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멈춰있는 것 같을 때

불안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디로 흘러갔나

by 써니

3월, 방을 빼겠다고 말한 다음 날부터 마음은 더 시끄러워졌다.

이상하다. 불안에서 도망치려고 결정을 했는데, 결정한 뒤에 불안은 더 정교해진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는데?” “돈은?” “사람은?” 질문들이 밤마다 번갈아가며 나를 흔들었다.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켜고, 통장 앱을 열고, 다시 닫았다. 숫자는 늘 그대로인데, 내 마음만 자꾸 작아졌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라서. 나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방을 1년이나 살았는데, 상자는 끝도 없이 나왔다. 괜히 버리지 못한 영수증, 언젠가 읽을 책, ‘다음에 쓸 거야’라고 자신에게 변명했던 재료들. 물건들을 꺼낼수록 내가 얼마나 미루면서 살았는지가 보였다. 미룬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잘 안될까 봐, 시작해놓고 망할까 봐, 나만 뒤처진 게 들킬까 봐.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나는 자꾸만 주변의 공기를 확인했다. 바깥 바람이 들어오는 날엔 마음이 조금 덜 답답해지고, 골목이 눅눅한 날엔 내 불안도 같이 눅눅해졌다. “작업실 알아보세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멋있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먼저 잠겼다. 사실 작업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나를 밖으로 끌어내 줄 핑계가 필요했던 거였으니까.


그렇게 부산 중앙동에 작은 공간을 구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딱 한 가지가 느껴졌다. ‘여기서라면 숨을 쉴 수 있겠다.’ 낡은 건물 특유의 냄새가 있었고, 창밖으로는 오래된 간판들이 층층이 겹쳐 보였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의 결은 늘 솔직하다.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살아온 시간’이 드러난다. 그게 좋았다. 나도 어쩐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계약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이제 진짜 해야 한다”는 문장이 내 어깨에 올라탔다. 내가 일을 벌이는 방식은 늘 이렇다.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불안을 만든다. ‘작업실’이라는 불안을 껴안고 나면, ‘자취방’이라는 불안이 잠시 조용해질 테니까. 그게 나의 생존법이었다.


셀프 인테리어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벽지는 예쁘게 떨어지지 않았고, 바닥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페인트 롤러가 지나간 자리마다 “너는 정말 이걸 끝까지 할 수 있어?”라는 질문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손톱 사이로 먼지가 끼고, 이마에 땀이 흐르는데도, 나는 자꾸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검색창에 ‘셀프 인테리어 실패’ 같은 문장을 치고 있는 내 손이 우스웠다. 성공 사례를 보면 자격지심이 올라오고, 실패 사례를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실패에 더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하루가 끝날 때마다 공간은 조금씩 달라졌다. 하얀 벽이 칠해지고, 테이블이 들어오고, 조명이 달리자 중앙동의 낡음은 ‘초라함’이 아니라 ‘분위기’가 됐다. 빈 방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쌓아둘 곳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내가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작업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나는 또 하나의 일을 벌이기로 했다. “사색의 밤” 첫 모임.

사실 ‘모임’을 만든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불안은 바로 태어났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오긴 오는데 어색하면 어떡하지. 내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아무 말도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늘 누군가를 초대해놓고, 그 초대를 후회한다. 초대는 용기가 아니라, 노출이니까. ‘나 여기서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행위니까.


모임 당일, 나는 작업실 바닥을 다시 닦고 또 닦았다. 준비라는 이름의 불안 다루기였다. 컵을 꺼내 놓고, 티백을 정렬하고, 의자를 한 번 더 맞췄다. 누가 먼저 올지 몰라 계속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했다. 몇 번이나 창밖을 확인하다가, 결국 복도 쪽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


마침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어색한 인사, 조심스러운 웃음, 서로의 직업을 확인하듯 던지는 질문들. 그 사이를 나는 서툴게 오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말했다. “요즘 저도… 아무것도 안 되는 날이 많아요.”


그 한 문장이 공간의 공기를 바꿨다. 마치 우리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같은 언어를 찾은 것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불안을 꺼냈다. 일을 벌일수록 더 불안해지는 마음,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숨이 막히는 느낌,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계속 증명하려고 애쓰는 습관.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내 불안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잠깐 안도했다. 불안은 누군가의 결함이 아니라, 다들 들고 있는 작은 가방 같은 거였다.


그날 밤,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불을 끄지 못했다. 작업실에 혼자 남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덜 외로웠다. 누군가 앉았던 자리의 온기가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드디어 문을 열었기 때문인지. 불안은 여전히 있었고, 내일도 통장 앱은 그대로일 테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가 나를 다시 세상 쪽으로 던져봤다는 사실이 남았다.


중앙동의 밤은 조용하다. 창밖의 간판 불빛이 벽에 희미하게 번지고,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낮게 깔린다. 나는 의자에 앉아 다음 모임 공지를 쓰다가 멈췄다. 또 일을 벌이는 손이 떨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이 있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문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아마 다음 이야기는, 이 작업실에서 내가 얼마나 자주 무너지고 다시 정리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첫 모임은 끝났지만, 진짜 시작은 그 다음부터니까. 불안은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움직임이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하다.


2026년에는 이 작은 작업실에서 새로운 걸 시작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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