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3)

제1권 제3부

by Andy강성
제3부 (아우스터리츠 전투)

1


바실리 공작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익을 얻으려고 사람들에게 악을 저지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그저 상류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고 그 성공을 습관으로 삼아 버린 사교계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신을 가지고서 바실리 공작은 피에르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부자에다 베주호프 백작이 된 피에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속 편하게 살던 자신이 이제 잠자리에서나 겨우 혼자 남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분주하게 지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런 말들을 끊임없이 들었다. “당신의 보기 드문 인자함으로”라든지,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으로”라든지, “당신은 너무 순수해요, 백작……”이라든지, 아니면 “만일 그 사람이 당신처럼 똑똑하다면” 등등의 말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보기 드문 선량함과 보기 드문 총명함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다.


1805년에서 1806년에 걸친 겨울 초입에 피에르는 안나 파블로브나에게서 평소와 다름없는 장밋빛 초대장을 받았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덧붙어 있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엘렌도 우리 집에 올 거예요.” 그 부분을 읽으며 피에르는 그와 엘렌 사이에 뭇사람들이 인정하는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는 그런 생각에 마치 감당할 수 없는 의무를 짊어지기라도 한 듯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상상이라며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평소대로 특유의 기교를 발휘하여 자신의 응접실 모임들을 꾸렸다. 바실리 공작과 장군들이 속한 큰 모임은 외교관을 향유했다. 다른 모임은 티 테이블 곁에 모여 있었다. 피에르는 첫 번째 모임에 끼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멋진 생각들이 수천 가지나 떠올라 생각을 실행에 옮길 틈이 거의 없는 전장 지휘관의 흥분 상태에 놓인 안나 파블로브나, 그녀가 피에르를 보고는 그의 소매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잠깐만요, 오늘 밤에 내가 당신을 위해 생각한 것이 있어요.” 그녀는 엘렌을 쳐다보고 생긋 웃었다.


안나 파블로브나는 마치 최후의 불가피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피에르를 곁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정말 매혹적이지 않아요?” 물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당당한 미인을 가리키며 그녀가 피에르에게 말했다. “몸가짐은 또 얼마나 훌륭한가요! 저렇게 젊은 아가씨에게 저런 재치와 저토록 훌륭하게 처신하는 솜씨가 있다니! 저런 모습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예요! 저런 아가씨를 자기 여자로 삼는 남자는 행복할 거예요! 그녀와 함께라면 아무리 비사교적인 남편이라도 사교계에서 가장 눈부신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난 그저 당신 의견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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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는 엘렌의 몸가짐에 대한 안나 파블로브나의 질문에 진심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만약 그가 엘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름다움과 사교계에서 말없이 품위를 지키는 예사롭지 않게 침착한 능력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예전에 매일같이 보던 대로 자신에게 낯설고 먼 그런 미녀로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려울 정도로 그에게 가까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는 이미 그 자신의 의지라는 장애물 외에는 더 이상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피에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렸을 적부터 알던 여자가, 엘렌이 미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 예쁘네” 하고 무심하게 대꾸하던 여자가, 그 여인이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리석어. 내 입으로 그녀가 멍청하다고 말하기도 했잖아.’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내 안에 불러일으킨 감정에는 추악한 무언가가, 금지된 무언가가 있어. 사람들 말이, 그녀의 남동생 아나톨이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도 그를 좋아해서 온갖 일이 벌어졌다던데. 아나톨을 멀리 보낸 것도 그 때문이라잖아. 그녀의 오빠는 이폴리트…… 아버지는 바실리 공작……. 좋지 않아.’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안나 파블로브나가 저택에 관해 말할 때의 말과 눈빛을 떠올렸고, 바실리 공작과 다른 사람들이 던진 숱한 그런 암시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분명 좋지 않은, 그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무언가로 옭아맨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다지는 사이에 마음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2


사실 피에르는 최근에 그가 지내는 바실리 공작의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엘렌 앞에만 서면 (사랑에 빠진 남자가 으레 그러듯) 흥분하여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게 굴면서도 여전히 청혼은 하지 않고 있었다. 엘렌의 명명일에 바실리 공작의 집에서는 공작 부인이 가장 가깝다고 말하던 사람들, 즉 친척과 친구 몇 명만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이들은 모두 명명일을 맞은 주인공의 운명이 바로 이날 결정되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손님들을 전송하는 동안 피에르는 그들이 앉아 있던 작은 응접실에 엘렌과 단둘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는 전에도, 그러니까 지난 한 달 반 동안에도 종종 엘렌과 단둘이 남곤 했지만 한 번도 그녀에게 사랑의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는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느끼면서도 이 마지막 한 걸음을 도저히 내디딜 수 없었다.


바실리 공작은 작은 응접실로 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기쁨에 차서 피에르에게 다가갔다. 공작의 얼굴이 예사롭지 않은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피에르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아내가 전부 말해 주었네!” 그는 한 손으로 피에르를, 다른 손으로는 딸을 끌어안았다. “룔랴! 정말, 정말 기쁘구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자네 아버님을 사랑했네……. 이 아이는 자네에게 좋은 아내가 될 거야……. 하느님이 두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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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렇게 되어야만 했어. 달리 어쩔 수 없었어.’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물어볼 것도 없어. 결정되어서 예전의 괴로운 의심이 없으니 좋네.’ 피에르는 말없이 약혼녀의 손을 잡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아름다운 가슴을 바라보았다.

“엘렌!” “사랑합니다!” 그는 이런 때 꼭 해야 하는 말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그 말이 어찌나 초라하게 울리던지 그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한 달 반 후 그는 결혼식을 올렸고,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아름다운 아내와 수백만 루블을 가진 행복한 남자로서 새롭게 단장한 베주호프 백작가의 페테르부르크 대저택에 거처를 잡았다.


3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 노공작은 1805년 12월에 바실리 공작으로부터 아들과 함께 방문하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제가 감찰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존경하는 은인인 공작을 방문하기 위해서라면 1백 베르스트는 저에게 멀리 도는 것도 아닙니다. 제 아들 아나톨도 군대에 복귀하는 길에 저와 동행할 것입니다. 제 아들이 아비를 본받아 공작께 품은 깊은 존경을 직접 표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2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에 바실리 공작의 하인들이 먼저 도착했고, 그 자신도 다음 날 아들과 함께 왔다. 아버지 볼콘스키는 언제나 바실리 공작의 자질을 변변찮게 평가해 왔다. 파벨과 알렉산드르의 새로운 치세에 바실리 공작의 관등과 명예가 드높아진 최근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물며 이 편지와 작은 공작 부인의 암시를 통해 무슨 일인지 깨닫게 된 지금은 그의 마음속에서 바실리 공작에 대한 낮은 평가가 악의에 찬 경멸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바실리 공작에 대해 말할 때마다 계속 콧방귀를 뀌었다.


