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6)

제2권 제3부

by Andy강성
제3부

1


1808년 알렉산드르 황제는 나폴레옹 황제와의 새로운 회담을 위해 에르푸르트에 다녀왔다. 1809년 세계의 두 지배자,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의 관계는 그해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 군단이 이전의 동맹자인 오스트리아 황제에 맞서 이전의 적인 보나파르트를 돕기 위해 국경을 넘을 정도였고, 상류 사회에서 알렉산드르 황제의 누이들 가운데 한 명과 나폴레옹의 결혼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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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에르푸르트 전경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대외 정책에 대한 판단 외에도 당시 러시아 사회는 정부가 전 분야에 걸쳐 시행하고 있던 국내 개혁에 특히 활기찬 관심을 쏟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삶은, 건강과 질병과 노동과 휴식에 대해 나름의 중요한 관심사를 가진, 사상과 학문과 시와 음악과 사랑과 우정과 질투와 열정에 대해 나름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진정한 삶은 여느 때처럼, 온갖 잠재적인 개혁 밖에서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시골에 틀어박혀 두 해를 보냈다. 피에르가 자신의 영지에서 시도한, 그러나 이 일에서 저 일로 끊임없이 우왕좌왕하며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모든 계획들을 안드레이 공작은 그게 누구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눈에 띄는 노력도 없이 전부 이루어 냈다.


그는 피에르에게 모자란 실무적 끈기를 최고 수준으로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쪽에서 일을 크게 벌여 애쓰지 않고도 일이 추진되어 나가도록 해 주었다. 3백 명의 농노로 이루어진 그의 한 영지에서는 농노들이 자유농민에 편입되고 (이것은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사례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영지들에서는 부역이 소작료로 대체되었다. 보구차로보에서는 산모를 도울 박식한 조산원을 그가 부담하는 경비로 초빙하였고, 사제도 급료를 받으며 농부와 하인의 자식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쳤다.


1809년 봄,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이 후견을 맡은 아들의 랴잔 영지로 떠났다.

그는 콜랴스카에 앉아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며 갓 올라온 풀과, 자작나무의 새잎과, 새파란 하늘에 흩어져 흐르며 막 부풀기 시작한 하얀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기분으로 멍하니 양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는 한 해 전 피에르와 이야기를 나누던 나루터를 지났다.


길가에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숲을 이룬 자작나무들보다 열 배는 더 오래 살았을 그 나무는 여느 자작나무보다 열 배는 더 굵고 두 배는 더 컸다. 오래전에 꺾인 듯한 큰 가지들과 묵은 생채기로 뒤덮이고 갈라진 나무껍질들이 보였다. 참나무는 옹이투성이의 거대한 팔과 손가락을 꼴사납게 비대칭으로 벌린 채 생글거리는 자작나무들 사이에서 늙고 성마르고 남을 업신여기는 추한 인간처럼 서 있었다.


‘봄, 사랑, 행복!’ 참나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떻게 너희는 언제나 똑같은 이 어리석고 무의미한 속임수에 질리지도 않는단 말이냐! 다 한결같다, 다 기만이다! 봄도, 태양도, 행복도 없다. 저길 보아라, 짓밟혀 죽은 전나무들이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지 않느냐. 여기도 보아라. 나는 꺾이고 껍질이 벗겨진 손가락들을, 등이든 옆구리든, 그 어디에서 자라났든 뻗어 냈다. 저것들도 자라났고, 나도 이렇게 서 있다. 나는 너희의 희망과 속임수를 믿지 않는다.’



‘그래, 저 나무가 옳다. 저 참나무가 천 번이고 옳아.’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다른 젊은 것들은 이 속임수에 다시 넘어가라지. 하지만 우리는 삶을 안다. 우리의 생은 끝났어!’

이번 여정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전부 새롭게 곱씹다가 이전과 똑같은 결론에, 이제 아무것도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악을 행하지 않고 무엇도 불안해하거나 바라지 않으며 남은 생을 마저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 위안이 되는 절망적인 결론에 다다른 것 같았다.


2


랴잔 영지의 후견과 관련된 일로 안드레이 공작은 군의 귀족회장인 일리야 안드레예비치 로스토프 백작을 만나야 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5월 중순에 그의 집으로 향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일에 관해 귀족회장에게 물어야 할 이런저런 것들로 근심하며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정원의 가로수 길을 따라 로스토프가의 오트라드노예 저택으로 다가갔다.


그 때 그의 콜랴스카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아가씨들 무리가 보였다. 다른 아가씨들 앞에서 콜랴스카 쪽으로 가까이 매우 가냘픈, 이상하리만치 가냘픈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아가씨가 뛰어오고 있었다. 노란 꽃무늬 무명 원피스를 입고 하얀 손수건을 머리에 동여맸는데, 손수건 아래로 곱게 빗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져나와 있었다. 그녀는 낯선 사람인 것을 알자 눈길도 주지 않고 소리 내어 웃으며 다시 뛰어갔다.



1809년 일리야 안드레이치 백작은 오트라드노예에서 이전과 다름없이 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만찬과 연주를 즐기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여느 새로운 손님에게도 그러듯이 안드레이 공작을 반겼고 거의 강제로 자기 집에 묵게 했다. 볼콘스키는 모임에서 젊은 사람들 틈에서 소리 내어 웃고 즐거워하는 나타샤를 여러 번 흘깃거리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에 저토록 기뻐하는 걸까?’


밤에, 새로운 곳에 홀로 남게 된 그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의 방은 중간층이었다. 그리고 위쪽 방들에도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지 않고 있었다. 위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어떻게 잘 수가 있어! 저것 좀 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 너무 아름답다! 일어나 봐, 소냐.” 그녀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밤은 한 번도, 한 번도 없었어.”



‘내 존재에 대해선 신경도 안 쓰는구나!’ 안드레이 공작은 왠지 그녀가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하고 두려워도 하며 그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중에 생각했다.

‘또 그녀야! 꼭 일부러 그런 것 같잖아!’ 그는 생각했다. 갑자기 그의 영혼 속에서 그의 삶 전체에 모순되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풋풋한 생각과 희망이 너무나 복잡하게 뒤얽히며 일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며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3


다음 날 안드레이 공작은 귀부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백작에게만 작별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떠났다. 안드레이 공작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늙은 옹이투성이 참나무가 그토록 기묘하고 잊지 못할 강한 인상을 안겼던 자작나무 숲에 다시 들어선 때는 이미 6월 초였다.

‘그래, 여기, 이 숲에,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참나무가 있었어.’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그래, 어디 있지?’


그러다가 무심결에 찾고 있던 참나무를, 그것이 그 나무인지를 알아보지 못한 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습이 크게 변한 늙은 참나무는 싱그럽고 짙푸른 녹음을 덮개처럼 펼친 채 저녁 햇살 속에서 가볍게 흔들리며 더없는 기쁨에 잠겨 있었다. 옹이투성이 손가락도, 생채기도, 늙은이의 비탄과 불신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쁨과 갱생이라는 이유 없는 봄의 감정이 갑자기 밀려왔다.



