한 뱀이 이집트의 술사들이 만들어낸 뱀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쪽팔림과 민망함과 자괴감에 한없이 위축되었을 모세와 아론은 순간 만들어진 승리에 짜릿함을 느끼고 당당하게 파라오를 바라보게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애굽기 7장 13절)


반전에 반전이다.


이 승리에 파라오도 승복하고 요구했던 대로 자신들을 보내준다 허락할 것까지 기대했을 텐데 파라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느꼈을 좌절감과 회의감, '되긴 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10가지 재앙이 시작된다.

매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파라오는 굴복하는 듯했지만 지나고 나면 다시 번복하고 히브리인들을 놓아주지 못하겠다 한다.

모세와 히브리인들은 그 한번, 한 번에 기대와 좌절과 의심을 반복했겠다 싶다.


이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하나님은 한 번에 결판을 내지 않으셨을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제한하시며 인간을 통해만 이루어 가기로 하신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 전능하심을 적극 사용하심으로 기적을 베푸시기까지 하시는 일인데 지지부진한 과정을 10번이나 반복하셔야 하셨을까?


그렇게 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속내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먼저 그 각각의 재앙에 필연적 당위성이 있을까 싶어 성경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찾아봤다.

역시나 이유가 있었다.


시작이었던 뱀부터 살펴보면 뱀은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에도 장식되어 있을 정도로 신성시했고 파라오의 통치와 권위를 상징한다.

즉 뱀의 이적은 파라오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상징적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열 가지 재앙에서 등장하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생명의 원천이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신 하피(Hapi)와 오시리스(Osiris)가 풍요와 생명을 책임진다고 믿었다.

이런 나일강이 피로 물들고 물고기들이 죽어 악취가 나고 식수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재앙에서 등장하는 개구리는 풍요와 출산의 여신 헤케트(Heket)의 상징이다. 헤케 트는 창조와 출산을 돕는 신으로 여겨졌다.


세 번째 재앙, 땅의 먼지가 이로 변한 것은 이집트의 토지를 더럽히고, 풍요의 땅으로서의 이집트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는 땅의 신 게브(Geb)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 있다.


네 번째 재앙의 파리 떼는 이집트의 질병과 오염을 상징하며, 태양의 신 라(Re)나 하늘의 여신 누트(Nut)가 이를 제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다섯 번째 가축의 죽음재앙에서 가축은 이집트 경제의 기반이었으며, 가축의 신 아피스(Apis)와 하토르(Hathor)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여섯 번째 악성 종기 재앙은 건강과 치유를 관장하는 여신 이시스(Isis)와 의학의 신 임호텝(Imhotep)을 무력화한 것으로,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은 하늘의 신 누트(Nut), 풍요의 신 오시리스(Osiris), 그리고 날씨를 관장하는 신 세트(Seth)를 심판하는 것으로,

여덟 번째 메뚜기는 풍요를 상징하는 신들과 곡물을 보호하는 신들을 심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홉 번째 흑암 재앙에서 태양은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신 라(Re)의 상징으로, 흑암은 태양 신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이렇게 각 재앙들에서 등장하는 생물과 대상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집트를 상징하는 그들의 신이거나 그들의 삶과 생명의 기반이 되는 것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들 하나하나를 심판하시거나 그 반대되는 것들을 통해 무력화하셨다.

이를 통해 의도하셨던 것은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의 실체를 알게 하시는 것일 테다.


그리고 마지막 장자의 죽음이다.

장자는 가족과 민족의 계승을 상징하며, 파라오 자신도 신의 아들로 여겼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왕도 히브리인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그들의 아들들을 죽이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가!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도 모든 이집트 신들과 파라오의 무력함을 최종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온전하게 보존되어 살아있는 히브리인들을 통해 진정한 돌봄과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이 증명된다.


이렇게 그들이 신성시하는 것들이 재앙이 되는 것을 통해 참신이 아님을 증명하고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왜 이런 재앙들을 베푸셨는지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첫 번째 의도는 이스라엘민족에게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리기 위함이라 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출애굽기 10장 1절 ~ 2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장 13절)


또 다른 의도는 이집트 및 온 세계에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라 하신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출애굽기 7장 5절)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니라.

(출애굽기 9장 16)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심판을 행하셨더라.”

민수기 33:4


무엇보다 민수기에서 이집트에서의 재앙을 언급하며 그들의 신들도 심판했음을 말씀하신다.

이를 통해 참 신은 하나님뿐이심을 나타내려 하신 것이리라.


알겠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그들이 섬기던 신들과 그들의 풍요로운 삶의 근간이 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심판하셨고 이를 통해 그것들이 참신이 아님을, 의지할 대상이 아님을 알리신 것, 알겠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서 하나님만이 참신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관자 이신 것을 나타내신 것도 알겠다!


그 하나님이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로부터 시작된 지금의 히브리인들로 그 사실을 알게 하셨으며 더 나아가 이집트와 온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도 알겠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놀라운 기적에 이제는 해방될 수 있겠다 기대했다가, 파라오의 완악함에 다시금 좌절되는 일들이 십여 차례나 겪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얼마나 간절함으로 기대하고 소망했을까?

얼마나 상심하고 낙심하며 실망했을까?

한번 한 번의 기적 속에 기대와 소망과 상심과 실망이 교차하는 반복적인 상황 속에 하나님은 무엇을 의도하신 것일까?


현실의 문제로 오랜 기간 간절히 기도하며 해결되기를 바라는 일들이 있다.

그 일들이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만나 해결될 것 같아 이제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싶어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만다.

이렇게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듯 말듯한 상황을 오래 겪다 보니 도대체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의 고민들이 출애굽을 앞두고 벌어진 십여 차례의 기적 앞에 히브리 인들도 같은 심정이었겠다 싶었고 때문에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셔야 했나 의문이 깊어졌다.


이 의문을 품고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잠깐 하게 됐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유 없이 겪게 하실 분이 아니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함 때문에 갖게 된 의문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한 주간 이 질문으로 고민하고 만약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다음 글에서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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