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제2부
제2부
1
아내와 담판을 지은 후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토르조크 역참에는 말이 없거나 역참지기가 말을 내주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앞 역참에서부터 상념에 빠지기 시작하여 계속 똑같은 것에 대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든 해결할 수 없으면서도 묻기를 멈출 수 없는 똑같은 질문들로 되돌아가곤 했다.
역참지기가 들어와 두 시간만 기다려 주시면, 그 후에는 각하를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역마를 내 드리겠다고 굽실대며 간청했다. 역참지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저 여행객으로부터 돈을 더 뜯어내기만 바란다는 것이 명백했다. '이것은 나쁜 행동일까, 아니면 좋은 행동일까?’ 피에르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여행객에게는 좋지 않은 행동이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지. 그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사람은 한 장교가 이런 일로 자기를 두들겨 팬 적이 있다고 했다. 장교는 서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때린거야. 난 나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로호프를 쏘았다. 루이 16세는 죄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처형되었고. 그런데 1년 뒤에는 그를 처형한 사람들 역시 어떤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나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난 도대체 무엇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어떤 힘이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전혀 아닌, 비논리적인 한 가지 대답 외에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답은 이것이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든가 질문을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도 무서웠다. 피에르는 다시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가 이를 수 있는 최고 단계이다.’
그 때 역참지기가 말이 부족해서 여정을 지체하게 된 다른 여행자 한 명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여기 이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조금만 양보해 주시길 각하께 감히 부탁드립니다.”남루한 모피 외투를 걸치고 야윈 두 발에 펠트 부츠를 신은 여행자는 머리털을 짧게 깎은 커다란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고 소파에 앉아서 베주호프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어린 지적이고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표정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손가락 하나에는 아담의 머리 형상이 새겨진 커다란 주철 반지를 끼고 있었다.
2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베주호프 백작과 말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군요.” 여행자가 서두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피에르는 말없이 안경 너머로 상대방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당신에 대해 들었습니다.” 여행자가 말을 이었다.“당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서도요, 선생.”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선생."
피에르는 황급히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고는 어색하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당신에게 그 일을 언급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선생.”
“당신은 젊고 난 늙었습니다. 그러나 내 힘이 닿는 한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만.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나와 대화하는 것이 불쾌하다면 말해 주시오, 선생.” 노인이 말하고는 갑자기 아버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물었다. “당신은 프리메이슨 회원입니까?”
“네, 나는 '자유 석공 조합'의 일원입니다.” 여행자가 피에르의 눈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그래서 나 개인적으로, 또 그들을 대표해서 당신에게 형제의 손을 내밀고자 합니다.”
“전 두렵습니다.” 피에르는 그 프리메이슨 회원의 인격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킨 신뢰와 프리메이슨 신앙을 조롱하던 습관 사이에서 망설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우주 만물에 대한 저의 사고방식이 당신과 정반대여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나는 당신의 사고방식을 압니다.” 프리메이슨 회원이 말했다.“당신이 말하는,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는 당신의 정신노동의 산물로 보이는 당신의 그 사고방식은 대다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며, 한결같이 오만과 나태와 무지가 낳은 열매입니다. 용서하시오, 선생. 만약 내가 그것을 몰랐다면, 나는 당신과 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당신의 사고방식은 슬픈 망상입니다."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전 믿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 피에르는 힘겹게 말했다.
프리메이슨은 피에르를 주의 깊게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마치 수중에 수백만 루블을 가진 부자가 가난한 자신에게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5루블이 없다고 말하는 가난뱅이를 향해 미소 짓는 것 같았 다.
"그래요, 당신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선생." 프리메이슨이 말했다.
"당신은 그분을 알 수 없지요. 당신은 하느님을 모르고, 그래서 불행한 것이기도 하지요."
"네, 네, 저는 불행합니다." 피에르는 수긍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만약 그분이 안 계시다면 누가 그분을 생각해 냈다 말인가? 그런 불가해한 존재가 있다는 가정이 어떻게 자네 마음속에 떠오른 것인가? 어째서 자네와 온 세상은 그런 불가해한 존재가, 그 모든 본성에 있어 전능하며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 것인가……?" 그는 말을 멈추고 오래도록 침묵했다.
"하느님은 계시네. 다만 그분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프리메이슨은 피에르의 얼굴이 아닌 자기 앞에 시선을 둔 채, 내면의 흥분 때문에 침착하게 가만있지 못하는 노쇠한 두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이분이 그 존재를 자네가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데려와 그의 손을 잡고 자네에게 보여 줄 것이네. 하지만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인 내가 눈먼 사람에게, 아니면 그분을 보지 않고 이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모든 추악함과 죄악을 보지 않고 깨닫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분의 모든 전능함과 모든 영원함과 모든 은총을 보여 줄 수 있겠나?"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자네는 무엇인가? 자네는 그런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현자라는 망상에 빠진 걸세." 그는 멸시에 찬 음울한 조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의 부품을 가지고 놀면서 그 시계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 시계를 만든 장인의 존재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어린아이보다도 더 우둔하고 무분별해. 하느님을 알기는 어렵네. 우리는 수 세기 동안 이러한 인식을 위해 노력해 왔네.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기까지는 끝없이 머나먼 길이야. 그러나 우리는 그분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그 분의 위대함을 보네……."
"저는 모르겠습니다." 피에르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의심을 두려운 심정으로 느끼며 말했다. 그는 상대방의 논거가 불분명하고 약한 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프리메이슨을 믿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이성이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삶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겁니까?"
프리메이슨이 다시 온화한 아버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고한 지혜는 이성 하나에, 이성적 지식이 분화되는 물리, 역사, 화학 등의 세속적인 학문에 기초를 둔 게 아니네. 지고한 지혜는 하나 뿐일세. 지고한 지혜는 하나의 학문만을 가지지. 만물에 대한 학문, 온 우주와 그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해명하는 학문 말일세. 이 학문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적 인간을 깨끗이 하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니까 알기에 앞서 믿고 스스로를 완성할 필요가 있지.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양심이라 불리는 신성한 빛이 우리 영혼 속에 존재하게 된 것이네."
"영적 시선으로 자신의 내적 인간을 보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게. 자네는 오직 이성만을 따르며 무엇을 이루었나? 자네는 도대체 뭔가? 선생, 당신은 젊어요. 당신은 부자입니다. 똑똑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자신이 받은 그 모든 은총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은 자신에게, 자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아니요, 저는 제 삶을 증오합니다." 피에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삶을 증오하는군. 그럼 바꾸게. 자신을 정결히 하게. 정결해지는 정도에 따라 지혜를 알게 될 걸세. 선생, 자신의 삶을 바라보시오. 당신은 삶을 어떻게 영위해 왔소? 사회로부터 늘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으면서 떠들썩한 술판과 방탕 속에 살았지요. 당신은 부를 얻었어요.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당신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의 농노 수만 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운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당신은 방탕한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의 노동을 이용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이 한 일이에요. 당신이 이웃에게 도움이 될 일자리를 택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당신은 나태 속에서 삶을 보냈습니다.
선생, 그러고는 당신은 결혼해서 젊은 아내를 지도할 책임을 떠맡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선생, 당신은 그녀가 진리의 길을 찾도록 돕지 않았고, 그녀를 거짓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한 남자가 당신을 모욕했고, 당신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고는 당신은 하느님을 모른다고, 자신의 삶을 증오한다고 말하는군요. 조금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선생!"
“도움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 우리 교단의 힘이 닿는 한에서라면 교단이 당신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면 이것을 빌라르스키 백작에게 전하시오. (그는 공책을 꺼내 네 겹으로 접은 큰 종이에 몇 마디 썼다.) 수도에 도착하거든 처음 얼마 동안은 고독과 자성에 시간을 쏟고 이전 삶의 길에 발을 들여놓지 마시오. 그럼, 선생, 행복한 여정을 기원합니다.”