‘아니, 서른한 살에 인생은 끝난 게 아니야.’ 안드레이 공작은 단호하게 결심을 굳혔다.‘내가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해야 해. 피에르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하던 그 소녀도, 모두들 나를 알게 해야 해. 나의 삶이 나 혼자만을 위해 흘러가지 않도록, 사람들이 그 소녀처럼 나의 삶과 무관하게 살지 않도록 해야 해. 나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반영되도록, 그들 모두가 나와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야 해!’


여행에서 돌아온 안드레이 공작은 가을에 페테르부르크로 떠날 결심을 하고 그 결심에 대한 갖가지 이유를 궁리했다. 만약 인생에서 얻은 모든 경험을 일에 적용하지 않고 다시 삶에 활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헛되이 사라지고 무의미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이성은 전혀 다른 것을 속삭였다. 이번 여행 이후 안드레이 공작은 시골에서 지내는 것을 지루해했다.


4


1809년 8월에 안드레이 공작은 페테르부르크에 왔다. 젊은 스페란스키(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스페란스키 백작, 러시아의 정치개혁가)의 명예와 그가 벌이는 대변혁의 에너지가 절정에 달한 때였다. 바로 그 8월에 군주는 콜랴스카를 타다 굴러떨어져 한쪽 다리를 다쳤고, 3주 동안 페테르고프에 머무르며 매일 그리고 오직 스페란스키만 만났다. 황제가 권좌에 오를 때 품었고, 차르토리스키, 노보실체프, 코추베이, 스트로가노프 같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실현하려 애쓰던 저 모호한 자유주의적 염원이 이제 현실에서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 전부를 대신해 스페란스키가 내정 분야를, 그리고 군사 분야는 아락체예프가 맡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도착하자마자 시종 자격으로 궁정에 가서 군주를 알현했다. 군주는 그를 두 번 만났지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전에도 군주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연로한 원수에게 자신의 제안서에 관해 말을 전했다. 원수는 그를 다정하게 맞아 주었고 군주에게 보고하겠노라 약속했다. 며칠 후 안드레이 공작은 국방 대신 아락체예프 백작에게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정된 날 오전 9시, 안드레이 공작은 아락체예프 백작의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락체예프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데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가 아락체예프에 대해 아는 모든 것들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 사람에 대한 존경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내 제안서를 검토하는 일이 그에게 맡겨졌어. 내 제안서를 진척시킬 수 있는 이는 그 사람뿐이야.’


안드레이 공작은 잘 정돈된 소박한 집무실로 들어갔다. 긴 허리,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긴 머리통, 굵은 주름, 갈색이 도는 흐릿한 녹색 눈동자 위의 찌푸린 눈썹, 축 늘어진 붉은 코를 한 마흔 살가량의 남자가 탁자 옆에 있었다. 아락체예프가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뭘 청원하렵니까?” 아락체예프가 물었다.


“친애하는 공작, 당신의 제안서를 읽었습니다.”

“새 군사 법규를 제안하신다고요? 법률은 많습니다. 옛날 법률을 시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요즘에는 다들 법안을 씁니다. 쓰는 게 행하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당신의 제안서는 결재를 해서 위원회로 보냈어요. 난 승인할 수 없습니다.”


“제안서는 어떤 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물었다.

“군법위원회입니다. 공작을 위원으로 넣도록 제안했어요. 단, 무급으로요.”

안드레이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바라지도 않습니다.”


5


위원회 위원으로 등록되었다는 통지를 기다리는 동안 안드레이 공작은 옛 친분, 특히 그가 알기로, 세력이 있고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들과의 친분을 회복했다. 날마다 새롭게 존재를 확인하게 되던 무수한 위원회를 통해 그는 1809년 지금 이곳 페테르부르크에서 그가 아직 모르는, 그에게 천재적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인물 스페란스키가 총사령관인 어떤 거대한 시민전쟁이 준비되고 있음을 느꼈다.


안드레이 공작은 당시 페테르부르크 사회의 온갖 상류 사회 모임에서 환대를 받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상황들 중 하나에 놓여 있었다. 개혁파는, 첫째, 그가 지성과 대단한 박식함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둘째, 자기 영지의 농노들을 해방함으로써 자유주의자라는 평판을 얻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를 반기며 꾀었다. 불만을 품은 원로파는 개혁을 비판하며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대놓고 그에게 공감을 호소했다. 여성들의 모임인 사교계도 기쁘게 그를 맞이했다. 그가 부유한 명문가 출신의 신랑감인 데다, 잘못 알려진 죽음과 아내의 비극적 종말에 관한 낭만적인 이야기의 후광이 드리운 거의 새로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락체예프 백작을 방문한 다음 날 저녁에 안드레이 공작은 코추베이 백작의 집을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코추베이 백작은 말을 끝맺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안드레이 공작의 팔을 잡고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하러 갔다. 키가 크고 머리가 벗어진 금발의 마흔 살가량 된 남자였는데,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길쭉한 얼굴은 보기 드물게 기이한 흰색이었다. 그 사람은 파란 연미복을 입고 목에 십자가를 걸었으며, 가슴 왼편에는 별 모양의 훈장을 달았다. 스페란스키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img.jpg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스페란스키 출처 구글 이미지]


전체 모임에서 잠시 말을 나눈 스페란스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드레이 공작을 방의 반대편 끝으로 데려갔다.

"난 오래전부터 당신을 압니다. 첫째, 당신의 농민들에게 벌인 일을 통해서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예요. 이런 사례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아주 바람직하겠지요. 둘째, 당신이 궁정 관등에 대한 새로운 칙령에 분개하지 않는 시종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칙령이 너무 많은 소문과 악평을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그러한 권리를 누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낮은 관등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구시대 사람인 당신의 아버님이 우리 동시대인들보다 더 뛰어나신 듯합니다. 그저 당연한 정의를 회복하려는 이 조치를 저렇게 비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비판들에도 근거가 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이 느끼기 시작하던 스페란스키의 영향력에 저항하고자 애쓰며 말했다. 모든 점에서 스페란스키에게 동의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불쾌한 일이었다. 그는 반박하고 싶었다. 평소 말이 능숙하던 안드레이 공작은 지금 스페란스키와 대화를 나누며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저명한 인물의 됨됨이를 관찰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해 있었다.


“당신이 수요일에 우리 집을 방문하는 영광을 제게 베풀어 주신다면 마그니츠키와 상의해서 당신에게 흥미로울 만한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울러 난 당신과 좀 더 자세히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고요.” 그는 눈을 감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러고는 프랑스식으로 작별 인사 없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쓰며 홀에서 나갔다.


6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던 첫 시기에 안드레이 공작은 은둔의 삶을 통해 형성되었던 사고방식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을 사로잡은 자질구레한 고민들에 의해 전부 흐려진 것을 느꼈다. 이따금 그는 같은 날 여러 모임에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던 일들을 불만스러운 심정으로 깨닫곤 했다. 하지만 너무나 바빠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코추베이의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스페란스키는 그다음 수요일에 볼콘스키를 맞아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신뢰에 찬 말을 나눔으로써 안드레이 공작에게 강렬한 인상을 안겼다.


스페란스키는, 안드레이 공작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인지 아니면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안드레이 공작 앞에서 특유의 편견 없고 침착한 이성으로 교태를 부렸고 자부심과 결합된 교묘한 아첨으로 안드레이 공작을 치켜세웠다. 그 자부심은 자신과 더불어 상대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온갖 어리석음을, 자신들의 생각이 지닌 합리성과 깊이를 이해할 유일한 사람임에 대한 무언의 인정을 의미했다.


