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제4부
제4부
1
성서에서는 타락하기 이전 태초의 인간에게는 노동의 부재, 무위가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무위에 대한 사랑은 타락한 인간에게도 똑같이 남았다. 모든 구성원이 그런 의무적이고 흠잡을 데 없는 무위를 누리는 계층이 있다. 바로 군인 집단이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1807년 이후 파블로그라드 연대에서 계속 복무하며 바로 그런 더없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데니소프에게 인계받은 기병 중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1810년 그는 나타샤가 볼콘스키와 약혼했다는 것과, 혼인은 노공작이 허락하지 않아서 한 해 뒤에 한다는 것을 알리는 가족의 편지를 받았다. 그해 봄 그는 어머니가 백작 몰래 쓴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가 그를 집으로 가도록 설득했다. 그녀는 모든 영지가 경매에 넘어가서 거지가 될 것이라고 썼다. 백작이 너무 나약하고 미텐카를 너무 믿은 탓에, 모두가 그를 속이는 탓에 모든 것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 휴가증이 나왔다. 연대뿐 아니라 여단에서도 동료 경기병들이 한 사람당 15루블씩 비용을 대서 로스토프에게 만찬을 베풀어 주었다. 로스토프는 바소프 소령과 트레파크를 추었다. 술 취한 장교들이 로스토프를 헹가래 치고 얼싸안았다가 떨어뜨렸다. 제3중대 병사들이 한 번 더 그를 헹가래 치며 “우라!”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런 다음 로스토프를 썰매에 태워 첫 번째 역참까지 배웅했다.
니콜라이는 누이를 보며 종종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약혼자와 떨어져 있는 사랑에 빠진 약혼녀로는 보이지 않았다.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온화하고 차분하고 명랑했다. 그것은 니콜라이를 놀라게 했고, 볼콘스키의 청혼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의 운명이 이미 정해졌다고 믿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와 안드레이 공작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는 이 혼인에 뭔가 잘못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
집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니콜라이는 어디 가느냐는 나타샤의 질문에 화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고 눈썹을 찌푸린 채 곁채에 사는 미텐카에게 가서 총결산을 요구했다. 이 총결산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니콜라이는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미텐카보다도 훨씬 더 몰랐다. 미텐카의 이야기와 회계 보고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젊은 백작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며 빗발치듯 쏟아지는 욕과 무시무시한 말이 들렸다.
"강도! 은혜도 모르는 놈! 이 개새끼를 난도질해 버릴 테다. 아버지 몰래…… 도둑질이나 하고, 이 악당 놈아.”
사람들은 얼굴이 온통 벌겋고 눈에 핏발 선 젊은 백작이 미텐카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질질 끌어내어 말을 하는 사이사이 적당한 때를 골라 발과 무릎으로 날렵하게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꺼져! 더러운 놈, 여기에 네놈 냄새도 남기지 마!”라고 고함치는 모습을 조금 전 못지않게 흡족하고도 두려운 심정으로 보았다.
다음 날 노백작이 아들을 한쪽으로 불러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다, 얘야, 공연히 혈기를 부렸더구나! 미텐카에게 전부 들었다.”
"넌 그가 7백 루블을 기입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는데, 그 금액은 이월된 거야. 그다음 장을 보지 않은 게야.”
“아버지, 그자는 더러운 놈이에요. 도둑이라고요. 전 알아요. 그리고 이미 끝난 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시면 그자에게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니콜라이는 이후로는 더 이상 사무에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 백작 부인이 아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2천 루블짜리 어음이 있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니콜라이의 생각을 물었다.
"어머니가 이 일이 제게 달렸다고 하셨으니까. 전 안나 미하일로브나를 좋아하지 않고, 보리스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한때 우리 친구였고, 또 가난하잖아요. 이렇게 하죠!” 그러고는 어음을 찢어 버려, 이 행동으로 노백작 부인에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3~6 [사냥터]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8월 말에는 검은 겨울 경작지와 그루터기들 사이에서 아직 초록의 섬으로 남아 있던 언덕 꼭대기와 숲이 선명한 초록의 가을 파종 작물들 사이에서 금빛과 선명한 붉은빛의 섬이 되었다. 회색 토끼가 이미 털의 절반을 잃었고(털을 갈았고), 여우 새끼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으며, 젊은 늑대들은 개보다 더 커졌다. 사냥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열정적인 젊은 사냥꾼인 로스토프의 개들은 이미 사냥에 알맞은 체격이 된 데다 발덧이 날 정도여서 사냥꾼 전체 회의 때 개들에게 사흘간 휴식을 주고 9월 16일에 아직 손을 타지 않은 늑대 새끼들이 있던 두브라바(참나무 숲)를 시작으로 사냥을 떠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늘 대규모 사냥을 해 오다 이제는 사냥 전반에 대한 관리를 아들에게 맡긴 노백작은 9월 15일에는 들뜬 기분으로 자신도 떠날 채비를 했다. 한 시간 후 사냥대 전원이 현관 계단 앞에 모였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돈 지방 적황색 말을 타고 자신의 사냥개들을 휘파람으로 이끌며 탈곡장을 지나 오트라드노예 금렵구로 이어지는 들판을 향했다. 주인의 사냥개들과 합쳐 130마리가량의 개와 스무 명의 말 탄 사냥꾼이 들판으로 나왔다.