피에르가 역참지기의 명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여행자는 오시프 알렉세예비치 바즈데예프였다. 바즈데예프는 노비코프 시대에 가장 유명한 마르틴주의자 프리메이슨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가 떠난 후 피에르는 오래도록 잠자리에 들지도, 말에 대해 묻지도 않은 채 방을 거닐며 자신의 흠결에 찬 과거를 곰곰이 생각하고, 갱생의 환희와 함께 나무랄 데 없이 축복되고 고결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3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피에르는 자신이 온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고, 여러 날을 온종일 어떤 사람이 전해 준 포마 켐피스키의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 책을 읽으며 피에르는 자신이 아직 알지 못했던 기쁨, 완성에 도달할 가능성과, 오시프 알렉세예비치가 열어 준, 사람들 사이의 실천적인 형제애의 가능성을 믿는 데서 오는 기쁨을 이해했다.
그가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피에르가 페테르부르크 사교계를 통해 피상적으로 알던 젊은 폴란드 백작 빌라르스키가 그의 방에 들어와 피에르 외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그에게 말했다.“제안과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백작. 우리 공동체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계시는 분께서 당신이 기한보다 일찍 교단에 가입할 수 있도록 청원하셨고, 나에게 당신의 보증인이 되라고 제안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보증으로 자유 석공 조합에 가입하기를 바랍니까?"
"네, 바랍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그들은 카레타를 타고 지부의 방이 있는 큰 저택의 대문으로 들어가 어두운 계단을 지나 불이 켜진 작은 대기실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하인의 도움 없이 외투를 벗었다. 그들은 대기실을 나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장롱에서 손수건을 꺼낸 빌라르스키는 그것을 피에르의 눈에 대고 머리카락을 아프게 당기며 뒤에서 매듭을 지었다. 그런 다음 피에르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는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가린 손수건을 푸십시오.” 빌라르스키가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
눈을 가리고 있던 5분이 그에게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에르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수건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오직 한곳에서만 하얀 무언가의 안에서 램프가 타오르고 있었다. 희미한, 하지만 피에르의 눈에 이미 익숙해진 불빛 속에서 키가 크지 않은 사람이 들어왔다.
"이제 나는 우리 교단의 주된 목적을 당신에게 드러내야만 합니다." 레토르(프리메이슨에서 추구하는 자에게 공동체 가입을 준비시키는 형제를 그렇게 불렀다)가 말했다.
"만약 그 목적이 당신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이 당신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목적이자 설립 기반이며 인간의 어떤 힘도 허물 수 없는 토대는 어떤 중요한 신비를 보존해서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태고로부터, 심지어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어쩌면 인류의 운명이 달린 신비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 열성적인 자기 정화로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고 이용할 수 없는 것이 이 신비의 특성이어서 누구나 금방 발견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번째 목적을 갖습니다. 우리 회원들을 최대한 준비시키는 것, 이 신비의 탐구를 위해 노력한 남성들로부터 입에서 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수단들로 그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이성을 정화하고 계몽하는 것, 하여 그들에게 이 신비를 지각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이 두 번째 목적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회원들을 정화하고 바로잡는 과정에서 회원들을 통해 온 인류에게 경건함과 덕의 모범을 제시함으로써 인류도 교화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악과 온 힘을 다해 대적하려고 애씁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당신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나는 가입 절차를 시작해야 합니다.” 레토르가 말했다.
"너그러움의 표시로 모든 귀중품을 건네주기 바랍니다.”
"복종의 표시로 옷을 벗어 주십시오.”
"이제 마지막입니다. 정직함의 표시로 당신의 주된 집착에 대해 털어놓기 바랍니다.”
"제 집착이오! 제겐 그런 게 너무 많은데요.” 피에르가 말했다.
“덕의 길 위에서 다른 무엇보다 당신을 가장 주저하게 만드는 그런 집착 말입니다.” 프리메이슨이 말했다.
“여자입니다.” 피에르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모든 관심을 당신 자신에게 돌리고 당신의 감정을 쇠사슬로 결박하십시오. 정욕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복을 찾으십시오. 복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피에르는 자신의 영혼을 기쁨과 감동으로 채우고 소생시키는 그 복의 근원을 이미 안에서 느끼고 있었다.
4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의 레토르가 아닌 보증인 빌라르스키가 피에르를 데려가기 위해 어둑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피에르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의향이 확고한지 묻는 새로운 질문들에 피에르는 대답했다.
“네, 네, 동의합니다.” 방에서 나온 그는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가며 이끌리다가 마침내 프리메이슨 지부의 문으로 안내되었다. 빌라르스키가 기침을 하자 프리메이슨식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응답했고, 그들 앞에서 문이 열렸다.
그런 다음 그는 눈이 가려진 채 다시 어딘가로 이끌렸고, 걸어가는 동안 그의 여정에 닥칠 수고, 성스러운 우정, 태초 이전부터 계신 세계의 건축자, 그가 고난과 위험을 이겨 내기 위해 요구되는 용기 등에 대한 알레고리를 들었다. 안내자는 피에르의 오른손을 잡고 무언가 위에 올려놓은 뒤 왼손으로 왼쪽 가슴에 나침반을 가져다 대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읽어 주는 대로 교단 규범에 대한 충성의 서약을 말하도록 했다.
피에르는 점차 정신이 들자 자신이 있던 방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검은 천으로 덮인 기다란 탁자 주위에 그가 전에 본 사람들과 똑같은 의상을 입은 열두어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몇 사람은 페테르부르크 사교계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의장 자리에는 낯선 젊은 남자가 목에 독특한 십자가를 걸고 앉아 있었다.
피에르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축하 인사와 친분의 회복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인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서 오직 형제만 볼 뿐이었고, 그들과 하루빨리 일을 시작하고픈 조급한 열정으로 타올랐다. 회합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온 피에르는 10년이 걸린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완전히 변해서 이전 삶의 질서와 습관을 떨쳐 낸 것처럼 느꼈다.
5
프리메이슨 지부에 가입한 다음 날 피에르는 집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며 한 변은 하느님, 다른 변은 정신적인 것, 세 번째 변은 육체적인 것, 네 번째 변은 그 혼합을 나타내는 사각형의 의미를 열심히 파고들고 있었다. 전날 지부에서 피에르는 결투에 관한 소문이 군주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페테르부르크를 멀리 떠나는 편이 현명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피에르는 남쪽 영지로 내려가 자신의 농민들에게 전념하기로 작정했다.
그때 느닷없이 바실리 공작이 방에 들어왔다.
“이보게, 모스크바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무엇 때문에 룔랴와 싸웠어, 이 친구야? 자넨 오해하고 있네.” 바실리 공작이 말했다. “내가 다 알아봤네. 자네에게 확실히 말해 줄 수 있어. 엘렌은 유대인 앞에 선 그리스도처럼 자네 앞에서 결백해.”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알게 되었네만 황태후께서 이 모든 일에 매우 흥미를 갖고 계시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분은 엘렌에게 매우 호의적이시지.”
피에르는 몇 번이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바실리 공작이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황급히 말을 가로막은 데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에르 자신이 단호한 거절과 반대의 어조로 장인에게 대답하기로 단단히 결심했으면서도 말을 꺼내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그의 모든 운명이, 이전의 옛길을 걸을지, 아니면 프리메이슨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제시해 주었고 자신도 새로운 삶의 부활을 찾게 되리라 굳게 믿은 그 새로운 길을 걸을지는 그가 지금 하는 말에 달려 있다고 느꼈다.
"공작, 난 당신을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가세요, 제발, 가십시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바실리 공작의 얼굴에 나타난 곤혹과 두려움의 표정에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이 기쁨을 느끼며 그가 되풀이 말했다. “가십시오!”
“자네 무슨 일인가? 어디 아픈가?”