스페란스키와 나눈 그 최초의 긴 대화는 안드레이 공작의 내면에 스페란스키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을 한층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는 스페란스키에게서 힘과 끈기로 권력을 얻은 뒤 그것을 오직 러시아의 축복만을 위해 사용하는 인간의 이성적으로 엄정하게 사고하는 원대한 지성을 보았다. 모든 것에 합리성의 척도를 적용하는 사람, 바로 그 자신이 너무도 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스페란스키와 친분을 나누던 처음 얼마 동안 안드레이 공작은 언젠가 보나파르트에 대해 품었던 것과 흡사한 열렬한 환희의 감정을 그에 대해 품었다. 스페란스키가 사제의 아들이었다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를 성직자의 아들이니 사제의 자식이니 하며 저속하게 경멸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안드레이 공작으로 하여금 스페란스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특히 소중하게 대하고 자기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더 키워 나가게 만들었다.


일주일 후 안드레이 공작은 군법제정위원회의 위원이 되었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법전편찬위원회 한 분과의 책임자가 되었다. 스페란스키의 요청에 따라 그는 편찬 중인 민법 제1부를 맡아 나폴레옹 법전과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도움으로 인권 항목을 편찬해 나갔다.


7


두 해 전인 1808년에 영지를 돌아보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피에르는 뜻하지 않게 페테르부르크 프리메이슨의 지부장이 되었다. 그는 지부의 회식과 추도식을 거행했고, 새 회원을 모집했으며, 여러 지부를 통합하고 헌장 진본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그는 회당 건축에 돈을 내놓았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박하게 내거나 제때 내지 않던 기부금을 힘닿는 한 채워 넣었다.


그해 말 피에르는 교단의 최고 신비를 좀 더 자세히 접하기 위해 외국으로 갔다. 1809년 여름이 가기 전에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러시아의 프리메이슨 회원들과 외국의 회원들이 나눈 편지를 통해 베주호프가 외국에서 많은 고위층 인물들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고, 많은 신비를 깨달아 최고 수준에 올랐으며, 러시아 석공 조합의 사업 전반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것을 가져온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피에르가 교단의 최고 지도자들이 페테르부르크 형제들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을 2급 지부에서 알리겠다고 약속하여 그곳에서 기념집회가 열리기로 정해졌다. 집회는 만원이었다. 통상적인 의식 후에 피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는 한 손에 연설문 원고를 쥐고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지부 안에서 평온하게 우리의 신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행동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미몽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순수한 진리를 전파하고 미덕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을 편견으로부터 정화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전파하고, 젊은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최고의 지성들과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하나가 되고, 담대하게 그리고 분별 있게 미신과 불신앙과 어리석음을 타파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목적의 단일성으로 서로 연결되는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로 육성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덕이 악덕보다 우위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 많은 정치 제도들이 우리의 이 원대한 계획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혁명을 도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힘으로 힘을 몰아내야 합니까…….? 아니요, 우리는 그런 것과 아주 거리가 멉니다. 모든 강제적인 개혁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지혜는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암흑에 잠겨 있던 시절에는 설교 하나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진리의 새로움이 진리에 특별한 힘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요구됩니다. 각 나라에서 몇몇 훌륭한 사람이 우리 공동체 사람이 되기만 하면, 그들이 저마다 다른 두 사람을 길러 내고 그들 모두가 서로 긴밀히 연합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인류의 안녕을 위해 이미 은밀히 많은 것을 해 온 우리 교단에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연설은 지부에 강한 인상을 주었을 뿐 아니라 동요도 낳았다. 그 연설에서 일루미나티 교의(독일 프리메이슨의 분파, 군주제를 공화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비밀목적으로 했다)의 위험한 의도를 본 대부분의 형제들은 피에르를 놀라게 한 냉담한 태도로 그의 연설을 받아들였다. 그 집회에서 피에르는 어떠한 진리도 두 사람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는, 인간 정신의 무한한 다양성에 처음으로 놀랐다. 그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이던 회원들조차 자기 식으로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집회가 끝날 무렵 대수장은 베주호프에게 악의와 야유를 담아 그의 격한 기질을 질책하며, 단지 선행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싸움에 대한 집착도 논쟁에서 그를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피에르는 대꾸하지 않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짧게 물었다.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피에르는 통상적인 형식적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8


피에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우울이 다시 그를 덮쳤다. 지부에서 연설을 한 후 사흘 동안 그는 집 안 소파에 드러누워 누구도 맞아들이지 않았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그 무렵 그는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그에게 만나 달라고 애원하며, 그로 인한 슬픔과 자기 평생을 그에게 바치고 싶다는 바람에 대해 썼다. 편지 말미에 그녀는 며칠 안에 외국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갈 것이라고 알렸다.


피에르는 어느 날 밤늦게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떠났다. 피에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모스크바, 11월 17일.
은인에게 갔다가 지금 막 돌아와 이번 만남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서둘러 적어 둔다.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는 가난하게 살며 3년째 고통스러운 담낭 질환을 앓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신음 소리나 불평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극히 소박한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 그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문을 연구한다.

그에게 내가 우리 페테르부르크 지부에 제안한 원칙을 전했고, 내가 받은 불쾌한 대접과, 나와 형제들 사이에 벌어진 불화를 털어놓았 다.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는 꽤 오랫동안 침묵과 생각에 잠겨 있던 끝에 그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말했다. 순간 내 모든 과거와 내 앞에 놓인 모든 미래의 길이 환히 밝아 왔다.

우리 교단의 세 가지 목적 중에서 가장 주되고 우선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자기 정화와 교화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나 지향할 수 있는 목적은 오직 이것뿐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 목적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오만함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 목적을 간과한 채 자신의 더러움으로 인해 감히 지각할 자격이 없는 신비에 손을 대거나, 스스로가 추악함과 음란함의 사례이면서 인류의 교화에 손을 대기도 한다.

일루미나티는 사회 활동에 몰두하고 오만함으로 꽉 찼기 때문에 순수한 교리가 아니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는 내 연설과 나의 모든 활동을 비판했다. 나는 마음속 깊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의 대화가 내 가정사에 이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했듯이 참된 프리메이슨의 중요한 본분은 자기완성이에요.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서 삶의 모든 어려움을 제거하면 이 목적을 더 빨리 성취하리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사회적 동요의 환경 속에서만 우리는 세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자기 인식. 인간은 오직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완성. 그것은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덕목, 즉 죽음에 대한 사랑의 성취이지요. 인생의 숱한 곡절만이 우리에게 삶의 허무함을 보여 줄 수 있고, 우리가 타고난 죽음에 대한 사랑이나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 11월 23일.
나는 다시 아내와 살고 있다. 장모가 눈물 바람으로 내게 와서 엘렌이 여기 있다는, 그녀가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 달라고 내게 애원하고 있다는, 그녀에겐 죄가 없다는, 내가 그녀를 방치해서 그녀가 불행하다는 등의 말과 다른 많은 말을 했다. 나 스스로에게 그녀를 보는 것을 허용하기만 해도 내가 그녀의 바람을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의 편지들을 거듭 읽으며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간청하는 자를 뿌리쳐서는 안 되고 모두에게, 하물며 나와 얽힌 사람에게는 더더욱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자신의 십자가는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내가 선을 위해 그녀를 용서하는 것이라면 그녀와 나의 결합은 정신적인 목적 하나만 띠도록 하자. 그렇게 나는 결심했고,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에게도 그렇게 편지를 썼다.


