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퇴사 후, 흔들리면서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법

by 써니

퇴사 후의 평일 오전은 유난히 고요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작업실에 들어와 조명을 켜고, 늘 앉던 자리에 앉는다. 이 장면이 이렇게까지 평온할 수 있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풍경인데, 지금은 괜히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이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 고요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생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어깨에 걸친 가방처럼, 내려놓아도 금세 다시 메게 되는 감정이다. 그래도 이제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불안을 없애겠다는 마음보다는, 같이 가보겠다는 쪽에 가깝다. 이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은 없고, 결국 이겨야 한다면 그건 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아직 이 속도가 편하진 않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의 리듬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쉬어가는 중인지, 멈춰 선 건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삶의 끝자락에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 시간을 ‘유예’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이, 어쩌면 가장 재미있는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언제 끝날지 몰라서, 다음 장면을 함부로 넘길 수 없다는 점에서.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어보는 쪽을 택했다.

금요일에는 숏폼 강의를 다녀왔다.


다른 세계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속도와 성과, 숫자와 확장이 기본값처럼 깔린 공간. 이상이나 망설임 같은 건 비효율로 분류되는 곳. ‘아, 이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곳이 내가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날 이후로 자주 생각한다.


많은 돈과 빠른 성공을 원한다면, 저쪽 세상에서 헤엄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골 기질이 있는 나는, 그 방식이 유일한 답이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더 빨리 가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가는 쪽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능력도, 의지도, 그리고 함께 고민할 사람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방향을 서두르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 자유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분명 내 손 안에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한순간에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무엇이 정답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세상에서, 내 한 몸 제대로 키워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를 더 자주 묻게 된다.

마음은 매일 챙겨야 하는 비타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먹는다고 당장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안 먹으면 금세 티가 나는 것. 매일 새롭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요즘은 그다지 거창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냥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처럼 느껴진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누가 가장 행복하고, 누가 성공했는지는 결국 각자의 잣대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잣대를 만드는 중이다. 남의 기준을 빌리지 않고,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하나씩 조정해보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비타민을 하나 삼키고 하루를 시작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빠른 선택보다 오래 남는 선택을 해보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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