“가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또 한 번 말했다. 그리하여 바실리 공작은 어떤 해명도 듣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6 (보리스 드루베츠코이)
피에르와 돌로호프의 사건은 흐지부지되었다. 그 무렵 군주가 결투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두 사람도, 그들의 입회인들도 그 일로 고초를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에르와 아내의 불화로 확인된 결투의 내막은 사교계에 널리 퍼졌다. 피에르는 결혼 후 신붓감들과 어머니들이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교계의 평판을 크게 잃었다.
피에르가 떠나고 엘렌이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자 그녀의 지인들은 그녀의 불행에 대한 경의마저 깃든 환대로 맞이했다. 화제가 남편에 이르면 엘렌은 그 의미도 모르면서 타고난 기교로 습득한 품위 있는 표정을 지었다. 바실리 공작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곤 했다.
"반미치광이입니다. 내가 늘 그렇게 말했잖아요.”
“내가 미리 말했지요. 누구보다도 먼저요” 안나 파블로브나는 피에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806년 말, 프로이센 군대가 예나와 아우어슈테트 부근에서 나폴레옹에게 전멸당하고 프로이센 요새 대부분이 함락되었다는 온갖 슬픈 소식들이 이미 자세히 전해지고, 아군이 이미 프로이센에 진입해 아군과 나폴레옹의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된 무렵 안나 파블로브나는 집에서 야회를 열었다. 안나 파블로브나가 이 야회에서 손님들에게 신상품으로 제공한 인물은 프로이센군으로부터 특사의 임무를 띠고 막 도착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였다. 그는 프로이센군에서 매우 유력한 인물의 부관이었다.
그는 올뮈츠에서 마음을 빼앗겼던 그 불문의 상하 관계를 충분히 습득했다. 그는 부유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더 잘 차려입는 데 마지막 남은 돈까지 털었다. 그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아서 쓸모가 있을 사람들하고만 가까이 지냈고, 그들과의 교제만을 추구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를 사랑하고 모스크바를 경멸했다. 로스토프가의 집과 어린 시절 나타샤를 향한 사랑에 대한 추억이 그에게는 불쾌했다. 그래서 군대로 떠나던 바로 그 순간부터 로스토프가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프로이센의 정세를 이야기하던 안나 파블로브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리스에게 글로가우 여행과 그가 목격한 프로이센 군대의 상태를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리스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순수하고 바른 프랑스어로 군대와 궁정에 대한 흥미로운 상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보리스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많이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엘렌이었다.
보리스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늘 짓는 미소와 함께 그에게 말했다.
“나를 만나러 꼭 와 줘야 해요.”보리스는 알 수 없는 어떤 사정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투로 그녀는 말했다.“화요일, 8시에서 9시 사이에요. 당신이 와 준다면 무척 기쁠 거예요.”
보리스는 그녀의 바람대로 하겠다고 약속하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 했다.
7
대화는 주로 정치 얘기가 오가며 저녁 내내 그치지 않았다. 야회가 끝날 무렵 군주가 하사하는 포상이 화제에 오르자 대화는 특히 활기를 띠었다. “작년만 해도 NN이 초상화가 붙은 담뱃갑을 받았어요.” 심오한 지성이 말했다. “그런데 왜 SS는 같은 상을 받지 못할까요?”
“황제의 초상이 붙은 담뱃갑은 포상이지 공로상이 아니에요. 차라리 선물이라고 할까요.” 외교관이 말했다.
모두들 떠나려고 일어섰을 때 야회 내내 거의 말이 없던 엘렌이 다시 보리스에게 부탁의 말을 하며, 화요일에 자기 집에 오라는 다정하고 의미심장한 명령을 내렸다.
“나한테 꼭 필요한 일이에요.” 그녀가 안나 파블로브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안나 파블로브나는 자신의 고위층 후원자를 언급할 때 짓는 우수에 찬 미소로 엘렌의 바람을 거들어 주었다. 이날 저녁 보리스가 프로이센 군대에 대해 한 어떤 말에서 엘렌은 문득 그를 만나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 같았다. 마치 그가 화요일에 오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약속하는 듯했다.
화요일 저녁에 엘렌의 눈부신 살롱을 찾은 보리스는 자신의 방문 이유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다른 손님들이 있었고, 백작 부인은 그와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손에 입을 맞출 때에야 그녀는 미소를 띠지 않은 야릇한 얼굴로 뜻밖의 말을 속삭였다.
“내일 만찬에 와요…… 저녁에요. 반드시 와야 해요. 꼭요.”
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하는 동안 보리스는 베주호바 백작 부인의 집에서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8
전쟁이 격렬해지고 그 무대가 러시아 국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처에서 인류의 적 보나파르트에 대한 저주가 들렸다. 마을들마다 민병과 신병이 모집되었고, 전쟁의 무대에서 언제나 그렇듯 다양하게 해석되는, 모순된 소식들이 계속 당도했다.
볼콘스키 노공작과 안드레이 공작과 마리야 공작 영애의 삶은 1805년 이래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1806년 노공작은 당시 러시아 전역에 걸쳐 임명된 민병대 사령관 여덟 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새롭게 주어진 이 직무는 그를 자극하고 강인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세 현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덕분에 마리야 공작 영애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서 수학 수업을 받지 않았고, 다만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아침마다 유모와 함께 꼬마 공작 니콜라이(할아버지는 아이를 그렇게 불렀다)를 데리고 아버지의 서재에 들렀다. 젖먹이 공작 니콜라이는 유모와 보모 사비시나와 함께 고인이 된 공작 부인의 거처에서 지냈는데, 마리야 공작 영애는 힘닿는 한 어린 조카의 어머니를 대신하기 위해 아기방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안드레이 공작이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노공작은 아들을 분가시키며 리시예 고리에서 40베르스트 떨어진 보구차로보라는 큰 영지를 주었다. 리시예 고리에 힘든 기억이 얽혀 있는 데다, 자신이 아버지의 성격을 늘 침착하게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혼자 있는 것이 필요하기도 해서 안드레이 공작은 보구차로보에 집을 짓고 거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807년 2월 26일, 노공작은 관구를 둘러보러 떠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면 대개 그랬듯이 리시예 고리에 머물렀다. 어린 니콜루시카는 벌써 나흘째 몸이 좋지 않았다. 노공작을 태우고 간 마부가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드레이 공작 앞으로 온 서류와 편지를 가져왔다.
안드레이 공작과 마리아 공작 영애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돌보느라 이틀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의 구두 지시를 다 전해 들은 뒤 건네받은 아버지의 봉투들과 편지를 쥐고 아이 방으로 돌아왔다. 노공작은 파란 종이에 큼직하고 길쭉한 특유의 필체로 곳곳에 약어를 사용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 특사를 통해 매우 기쁜 소식을 받았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베니히센이 프로이센의 아일라우 부근에서 부오나파르트에게 그야말로 완전한 승리를 거둔 모양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다들 환호하고, 군에 보내는 포장이 끝이 없구나. 독일인이긴 하지만 축하하련다. 코르체보의 책임자인 한드리코프라는 작자는 뭘 하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구나. 지금까지도 보충 인원과 식량을 보내지 않았어. 당장 그곳으로 말을 몰고 가서 일주일 안에 모든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내가 그의 목을 치겠다고 전해라. 프로이센령 아일라우 전투에 대해서는 페텐카한테서도 편지를 받았다. 참전했더구나. 다 사실이란다. 참견해서는 안 될 인간들이 참견하지 않으니 독일인도 부오나파르트를 무찌르는구나. 듣자 하니 그놈은 크게 낙담해서 달아나는 중이란다. 너는 지체하지 말고 코르체보로 달려가 임무를 수행해라!"
‘안 됩니다. 용서하십시오. 아이가 나을 때까지는 못 갑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아이 방을 엿보았다. '아버지가 쓰신 내용 가운데 뭔가 불쾌한 것이 또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편지 내용을 떠올렸다.