9


늘 그렇듯 당시에도 상류 사회는 궁정과 큰 무도회에 다 같이 모이면서도 저마다 나름의 미묘한 특색을 띠는 여러 모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모임은 루먄체프 백작콜랭쿠르의 프랑스 모임인 나폴레옹 동맹이었다. 엘렌은 남편과 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하자마자 이 모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프랑스 대사관의 인사들과, 지성과 정중함으로 이름난 이 일파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왔다.


피에르는 그녀가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으로서 거둔 성공에 놀라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그녀는 더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아내가 ‘아름다운 만큼이나 총명한 매력적인 여인’이라는 평판을 얻은 것에 대해서는 놀라고 있었다. 유명한 리뉴 공(벨기에의 정치가이자 작가)은 그녀에게 여덟 쪽에 걸친 편지를 썼다. 빌리빈은 베주호바 백작 부인 앞에서 처음으로 말하려고 재치 있는 말을 아껴 두었다.


그녀가 매우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던 피에르는 정치와 시와 철학에 대한 말이 오가던 그녀의 야회와 만찬에 어쩌다 자리하게 되면 의혹과 두려움 같은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 야회들에서 그는 마술사가 매번 이제 금방 속임수가 탄로 날 것이라고 예감하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매일같이 엘렌의 집을 드나들던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군 복무에서 이미 크게 성공한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엘렌이 에르푸르트에서 돌아온 후에 베주호프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엘렌은 그를 나의 시동이라 부르며 그를 아이 대하듯 했다. 그를 향한 그녀의 미소는 모두에게 보내는 미소와 똑같았지만, 피에르는 가끔 그 미소를 보는 것이 불쾌했다.


피에르는 3년 전 아내가 그에게 안긴 모욕으로 너무도 극심한 고통을 겪은 터라, 이제 그는 첫째, 자신이 자기 아내의 남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둘째, 자신에게 의심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그 같은 모욕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제 블루스타킹(18세기 영국 사교계에서 문학과 학문에 취미를 가진 여성들을 조롱하여 이르던 말)이 된 그녀는 예전의 정욕을 완전히 버렸어.’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의 눈에 비친 피에르는 대지주, 유명한 아내의 다소 눈이 멀고 우스꽝스러운 남편, 똑똑한 괴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훌륭하고 선량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피에르의 영혼 속에서는 그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그를 많은 영적인 의혹과 기쁨으로 이끈, 복잡하고 힘든 내적 발전의 노동이 벌어졌다.


10


그는 계속 일기를 썼다. 다음은 그 시기에 쓴 것이다.


11월 24일
8시에 일어나 성서를 읽은 다음 근무하러 갔다가 (피에르는 은인의 조언에 따라 여러 위원회들 중 한 곳의 직무를 맡았다) 만찬에 맞춰 돌아와서 혼자 식사를 했고 (백작 부인에게는 내가 불쾌하게 여기는 손님들이 많이 와 있었다) 적당히 먹고 마신 후에는 형제들을 위한 저작을 옮겨 적었다. 저녁 무렵 백작 부인에게 들러 B.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모두가 큰 소리로 웃고 있을 때에야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위대하신 주여, 당신의 길을 걷도록 나를 도우소서. 첫째는 평정과 느림으로 분노를 조금이라도 이기게 하시고, 둘째는 절제와 혐오로 음욕을 이기게 하시고, 셋째는 공허한 법석을 멀리하되 국가적 직무와, 가정을 돌보는 일과, 친구 관계와, 경제 활동을 그만두지 않게 하소서.


11월 27일
참된 프리메이슨은 참여를 요구받을 때는 국가에서 열렬한 활동가가 되어야 하고, 부름을 받지 않은 일에는 차분한 관망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혀는 나의 적이다. 형제 G. V. 와 O.가 나를 방문했고, 새로운 형제를 받아 들일 준비와 관련된 대화가 오갔다. 그들이 나에게 레토르의 임무를 맡긴다. 입회자는 보리스 드루베츠코이였다. 내가 그를 추천했고, 내가 레토르이기도 했다.

어두운 건물 안에 그와 함께 있는 내내 이상한 감정이 나를 동요시켰다. 나는 내 안에서 그를 향한 증오심을 발견했다. 그 증오심을 극복하려는 나의 노력은 헛되다. 나에게는 그가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목적이 단지 사람들과 가까워지려는, 우리 지부 사람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게 그는 진실하게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건물 안에서 그와 마주 보고서 있던 내내 내 말에 대해 멸시에 찬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드러난 가슴에 들이댄 장검으로 정말 그를 찌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기장에는 그다음 세 장을 건너뛰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회 과학의 빈약한 학설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리의 신성한 가르침의 차이가 내게는 명확하다. 인간의 학문은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나누고, 관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죽인다. 그러나 교단의 신성한 학문에서는 모든 것이 통일되어 있고, 모든 것이 전체와 생명의 상태로 인식된다. 삼위일체는 물질의 세 가지 기원으로 유황과 수은과 소금이다. 기름과 불의 성질을 가진 유황. 소금과 결합할 때 자신이 가진 불의 성질로써 소금 안에 갈망을 일으키고, 갈망을 통해 수은을 끌어당기고 붙잡아 보존한다. 그리고 공동으로 개별적인 몸들을 만들어 낸다. 수은은 유동성과 휘발성을 지닌 영적 본질, 즉 그리스도이고 성령이고 그분이다.


12월 3일.
성서를 읽었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 후 밖으로 나와서 홀을 거닐었다. 묵상하고 싶었지만, 그 대신 상상은 4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제시했다. 결투 후에 모스크바에서 나를 만난 자리에서 돌로호프씨는 나에게 이제 배우자가 없어도 충만한 정신적 평온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만남을 세세히 기억해 내고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악의에 찬 말과 신랄한 대답을 던졌다. 격노한 자신을 발견한 후에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생각을 내던졌다.

그 뒤에 보리스 드루베츠코이가 와서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온 순간부터 그의 방문이 불만이었던 터라 뭔가 불쾌한 말을 해 버렸다. 그가 반박했다. 나는 폭발해서 불쾌하고 심지어 난폭하기까지 한 많은 말을 그에게 퍼부었다. 그는 침묵했고, 이미 늦은 뒤에야 나는 잘못을 깨달았다. 맙소사, 나는 그를 전혀 다룰 줄 모른다! 나의 자존심 때문이다.


12월 7일.
꿈을 꾸었다.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가 내 집에 앉아 있고, 나는 너무 기뻐서 그를 대접하길 원하는 것 같다. 나는 그칠 줄 모르고 낯선 사람들과 떠들다가 문득 이것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다가가 그를 안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가가자마자 그의 얼굴이 변해서 젊어진 것이 보인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상념 속에서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의 얼굴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밝았다. 이날 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그는 부부 생활의 의무에 대해 썼다.