저녁에 바실리 공작이 왔다. 마부와 하인들이 프레시펙트(프로스펙트를 그렇게 불렀다*)에서 그를 맞이해 일부러 눈을 덮어 놓은 길을 따라 고함을 지르며 그의 보조크와 사니를 별채로 옮겼다. 아나톨은 자신의 삶 전부를 누군가 어떤 이유로 그를 위해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했던 끝없는 유흥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사악한 노인과 못생긴 부유한 상속녀를 찾아온 자신의 여행을 그렇게 간주했다.


그때 하녀들의 방에서는 대신과 아들의 도착이 전해진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외양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이루어졌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방에 홀로 앉아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을 쏟고 있었다.‘어째서 그들은 편지를 보냈을까? 왜 리자는 그걸 나에게 말했을까?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응접실로 어떻게 나가지? 설령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들더라도 지금은 함께 있을 수도 없을 텐데.’ 그녀는 아버지의 눈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녀는 구세주의 커다란 이콘에서 램프 불빛을 받은 검은 얼굴을 응시하며 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몇 분 동안 서 있었다. 그녀의 영혼에는 괴로운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의, 남자를 향한 지상의 사랑의 기쁨이 그녀에게 가능할까? 결혼에 대한 생각 속에서 마리야 공작 영애는 가정의 행복도, 아이들도 염원했다. 그러나 강렬하기 그지없고 은밀한 그녀의 주된 염원은 지상의 사랑이었다.


하느님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녀에게 응답했다. '인간의 미래와 너의 운명을 너는 모르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나 모든 것에 준비하며 살라. 만약 하느님이 결혼의 의무로 너를 시험하고자 하신다면 그 뜻에 따를 준비를 하라.’ 마리야 공작 영애는 한숨을 쉬고 성호를 그은 뒤 드레스에 대해서도, 머리 모양에 대해서도, 어떻게 응접실에 들어가고 무엇을 말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4


마리야 공작 영애가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바실리 공작과 그의 아들은 이미 와서 작은 공작 부인과 마드무아젤 부리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은 공작 부인이 남자들에게 마리야 공작 영애를 소개했다. “마리예요!” 마리야 공작 영애의 눈에 모두가, 그것도 세세히 보였다. 공작 영애를 보고 한순간 심각하게 굳었다가 이내 미소를 짓는 바실리 공작의 얼굴, 그리고 손님들의 얼굴에서 마리가 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읽고 있는 작은 공작 부인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를 대하는 아나톨의 태도에는 여자들에게 호기심과 두려움과 심지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방식이 있었다. 바로 상대를 깔보는 듯한 태도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의식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신들을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뭣 때문에 당신들에게 매달려 있어야 합니까? 물론 당신들은 좋아하겠지만요!’ 공작 영애는 그 점을 느끼고 그녀도 감히 그의 관심을 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듯 노공작 쪽으로 돌아섰다.


“당신은 왜 아네트의 집에 한 번도 오지 않았나요?” 작은 공작 부인이 아나톨에게 물었다. “아! 알아요, 알아.”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당신의 형 이폴리트가 당신이 한 일을 나에게 들려주곤 했어요. 오!” 그녀는 그에게 손가락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당신이 파리에서 저지른 장난들도 알고 있어요!”


파리라는 말에 마드무아젤 부리엔도 공통의 추억담에 끼어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나톨이 파리를 언제 방문했는지, 그 도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대담하게 물었다. 예쁘장한 부리엔을 본 아나톨은 이곳 리시예 고리에서도 따분하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꽤 예쁜데!’ 그는 그녀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이 말벗은 꽤 예뻐. 공작 영애가 나한테 시집올 때 저 여자도 데려오면 좋겠군.’ 그는 생각했다. ‘아주, 아주 괜찮아.’


노공작은 서재에서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얼굴을 찡그린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를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애가 뭣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누가 마리야를 사랑 때문에 데려가겠어? 못생기고 별다른 재주도 없다. 인맥과 재산을 노리고 데려가려는 거지. 게다가 처녀로 살아가는 여자들도 있지 않나? 훨씬 행복하지!’


그는 응접실에서 바실리 공작과 아나톨을 만난 뒤 공작의 팔을 잡고 서재로 이끌었다.

공작과 단둘이 남게 된 바실리 공작은 즉시 자신의 바람과 희망을 그에게 밝혔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노공작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딸을 붙잡아 두고 있다고, 내가 그 애와 헤어질 수 없다고? 다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그러고는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난 내일이라도 좋아! 다만 자네에게 말해 두지. 난 사윗감을 좀 더 잘 알고 싶네.


오랫동안 남자들 없이 산 외로운 여자들에게 늘 그렇듯이, 아나톨의 출현에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공작의 집에 사는 세 여인 모두 똑같이 이제까지 그들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고 느꼈다. 생각하고 느끼고 관찰하는 힘이 그들 모두의 안에서 순식간에 열 배로 커졌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던 그들의 삶에 갑자기 의미로 충만한 새로운 빛이 비쳐 들어온 듯했다.


5


모두 흩어졌다.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든 아나톨 외에는 누구도 그 밤에 오래 잠들지 못했다.

‘과연 그가, 이 잘생기고 착한 낯선 남자가 내 남편일까? 무엇보다 착해.’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그러자 이제껏 거의 찾아오지 않던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가 저 칸막이 뒤 어둑한 구석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누군가는 바로 그, 악마였다. 하얀 이마와 검은 눈썹과 붉은 입술을 지닌 그 남자였다.


아나톨과 마드무아젤 부리엔 사이에 아무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여운 어머니가 출현하기 전인 이야기의 전반부와 관련하여 서로를 환히 이해했고 서로에게 은밀히 해야 할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부터 단둘이 만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공작 영애가 평소의 시각에 아버지에게 갔을 때 마드무아젤 부리엔은 겨울 정원에서 아나톨과 만났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날 유난히 떨리는 마음으로 서재 문에 다가갔다. 이날 아침 노공작은 한없이 다정하고 열성적으로 딸을 대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가 애쓸 때의 그 표정을 잘 알았다. 그는 즉시 본론으로 들어가 “그대”라고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그대를 달라고 청혼을 했어요.” 그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대도 짐작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는 말을 계속했다. “바실리 공작이 이곳에 오고, 자신의 피양육자까지 (어쩐 일인지 노공작은 아나톨을 피양육자라고 불렀다) 데려온 것은 나의 아름다운 눈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어제 나한테 그대를 달라고 청혼하더이다. 그대가 나의 원칙을 알고 있기에 그대에게 말한 것이에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창백해지고 붉어진 얼굴로 공작 영애가 중얼거렸다. “그 녀석은 지참금과 함께 너를 데려가는 김에 마드무아젤 부리엔도 손에 넣겠지. 아내가 되는 건 그 여자일 테고, 넌…….” 공작은 말을 멈추었다. 그는 그 말이 딸에게 불러일으킨 효과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먹거렸다.


아버지가 마드무아젤 부리엔에 대해 한 말, 그 암시는 끔찍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해도 끔찍했다.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겨울 정원을 지나 곧장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그녀를 갑자기 귀에 익은 마드무아젤 부리엔의 속삭임이 일깨웠다.


그녀가 눈을 들자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아나톨이 보였다. 그는 프랑스 여자를 안고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잘생긴 얼굴에 무서운 표정을 띠고 마리야 공작 영애를 돌아보았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내 마드무아젤 부리엔이 비명을 지르고 달아났다.