'그래. 아군은 내가 복무하지 않는 바로 이런 때 보나파르트에게 승리를 거두었군. 그래, 그래, 다 날 조롱하는구나……. 뭐, 좋을 대로…….’
* 풀투스쿠 전투(Battle of Pultusk)는 1806년 12월 26일,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 폴란드의 풀투스쿠(Pułtusk) 인근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장 란 원수가 이끄는 제5군단)과 베니히센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 제국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폭설과 진흙탕 속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으로, 전략적으로는 무승부에 가깝지만,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은 전술적 교착 상태로 끝났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격파한 후, 러시아군과 맞붙은 초기 전투 중 하나로, 이후 전황이 장기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아일라우 전투(Battle of Eylau)는 1807년 2월 7일과 2월 8일 프랑스군이 후방으로 빠져나가는 러시아군을 쫓아 조아생 뮈라의 돌파전으로 간신히 승리한 전투이다. 5년 후 러시아 원정에서 일어날 참사의 프리퀄이나 다름없는 전쟁이었으며 나폴레옹은 이 전투를 자신의 불명예로 생각해 이야기를 꺼렸다고 한다. 이후 나폴레옹은 고전 끝에 프리틀란트 전투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와 틸지트 조약을 맺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는 적수로 두려워했다.
그러고는 그는 다른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 두 장을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운 빌리빈의 편지였다. 그는 프랑스어로 된 빌리빈의 편지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고뇌하고 있던 한 가지 상념을 잠시만이라도 멈추기 위해 그 편지를 읽었다.
9
빌리빈은 지금 외교관 자격으로 군사령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프랑스식 말장난과 표현을 구사해 가며 프랑스어로 쓴 편지였지만, 그는 자기비판과 자기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는 러시아인 특유의 대담함으로 원정 전반에 대해 기술하고 있었다. 빌리빈은 자신의 외교적 겸손함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군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며 마음속에 쌓이는 온갖 울화를 토로할 믿을 만한 상대로 안드레이 공작이 있어 행복하다고 썼다.
"친애하는 공작…….
지난 석 달 동안 본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당신도 잘 아는 인류의 적이 프로이센인들을 공격합니다. 그는 우리의 미사여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프로이센인들에게는 방금 시작한 사열식을 끝낼 틈도 주지 않은 채 저들 특유의 거칠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덮쳐서 산산이 격파하고, 포츠담 궁(홈)을 거처로 정합니다.
프로이센 장군들은 프랑스인들 앞에서 정중함을 과시하며 그들의 요구에 즉각 투항합니다. 1만 명의 부하를 거느린 글로가우 수비대 지휘관은 어떻게 해야 할 지 프로이센 왕에게 묻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풍부한데 다만 하나가 부족합니다. 바로 총사령관입니다. 총사령관이 그렇게 젊지 않았다면 아우스터리츠의 성공도 좀 더 확실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기에 80대 장군들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프로조롭스키와 카멘스키 중에서 후자가 뽑힙니다.
나흘째 되는 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번째 특사가 도착합니다. 원수는 본인앞으로 온 봉투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수는 폐하께서 T. 백작, V. 공작,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신 편지를 발견합니다. 그는 맹렬한 분노에 휩싸여 봉인을 뜯고는 다른 사람들 앞으로 온 편지들을 읽습니다.
'아, 내가 이런 대접을 받다니. 이자들은 날 믿지 않아! 아, 날 감시하라는 지시군. 좋아, 어디 한번 해 보라지! 그리고 베니히센 백작 앞으로 그 유명한 명령을 써 내려 갑니다.
'나는 부상을 당해 말을 탈 수 없고, 따라서 군대를 지휘할 수도 없소. 그대는 그대의 격파된 코르다르메(군단)를 이끌고 풀투스크로 왔구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무방비 상태인 데다 장작도 없고 말먹이도 없으므로 원조가 필요하오. 어제 그대가 직접 북스게브덴 백작에게 말한 이상, 우리의 국경선으로 퇴각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소. 그 일은 오늘 실행되어야 하오.'
총사령관은 황제에게도 편지를 씁니다. '예전에 붕대를 감은 곳에 더해진 상처로 저는 말을 탈 수도, 이런 대규모 군대를 지휘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열상 제 바로 아래의 장군인 북스게브덴 백작에게 지휘권을 넘겼습니다. 식량은 이제 하루치밖에 남지 않았고, 다른 연대에는 아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노인을 시골로 내려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운명에 선택되었지만 그것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치욕스러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원수가 떠난 후 우리가 적의 시야에 놓여 있고 교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북스게브덴이 서열상 총사령관이었지만 베니히센 장군의 견해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전투를 개시합니다. 이것이 풀투스크 전투입니다. 이것은 대승리로 간주되지만 나의 견해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페테르부르크로 특사와 함께 승전보를 보냅니다. 또한 베니히센 장군은 페테르부르크로부터 승리에 대한 포상으로 총사령관의 칭호를 받고자 희망하며 북스게브덴 장군에게 군 지휘권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우리 계획은 응당 적을 피하거나 공격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단지 서열상 우리 지휘관이 되어야 할 북스게브덴을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에게서 구해 준 그 뛰어난 책략들 가운데 하나로 인해 북스게브덴 장군은 하마터면 우세한 적의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될 뻔했습니다. 상황은 거의 두 총사령관의 결투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일촉즉발의 순간에 특사가 총사령관 임명 소식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제1의 적인 북스게브덴이 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제2의 적인 보나파르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앞에 제3의 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커다란 함성으로 빵, 소고기, 건빵, 건초, 귀리, 그 비슷한 것들을 요구하는 정교도 병사들 말입니다. 그들은 약탈을 시작합니다. 군대의 절반이 제멋대로 패거리를 이루어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든 것을 검과 불길에 희생시킵니다. 심지어 약탈병들이 군사령부마저 두 번이나 덮치는 바람에 총사령관은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1개 소대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안드레이 공작은 그저 눈으로만 읽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가 읽은 내용이 (빌리빈의 말을 어느 정도로 믿어야 할지 알고 있었음에도) 점점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이 부분까지 읽고는 편지를 구겨서 내던져 버렸다. 편지 내용이 그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상관없는 저 먼 곳의 삶이 자신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는 눈을 감고 읽은 것에 대한 모든 관심을 몰아내려는 듯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고는 아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커튼을 걷었다. 두려움에 질린 산만한 두 눈동자는 한참 동안 아이를 찾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아이를 보았다. 뺨이 발그레한 아이는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머리를 베개보다 낮게 떨어뜨린 채 침대에 가로누워 입을 달싹이며 쪽쪽 소리를 내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잠들어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잃었던 자식을 다시 본 것처럼 기뻐했다.
'그래,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이것 하나뿐이야.’ 그는 탄식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10
프리메이슨 교단에 가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피에르는 교단이 자신을 위해 잔뜩 적어 준, 그가 영지에서 반드시 행해야 할 지침을 간직한 채 그의 농민들 대다수가 있는 키예프로 떠났다. 키예프에 도착한 피에르는 모든 관리인을 주 사무소로 불러 자신의 계획과 바람을 설명했다. 그는 농민을 농노적 종속 상태에서 완전히 해방시키기 위한 조치가 즉각 취해질 것이고, 각 영지에 병원과 고아원과 학교를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에르는 총관리인과 함께 날마다 일했다. 그러나 자신의 일 처리가 업무를 단 한 걸음도 진척시키지 못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느끼기에 그의 일 처리는 업무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총관리인이 상황을 최악의 관점에서 제시하며 피에르에게 빚을 갚고 농노의 노동력으로 새로운 일에 착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피에르는 동의하지 않았다.
피에르에게는 직접 업무에 매달릴 만큼의 실무적 끈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실무를 좋아하지 않았고, 관리인 앞에서 그저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쓸 뿐이었다. 관리인은 백작 앞에서 이 일을 주인에게는 매우 유익하지만 자신에겐 성가신 것으로 여기는 척하려고 애썼다.