12월 9일.
꿈을 꾸다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끼며 깼다. 꿈에서 나는 모스크바에 있는 내 집의 큰 소파 방에 있고 응접실에서 이오시프 알렉세예비치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 즉시 나는 그에게 부활의 과정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그를 향해 달려간 듯하다. 나는 그의 입과 두 손에 입을 맞추고, 그가 내게 말하는 듯하다. 그는 점차 정신을 차리고 알렉산드리아 종이로 된 큰 책을 들고서 나와 함께 큰 서재로 들어갔다. "제가 그 책을 썼습니다."하고 내가 말하는 듯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응답했다. 내가 책을 펼치자 그 책의 모든 면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그 그림들이 한 영혼과 그 연인의 정사를 나타내는 것임을 아는 듯하다. 그리고 여러 지면에서 투명한 몸에 투명한 옷을 걸치고 구름을 향해 날아오르는 한 소녀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오, 하느님, 만일 나 자신이 그 원인이라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정녕 나를 버리시면 나는 나의 음란함으로 멸망할 것입니다.


11


로스토프가의 재정 형편은 그들이 시골에서 지낸 두 해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니콜라이 로스토프가 자신의 뜻을 굳게 지켜 비교적 적은 돈을 쓰며 벽지의 연대에서 계속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트라드노예에서의 생활 방식과 특히 미텐카의 업무 처리는 해마다 빚을 걷잡을 수 없이 늘려 갔다. 분명 노백작의 머리에 떠오르던 유일한 도움은 봉직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리를 구하러 페테르부르크로 갔다.


로스토프 일가가 페테르부르크에 오고 얼마 안 있어 베르크베라에게 청혼했고, 그 청혼은 받아들여졌다. 그는 1809년 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핀란드 전쟁에서 받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근위대 대위가 되어 페테르부르크에서 특별하고 유리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4년 전 모스크바 극장의 아래층 일반석에서 독일인 동료와 마주친 베르크는 그에게 베라 로스토바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아가씨는 내 아내가 될 거야.”(독일어)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베르크의 청혼이 부모에게 불러일으킨 처음의 당혹감 이후에 그런 경우에 흔히 있는 축제처럼 떠들썩한 기쁨이 집안에 찾아왔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이 아니라 표면적인 기쁨에 지나지 않았다. 이 혼인에 관한 가족들의 감정에서 곤혹스러움과 수치심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베라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고 이제는 그녀를 기꺼이 떼어 버린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혼인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베르크는 아침 일찍 백작의 서재에 들어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미래의 장인에게 베라 백작 영애의 지참금으로 무엇을 줄지 알려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베르크는 베라의 지참금으로 무엇을 받게 될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 그리고 일부라도 미리 받지 못하면 결혼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십시오, 백작님. 만약 지금 아내를 부양할 일정한 자금도 없이 결혼하려 한다면 저는 비열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백작이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또 새로운 요구를 받지 않기를 원하며 어음으로 8만 루블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베르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백작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감사하지만 3만 루블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는 도저히 새로운 삶을 꾸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백작이 빠르게 말했다. “미안하네. 2만 루블 주고, 더해서 어음 8만 루블도 주지. 자, 내게 입을 맞춰 주게.”


12


나타샤는 열여섯 살이었다. 4년 전 보리스와 입을 맞춘 뒤 그와 함께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 보던 바로 그 1809년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보리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보리스에게 한 약속이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구속력이 있는 진지한 약속이었는지에 관한 질문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1805년 모스크바에서 군대로 떠난 바로 그때 이후, 보리스는 로스토프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을 모스크바에 오고 오트라드노예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나치면서도 로스토프가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최근 로스토프가에 발길이 뜸해진 안나 미하일로브나 또한 왠지 유별날 정도로 위엄 있게 행동하며 매번 환희와 감사에 젖어 아들의 훌륭한 면과 눈부신 출세를 입에 올렸다.


로스토프 일가가 페테르부르크에 왔을 때 보리스가 그들을 방문하러 왔다. 그가 그들에게 가면서 흥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타샤에 대한 기억은 보리스에게 가장 시적인 추억이었다. 보리스는 나타샤의 손에 입을 맞추고 나서 그녀에게 일어난 변화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정말 아름다워졌어요!”

‘물론이죠!’ 나타샤의 빛나는 두 눈이 대답했다.


보리스는 나타샤와의 만남을 피하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재산이 거의 없는 아가씨와의 결혼은 그의 경력에 파멸이 될 것이고, 결혼할 목적 없이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품위 없는 행동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심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다시 로스토프가에 갔고, 자주 드나들며 온종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혼란에 빠졌다.


어머니와 소냐가 보기에 나타샤는 예전처럼 보리스에게 빠진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주고, 그에게 앨범을 보여 주며 거기에 글을 쓰게 했다. 그가 옛일을 추억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새로운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만들었다. 보리스는 엘렌에게 가는 발길을 끊었고, 그녀로부터 매일같이 비난하는 쪽지를 받으면서도 로스토프가에서 온종일 머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3


밤에 백작이 클럽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루어지던 나타샤의 방문은 그들이 좋아하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도대체 오늘은 뭐야? 나도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나타샤가 한 손으로 어머니의 입을 막았다.

“보리스 얘기죠……. 알아요.”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그래서 왔어요. 말씀하지 마세요. 알아요. 아니에요, 말씀하세요!” 그녀는 손을 뗐다. “말씀하세요, 엄마. 그 사람 사랑스럽죠?”


“넌 그 애를 완전히 홀려 놓았어. 왜 그랬니? 그 애에게 바라는 게 뭐냐? 넌 그 애와 결혼할 수 없잖니.”

“왜요?” 나타샤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애는 어리니까, 가난하니까, 친척이니까……. 그리고 너도 그 애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난 알지. 얘야, 그건 좋지 못한 행동이야. 얘야, 그러면 안 돼. 모두가 너희의 어린 시절 관계를 이해하는 건 아니야. 우리 집을 드나드는 다른 젊은 사람들이 그 애와 네가 그처럼 가까운 모습을 보면 네가 해를 입을 수도 있어. 무엇보다 그 애를 부질없이 괴롭히게 돼. 그 애는 아마 자신에게 맞는 돈 많은 짝을 찾았을 거야. 지금은 정신이 나가서 저러는 거지.”


“엄마, 그런데 보리스는 사랑에 푹 빠진 걸까요? 엄마 눈에는 어때요? 엄마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보리스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정말, 정말 사랑스러워요! 단, 완전히 제 취향은 아니에요. 그는 식당 시계처럼 너무 좁은 사람이에요. 모르시겠어요……? 좁고, 아시겠어요, 회색이에요, 연회색…….”


“정말 모르시겠어요? 베주호프는 파란색, 빨강이 섞인 암청색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은 사각형이에요.”

“넌 그 사람에게도 교태를 부리고 있구나.” 백작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 사람은 프리메이슨이에요.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 빨강이 섞인 암청색의 사람이에요. 엄마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녀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다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냐샤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다른 세상으로, 훨씬 더 행복한 꿈의 세상으로 건너갔다. 다음 날 백작 부인은 보리스를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로스토프가에 오지 않았다.


14~17 [무도회]


1810년 새해 전야인 12월 31일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의 어느 고관 집에서 송년 파티를 위한 무도회가 열렸다. 외교단과 군주가 무도회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영국 강변로에 있는 그 유명한 저택은 수많은 조명으로 빛났다. 붉은 모직을 깔고 조명을 밝힌 현관 입구 옆에는 경찰대가 서 있었다.


