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치를 낮추는 작업실

불안 덩어리가 부산 중앙동에서 작은 실험을 시작하면 생기는 일

by 써니

2026년, 나는 행복의 역치를 낮추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 불안이 와도 ‘괜찮다’가 더 쉽게 뜨도록.

요즘의 나는 너무 자주 불안해서 자동으로 행복의 기준이 올라가 버린 사람처럼 느껴진다. 웬만한 일로는 기쁘지 않고, 좋은 소식이 와도 “그래서 다음은?”이 먼저 나온다. 감정이 반응하기 전에 판단이 먼저 켜지는 쪽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아니라 손부터 움직인다. 휴대폰. 메일. 메신저. 일정. 통장 앱.
특히 통장 앱은, 열기 전부터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 숫자는 대체로 늘 그대로다. 그런데도 확인한다. 확인해야만 오늘을 살 자격이 생기는 것처럼.


나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프리랜서로 일한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안도할 것 같지만, 들어오는 순간 불안의 종류가 바뀐다. ‘없음의 불안’에서 ‘유지의 불안’으로. 피드백이 오기 전까지는 초조하고, 피드백이 오면 또 긴장한다. 고치라는 말이 아니라, 고칠 게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내가 아직도 증명해야 한다는 뜻 같아서.


강의도 한다. AI, 노션, 피그마. 사람들 앞에서는 또 다른 내가 된다. 질문이 나오면 바로 답하고, 예시를 만들고, 흐름을 잡는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멀쩡하다.그런데 강의장을 나오면, 몸 안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듯 조용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방금 한 말들이 낯설다. ‘저 사람이 정말 나였나?’ 싶은 얼굴이 잠깐 떠오른다.


그래서 작업실이 필요했다.


멋있어 보이려고가 아니라, 나를 밖으로 끌어내 줄 핑계가 필요했다. 내가 혼자 있으면 언어가 힘을 잃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은 쉽게 자라지 못하고, 대신 불안만 비대해진다.


중앙동 작업실의 아침은 늘 조금 낡은 냄새로 시작한다. 페인트가 마른 자리, 먼지가 내려앉은 책장, 창밖으로는 오래된 간판들이 층층이 겹쳐 보이는 풍경. 도시의 소음은 멀리서 얇게 깔리고, 그 위로 나는 겨우 한 사람의 속도로 움직인다. 여기서는 ‘잘해야 한다’보다 ‘살아야 한다’가 먼저 나온다. 그게 좋다. 나를 멋지게 만들지 않아도 되는 장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


하지만 ‘공간이 생겼다’는 건,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불안이 먼저 따라온다. 나를 브랜딩하는 일. 이 공간을 무인 서재로 만들고 싶은 마음. 누군가가 와서 조용히 자기 것을 찾고, 다시 나가도 괜찮은 곳.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곳. 가능하다면 재밌는 일로 살아가는 쪽으로 삶을 조금씩 기울이는 일.


그런데 나는 이런 마음을 품는 순간부터 겁이 난다.
‘무인’이라니, 도난은?
아무도 안 오면?
오는데 어색하면?
내가 먼저 지치면?


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 때문에 무너지는 나를 아직 잘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계획이 커질수록 몸이 먼저 작아진다. 그래서 올해는 ‘바로 열기’보다 ‘천천히 만들기’로 가보려고 한다.


무인 서재는 나중에. 지금은 준비 단계. 내가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도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단계. 큰 선언을 하기 전에, 나를 지키는 규칙을 먼저 세우는 쪽으로.

오늘부터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통장 앱은 오전 10시 이후에만 열기.


대신 그 전까지는 작업실에서 ‘나를 찾는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하기.

나는 책장 한 칸을 비워두고, 그 앞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여기는 생각을 쉬게 하는 자리.”

“완성보다 기록.”

“오늘은 10분만.”


이런 문장을 붙이는 게 별것 아닌 일처럼 보여도, 나는 안다.

이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일이라는 걸. 선언은 늘 무섭다. 나중에 지키지 못할까 봐. 오후가 되자 강의 문의가 하나 들어왔다. 순간 심장이 먼저 뛰었다. 기쁘다기보다는, ‘이걸 잘해야 한다’가 먼저였다.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지웠다. 문장을 고치는 동안 마음도 같이 닳아갔다. 그러다 문득, 내가 행복의 역치를 왜 높여버렸는지 알 것 같았다. 기쁜 일이 와도 기쁨으로 끝내지 못하고, 곧바로 평가와 유지와 다음 단계로 넘겨버리니까. 내 감정은 늘 “다음”으로 밀려난다.


저녁이 되어서야 통장 앱을 열었다. 숫자는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작업실 안으로 돌아왔다. 조명이 닿는 벽, 내가 비워둔 책장 한 칸, 책상 위에 정리해 둔 자료들, 강의용 템플릿 파일이 켜진 노트북 화면. 별것 아닌데, 잠깐 숨이 쉬어졌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직 너무 크다면, 적어도 ‘덜 괴로운 순간’은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불안은 여러 번 왔다. 아마 일곱 번쯤.

행복은 거창하게 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감각으로 왔다. 의자에 앉았을 때 허리가 펴지는 순간, 정리된 책상 위에서 손이 잠깐 망설이지 않는 순간,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했다. 무인 서재는 언젠가 해볼 일이다.

지금은 그 전에 필요한 것들을 모으는 시간. 내가 나를 버티게 하는 규칙, 공간을 지키는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이 와도 도망치지 않는 연습.


아마 다음 편에서는, 이 작업실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브랜딩’하려고 하는지부터 쓰게 될 것 같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불안이 잦은 내가, 행복의 역치를 낮추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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