한 시간 후에 티혼이 마리야 공작 영애를 부르러 왔다. 그는 공작이 그녀를 부른다는 말과 함께 바실리 세르게이치 공작도 거기 있다고 덧붙였다. 티혼이 왔을 때 공작 영애는 자기 방 소파에 앉아서 울고 있는 마드무아젤 부리엔을 안고 있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녀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들어서자 니콜라이 안드레이치 공작이 말했다.

“공작이 자신의 피양육자…… 아들을 대신해 너에게 청혼을 하시는구나. 너는 아나톨 쿠라긴 공작의 아내가 되기를 원하느냐 아니냐? 말해라. ‘네’인지 ‘아니요’인지 말해라!”

“저의 바람은, 아버지, 절대 아버지를 떠나지 않는 것, 절대로 제 삶을 아버지의 삶과 갈라놓지 않는 거예요.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아름다운 눈으로 바실리 공작과 아버지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소명은 다른 행복, 사랑과 자기희생으로 행복해지는 거야. 이 일이 내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 난 가여운 아멜리에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 그녀는 너무 열렬하게 그를 사랑해. 그녀는 너무 열렬하게 참회하고 있어. 난 그녀와 그의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거야. ...... 하느님, 그녀가 그렇듯 자신을 잊을 수 있다면 그를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 건가요. 어쩌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지 몰라……!’


6


로스토프가 사람들은 오랫동안 니콜루시카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했다. 겨울 중반에 백작에게 편지 한 통이 전해졌을 뿐이다. 백작은 편지를 받고 깜짝 놀라 서둘러 발끝으로 자신의 서재로 달려가 틀어박혀서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집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알고 있었듯이) 편지를 받은 것을 알고 조용한 걸음으로 백작의 서재에 들어가 두 손에 편지를 들고 흐느끼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를 보았다.


“니콜루시카가 편지를…… 부상을 당한 모양인데…… 마 셰르……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장교로 승진했다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백작 부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지요……?”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그에게 다가앉아 자기 손수건으로 그의 눈에서 눈물을 닦고, 또 그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닦고 자신의 눈물을 훔친 후 편지를 읽고 백작을 위로했다. 그러고 나선 식사하고 차를 마시기 전까지 백작 부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한 다음,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면 차를 마신 후에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정했다.


백작 부인은 한 손에 초상화가 붙은 담뱃갑을, 다른 손에는 편지를 쥐고 이쪽저쪽 번갈아 입술을 대고 있었다. 베라와 나타샤와 소냐와 페탸가 방으로 들어왔고, 편지 낭독이 시작되었다. 편지에는 행군과, 니콜루시카가 참가한 두 번의 전투와, 장교 진급이 간략히 묘사되어 있고, 엄마와 아빠에게 축복을 구하며 그들의 손에 입을 맞춘다는 말과, 베라와 나타샤와 페탸에게 입을 맞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니콜루시카의 편지는 수백 번 읽혔다. 그의 편지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편지를 손에서 놓지 않는 백작 부인에게 와야 했다. 가정 교사들, 보모들, 미텐카, 몇몇 지인들이 왔다. 백작 부인은 매번 새로운 기쁨을 느끼며 편지를 거듭거듭 읽었고, 매번 그 편지를 통해 자기 아들 니콜루시카의 새로운 미덕을 찾아내곤 했다.


온 집안이 니콜루시카에게 보낼 편지를 준비하고 초안들을 쓰고 깨끗이 정서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백작 부인의 감독과 백작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필요한 물건들과 군복을 지을 돈과 새로 진급한 장교를 위한 필수품이 준비되었다. 그것들은 노백작과 백작 부인과 페탸와 베라와 나타샤와 소냐가 보내는 편지들이었고, 군복을 맞출 6천 루블의 돈과 백작이 아들에게 보내는 온갖 물건들이었다.


7


11월 12일 올뮈츠 부근에서 야영하던 쿠투조프의 전투 부대는 다음 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두 황제의 사열을 준비했다. 러시아에서 막 접근한 근위대는 올뮈츠에서 15베르스트 떨어진 곳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10시 무렵 사열을 위해 곧장 올뮈츠 들판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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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이날 이즈마일로프 연대가 올뮈츠에 15베르스트 못 미친 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고 보리스가 편지와 돈을 전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쪽지를 받았다. 보리스의 쪽지를 받은 로스토프는 동료들과 함께 올뮈츠에 가서 식사를 하고 포도주 한 병을 마신 후 어린 시절의 친구를 찾아 혼자 근위대 진영으로 말을 몰았다.


보리스는 로스토프에게 어디서 어떻게 부상을 입었는지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개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즉 그들이 바란 전투대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최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게, 하지만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그는 자신의 쇤그라벤 전투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한창일 때, “공격하는 동안 얼마나 기묘한 광기를 경험하게 되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라고 그가 말하는 순간, 보리스가 기다리던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다가 (안드레이 공작이 견디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인) 전투 편력을 늘어놓는 거친 경기병을 본 그는 보리스에게 다정한 미소를 던지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로스토프에게 실눈을 떴다.


“쇤그라벤 전투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요? 그곳에 있었습니까?”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로스토프는 부관에게 모욕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요! 요즘 그 전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지요.”

로스토프는 갑자기 광기에 찬 눈빛으로 보리스와 볼콘스키를 번갈아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우리 이야기는 바로 적들의 포화 속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이야기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상을 받는 사령부 건달들 이야기와는 다르죠.”


“당신에게 이 점을 말해 두고 싶군요.” 안드레이 공작이 목소리에 고요한 위력을 담아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은 나에게 모욕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게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것에 나도 동의합니다. 단, 당신에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충분치 않다면 말입니다." “나도 당신도 모욕을 당했다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보다 좀 더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내 조언은 이 일에 뒤끝을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로스토프는 그가 방을 나간 후에야 비로소 대답해야 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대답하는 것을 잊었다는 데 더욱더 화가 났다. 내일 총사령부에 가서 이 잘난 척하는 부관에게 결투를 신청해야 하나, 아니면 이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나? 돌아가는 길 내내 그를 괴롭힌 문제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증오하는 이 부관만큼 친구로 삼고 싶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느끼며 놀라워했다.


8


보리스와 로스토프가 만난 다음 날, 오스트리아군과 러시아군의 사열식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갓 도착한 부대들뿐 아니라 쿠투조프와 함께 전투에서 돌아온 부대들도 사열을 받았다. 두 황제, 그러니까 후계자인 황태자를 거느린 러시아 황제와 대공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황제가 8만 연합군의 사열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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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제일 먼저 다가간 쿠투조프 부대의 첫 대오에 선 로스토프는 그 부대원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감정, 자기 망각, 힘에 대한 자랑스러운 자각, 이 의식의 동기가 된 그에 대한 열렬한 동경의 감정을 맛보았다. 근위 기병대 군복을 입고 삼각모를 챙부터 눌러쓴 잘생긴 젊은 알렉산드르 황제는 특유의 쾌활한 얼굴과 그리 크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군주는 장교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제군들, 여러분 모두에게 (로스토프에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지금 차르를 위해 죽을 수만 있다면, 로스토프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자네들은 게오르기 군기를 받았다. 앞으로도 그에 값하도록 하라.”