1베르스타 남짓 나아가자 로스토프 사냥대의 맞은편으로 개들을 거느린 말 탄 사람 다섯 명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희끗한 콧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활기차고 잘생긴 노인이 앞장서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노인이 다가오자 니콜라이가 말했다.
“당연하지……! 내 그럴 줄 알았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는 니콜라이의 먼 친척으로 로스토프가의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이웃이었다.)
사냥개들을 합친 뒤, 아저씨와 니콜라이는 나란히 말을 달렸다. 숄을 두르고 그 아래로 생기 넘치는 얼굴과 반짝이는 눈을 드러낸 나타샤가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페탸와, 보모가 그녀에게 붙인 사냥꾼이자 조마사인 미하일로가 그녀와 동행했다. 나타샤는 자신의 검은 아랍치크 위에 능숙하고 자신만만하게 앉아 정확한 손놀림으로 손쉽게 고삐를 죄어 말을 세웠다.
그날 사냥에서, 사냥개들은 새끼 늑대 두 마리를 잡았고, 보르조이 개들은 세 마리를 잡았다. 사냥꾼들이 포획물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모여들어서는 다들 니콜라이가 잡은 큰 늑대를 보러 다가왔다. 늑대는 입에 막대기를 문 채 이마가 넓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유리 같은 큰 눈동자로 자신을 에워싼 개들과 사람들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건드리면 늑대는 묶인 다리를 부르르 떨며 사나우면서도 순박하게 모두를 바라보았다.
7
저녁이 되어 니콜라이는 집에서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냥은 그만하고 미하일롭카 마을에 있는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어 가라는 아저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너희들이 우리 집에 온다면, 당연하지! 그러는 편이 더 좋을 게다. 봐라, 날씨가 축축해.” 아저씨가 말했다. “푹 쉬고 나서 백작 영애는 드로시키에 태워 데려가는 편이 낫지.” 아저씨의 제안대로 드로시키를 끌고 오도록 오트라드노예로 사냥꾼 한 명을 보내고, 니콜라이는 나타샤와 페탸와 함께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현관방을 지나 손님들을 접이식 탁자와 붉은 의자들이 있는 작은 홀로, 그다음엔 둥근 자작나무 테이블과 소파가 있는 응접실로, 그다음에는 찢어진 소파와 너덜너덜한 양탄자가 있고 수보로프, 집주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군복을 입은 자신의 초상화가 걸린 서재로 이끌었다. 서재에는 담배와 개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잠시 후 아저씨가 카자킨과 헐렁한 파란 바지 차림에 짧은 부츠를 신고 들어왔다. 나타샤는 아저씨가 오트라드노예에 왔을 때 자신이 놀라움과 조롱의 눈길로 보았던 그 복장이 프록코트와 연미복에 결코 뒤지지 않는 진정한 의복이라고 느꼈다. 아저씨도 즐거운 모습이었다.
“젊은 백작 영애가 참 대단해. 당연해. 이런 아가씨는 본 적이 없어!” 그는 로스토프에게 긴 담뱃대가 딸린 파이프 하나를 건네고 짧게 자른 다른 담뱃대를 세 손가락에 끼고 익숙한 동작으로 채우며 말했다.
“온종일 말을 타고 돌아다니다니. 한창때 남자라 해도 힘든 법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아저씨는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먼지를 훅 불더니 앙상한 손가락으로 기타의 몸통 앞부분을 통통 두들겨 보고는 조율을 하고 안락의자에 앉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다소 연극적인 몸짓으로 왼쪽 팔꿈치를 옆으로 젖히고) 기타의 목 조금 위쪽을 잡은 후 아니시야 표도로브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바리냐 연주를 시작하지 않고 낭랑하고 청아한 한 화음을 잡았다. 그러고는 리듬감 있게, 조용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잘 알려진 노래 「포도를 따라」를 아주 느린 템포로 꾸미기 시작했다.
“자, 조카!” 아저씨가 화음을 뜯던 손을 나타샤를 향해 흔들며 외쳤다.
나타샤는 걸친 숄을 벗어 던지고 아저씨 앞으로 달려 나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는 어깨로 동작을 취하고 섰다. 이민 온 프랑스 여자에게 교육받은 백작 영애가 자신이 숨 쉬어 온 러시아 공기에서 그 정신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빨아들였을까? 오래전 숄 댄스에 밀려난 게 분명한 그런 몸짓을 어디에서 익혔을까? 그러나 이 정신과 몸짓은 모방되지 않고 학습되지 않는 러시아적인 것, 아저씨가 그녀에게 기대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것을 해냈다. 어찌나 정확하게, 어찌나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해냈던지 그 춤에 필요한 숄을 지체 없이 나타샤에게 건넸던 아니시야 표도로브나는 자신에게 너무도 낯선 이 실크와 벨벳에 파묻혀 자란 가녀리고 우아한 백작 영애를 보면서, 소리 내어 웃으며 눈물을 지었다.