로스토프가 사람들과 함께 무도회에 갈 사람은 백작 부인의 친구이자 친척인 마리야 이그나티예브나 페론스카야였다. 야위고 얼굴색이 누르스름한 이 옛 궁정의 시녀가 지방 출신인 로스토프가 사람들을 페테르부르크 상류 사회에서 이끌어 주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머리칼에 똑같은 장미를 꽂은 두 소녀가 똑같이 무릎을 구부리며 인사했지만 여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가냘픈 나타샤에게 더 오래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나타샤를 바라보고는 그녀에게만 여주인으로서의 미소에 더해 특별한 미소를 보냈다. 여주인은 나타샤를 바라보며 이젠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황금빛 소녀 시절과 자신의 첫 무도회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나타샤는 하얀 제복의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볼콘스키였다. 아주 젊어지고 멋있어진 것처럼 보였다.

“저기 아는 사람이 또 있어요. 볼콘스키예요. 보이세요, 엄마?” 나타샤가 안드레이 공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억하세요, 오트라드노예에서 우리 집에 묵었잖아요.”


갑자기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군중이 수군거리며 몰려들었다가 다시 양옆으로 갈라지더니,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양쪽에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군주가 들어왔다. 연회를 주최한 부부가 그를 뒤따랐다. 군주는 만남의 이 첫 순간으로부터 서둘러 벗어나려는 듯 좌우로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걸었다. 악사들이 당시 그를 위해 쓴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던 폴로네즈를 연주했다.


절반 이상의 귀부인들이 파트너를 구해 폴로네즈를 추거나 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파트너가 없어 벽 쪽으로 밀려난 소수의 귀부인들 틈에 어머니와 소냐와 함께 자신이 남은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정말 아무도 나한테 와 주지 않으려나? 내가 얼마나 춤을 추고 싶어 하는지, 내가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나와 춤을 추면 얼마나 즐거울지 저 사람들은 알아야 해.’


그러고는 이내 악단에서 또렷하고 조심스러운 왈츠 소리가 매혹적인 선율로 울려 퍼졌다. 군주가 미소를 머금고 홀을 주시했다. 1분이 지났다. 누구도 먼저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진행 담당 부관이 베주호바 백작 부인에게 다가가 춤을 청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부관을 바라보지는 않고 들어 올린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춤 상대인 귀부인의 벨벳 드레스는 3박자에 맞춰 회전할 때마다 마치 불꽃을 일으키며 펄럭이는 듯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군주 앞에서 소심함을 보이는 그 남자들과 조마조마하며 춤을 신청받기를 바라고 있는 여자들을 관찰했다. 피에르가 안드레이 공작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은 늘 춤을 추잖아요. 이곳에 나의 피보호자인 로스토바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녀에게 가서 춤을 신청해 주세요.” 그가 말했다.


그는 피에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절망에 빠져 얼어붙어 가는 나타샤의 얼굴이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알아보았고 그녀의 기분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교계에 처음 나왔음을 알아차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정중하고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춤을 신청하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나타샤의 허리를 안고자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들며 말했다. 그러고는 왈츠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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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도 환희도 모두 맞을 태세로 숨죽인 나타샤의 얼굴이 갑자기 행복과 감사에 넘치는 어린아이의 미소로 환하게 빛났다. 그들은 원에 들어간 두 번째 쌍이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한창때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나타샤는 탁월하게 춤을 추었다. 새틴 무도화에 싸인 조그만 두 발은 그녀와 상관없이 빠르고 경쾌하게 자기 일을 했고, 그녀의 얼굴은 행복의 환희로 빛났다.



나타샤를 선택한 것은 피에르가 그녀를 지목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쁜 여자들 가운데 그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동감 넘치면서도 바르르 떠는 그 가냘픈 몸을 끌어안은 순간, 그녀가 그의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그의 가까이에서 미소 지은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매력의 술이 그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와 떨어져 숨을 돌리며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소생하고 젊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18


다음 날 안드레이 공작은 전날의 무도회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것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래, 아주 멋진 무도회였어. 그리고 또…… 그래, 로스토바는 정말 사랑스러워. 그녀에겐 신선하고 독특하고 페테르부르크적이지 않은, 남다른 무언가가 있어.’ 이것이 전날의 무도회에 대해 그가 생각한 전부였다.


바로 이날 안드레이 공작은 스페란스키의 집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식사를 해야 했다. 집주인은 그를 초대하며 그렇게 말했다. 정해진 만찬 시각에 안드레이 공작은 타브리체스키 정원 옆에 있는 스페란스키의 크지 않은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스페란스키가 마그니츠키의 이야기에 웃으며 안드레이 공작에게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내밀었다.“오늘 우리는 약속을 했습니다. 즐겁게 식사하고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그러고는 이야기하던 사람을 다시 돌아보고 또 웃음을 터뜨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놀라움과 환멸의 슬픔을 느끼며 웃고 있는 스페란스키를 바라보았다. 전에 안드레이 공작이 스페란스키의 모습에서 비밀스럽고 매력적인 면으로 여기던 모든 것이 갑자기 훤히 들여다보이면서 추해졌다.


스페란스키는 업무 후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휴식을 취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손님들 역시 그의 바람을 알고 있어서 그를 유쾌하게 하고 자신들도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은 이런 오락이 무겁고 즐겁지 않았다. 스페란스키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었고, 그칠 줄 모르는 가식적인 음색의 웃음소리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안드레이 공작은 지난 네 달 동안의 페테르부르크 생활을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분주히 애쓰며 추구하던 자신의 모습과 군법 기획안에 관한 일을 떠올렸다. 그 기획안은 보고되었지만, 아주 형편없는 다른 기획안이 군주에게 이미 제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들 묵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입법 활동에 관해, 자신이 로마 법전과 프랑스 법전의 조항들을 얼마나 고심하며 러시아어로 옮겼는지에 대해 떠올렸다. 그러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19


다음 날 안드레이 공작은 아직 가 보지 못한 몇몇 집을 방문했다. 그중에는 지난 무도회에서 친분을 회복한 로스토프가도 있었다. 예의상 로스토프가를 방문해야 하기도 했지만,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에게 즐거운 추억을 남긴 그 특별하고 생기발랄한 아가씨가 집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타샤는 평소 입는 파란 원피스 차림이었는데, 안드레이 공작에게는 그 모습이 무도회 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와 로스토프가의 온 가족이 안드레이 공작을 오랜 친구처럼 진심으로 맞아 주었다.


만찬 후에 나타샤는 안드레이 공작의 요청에 따라 클라비코드를 연주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창가에 서서 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소절 중간에 안드레이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느닷없이 자신에게는 그 가능성을 전혀 생각지 못하던, 눈물로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그는 노래하는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 속에서 새롭고 행복한 무언가가 일어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밤늦게 로스토프가를 떠났다. 그는 습관대로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이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그녀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을 뿐인데 그로 인해 그의 삶 전체가 새로운 빛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처음으로 행복한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피에르가 옳아. 행복해지려면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지. 이제 난 그 말을 믿어. 죽은 자들을 장사 지내는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기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해.’ 그는 생각했다.