1807년 봄,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든 영지를 돌아보고 자신이 지시한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이 이루어졌는지, 또 하느님에게 위임받아 그 자신이 은혜를 베풀려고 애쓰는 농민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총관리인은 주인이 가는 곳마다 환영회를 마련했다. 그가 알기로 피에르가 좋아하지 않을 화려하고 성대한 환영회가 아니라 이콘과 빵과 소금으로 맞는 종교적이고 감사에 찬 환영식, 자신이 이해한 대로라면 틀림없이 백작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를 속일 그런 환영회였다. 어느 곳에서나 농민들은 유복한 생활을 하며 그가 베푼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빵과 소금을 가져오고 베드로와 바울의 부제단을 세우던 곳이 베드로 축일마다 장이 서는 상업 마을이라는 것, 부제단은 마을의 부농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건축하고 있었다는 것, 그들 가운데 10분의 9는 극빈자라는 것을 피에르는 몰랐다. 자신의 지시로 젖먹이 딸린 아낙들이 부역 노동에 나가지 않게 된 결과, 바로 그 아기 엄마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훨씬 더 힘든 노동을 했다는 것을 몰랐다. 석조 건물 건축으로 인해 농민들의 부역이 가중되었고 부역은 서류상에서만 줄었다는 것을 몰랐다.
매우 아둔하고도 교활한 총관리인은 똑똑하면서도 순진한 백작을 완전히 파악하자 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는 준비한 환영식이 피에르에게 끼친 영향을 보고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농노 해방의 불가능성, 그렇게 하지 않아도 농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며 무엇보다 그 불필요성에 대해 더욱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비록 내키지 않아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고집했다. 관리인은 백작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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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남쪽 여행에서 돌아오던 피에르는 두 해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볼콘스키를 방문하겠다는 오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마지막 역참에서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이 리시예 고리가 아니라 새로 분가한 자신의 영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향했다. 보구차로보는 들판과 부분적으로 벌채가 이루어진, 자작나무가 섞인 전나무 숲으로 덮인 아름답지 않은 평평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호화로운 환경을 본 뒤라서 깨끗하긴 했지만 작은 집의 검소함에 깜짝 놀랐다. 피에르는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가다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를 향해 나오던, 그새 늙어 버린 안드레이 공작과 맞닥뜨렸다. 피에르는 그를 끌어안았고, 안경을 추켜올리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그를 가까이 바라보았다. "이런, 뜻밖이군. 정말 반가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늘 그렇듯이 오랜 이별 후의 만남에서 대화는 좀처럼 어느 하나에 머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스스로들 오랫동안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간단히 묻고 대답했다. 마침내 대화는 앞서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들, 그러니까 지난 삶, 미래의 계획, 피에르의 여행, 그의 일, 전쟁 등에 대한 질문들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피에르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렇듯 얼굴을 붉히고 조급하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드리죠. 그러나 다 끝났습니다. 영원히요.”
“영원히라고?”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네.”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떻게 끝났는지 아세요? 결투에 대해 들으셨어요?”
“그렇군. 자네는 그 일도 겪었군.”
“내가 하느님께 감사하는 한 가지는 바로 내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아니, 왜?”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사나운 개를 죽이는 건 오히려 아주 잘하는 일이야.”
“아니요, 사람을 죽이는 건 좋지 않아요.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옳지 않은 거지?” 안드레이 공작이 피에르의 말을 되받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야. 인간은 항상 착각에 빠져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야. 인간들이 뭐가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할 때보다 더 큰 착각에 빠지는 경우는 없어.”
“타인에게 악인 것은 옳지 않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왜 군 복무를 안 하십니까?”
“아우스터리츠 이후야!” 안드레이 공작은 음울하게 말했다. “아니, 이젠 됐어. 앞으로 러시아 야전 부대에서는 복무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거야. 설령 보나파르트가 저기 스몰렌스크에 서서 리시예 고리를 위협한다 해도, 나는 러시아군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래, 자네한테 말했지.”
“음, 그런데 자네는 농민을 해방시키고 싶어 해.” 그가 말을 이었다. “아주 좋은 일이야. 하지만 그건 자네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야. (나는 자네가 그 누구도 채찍으로 때리거나 시베리아로 보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농민들에게는 더더욱 아니야. 농민들을 구타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시베리아로 보낸다 해도, 난 말이야, 그 때문에 그들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생각해. 시베리아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가축 같은 생활을 꾸려 나갈 테고, 몸에 난 상처도 아물 테지. 그리고 전과 다름없이 행복할 거야. 이 일은 말이야, 공정하게든 부당하게든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탓에 도덕적으로 파멸하고, 후회하면서 살아가고, 그 후회를 억누르고 거칠어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거야. 내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불쌍하고, 나라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 농노 해방을 바랄 거야. 자네는 아마 본 적이 없겠지만, 이 무제한적인 권력의 대물림 속에 양육된 좋은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더 성마르게 되고, 잔혹하고 거칠게 변해 가고,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점점 더 불행해지고 불행해지는 모습을 난 봤네.”
12
저녁에 안드레이 공작과 피에르는 콜랴스카를 타고 리시예 고리로 출발했다.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이 불행하다고, 그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고, 그는 참된 빛을 알지 못한다고, 따라서 자신이 그를 도와 계몽하고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내자마자 안드레이 공작이 단 한 마디 말로, 단 하나의 논거로 자신이 믿는 모든 가르침을 실추시킬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래서 그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고, 자신이 사랑하는 성소(聖召)를 조롱에 처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
“당신은 내세를 믿습니까?” 그가 물었다.
“내세?” 안드레이 공작이 반문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그 반문을 부인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안드레이 공작이 예전에 품었던 무신론적 신념을 알았기에 더욱 그랬다.
"아니야. 나는 그저 내세의 불가피함을 납득하게 하는 것은 논거가 아니라, 한 사람과 손을 맞잡고 삶의 길을 나아가는데 갑자기 그 사람 이 그 자리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자네 자신은 그 심연 앞에 멈춰 서서 그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거네. 나도 들여다 보았어……."
"만약 하느님이 계시고 내세가 있다면 진리도 있고 선도 있습니다. 인간의 지고한 행복은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어요. 살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피에르가 말했다."우리가 지금 오직 이 한 조각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곳에서, 모든 것 속에서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영원히 살았고 또 살게 되리라 믿어야 합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나룻배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선 채 피에르의 말을 들으며 범람하는 푸른 물에 반사된 태양의 붉은 광채를 눈길을 떼 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그래, 그렇기만 하다면야!”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룻배에서 내리다 피에르가 가리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우스터리츠 들판에 누워 보았던 그 높고 영원한 하늘이 아우스터리츠 이후 처음으로 그의 눈에 들어 왔다. 그러자 오래전에 잠든, 그의 내면에 있던 가장 고귀한 무언가가 갑자기 영혼 속에서 새로이 즐겁게 깨어났다.
피에르와의 만남은 안드레이 공작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와 함께 비록 겉으로는 여전히 똑같은 삶이었지만 그의 내적 세계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3
안드레이 공작과 피에르가 리시예 고리 저택 현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둑했다. 마차를 대는 동안 안드레이 공작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뒷문 계단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피에르의 주의를 돌렸다. 배낭을 등에 진 허리 굽은 노파와 키가 작고 머리카락이 긴 검은 옷차림의 남자가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콜랴스카를 보곤 도로 대문으로 내달렸다.
“마샤의 하느님의 사람들이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우리를 아버지로 착각한 거야. 마샤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유일한 한 가지야. 아버지는 저 순례자들을 내쫓으라고 명령하시는데 그 애는 저 사람들을 받아들이거든.”
“하느님의 사람들이 도대체 뭡니까?” 피에르가 물었다.
“이제 곧 보게 될 거야.”