‘저분을 위해 죽을 수만 있다면, 죽을 수만 있다면!’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사열이 끝나자 새로 도착한 부대의 장교들과 쿠투조프 휘하의 장교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모이기 시작했고, 포상에 대한, 오스트리아인들과 그들의 군복에 대한, 그들의 전선에 대한, 보나파르트에 대한, 특히 이제 에센의 군단이 또 도착하고 프로이센이 아군 편에 서게 될 때는 그가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열식 후에는 다들 두 번의 전투에서 이겼을 때보다 더 강하게 승리를 확신하는 듯했다.


9


사열식 다음 날 보리스는 가장 좋은 군복을 입고 동료 베르크로부터 성공을 기원하는 말을 들으며 볼콘스키를 찾아 올뮈츠로 떠났다. 볼콘스키의 호의를 이용해 가장 좋은 직위를, 특히 군대에서 특별히 그의 마음을 끈 유력한 인물의 부관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보리스가 들어서자 안드레이 공작이 그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어제 당신이 나를 못 보고 가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독일인들과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바이로터와 함께 부대 배치를 살펴보러 다녔지요. 독일인들은 어찌나 꼼꼼히 따지는지 끝이 없습니다!”

보리스는 이해한 것처럼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바이로터라는 성도, 부대 배치라는 용어도 처음 들었다.


“어때요, 친구, 여전히 부관이 되고 싶습니까? 난 그동안 당신 문제를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나에게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시종 무관장이고 멋진 사람이지요. 돌고루코프 공작입니다. 이미 그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당신을 자기 곁에 두거나 아니면 태양에 더 가까운 저 어딘가에 자리를 마련해 줄 방법을 찾았는지 보러 갑시다.”


안드레이 공작이 보리스를 대동하고 궁에 도착해서 돌고루코프 공작을 찾았을 때는 군사 회의가 막 끝난 뒤였다. 총사령부의 인물들은 모두 소장파가 승리를 거둔 당일 군사 회의의 황홀함에 빠져 있었다. 진격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조언하는 신중파의 목소리는 일방적으로 묵살되고, 그들의 논거는 진격의 유리함에 대한 의심할 여지 없는 증거에 의해 반박되었다.


“사실은 공작, 내가 당신에게 온 것은 이 청년에 대한 청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안드레이 공작이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부관이 방으로 들어와 돌고루코프에게 황제의 부름을 전했다.

돌고루코프는 황급히 일어나 안드레이 공작과 보리스에게 악수를 청하며, 경박함이 뒤섞인 선량하고 진실하고 활기찬 표정으로 보리스의 손을 꽉 잡았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럼 다음에 봅시다!”


다음 날 군대는 진군을 시작했다. 보리스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때까지 볼콘스키에게도, 돌고루코프에게도 들르지 못하고 한동안 이즈마일로프 연대에 머물렀다.


10


16일 새벽, 니콜라이 로스토프가 복무하고 있는, 바그라티온 공작의 부대에 속한 데니소프의 기병 중대는 흔히 말하듯 숙소에서 전장으로 이동했다. 로스토프는 카자크들, 기병 제1중대와 제2중대, 보병 대대들과 포병대가 자기 옆을 지나쳐 진군하고 바그라티온과 돌고루코프 장군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기병 중대는 예비 부대로 남겨졌고,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그날 하루를 따분하고 우울하게 보냈다.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그는 자기 앞쪽에서 총소리와 “우라!” 하는 함성 소리를 들었고, 뒤쪽으로 실려 가는 부상병들을 보았고, 마침내 한 프랑스 기병 부대 전체가 수백 명의 카자크들에게 포위되어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전투가 끝난 듯했고, 크지는 않지만 성공적인 전투로 보였다. 돌아오는 병사들과 장교들은 눈부신 승리에 대해, 도시 비샤우를 점령하고 프랑스 기병 중대 전체를 생포한 일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폐하다! 폐하야!” 갑자기 경기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위 부대의 사격 소리를 듣고 젊은 황제는 전장에 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궁정 신하들의 간언에도 아랑곳 않고 12시에 자신과 함께 움직이던 제3종대에서 떨어져 나와 전위 부대를 향해 말을 달렸다. 경기병들에게 이르기 전에 몇몇 부관들이 전투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한 소식과 함께 그를 맞이했다.


프랑스군 기병 중대를 사로잡은 것에 불과한 전투는 프랑스군에 대한 눈부신 승리로 묘사되었고, 그래서 특히 전장에 화약 연기가 아직 흩어지지 않고 있던 동안 군주와 군대 전체는 프랑스군이 패하여 후퇴하는 중이라고 믿었다. 온종일 아주 미미한 교전 끝에 아군에 자리를 넘겨준 적의 산병선을 고려하여 전위 부대는 비샤우 앞쪽에 배치되었다.


군주는 전위 부대에 감사를 표하고 포상을 약속했으며, 병사들에게 보드카를 평소보다 두 배로 지급했다. 지난밤보다 더 유쾌하게 야영지의 모닥불이 타닥거렸고 병사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데니소프는 이날 밤 소령으로 승진한 데 대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미 꽤 취한 로스토프는 술자리가 파할 무렵 군주의 건강을 위해, 하지만 “공식적인 만찬에서 하는 대로 황제 폐하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말했다. “선하고 매력적이고 위대한 인간인 군주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안했다. “그분의 건강과 프랑스군에 대한 확실한 승리를 위해 다 함께 마시자!”


밤이 깊어 모두 흩어지자 데니소프는 짤막한 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로스토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원정 중에 사랑할 사람이 없어 차르를 사랑하게 되었나 보지.” 그가 말했다.

“데니소프, 그런 식으로 농담하지 마.” 로스토프가 화난 듯이 소리쳤다.“이건 아주 고귀하고, 아주 아름다운 감정이란 말이야. 아주…….”


로스토프는 벌떡 일어나 모닥불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도 군주의 눈앞에서 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염원했다. 그리고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앞둔 잊지 못할 그 며칠 동안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로스토프 혼자만이 아니었다. 비록 덜 열광적이긴 했지만 그때 러시아군 가운데 열에 아홉은 차르와 러시아군의 영광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


11


17일 동틀 녘에 한 프랑스 장교가 최전선에서 비샤우로 파견되었다. 그는 휴전의 백기를 들고 와서 러시아 황제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 장교는 사바리였다. 사바리를 파견한 목적은 평화 협정을 제안하고 알렉산드르 황제와 나폴레옹의 회담을 제의하기 위해서였다. 사적인 회담은 거부되었고, 이에 전 군대는 긍지를 느꼈다.