20~21 [베르크의 야회]


어느 날 아침 새로 맞춘 깨끗한 제복을 입고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군주처럼 구레나룻에 포마드를 발라 앞쪽으로 쓸어내린 아돌프 베르크 대령이 자기 부부들의 야회에 초대하기 위해 피에르를 찾아왔다. 피에르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던 만큼 그도 알고 있었다. 베르크 같은 사람들의 모임을 스스로에게 모욕적인 것이라고 여기던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백작 부인만 그런 초대를 무자비하게 거절할 수 있었지만, 피에르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감히 이런 부탁을 해도 된다면, 백작, 늦지만 마십시오. 8시 10분 전에 와 주시길 부탁합니다. 카드놀이도 같이합시다. 우리 장군님도 오실 겁니다. 저녁 식사에 함께해 주세요, 백작. 꼭 부탁합니다.”

이날 피에르는 늘 지각하는 습관을 깨고 8시 10분 전이 아닌 8시 15분 전에 베르크의 집에 도착했다. 베르크 부부는 야회에 필요한 것을 마련해 놓고 벌써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곧바로 베르크의 오랜 동료인 보리스가 왔다. 그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보호자 같은 느낌을 풍기는 태도로 베르크와 베라를 대했다. 보리스에 뒤이어 한 귀부인이 대령과 함께 왔고, 그다음에 장군이, 그러고는 로스토프가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러자 야회는 전혀 의심할 바 없이 일반적인 야회와 비슷해졌다. 베르크와 베라는 응접실의 그런 움직임을 보면서, 그 두서없는 말소리와 드레스 스치는 소리와 인사말을 들으면서 기쁨의 미소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피에르는 최고의 귀빈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일리야 안드레이치 백작, 장군, 대령과 보스턴 게임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피에르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타샤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무도회 날 이후 그녀에게 일어난 이상한 변화가 그를 놀라게 했다. 나타샤는 말이 없었다. 무도회에서만큼 아름답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온화하고 무심한 표정을 짓지 않았더라면 못생겨 보였을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이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분명 가쁜 숨을 애써 억누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꺼져 있던 어떤 내면의 불꽃이 그녀 안에서 환한 빛을 내며 타올랐다. 그녀의 모습이 매력 없던 모습에서 다시 무도회에서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22


이튿날 안드레이 공작은 일리야 안드레이치 백작의 초대를 받아 로스토프가에 식사를 하러 가서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누구 때문에 드나드는지 알았고, 그도 굳이 숨기지 않고 온종일 나타샤와 함께 있으려 했다. 소냐는 나타샤 곁을 떠나기가 두려웠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방해가 될까 두려웠다. 나타샤는 잠시라도 그와 단둘이 남으면 두려운 기다림으로 창백해졌다.


나타샤에게는 오트라드노예에서 안드레이 공작을 처음 보았을 때 벌써 그를 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때 선택한 (그녀는 이 점을 굳게 확신했다) 남자, 바로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을 다시 만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이 예기치 못한 이상한 행복에 놀란 듯했다.


바로 그 시각, 안드레이 공작은 피에르의 집에서 나타샤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그녀와 결혼하려는 확고한 결심에 대해 그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 백작 부인의 방을 나온 피에르는 담배 연기 자욱하고 천장이 낮은 위층 자기 방 책상 앞에 낡은 할라트 차림으로 앉아 스코틀랜드 문서의 원본을 베껴 썼다.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드레이 공작이었다.


“이보게, 친구.” 그가 말했다. “어제 말하려던 것 때문에 오늘 자네에게 왔지. 이런 비슷한 걸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난 사랑에 빠졌네, 친구.”

피에르는 갑자기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안드레이 공작 옆의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타샤 로스토바죠, 맞아요?”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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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아가씨는 굉장한 보물입니다, 굉장한……. 보기 드문 아가씨예요. 친구, 부탁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의심하지 말고 결혼해요, 결혼해요, 결혼해……. 당신보다 행복한 남자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누가 나에게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이건 예전에 내가 느끼던 감정과는 전혀 달라. 내게는 온 세상이 둘로 나뉘어 있어. 하나는 그녀야. 거기에는 온갖 행복과 희망과 빛이 있지. 나머지 절반은 그녀가 없는 곳이야. 거기에는 오직 우울과 어둠뿐이네……. 자넨 날 이해하지? 난 자네가 나 때문에 기쁘다는 걸 알아.”

“네, 그럼요.” 피에르는 부드러우면서도 우울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안드레이 공작의 운명이 밝아 보일수록 자신의 운명은 더 암울하게 여겨졌다.


23


결혼을 위해서는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안드레이 공작은 다음 날 아버지에게로 떠났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분개하며 아들의 전언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삶은 이미 끝나 가는데 누군가가 삶을 변화시키려 하고 삶 속에 새로운 무언가를 들이려 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를 취하고 모든 일을 검토했다. 첫째, 이 결혼은 가문, 재산, 명성 면에서 대단치 않았다. 둘째, 안드레이 공작은 팔팔한 청춘이 아니고 건강도 좋지 않은데 (노인은 특히 이 점에 기댔다) 그녀는 너무 젊다. 셋째, 어린 여자가 맡기에는 딱한 일인 그의 아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부탁하마. 이 문제를 한 해 연기해라. 그런 다음에도 사랑이든 열정이든 고집이든, 네가 뭐라 부르든 그것이 강하거든 그때 결혼해라. 이게 내 마지막 말이다. 명심해라, 마지막…….”


로스토프가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밤 이후 3주가 지나 안드레이 공작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안드레이 공작이 아버지에게 간 사실을 모르던 나타샤는 그가 오지 않는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나타샤는 아무 데도 가려 하지 않고 그림자처럼 하릴없이 침울하게 이 방 저 방 돌아다녔다.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흐느꼈고, 밤이면 들르곤 하던 어머니에게도 가지 않았다.


현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집에 계신가?” 하고 물었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타샤는 거울을 보고 있었지만 자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인 얼굴로 응접실에 뛰어 들어갔다.

“엄마, 볼콘스키가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엄마, 끔찍해요. 못 견디겠어요! 괴롭고…… 싶지 않아요! 전 어떡해요……?”


“아버지를 찾아뵙느라 요즘 계속 오지 못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의논을 해야 했습니다. 어젯밤에 막 돌아왔습니다.” 나타샤를 쳐다보고 나서 안드레이가 말했다.“백작 부인과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한 후 덧붙였다.

나타샤는 겁에 질려 애원하는 눈길로 안드레이 공작과 어머니를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백작 부인, 따님에게 청혼을 하러 왔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네.” 난 남편이 허락할 거라고 믿어요.” 백작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 아버님은…….”

“제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한 해가 지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 것을 허락의 조건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사실, 나타샤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1년은 너무 길군요!”"그 아이를 당신에게 보낼게요.” 백작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들어 온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았다. 자기 마음속에서 그녀에 대한 이전의 사랑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의 감정은 이전처럼 눈부시고 시적이지는 않았으나 더 진지하고 더 강했다.

"한 해가 지나기 전에는 결혼할 수 없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서하십시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나 젊고, 나는 이미 인생을 너무나 많이 겪었습니다. 난 당신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모릅니다.”