그들이 마리야 공작 영애의 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정말 당황해서 반점이 떠오를 정도로 얼굴을 붉혔다.
“어디, 키예프에 갔었나?” 안드레이 공작이 노파에게 물었다.
“그랬지요, 나리.” 노파가 수다스럽게 대답했다. “바로 성탄일에 하느님의 종들과 더불어 거룩한 천상의 비밀에 참예할 영광을 누렸지요.* 지금은 콜랴진에서 오는 길입니다, 나리. 그곳에 큰 은혜가 임했답니다…….”
“이 여자에게 물어봐도 됩니까?” 피에르가 말했다. “자네가 직접 보았나?” 그가 물었다.
“그럼요, 나리, 제가 직접 뵐 영광을 누린걸요. 얼굴에 천상의 빛 같은 광채가 나고, 성모의 뺨에서는 성유가 계속 똑똑 떨어지고, 또 계속 떨어지고…….”
“그건 틀림없이 속임수야.” 순례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피에르가 순박하게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순례자가 성호를 그으며 피에르에게 말했다.“오, 그런 말씀 마세요, 나리. 어떤 장군님도 그런 식으로 믿지 않고 말했죠. 그런데 그렇게 말하자마자 눈이 멀어 버렸어요. 그분은 성모님께 다가가 바닥에 엎드려 말해요. ‘고쳐 주십시오! 차르께서 하사하신 것 전부를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제가 직접 봤다고요, 나리. 성모님 이콘에 별 하나가 박혀 있었다고요. 결국 장군님은 눈을 떴죠! 그렇게 말하는 건 죄예요. 하느님이 벌하실 거예요.”
“어떻게 별이 갑자기 이콘에 나타났을까?” 피에르가 물었다.
“성모님도 장군으로 승진하신 건가?” 안드레이 공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예요?”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 “내 방에 왜 왔어요……?”
“아닙니다, 정말 농담이에요, 펠라게유시카.” 피에르가 말했다.“공작 영애, 이 여자에게 모욕을 줄 생각은 정말 없었습니다. 그냥 말해 본 겁니다. 신경 쓰지 말게, 농담한 거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자신의 죄를 씻고자 이렇게 말했다.
14
안드레이 공작이 방에서 나갔다. 뒤이어 마리야 공작 영애가 피에르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당신은 정말 친절한 분이에요.” 그녀가 피에르에게 말했다.
“아, 정말이지 그 여자에게 모욕을 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도 그런 감정을 잘 알고, 또 높이 평가합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난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았고 친형제처럼 사랑해요.” 그녀가 말했다. “안드레이는 어떤 거 같아요?”
“안드레이 때문에 걱정이에요. 겨울에는 건강이 좋아졌는데, 지난봄에 상처가 다시 벌어졌어요. 정신적인 면에서도 난 안드레이를 몹시 걱정하고 있어요. 그는 우리 여자들처럼 자신의 슬픔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우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걸 속에 담아 둬요. 오빠에게는 활동이 필요해요. 이 평탄하고 조용한 생활이 오빠를 죽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내 눈엔 보여요.”
9시가 지나 노공작이 탄 에키파시의 방울 소리를 들은 하인들이 현관 계단으로 달려 나갔다. 안드레이 공작과 피에르도 현관 계단으로 나갔다.
“이 사람은 누구냐?” 카레타에서 내리던 노공작이 피에르를 보고 물었다.
“아! 정말 반갑네! 입을 맞춰 주게나.” 낯선 젊은이가 누군지 알아보고 그가 말했다.
노공작은 기분이 좋아 피에르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리시예 고리에 와서 피에르는 비로소 자신과 안드레이 공작의 우정이 지닌 힘과 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 그 매력은 모든 육친과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났다. 순례자들을 대하는 피에르의 온화한 태도에 마음을 빼앗겨 더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마리야 공작 영애뿐만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부르던, 한 살배기 어린 니콜라이 공작도 피에르에게 방긋 웃으며 그의 두 팔에 가서 안겼다. 피에르가 떠나고 온 가족이 모여 그를 평할 때 드물게도 모두가 그에 대해 좋은 말만 했다.
15 (니콜라이와 데니소프)
휴가에서 돌아온 로스토프는 자신이 데니소프를 비롯한 연대 전체와 얼마나 강한 유대를 맺고 있는지 처음으로 느끼고 깨달았다. 연대에 다가가고 있을 때 로스토프는 포바르스카야 거리의 집에 이를 때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 연대도 부모의 집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집이었다. 연대의 일정한 생활 속으로 다시 들어온 로스토프는 피로에 지친 사람이 쉬려고 누울 때 느낄 법한 기쁨과 평온을 맛보았다.
돌로호프에게 돈을 잃은 후 그는 예전과 다르게 군 생활을 하겠다고,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열심히 복무하고 아주 탁월한 동료이자 장교, 즉 훌륭한 인간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도박에서 돈을 잃은 이후 로스토프는 5년 안에 그 빚을 다 갚기로 결심했다. 1년에 1만 루블을 송금받았지만 이제는 2천 루블만 받고 나머지는 빚을 변제하기 위해 부모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수차례의 퇴각과 진격 그리고 풀투스크 전투와 프로이센령 아일라우 전투 이후 아군은 바르텐슈타인 부근에 집결했다. 군주가 도착하고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1805년 원정에 참가한 군단 소속이었던 파블로그라트 연대는 러시아에서 병력을 보충하느라 전쟁의 첫 군사 활동에 늦었다. 파블로그라트 연대는 풀투스크 전투에도 프로이센령 아일라우 전투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전쟁 후반 실전 부대에 합류하여 플라토프의 분견대에 편입되었다.
4월에 파블로그라트 연대는 몇 주 동안 완전히 파괴되어 텅 빈 독일 마을 부근에 주둔하며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해빙과 진창과 추위가 있었고, 강의 얼음이 갈라졌고, 길은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여러 날씩 말들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식량이 보급되지 않았다. 파블로그라트 연대는 전투에서 두 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다. 그러나 굶주림과 질병으로 부대원을 절반 가까이 잃었다.
봄이 되자 병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이 마시카의 달콤한 뿌리라고 부르던, 땅속에서 올라오는 아스파라거스 비슷한 식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 독초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맛이 아주 쓴) 마시카의 달콤한 뿌리를 찾아 풀밭과 들판에 흩어져 기병도로 그것을 캐 먹었다. 봄에 병사들 사이에서 팔과 다리와 얼굴이 붓는 새로운 질병이 나타났다. 의사들은 그 뿌리를 먹은 것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로스토프는 예전처럼 데니소프와 함께 지냈는데, 그들의 우정은 휴가 이래로 더 끈끈해졌다. 데니소프는 로스토프의 가족에 대해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휘관이 부하 장교에게 보여 주는 다정한 우정에서 로스토프는 나타샤를 향한 선임 경기병의 불행한 사랑이 이렇듯 점점 깊어지는 우정에 관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데니소프는 가능하면 로스토프를 위험에 덜 처하게 하려고 애쓰면서 그를 보호하고, 전투 후에는 온전하게 무사한 몸으로 귀환하는 그를 특히 기쁘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
16
4월에 군주가 왔다는 소식에 군대는 활기를 띠었다. 로스토프는 군주가 바르텐슈타인에서 행한 사열식에 참가할 수 없었다. 파블로그라트 연대가 바르텐슈타인에서 멀리 떨어진 전방의 최전선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야영을 했다. 데니소프와 로스토프는 병사들이 그들을 위해 판, 나뭇가지와 잔디로 덮은 토굴에서 지냈다.