11월 18일과 19일에 군대는 두 차례 더 진격했고, 짧은 교전 후에 적의 최전선은 퇴각했다. 19일 정오부터 군대의 최고 수뇌부에서 매우 분주하고 흥분된 움직임이 일어 다음 날, 즉 그 잊지 못할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일어난 11월 20일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19일에서 20일에 걸친 밤 동안에 8만 대군의 연합군은 웅웅대는 말소리와 함께 숙영지를 떠나 9베르스트에 이르는 거대한 삼베처럼 흔들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날 당직이어서 총사령관 옆에 계속 붙어 다녔다.

오후 5시가 지났을 무렵 쿠투조프는 황제들의 사령부에 와서 잠시 군주를 만난 다음 궁내 대신인 톨스토이 백작에게 들렀다. 볼콘스키는 그 시간을 이용해 사태를 상세히 파악할 요량으로 돌고루코프를 찾아갔다.


“참, 당신은 그를 봤지요?” 안드레이 공작이 물었다. “그래, 보나파르트는 어떤 사람입니까?”

“네, 그를 보고 그가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것이 결전이라는 점을 확신했습니다.” 돌고루코프는 나폴레옹과의 만남에서 끌어낸 이 전반적인 결론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듯 거듭 말했다. “만약 그가 전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이런 회담을 요청하고, 교섭을 하고, 무엇보다도 후퇴를 했겠습니까?"


“하지만 도대체 어느 위치에서 그를 공격한단 말입니까? 내가 오늘 최전선에 다녀왔는데, 그가 바로 어디에 주력 부대와 함께 있을지 판단이 안 됩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아, 그건 전혀 상관없습니다.” 돌고루코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더니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가능성을 예상해 두었으니까요. 만약 그가 브륀에 있다면…….”

돌고루코프 공작은 바이로터의 측면 이동 계획에 대해 빠른 속도로 불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이 공작은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쿠투조프에게 내일의 전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쿠투조프는 부관을 엄하게 바라보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전투에서 패할 거라고 생각하네. 톨스토이 백작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군주께 전해 달라고 부탁도 했네. 자네는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대답했을 거라 생각하나? 아이고, 친애하는 장군! 난 밥과 커틀릿에 신경을 쓰는데 당신은 전쟁에 관심을 쏟는구려. 그래…… 바로 그게 내가 들은 대답이라네!”


12


밤 9시가 지나 바이로터는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군사 회의가 예정된 쿠투조프의 숙소로 건너왔다. 종대의 모든 지휘관들이 총사령관의 호출을 받았다. 참석을 거절한 바그라티온 공작을 제외하고 모두가 정해진 시각에 맞춰 나타났다. 전투의 총지휘를 맡아 활기차고 조급한 모습을 보여 준 바이로터는 마지못해 군사 회의 의장과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며 뿌루퉁하고 졸린 표정을 짓고 있던 쿠투조프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총사령관 집무실로 삼은 커다란 응접실에 쿠투조프와 바이로터 그리고 군사 회의 위원들이 모였다. 7시가 지나 바그라티온의 연락 장교가 공작은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럼 우리끼리 회의를 시작해도 되겠지요?" 바이로터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브륀 부근의 커다란 지도가 펼쳐진 탁자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쿠투조프는 군복 단추를 풀어 헤치고 볼테르식 안락의자에 앉아 살이 오른 노쇠한 두 팔을 대칭으로 팔걸이에 올려놓고는 거의 자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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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계획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 원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적의 왼쪽 측면은 숲으로 덮인 산에 의지하고 오른쪽 측면은 코벨니츠와 소콜니츠를 따라 그곳에 자리한 못들 뒤로 뻗어 있다. 반대로 아군은 왼쪽 측면이 적의 오른쪽 측면보다 우세하다. 따라서 적의 오른쪽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 아군으로서는 유리하다. 특히 아군이 소콜니츠와 코벨니츠 마을을 점령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적의 측면을 공격하고, 적의 전선을 은폐한 슐라파니츠와 벨로비츠 사이의 협로를 피해 슐라파니츠와 투에라사 숲 사이의 평지에서 적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반드시…… 제1종대가 진군하고…… 제2종대가 진군하고…… 제3종대가 진군하고……(독일어)” 등등.


바이로터가 낭독했다. 장군들은 어려운 작전 계획을 마지못해 듣는 것 같았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낭독이 끝나자 랑주롱은 다시 담뱃갑 돌리기를 멈추었고, 바이로터도 딱히 다른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적이 이동 중이어서 아군이 적의 위치를 모를 수도 있는데 적의 위치가 이미 알려진 것으로 가정한 작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바이로터는 모든 반박에 대해 경멸 어린 단호한 미소로 답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하든 모든 반박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미소였다.

“그가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면, 오늘 했겠지요.” 그가 말했다.

“당신은 그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랑주롱이 말했다.

“그에게 4만 군대가 있다면 대군이지요.” 바이로터는 민간요법을 하는 아낙에게 치료법을 알려 주겠다는 말을 들은 의사의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13


그날 밤 로스토프는 소대를 데리고 바그라티온 부대 전방의 측면 산병선에 있었다. 그의 경기병들은 둘씩 짝을 지어 산병선에 흩어져 있었다. 왼쪽으로 빛을 받은 완만한 비탈과 맞은편의 벽처럼 가파른 듯한 검은 언덕이 보였다. 그 언덕에 로스토프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하얀 반점이 있었다. 달빛을 받은 숲속의 빈터일까, 녹지 않은 눈일까, 아니면 하얀 집들인가? 그가 보기에는 심지어 그 하얀 반점을 따라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로스토프는 적이 있는 전방에서 수천의 목소리가 내는 긴 함성을 들었다. 그의 말과 곁에 있던 경기병의 말이 그 함성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함성이 들려오는 곳에서 불꽃 하나가 타오르다 꺼지더니 뒤이어 다른 불꽃이, 그러고는 산 위에 뻗은 프랑스군의 전선 전체에 불꽃이 타오르면서 함성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밤안개로부터 갑자기 거대한 코끼리처럼 보이는 경기병 부사관의 형체가 불쑥 나타났다.

“소위님, 장군들이 오십니다!” 부사관이 로스토프에게 다가와 말했다.

로스토프는 불과 함성 쪽을 계속 돌아보면서 전선을 따라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러 가기 위해 부사관과 함께 말을 몰았다. 한 사람은 백마를 타고 있었다. 바그라티온 공작이 돌고루코프 공작과 부관들을 거느리고 적 진영에 나타난 불과 함성의 기이한 현상을 살피러 나온 것이다.


“믿으세요.” 돌고루코프 공작이 바그라티온을 향해 말했다. “이건 술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후퇴한 다음에 후위대에서 우리를 속이기 위해 불을 지르고 웅성거리라고 명령한 겁니다.”

“그럴 리가요.” 바그라티온이 말했다. “나는 저녁부터 저 언덕 위에 적들이 있는 걸 봤습니다. 퇴각했다면 저곳에서도 철수했겠지요.”


“아직 전부 물러간 것은 아닌 듯싶군요, 공작.” 바그라티온이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내일이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요.”

“산 위에 보초가 있습니다, 각하. 저녁부터 있던 자리에 여전히 있습니다.” 로스토프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한 손을 챙에 붙이며 보고했다.