“나의 행복을 미루는 이 1년이 나에겐 몹시 힘들겠지만…….” 안드레이 공작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을 시험하게 될 겁니다. 한 해가 지난 후에 날 행복하게 해 주길 부탁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우리의 약혼은 비밀로 남을 겁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을…….” 안드레이 공작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꼬박…… 1년이라고요!” 갑자기 나타샤가 말했다. 결혼이 한 해 연기된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은 것이다. “아니, 왜 한 해를? 어째서 한 해를……?” 안드레이 공작은 결혼이 연기된 이유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나타샤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공작은 얼굴 표정으로 그 결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해요! 1년을 기다리다가 난 죽을 거예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건 너무해요.” 그녀는 약혼자의 얼굴을 쳐다보고 연민과 의혹의 표정을 읽었다.“아니, 아니에요. 뭐든 하겠어요.” 그녀는 눈물을 뚝 그치고 말했다. “난 너무 행복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약혼한 두 남녀를 축복했다.



24


약혼식은 없었고, 볼콘스키와 나타샤의 약혼 소식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안드레이 공작이 그러기를 고집했다. 자기 때문에 결혼이 연기되었으므로 모든 괴로움도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의 말로 영원히 속박했지만 나타샤를 구속하고 싶지는 않으니 완전한 자유를 허락한다고 말했다. 물론 부모도 나타샤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청혼한 날 이후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 사이에는 예전과 전혀 다른 친밀하고 꾸밈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마치 이제껏 서로를 몰랐던 듯했다. 그도 그녀도 그들이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회상하기를 좋아했다. 이제 두 사람은 자신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느꼈다.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전날, 안드레이 공작은 무도회 이후로 로스토프가를 한 번도 찾지 않은 피에르를 데려왔다. 피에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타샤는 소냐와 함께 체스 테이블 앞에 앉아서 함께 두자며 안드레이 공작을 불렀다. 그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오래전부터 베주호프를 알지요?” 그가 물었다. “그를 좋아합니까?”

“네, 훌륭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몹시 우스꽝스러워요.”

“실은 그에게 우리의 비밀을 고백했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마드무아젤 소피, 무슨 일이 있든 그에게만 조언과 도움을 구하십시오. 아주 멍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이지만 황금 심장 그 자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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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별 인사를 하며 그녀의 손에 마지막 입맞춤을 하던 순간에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떠나지 말아요!” 정말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그 후로 그가 오래도록 기억했던 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가 떠나고 2주가 지나자 그녀는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마음의 병에서 깨어나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다만 아이들이 오랜 병을 앓고 난 후에 달라진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듯, 그녀의 정신적 용모는 달라져 있었다.


25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 공작의 건강은 아들이 떠나고 지난 한 해 몹시 약해졌다. 성격도 전보다 훨씬 더 신경질적이 되었고, 이유 없이 터뜨리는 격렬한 분노는 대부분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쏟아졌다. 그는 가능한 한 더 잔인하게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애써 샅샅이 찾는 것 같았다.


겨울에 안드레이 공작이 리시예 고리를 다녀갔다. 마리야 공작 영애가 오랫동안 그에게서 보지 못한, 쾌활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무언가 일어났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와 무언가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마리야 공작 영애는 출발을 앞두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불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안드레이 공작이 떠난 직후 마리야 공작 영애는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 줄리 카라기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줄리는 튀르크에서 전사한 오빠의 상중에 있었다.


슬픔은 우리의 공통된 운명인가 봐요, 사랑하는 다정한 친구 줄리.
당신의 상실은 너무 끔찍해요. 당신들을 사랑하시면서도 당신과 당신의 훌륭한 어머님을 시험하시려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네요. 아, 나의 친구, 종교가, 아니 오직 종교만이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있어요.

나의 친구, 당신에게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오직 나에게 삶의 규범이 된 복음의 진리, 즉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도 그분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당신이 납득하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그분의 뜻을 이끄는 것은 오직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뿐이에요. 그러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죠.

아버지의 건강이 눈에 띄게 쇠약해졌어요. 아버지는 반박을 참지 못하시고 성마른 성격이 되셨어요. 당신이 알다시피 그 짜증은 주로 정치적 사안을 향해 있어요. 아버지는 부오나파르트가 유럽의 모든 군주들과, 특히 위대한 예카테리나의 손주인 우리 군주와 대등하게 일을 처 리한다는 생각을 못 견뎌 하세요!

우리 가족의 삶은 오빠 안드레이가 왔던 일만 빼면 예전과 다 름없어요. 내가 이미 썼듯이 그는 최근에 아주 많이 변했어요. 큰 슬픔을 겪은 후에 그는 올해 들어서야 겨우 이제 정신적으로 완전히 되살아났어요. 그는 내가 알던 어릴 적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황금 심장을 가진 선하고 다정한 사람으로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어요. 자기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해요.

당신이 편지에 쓴, 오빠와 작은 로스토바가 결혼할 거라는 그릇된 가짜 소문은 특히 놀랍네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첫째, 내가 알기로 그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실의 슬픔이 가슴에 너무 깊이 뿌리내려서 그녀에게는 후임자를, 우리 작은 천사에게는 계모를 선사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할 거예요. 둘째, 내가 아는 한, 그 아가씨는 안드레이 공작이 좋아할 만한 부류의 여성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말할게요. 난 그러길 바라지 않아요. 잘 있어요.
마리


26


한여름에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안드레이 공작이 스위스에서 보낸 생각지도 못한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그는 뜻밖의 이상한 소식을 그녀에게 전했다. 자신과 로스토바의 약혼 사실을 밝혔던 것이다. 편지는 온통 약혼녀에 대한 사랑의 환희와 누이에 대한 다정한 우애와 믿음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쓰기를, 당시에는 일이 지금처럼 완전히 정해진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한 해의 기간을 정해 주셨어. 이제 이미 여섯 달, 정해진 기간의 절반이 지나갔네. 나의 결심은 어느 때보다 더 확고해. 의사들이 이곳 온천에 붙잡아 두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러시아에 있었을 거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귀국을 세 달 더 미루어야 해. 아버지께서 이 모든 일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기간을 세 달 단축하는 데 동의하실 가망이 있는지 나에게 알려 다오.”


많은 망설임과 의혹과 기도 끝에 공작 영애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했다. 다음 날 노공작은 차분하게 말했다.

“오빠에게 편지를 쓰거라. 기다리라고, 내가 죽을 때까지……. 머지않았다. 곧 자유롭게 해 줄 게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가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안드레이 공작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도 그 생각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주며 오빠를 위로했다.



사람은 저마다 개인적인 희망이 필요한 터라 마리야 공작 영애의 영혼 가장 깊숙한 은밀한 곳에는 삶에서 크나큰 위안을 주는 염원과 희망이 숨어 있었다. 하느님의 사람들, 공작 몰래 그녀를 찾아오던 유로디비와 순례자들이 그 기쁜 염원과 희망을 주었다.


여자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종종 그들에게는 기계적인 말이지만 그녀로서는 깊은 의미로 충만한 그들의 단순한 말에 흥분해서 몇 번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집에서 달아날 마음을 먹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특히 어린 코코를 보면 결심이 약해져서 조용히 흐느끼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녀는 하느님보다 아버지와 조카를 더 사랑했다.


<제2권 제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