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가 이래서 필요했다 절감케 된다.
그들을 구속하던 이집트를 벗어남에 앞서 하나님은 해야 할 바를 알려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몫이다.
아니 그들의 믿음의 몫이다.
별것 아닌 그 일을 누군가는 믿어 행함으로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누군가는 믿지 못해 행하지 않음으로 심판의 자리가 됐다.
심판을 하는 하나님의 영에게 믿음의 징표를 보여주지 못해 결국 죽임을 당한 자들은 더 이상 거론할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반신반의 속에 어찌 됐던 행함으로 구원의 길로 걸음을 옮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이집트를 나서면 끝인 줄 알았다.
그것으로 과거의 고단한 삶에서 놓임 받을 줄 알았고,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맘 졸이는 상황에도 놓임을 받을 것 같았다.
허지만 그렇게 끝내고 싶은 상황은 여전히 계속된다.
홍해를 마주 했다.
급하게 밥을 먹다 뛰쳐나온 그들이다.
바다가 가로막을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예상도 못한 상황에 무엇이라도 준비했을 리 만무하다.
설상가상이다.
뒤편에 맘이 바뀌어 다시 이스라엘을 잡아 노예로 부리고 싶은 파라오의 욕심이 군대를 보내 자신들을 잡으러 온다.
그렇게 과거에서 완전하게 건너갈 수 없는데 뒤에선 그 과거의 문제들이 나를 건너가지 못하게 잡으러 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상황에 다시 절망한다.
울부짖어 원망한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애굽기 14장 10절 ~ 12절)
어쩌면 그렇게 현재의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상황과 꼭 같을까?
독자의 입장에서, 이 일에 앞서 보여주셨던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목격하고도 이런 원망과 좌절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그들의 믿음 없음이 한심스러워 보이다가도, 현실의 내 모습을 마주하면 내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나 역시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서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는 문제들로 핑계 삼아 제자리에 스스로를 묶어 놓고 좌절하고 있다.
그 누가 홍해로 발을 들여놓을 것인가?
아니 그렇게 발을 떼는 것은 고사하고 원망함 없이 그 순간을 마주할 수 있기는 할까?
역시나 독자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홍해가 갈라져 좌우에 물이 벽처럼 서고 마른땅이 나타나고 그 땅을 밟아 걸음을 떼어 건너가며 뒤쫓아 오는 이집트의 군대들은 다시 무너져 내리는 물에 휩쓸려 수장될 것을 알아 지금 이스라엘의 불신 가득한 원망이 못마땅하지만 결국 그 못마땅함은 나 역시 그러함에 스스로에게 느끼는 못마땅함임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원망하는 이스라엘로 건너가게 하셨고 이집트의 군대는 홍해에 수장시키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실제적으로 벗어난다.
허지만 과거는 지독하게 달라붙는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고기가 먹고 싶다는 이유로 차라리 이집트가 나았다 하며 과거를 동경한다.
심지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40일 동안 자신들을 인도할 자가 없다며 금을 모아 소를 만들고 자신들을 인도할 신으로 삼는다.
분명 벗어났는데 실제적으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망령은 이리도 지독하다.
그래서 광야가 필요하다 절감한다.
만약 그들이 이집트를 나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바로 이동했고 풍요와 안정을 바로 만났다면 이리도 지독하게 자신들을 잡고 있는 내면의 문제가 들추어져 알게 됐을까?
모든 것이 좋을 때는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는 법!
그래서 생존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만나는 광야는 필연적으로 필요했다.
그 문제들 하나하나를 마주하며 스스로의 실체를 마주하고 그 문제들로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하나님으로 극복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이리도 나약한 나를 만나고 그리도 강한 하나님을 만난다.
이곳에서 이리도 어리석은 나를 만나고 그리도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만난다.
이곳에서 이리도 이기적인 나를 만나고 그리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만난다.
이곳에서 이리도 못난 내가 그리도 완벽하신 하나님을 닮아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소망케 된다.
광야, 이곳에서 겪어야 하는 문제들이 절대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사건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더 이상 독자의 관점이 아닌 현실의 나를 보며 더 이상 어리석지 않기를, 더 이상 불신하지 않기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를,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