4월에 로스토프는 숙직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7시가 지나 숙소로 돌아온 그는 숯불을 가져오도록 지시한 뒤, 비에 흠뻑 젖은 속옷을 갈아입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리고, 차를 실컷 들이켜고, 몸을 덥히고, 자기 자리와 탁자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바람에 거칠어지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루바시카만 걸친 채 두 팔을 베고 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가 저녁 전에야 막사에서 나왔다. 데니소프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날이 맑아졌다. 장교들은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짐마차들을 보았다. 짐마차들은 경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 매는 말뚝으로 다가왔다. 경기병들이 떼 지어 마차들을 에워쌌다.
“와, 데니소프가 늘 한탄하더니 이곳에도 식량이 왔어.” 로스토프가 말했다.
“맞다!” 장교들이 말했다. “병사들이 정말 좋아하겠어!” 경기병들 조금 뒤에는 데니소프가 보병 장교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말을 몰고 오고 있었다. 로스토프는 그를 맞이하러 갔다.
“미리 통보하는 바요, 기병 대위.” 장교들 가운데 야위고 키가 작은 사람이 격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넘겨주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요.” 데니소프가 대답했다.
“당신이 책임져야 할 겁니다, 기병 대위. 이건 난동입니다. 아군 수송대를 탈취하다니요! 우리 병사들은 이틀 동안 굶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2주나 굶었소.” 데니소프가 대꾸했다.
“이건 약탈입니다. 귀하가 책임을 지십시오!” 보병 장교가 목소리를 높이며 거듭 말했다.
다음 날 연대장이 데니소프를 부르더니 손가락을 펼쳐 자기 눈을 가리면서 말했다. “나는 이 일을 이렇게 보고 있소.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문제 삼지도 않을 거요. 그러나 충고하건대 사령부에 들러 그곳 식량계에서 이 일을 무마하게. 가능하면 얼마만큼 식량을 받았다는 수령증을 쓰게. 그러지 않으면 청구서가 보병대 앞으로 기입되어 있어서 소송이 제기될 것이고, 나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오에 연대의 부관이 심각하고 슬픈 얼굴로 데니소프와 로스토프가 함께 지내는 토굴을 찾아와 연대장이 데니소프 소령에게 보내는 공식 서류를 침통한 표정으로 내밀었다. 서류에는 전날 사건에 대한 질문 사항이 적혀 있었다. 부관은 사태가 아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군법 회의가 꾸려졌다고, 군대 내 약탈과 횡포에 대한 현재의 엄격함을 고려할 때 최선이라 해 봤자 강등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정도일 것이라고 알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질의문과 법정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5월 1일 데니소프는 서열상 바로 아래인 장교에게 기병 중대의 지휘권을 넘기고 사단 본부에 출두하여 식량계에서 벌인 폭행 사건에 대해 해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전날 밤에 플라토프는 카자크 2개 연대와 경기병 2개 중대를 이끌고 적을 정찰하러 갔다가 허벅지에 탄환 한 발을 맞았다. 그는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그 기회를 이용해 사단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야전 병원으로 떠났다.
17
파블로그라트 연대는 참가하지 않은 프리틀란트 전투가 6월에 벌어졌고, 뒤이어 휴전이 선언되었다. 데니소프가 떠난 이후 그에 대한 어떤 소식도 접하지 못하고 그의 소송의 추이와 부상을 걱정하면서 친구의 빈자리를 힘겹게 느끼던 로스토프는 휴전을 틈타 데니소프에게 병문안을 가기 위해 휴가를 냈다. 병원은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의 약탈을 당한 프로이센의 작은 촌락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로스토프는 시체 썩는 냄새와 병원 냄새에 에워싸였다. 계단에서 그는 입에 시가를 문 러시아인 군의관과 마주쳤다. 러시아인 간호장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용무로 왔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왜 왔냐니까요? 총알에 맞지 않았으니 티푸스에라도 걸리고 싶어서요? 이봐요, 이곳은 격리 병원입니다.”
로스토프는 이곳에 입원한 경기병 소령 데니소프를 만나고 싶다는 방문 목적을 말했다.
“장교들 병실로 가 보십시오. 그곳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그는 로스토프를 돌아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빌어먹을, 날 원망하지 말아요.” 의사가 계단 아래서 외쳤다.
로스토프는 간호장과 함께 복도로 들어섰다. 어두운 복도에는 병원 냄새가 너무 심해 로스토프는 코를 움켜쥐고 멈춰 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모아야 했다. 오른쪽에서 열린 문 안을 슬쩍 들여다본 로스토프는 병자들과 부상자들이 그곳 바닥에 짚단과 외투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는 뭔가?” 그가 물었다.
“병사들 병실입니다.” 간호장이 대답했다. “손쓸 방도가 없습니다.” 그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들어가서 둘러봐도 되나?” 로스토프가 물었다.
로스토프는 한 옆에서 노인이 자신에게 청원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리를 뒤로 젖힌 채 꼼짝 않고 누운 다른 이웃은 밀랍처럼 창백하고 눈꺼풀 밑으로 흰자위만 드러낸 젊은 병사였다.
“벌써 얼마나 요청했는지 모릅니다.” 늙은 병사가 아래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이미 아침에 죽었습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개가 아니라…….”
“곧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치웁니다, 치워요.” 간호장이 황급히 말했다. “가시지요, 장교님.”
18
로스토프가 장교들 병실에서 처음 마주친 인물은 팔 하나가 없는 작고 여윈 사람으로, 병원 모자에 환자복 차림으로 파이프를 문 채 첫 번째 방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당신을 이곳으로 이끄셨군요.” 키 작은 남자가 말했다.“투신, 투신입니다. 기억납니까? 쇤그라벤 부근에서 당신을 태워 줬는데요. 난 몸이 조금 잘려 나가서요, 보다시피…….” 그는 씩 웃으며 빈 소매를 가리켰다. “바실리 드미트리치 데니소프를 찾아요? 같은 방을 씁니다.”
데니소프는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도 머리까지 이불을 푹 덮어쓴 채 침상에서 자고 있었다.
“로스토프! 어서 와, 반가워!” 그는 연대에 있을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로스토프는 이 익숙한 허물없음과 활달함 뒤에 숨겨진 어떤 낯설고 불쾌한 감정이 그의 표정과 억양과 말에서 고스란히 내비치는 것을 슬픈 마음으로 알아차렸다. 그가 부상을 당한 지 벌써 6주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는 이전의 삶을 잊으려 애쓰고, 식량계 관리들과 얽힌 소송 사건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그 사건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묻는 로스토프의 질문에 그는 즉시 베개 밑에서 위원회로부터 받은 서류와 그에 대한 자신의 답변 초안을 꺼냈다. 그는 문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생기를 띠었는데, 특히 자신이 이 문서에서 적들을 향해 던지는 독설로 로스토프의 관심을 돌렸다.
한 팔을 잃은 키 작은 투신은 찬성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창기병이 데니소프를 가로막았다.
“내 생각에는…….” 그는 로스토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폐하께 사면을 청원해야 합니다. 요새 큰 포상이 있을 거라는 말이 떠돌던데요. 그러니 분명 사면될 겁니다…….”
“날더러 폐하께 청원을 하라니!” 데니소프는 쓸데없는 과민함으로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재판하라고 해. 난 아무도 안 무서워. 난 차르와 조국을 정직하게 섬겼어."
밤이 이슥하여 로스토프는 떠날 채비를 하고 데니소프에게 부탁할 것이 없는지 물었다.
“그래, 잠깐만.” 데니소프가 말했다. 그는 장교들을 둘러보더니 베개 밑에서 문서를 꺼내 잉크병이 있는 창턱으로 다가가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채찍으로 도끼 등을 부러뜨릴 수는 없겠지.” 그는 로스토프에게 커다란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법무관이 군주에게 보내려고 작성한 탄원서였다. 데니소프는 식량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오직 사면만을 청원했다.
“전해 줘, 어쩌면…….”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애처롭게 억지웃음을 지었다.