적의 진영에서 함성과 불길이 일어난 것은 나폴레옹의 명령서가 부대에서 낭독될 때 황제가 몸소 말을 타고 야영지를 돌았기 때문이었다. 황제를 본 병사들은 짚단에 불을 붙이고는 “황제 만세!”를 외치며 뒤따라 달렸다. 나폴레옹의 명령서는 다음과 같았다.


병사들이여! 울름에서 패한 오스트리아군의 복수를 하고자 러시아군이 그대들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이자들은 그대들이 홀라브룬에서 격파한 이래로 계속 이곳까지 추격해 온 바로 그 부대다. 우리가 차지한 진영은 강력하다. 그리고 나를 오른쪽에서부터 에워싸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적은 측면을 노출할 것이다! 내가 직접 그대들의 부대를 지휘할 것이다. 만약 그대들이 평소의 용맹함으로 적의 대오를 혼란과 당혹에 빠뜨린다면 나는 포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순간이라도 승리가 의심스러울 경우 그대들은 적에게 가장 먼저 공격받는 그대들의 황제를 보게 될 것이다. 승리에는 주저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명예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프랑스 보병의 명예가 걸린 날에는 특히 그렇다. ......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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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새벽 5시, 사방이 캄캄했다. 중앙군과 예비 부대 그리고 바그라티온의 오른쪽 측면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왼쪽 측면에서는 작전 계획에 따라 프랑스군 우측을 공격하여 보헤미아산으로 쫓아내기 위해 고지에서 가장 먼저 내려가야 했던 보병과 기병과 포병의 종대들이 벌써부터 들썩이며 숙영지에서 움직였다.


동이 텄는데도 안개가 너무 짙어져 열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다. 덤불이 거대한 나무처럼 보이고 평지가 절벽과 비탈처럼 보였다. 어디서든 열 걸음 앞의 보이지 않는 적과 사방에서 부딪칠 수 있었다. 그러나 종대들은 오랫동안 똑같은 안개 속에서 산을 오르내리고 정원과 울타리를 지나치며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형을 따라 행군하면서 어디서도 적과 맞닥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시간가량 짙은 안개 속을 계속 걷다 보니 군대의 상당수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불쾌한 자각이 대열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혼란의 원인은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좌측에서 진군하는 동안 군사령부가 아군의 중심이 우측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기병대 전체에 오른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기병대가 보병대 앞을 지나가는 바람에 보병대는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한 시간을 지체한 후에 군대는 마침내 앞으로 움직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 흩어지던 안개가 군대가 내려간 저지대에서는 더욱 짙어졌다. 전방의 안개 속에서 한 발, 또 한 발 총성이 울렸다. 처음에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트라트 타…… 타트 하고 울리더니, 그다음에는 한층 규칙적으로 빈번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골드바흐강 위쪽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래로 내려간 제1, 2, 3종대에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쿠투조프가 속한 제4종대는 프라첸 고지에 주둔해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저지대에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위쪽은 완전히 개었지만 전방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적의 모든 병력이 아군의 예상대로 10베르스트 떨어진 곳에 있는지, 아니면 여기, 안개의 경계선 안에 있는지 8시가 넘도록 아무도 몰랐다.


오전 9시였다. 끝없는 안개의 바다가 지면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자신의 원수들에 둘러싸여 서 있던 고지대의 슐라파니츠 마을 근처는 날이 완전히 갰다. 그는 안개의 바다로부터 쑥 떠오른 듯한, 러시아 군대가 저 멀리서 진군하고 있는 구릉을 말없이 바라보며 협곡에서 들리는 사격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러시아군 중 일부는 이미 협곡의 못과 호수 쪽으로 내려갔고, 일부는 그가 공격하려 했고 진지의 거점으로 여겼던 프라첸 고지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에게 영광스러운 날, 그의 대관식 기념일이었다. 아침이 밝기 전에 그는 몇 시간 졸았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고 모든 것이 성공하리라는 행복한 예감 속에서 유쾌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말에 올라 벌판으로 나갔다. 그는 아름다운 하얀 손에서 장갑을 벗어 그것으로 원수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전투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수들은 부관을 대동하고 사방으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몇 분 뒤 프랑스군의 주력은 골짜기를 향해 왼쪽으로 내려가는 러시아 군대가 철수하고 있던 프라첸 고지로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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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8시에 쿠투조프는 이미 아래로 내려간 프시비셰프스키와 랑주롱의 종대가 있던 곳을 맡기로 되어 있던 밀로라도비치의 제4종대 앞에서 프라츠 마을을 향해 말을 몰고 출발했다. 그는 선두에 있던 연대의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진군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그는 이 종대를 직접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총사령관은 마을 입구에 서서 자기 옆으로 군대를 통과시켰다. 이날 아침 쿠투조프는 몹시 피로하고 신경이 예민해 보였다. 그의 옆을 지나던 보병대가 명령도 없이 멈춰 섰다. 전방의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인 듯했다. “이제 대대별로 정렬해서 마을을 우회하라고 하시오.” 쿠투조프가 다가오는 장군에게 성을 내며 말했다. “어째서 이해를 못하는 거요, 적을 향해 가는데 마을의 이런 좁은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설 수는 없잖소.”


“마을 밖에서 부대를 정렬시킬 생각이었습니다, 각하.” 장군이 대답했다.

쿠투조프는 신경질적으로 웃어 댔다. “적의 눈앞에서 전선을 펼치다니, 잘하시는 일이오. 아주 좋아요!”

“적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각하. 작전 계획에 따르면…….”

“작전 계획이라니!” 쿠투조프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것을 말해 주었소……? 제발 명령대로 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쿠투조프는 대꾸 없이 얼굴을 돌렸다. 느닷없이 그의 시선이 곁에 서 있던 안드레이 공작에게 향했다.

“이보시게, 3사단이 마을을 통과했는지 가서 보고 오시오. 그들에게 진군을 멈추고 내 명령을 기다리라고 전해요.” 안드레이 공작이 막 떠나려는데 쿠투조프가 불러 세웠다.

“그리고 저격병들을 배치했는지 물어보시오.” 그가 덧붙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말을 달렸다. 그는 선두에서 행군하던 대대들을 전부 앞질러 제3사단을 멈춰 세우고 아군의 종대 앞에 저격병의 산병선이 없음을 확인했다. 연대 앞에 있던 연대장은 저격병들을 배치하라는 총사령관의 명령을 전달받자 몹시 놀랐다. 연대장은 앞에 다른 부대가 더 있다고, 10베르스트 이내에는 적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며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쿠투조프의 뒤쪽 멀리서 연대들이 경의를 표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프라첸에서 오는 길을 따라 기병 중대처럼 보이는 다채로운 복장의 기수들이 말을 달렸다. 그중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나란히 말을 달렸다. 한 사람은 검은 군복에 하얀 깃털 장식을 단 군모를 쓰고 꼬리를 짧게 자른 적갈색 말을 탔으며, 다른 한 사람은 하얀 군복을 입고 검은 말을 타고 있었다. 수행단을 거느린 두 황제였다.


“어째서 시작하지 않는 거요,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알렉산드르 황제가 서둘러 쿠투조프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프란츠 황제를 정중하게 쳐다보았다.

“기다리는 중입니다, 폐하.” 쿠투조프가 정중하게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군주는 제대로 알아들었지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는 굽은 어깨를 으쓱하고 곁에 서 있던 노보실체프를 힐끗 쳐다봄으로써 마치 그 시선으로 쿠투조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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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폐하, 폐하의 명이라면…….”쿠투조프는 고개를 들고 이전의 생각 없이 복종하는 아둔한 장군의 어조로 바꾸며 말했다. 그는 말을 움직였고, 종대 지휘관인 밀로라도비치를 자기 쪽으로 불러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부대가 다시 들썩거렸고, 노브고로트 연대의 2개 대대와 아프셰론 연대의 1개 대대가 군주를 지나 앞으로 진군했다.



16


부관들을 거느린 쿠투조프는 총기병들 뒤에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2베르스트가량 떨어진 맞은편 고지에서 적군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런데 왼편 아래쪽에서 사격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쿠투조프는 멈춰 서서 오스트리아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십시오, 보십시오” 부관이 멀리 있는 부대가 아닌 그들 앞의 산 아래를 보며 말했다. “프랑스군입니다!”

그 말에 두 장군과 부관들이 앞다투어 망원경을 잡았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고,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프랑스군이 2베르스트 떨어진 곳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갑자기 아군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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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공작으로부터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두려움에 싸인 순박한 목소리가 외쳤다.“자, 형제들, 일 끝났어!” 그 목소리는 마치 구령 같았다. 그 목소리에 모두들 달아나기 시작했다. 무리를 멈춰 세우기도 어려웠지만 무리와 함께 뒤로 떠밀리지 않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 파렴치한 놈들을 멈추게 하시오!” 쿠투조프는 연대장에게 달아나는 병사들을 가리키며 숨 가쁘게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말에 대한 벌이라는 듯 총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연대와 쿠투조프의 수행원들에게 새 떼처럼 날아들었다. “볼콘스키…….” 그는 늙어 버린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볼콘스키…….” 그가 무질서한 대대와 적군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안드레이 공작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수치와 분노의 눈물을 느끼며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군기를 향해 달려갔다.

“제군들, 전진하라!” 그가 어린아이 같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깃대를 쥐고 바로 그를 겨냥한 것이 분명한 총소리를 쾌감과 함께 들으며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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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 안드레이 공작은 무거운 군기를 두 손으로 간신히 지탱하며 외치고는, 대대 전체가 뒤따라 달려오리라는 확신과 함께 앞으로 돌격했다. 그의 앞에 아군 포병들이 보였다. 어떤 이들은 적과 싸우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대포를 버리고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다가 마치 가장 가까이 있는 병사들 가운데 누군가가 단단한 몽둥이를 힘껏 휘둘러 그의 머리를 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쓰러지는 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이런 생각이 들고 나서 그는 뒤로 쓰러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위에는 하늘 외에는, 높은 하늘, 맑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헤아릴 수 없이 높은 하늘, 회색 구름이 조용히 떠다니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고요하고 평온하고 장엄하구나. 내가 달릴 때와 전혀 달라.’ '왜 전에는 저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마침내 저 하늘을 알게 되었으니 난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 저 끝없는 하늘 말곤 모든 게 공허해, 다 거짓이야. 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심지어 그마저도 없다. 정적과 평온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17


바그라티온의 우측에서는 9시에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하라는 돌고루코프의 요구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 데다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바그라티온 공작은 총사령관에게 사람을 보내 그 문제에 대해 물어보자고 돌고루코프에게 제안했다. 설령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가 총사령관을 찾아낸다 해도 저녁때까지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을 바그라티온은 알고 있었다.


바그라티온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듯 무표정한 큰 눈으로 수행단을 돌아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흥분과 기대로 얼어붙은 로스토프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로스토프를 파견했다. 그의 모든 바람이 이날 아침에 다 이루어졌다. 결전이 벌어졌고, 그는 거기에 참가했다. 또한 가장 용맹한 장군의 연락 장교가 되었다. 명령을 받자 그는 말을 몰아 전선을 따라 달려갔다.


어느 오스트리아 부대를 지나친 로스토프는 그다음 전선이 (그것은 근위대였다) 이미 전투에 돌입한 것을 보았다. ‘잘됐어! 가까이에서 봐야지.’ 그는 생각했다. 벌판 전체에 걸쳐 뻗은 거대한 기병대 무리가 그의 왼쪽에서 앞을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눈부신 하얀 군복을 입고 검은 말을 탄 그들은 그를 향해 똑바로 질주해 왔다.


로스토프를 지나친 근위 기병들이 연기 속으로 자취를 감춘 순간 그는 그들을 뒤따라 질주해야 할지,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향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것은 프랑스군조차 경탄한 근위 기병들의 눈부신 공격이었다. 나중에 로스토프는 거구의 미남들로 이루어진 그 부대 전체에서, 1천 루블짜리 말을 탄 부자, 젊은이, 장교, 사관후보생 등 그를 지나쳐 달려간 그 눈부신 사람들 중에서 공격 후 살아남은 사람이 겨우 열여덟 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두려움에 떨었다.


근위 보병대와 나란히 가게 된 그는 그들 머리 위로, 그리고 그들 주위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것을 알아차렸다. 포탄 소리를 들어서라기보다는 병사들의 얼굴에서 불안을 보고, 장교들의 얼굴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군인다운 엄숙한 분위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근위대와 텅 빈 지역을 지나친 로스토프는 근위 기병의 공격에 휘말린 것처럼 또다시 제1전선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총성과 포성이 가장 격렬한 곳을 멀리 우회하며 예비 부대의 전선을 따라 말을 몰았다. 별안간 그의 앞쪽과 아군의 뒤쪽에서, 결코 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던 곳에서 라이플총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적이 아군의 후미에 있나? 그럴 리가.’ 이런 생각이 들자 자신과 전투 결과에 대한 소름 끼치는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누구에게 쏘는 거야? 누가 쏘는 거야?” 로스토프는 그의 길목을 막고 서로 뒤섞여 도망치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병사들의 무리와 나란히 달리며 물었다. 나중에 로스토프가 알아보니 러시아 병사들과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저 얼른, 얼른 저놈들에게서 떨어지자!’ 패배니 도주니 하는 생각은 로스토프의 머리에 들어올 수 없었다. 바로 프라첸 고지에 있는, 총사령관을 찾도록 지시받은 바로 그 고지에 있는 프랑스군의 대포와 군대를 보았으면서도 그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18


로스토프는 프라츠 마을 부근에서 쿠투조프와 군주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들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단 한 명의 지휘관도 없었고, 무질서한 군대의 잡다한 무리뿐이었다. 종졸은 군주를 실은 카레타가 한 시간 전에 바로 이 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갔으며 군주가 중상을 입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럴 리가…….” 로스토프가 말했다. “아마 다른 누구겠지.”