19
연대로 돌아온 로스토프는 데니소프의 일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사령관에게 전한 후 군주에게 올릴 편지를 가지고 틸지트로 떠났다. 6월 13일, 프랑스 황제와 러시아 황제가 틸지트에서 만났다.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자신이 배속된 유력 인사에게 틸지트에서 복무할 수행단에 자신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보리스는 황제들의 회담이 열리던 날 네만강에 있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건너편 기슭을 따라 프랑스 근위대 옆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나폴레옹을 보았다. 네만 강가의 술집에 앉아 기다리던 알렉산드르 황제의 수심 어린 얼굴도 보았다. 두 황제가 보트에 오르는 것을, 뗏목에 먼저 닿은 나폴레옹이 빠른 걸음으로 나아와 알렉산드르를 맞으며 손을 내미는 것을, 두 사람이 큰 천막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6월 24일 밤에 보리스와 함께 지내는 질린스키 백작이 프랑스인 지인들을 위해 밤참을 마련했다. 그 자리에는 나폴레옹의 부관 한 사람이 귀빈으로 오고, 프랑스 근위대 장교 몇 명과 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나폴레옹의 시동이 된 소년도 왔다. 바로 이날 로스토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평복 차림으로 어둠을 틈타 틸지트에 도착하여 질린스키와 보리스의 숙소에 들어갔다.
현관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보리스가 그 목소리를 향해 나왔다. 로스토프를 알아본 첫 순간, 보리스의 얼굴에는 짜증 난 표정이 떠올랐다.
“아, 너구나. 정말 반가워. 너를 보니 정말 반가워.” 하지만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로스토프에게 향하며 말했다. 그러나 로스토프는 그의 첫 움직임을 눈치챘다.
“내가 안 좋은 때 온 모양이네.” 그가 말했다.
두 사람은 보리스가 자는 작은 방으로 갔다. 로스토프는 앉지도 않고, 즉시 흥분한 어조로 데니소프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장군을 통해 데니소프에 대해 군주에게 탄원을 하고 또 그를 통해 편지를 전달할 용의가 있는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보리스는 다리를 꼬고 왼손으로 오른손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어루만지며, 마치 부하의 보고를 듣는 장군처럼 로스토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 내가 알기로 폐하는 그런 경우에 매우 엄격하셔. 난 그 문제를 폐하께까지 전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내 생각엔 군단장에게 곧장 청원하는 편이 나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구나. 그럼 그렇다고 말해!” 로스토프가 고함을 치다시피 했다.
보리스는 빙그레 웃었다. “천만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거야.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때 문에서 보리스를 부르는 질린스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
로스토프는 데니소프를 위한 청원을 하기에 가장 안 좋은 때에 틸지트에 왔다. 로스토프가 도착한 다음 날인 6월 27일 평화 조약의 첫 조항들이 체결되었다. 두 황제는 훈장을 교환했다. 알렉산드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나폴레옹은 안드레이 1급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은 프랑스 근위 대대가 프레오브라젠스키 대대를 위해 베푸는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다. 두 군주는 이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보리스는 나를 돕고 싶어 하지 않아. 나도 그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해선 답이 나왔어.’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우리 사이의 일은 다 끝났어. 하지만 데니소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지도 않고, 무엇보다 폐하께 편지를 전해 보지도 않고 이곳을 떠나지는 않겠어. 폐하께? 여기 계시잖아!’ 로스토프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무심결에 알렉산드르가 거처하는 저택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봐요, 연미복 차림으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요?” 저음의 목소리가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이번 원정에서 군주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기병대 장군으로, 로스토프가 소속된 사단의 옛 지휘관이었다. 로스토프는 흥분한 목소리로 장군도 아는 데니소프를 변호해 달라고 부탁하며 모든 사정을 전했다. 장군은 로스토프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심각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됐군, 훌륭한 젊은이인데 안됐어. 편지를 주게.”
로스토프는 그 장군이 꽤 오랫동안 군주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보았다.
군주는 그에게 몇 마디 말을 하고 말에 오르기 위해 걸음을 뗐다. 군주는 말 옆에 서서 한 손으로 안장을 잡은 채 기병대 장군을 돌아보고는 모두에게 자신의 말이 들리기를 원하는 것이 분명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 없소, 장군. 법이 나보다 더 강하니 그럴 수는 없소.” 군주는 이렇게 말하고 등자에 한 발을 걸었다. 장군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고, 군주는 말에 올라 거리를 질주했다.
21
군주가 달려간 광장 오른쪽에는 프레오브라젠스키 대대가, 왼쪽에는 곰 가죽 모자를 쓴 프랑스 근위 대대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군주가 받들어총을 하고 있던 양쪽 대대의 한쪽 측면으로 다가갈 때 반대편 측면에서 다른 무리의 말 탄 사람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로스토프는 그들의 선두에 있는 나폴레옹을 알아보았다.
“폐하, 당신의 병사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자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고자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하게 발음하는 날카롭고 또렷한 목소리가 말했다. 알렉산드르는 그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용맹하게 행동한 자에게 말입니다.” 나폴레옹이 말했다.
“라자레프!” 지휘관이 인상을 쓰고 호령했다. 키 순서로 맨 앞에 선 병사 라자레프가 씩씩하게 앞으로 나왔다. 나폴레옹은 쳐다보지 않고 두 손가락을 붙였다. 훈장은 어느새 그 사이에 있었다. 나폴레옹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군주만을 고집스레 계속 쳐다보는 라자레프에게 다가가 알렉산드르 황제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이 동맹자를 위한 것임을 드러냈다.
두 군주는 말을 타고 떠났다. 프레오브라젠스키 대대의 병사들은 대오를 풀고 프랑스 근위대 병사들과 섞여 그들을 위해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았다. 라자레프는 상석에 앉았다. 러시아 장교들과 프랑스 장교들이 그를 끌어안고 축하해 주며 악수를 청했다. 장교들과 일반인들이 라자레프를 보기 위해 무리를 지어 다가왔다.
“아니, 라자레프 같은 녀석에게 그런 엄청난 행운이 오다니 말이야! 1천2백 프랑의 종신 연금이야.”
로스토프는 연회를 즐기며 흥청거리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오랫동안 집 모퉁이에 서 있었다. 머릿속에선 자신이 도저히 끝맺을 수 없던 고통스러운 노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혼 속에 무시무시한 의혹이 일었다. 표정이 변하고 고분고분해진 데니소프의 모습이며 잘린 팔다리와 불결함과 질병으로 꽉 찬 병원 모습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흐뭇해하는 하얗고 조그마한 손을 가진 보나파르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제 황제였고, 알렉산드르 황제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잘려 나간 팔다리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인가? 포상을 받은 라자레프와 처벌을 받고 용서받지 못한 데니소프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놀라게 하던 그런 이상한 생각들에 빠져 있었다.
로스토프와 같은 사단에 있는 장교 두 명이 그와 합석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평화 조약에 이르렀다. 군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로스토프의 동료 장교들은 프리틀란트 이후에 체결된 평화 조약을 불만스러워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좀 더 버텼으면 나폴레옹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그의 군대는 건빵도 탄약도 이미 다 떨어졌었다고 말했다. 니콜라이는 말없이 먹으며, 술을 들이켰다.
프랑스인을 보면 모욕을 느낀다는 한 장교의 말에 로스토프가 얼토당토않게 흥분해서 소리치는 바람에 장교들이 몹시 놀랐다.
“무엇이 더 나을지 당신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는 갑자기 피가 쏠린 얼굴로 외쳤다.“어떻게 당신들이 폐하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슨 권리로 이러쿵저러쿵 따진단 말입니까? 우리는 폐하의 목적도 행동도 헤아릴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외교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인이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우리의 일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적을 베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가 말을 맺었다.
“그리고 마시는 것이지.” 다투고 싶지 않았던 한 장교가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마시는 겁니다.” 니콜라이가 맞장구를 쳤다. “어이, 이봐! 한 병 더!” 그가 고함쳤다.
<제2권 제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