“제가 직접 봤습니다.” 종졸은 자신만만하게 씩 웃으며 말했다.“이제 저 같은 놈도 폐하를 알아볼 때가 됐지요.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여러 번 뵌 것 같습니다. 지독하게 창백한 모습으로 카레타에 앉아 계셨습니다."


러시아군의 마지막 부대를 지나친 로스토프는 도랑으로 에워싸인 채소밭 주위에서 말을 탄 채 도랑을 마주하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군모에 하얀 깃털 장식을 한 사람은 왠지 로스토프에게 낯이 익었다. ‘하지만 저 사람이 그분일 리 없어. 이런 황량한 벌판 가운데 혼자 계실 리 없어.’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그때 알렉산드르가 고개를 돌렸고, 로스토프는 자신의 기억 속에 그토록 생생하게 새겨진 흠모하는 이의 생김새를 보았다. 군주의 얼굴빛은 창백했고 두 뺨은 홀쭉했으며 두 눈은 푹 꺼져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막상 염원하던 순간이 찾아와 연인과 단둘이 있게 되면 기쁨으로 어리둥절한 나머지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밤마다 꿈꾸던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하듯, 지금 로스토프도 세상에서 가장 바라던 기회를 얻고도 군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난 절대로 폐하께 다가가서는 안 돼. 폐하의 상념을 방해해서는 안 돼. 폐하로부터 불쾌한 시선을 받고 나쁜 평가를 듣느니 차라리 천 번을 죽는 게 더 나아.’ 그는 그렇게 결심하고 슬픔과 절망을 안은 채 물러났다.


로스토프가 그런 생각을 하며 슬프게 군주로부터 물러나는 동안 폰 톨 대위가 우연히 똑같은 장소에 왔다가 군주를 보고는 곧장 말을 몰아 다가갔다. 그는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군주가 말에서 내려 도랑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 톨이 오랫동안 군주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모습을, 군주가 울기 시작한 듯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을 톨에게 내미는 모습을 로스토프는 질투와 후회를 가슴에 품은 채 멀리서 보았다.


그는 군주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것은 군주에게 자신의 충성을 내보일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돌려 황제를 보았던 곳으로 서둘러 되돌아갔다. 그러나 도랑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 4시가 넘었을 때 전투는 모든 지점에서 패배로 종결되었다. 1백 문이 넘는 대포가 프랑스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프시비셰프스키와 그의 군대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했다. 다른 종대들은 병력을 절반 정도 잃고 무질서하게 혼잡한 무리를 이루어 퇴각했다. 랑주롱과 도흐투로프의 부대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서로 뒤섞여 아우게스트 마을에 있는 못 부근의 둑과 제방에 빼곡히 모여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 좁은 둑 위에서는 죽음의 공포로 추악한 몰골이 된 사람들이 치중차와 대포 사이에서, 말 아래와 바퀴 사이에서 북적대며 서로를 짓누르고, 죽어 가고, 똑같이 죽음을 맞을 뿐인데도 고작 몇 걸음 더 가기 위해 죽은 사람들을 타 넘고,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팔에 부상을 입고 자기 중대 병사 열 명과 함께 걸어서 이동하고 있던 돌로호프와 (그는 이미 장교였다) 말을 탄 연대장이 연대 전체의 생존자였다.


19


프라첸 고지에, 두 손에 깃대를 쥔 채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피를 흘리며 누워 자신도 모르게 아이처럼 나직하고 애처로운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저녁 무렵 그는 신음을 그치고 완전히 잠잠해졌다. 가까이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와 프랑스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떴다. 말을 타고 다가온 사람은 나폴레옹과 그의 두 부관이었다.


그는 말을 몇 걸음 움직이다가 곁에 버려진 깃대와 함께 (깃발은 프랑스군이 이미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고개를 젖히고 쓰러져 있는 안드레이 공작 위에 멈춰 섰다.

“여기 아름다운 죽음이 있군.” 나폴레옹이 볼콘스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한 말이며, 그 말을 한 사람이 폐하라고 불리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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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순간 구름이 달려가는 저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신의 영혼 사이에서 지금 벌어지는 것에 비하면 나폴레옹은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보였다. 누가 자기 위에 서 있든,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이 순간 그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저 사람들이 그의 위에서 멈춰 주어 기뻤다.


그는 힘없이 한쪽 다리를 꿈틀거리며 아주 측은하게 느껴지는 가늘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아! 살아 있군.” 나폴레옹이 말했다. “이 청년을 야전 의무실로 데려가라!”

그렇게 말한 뒤 나폴레옹은 모자를 벗고 미소 띤 얼굴로 승리를 축하하며 황제에게 다가오는 란 원수를 향해 앞으로 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들것에 실리고 운반될 때 충격을 받고 야전 응급 치료소에서 상처 부위를 검사받고 하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끔찍한 통증에 의식을 잃었다. 그가 의식을 회복하고 처음 들은 말은 다급하게 지껄이는 프랑스군 호송 장교의 말이었다.

“여기서 멈춰야 해. 폐하께서 곧 지나가실 거야. 포로가 된 이 신사들을 보시면 만족하실 거야.”


나폴레옹은 벌판에서 안드레이 공작을 본 것을 기억한 듯 그에게 말을 걸며 청년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당신이오, 청년? 그러니까 당신이 그 청년이오?” “기분이 어떻소, 나의 용사여?”

5분 전만 해도 자신을 운반하는 병사들에게 몇 마디 건넬 수 있었던 안드레이 공작은 이제 나폴레옹에게 시선을 똑바로 향한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이 순간 그에게는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모든 관심거리가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자신이 보고 헤아리게 된 저 높고 공평하고 선한 하늘에 비하면 이 저급한 허영과 승리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는 자신의 영웅 자체가 너무도 졸렬해 보였다. 그래서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을 운반할 때 그들의 눈에 띈, 마리야 공작 영애가 오빠에게 걸어 준 작은 황금 이콘을 목에서 벗겼던 병사들은 황제가 포로들을 대하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고는 부랴부랴 이콘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누가 어떻게 그것을 다시 걸어 주었는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군복 위 가슴팍에 가느다란 금사슬이 달린 이콘이 놓여 있었다.


들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것이 흔들릴 때마다 그는 다시 참기 힘든 통증을 느꼈다. 열에 들뜬 상태가 점차 심해져서 그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아내와 누이와 장차 태어날 아들에 대한 염원, 전투 전야에 경험한 부드러운 감정, 작달막하고 보잘것없는 나폴레옹의 형상,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있는 높은 하늘이 열에 들뜬 그의 생각의 주된 토대를 이루고 있었다.


아침 무렵에는 모든 공상이 뒤섞여 의식 불명과 망각의 혼돈과 암흑으로 한데 어우러졌다. 나폴레옹의 주치의인 라레의 견해에 따르면, 그런 상태는 쾌유보다 죽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 사람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서 병이 낫지 않을 겁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가망 없는 다른 부상자들에 섞여 주민들의 보호 아래 맡겨졌다.


<제1권 제3부 끝>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


[프랑수아 제라르가 1810년에 그린 《아우스터리츠 전투, 1805년 12월 2일》 속 나폴레옹]
[1805년 12월 아우슈터리츠 전투의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