9시가 지나서 나타샤와 페탸를 데리고 가기 위해 리네이카(긴 사륜마차)와 드로시키 그리고 그들을 찾으라고 보낸 말 탄 사람 셋이 왔다. 백작과 백작 부인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몹시 불안해했다고 심부름꾼은 말했다. 아저씨가 나타샤의 몸을 단단히 감싸 주고 전혀 새로운 다정한 모습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8
일리야 안드레이치 백작은 귀족회장 직을 사임했다. 그 직책이 지나치게 많은 지출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타샤와 니콜라이는 부모가 몰래 걱정스럽게 의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로스토프가의 화려한 저택과 모스크바 근교의 영지가 매각되리라는 소문도 들었다.
백작부인의 여성적 관점에서 떠오르던 수단은 단 하나, 니콜라이가 부유한 신붓감과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만약 자신이 찾아 준 짝을 니콜라이가 거절한다면 집안 형편을 바로잡을 가능성과 영원히 결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작 부인은 모스크바에 있는 카라기나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그녀의 딸과 자기 아들의 결혼을 제안했고, 그녀로부터 호의적인 답변을 받았다. 카라기나는 자신은 찬성한다면서 모든 것은 딸의 의향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카라기나는 니콜라이를 모스크바로 초대했다.
‘그래, 어쩌면 난 가난한 아가씨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니콜라이는 속으로 말했다. ‘어쩌지, 재산 때문에 감정과 명예를 희생해야 하나? 어머니가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워.’ 그는 생각했다. ‘소냐가 가난하니까 난 그녀를 사랑해서도 안 되고, 그녀의 신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에 응해서도 안 되나? 하지만 난 분명 무슨 인형 같은 줄리보다 소냐와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할 거야.
니콜라이는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다. 백작 부인은 그와 결혼에 대한 말을 더 이상 나누지 않았고, 아들과 지참금 없는 소냐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징후를 보며 슬픔에, 때로는 분노에 차올랐다. 백작 부인은 종종 이유 없이 소냐를 멈춰 세우고, 잔소리를 하고, “이봐요, 아가씨”라고 부르며 소냐에게 불평하고 트집을 잡지 않을 수 없던 자신을 질책했다.
로마로부터 약혼자인 안드레이 공작의 네 번째 편지가 왔다. 편지에서 그는 따뜻한 기후 속에 예기치 않게 상처가 덧나지만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부득이 내년 초까지 출발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나타샤는 여전히 약혼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여전히 평온을 느꼈으며, 여전히 삶의 모든 기쁨에 풍부한 감수성을 드러냈다.
9~12 [크리스마스 주간]
크리스마스 주간이 찾아왔다. 축일 예배 외에, 이웃들과 하인들의 엄숙하고 지루한 축하 인사 외에, 모두가 입은 새 옷 외에 크리스마스 주간을 기념할 만한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바람 한 점 없는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도, 한낮의 밝고 눈부신 햇살 속에서도, 겨울밤의 별빛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이 주간을 기념하라는 요구가 느껴지고 있었다.
축일 주간의 세 번째 날 저녁 식사가 끝나자 가족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나타샤가 응접실에 들어와 소냐에게 다가가 그녀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말없이 멈춰 섰다.
“왜 집 없는 애처럼 돌아다녀?”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 필요해?”
“그 사람이 필요해요.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이 필요해요.” 나타샤는 웃음기 없이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엄마!” 그녀가 말했다. “제게 그이를 주세요. 엄마, 어서요, 어서 주세요.” 그러면서 애써 울음을 참았다.
그녀는 식탁 앞에 앉아 어른들과 또한 식탁으로 온 니콜라이의 대화를 들었다.‘맙소사, 이럴 수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대화. 아빠가 똑같이 찻잔을 들고 똑같이 후후거려!’ 나타샤는 여전히 똑같은 가족들의 모습에 자기 안에 치밀어 오르던 혐오감을 두려움과 함께 느끼며 생각했다.
차를 마신 후 니콜라이와 소냐와 나타샤는 소파가 있는 방으로, 언제나 그들의 가장 정다운 이야기가 시작되던, 자신들이 사랑하는 구석으로 갔다.
"오빠도 그런 적 있어?” 소파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나타샤가 오빠에게 물었다. “이제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야. 오빠도 그런 적 있어? 그리고 그럴 땐 따분하다기보다 슬프지 않아?”
“물론!” 그가 말했다. “모든 게 좋고 다들 즐거운데, 내 머리에는 이 모든 게 다 지겹고 다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어."
소냐는 처음 왔을 때에 대한 두 사람의 회상에만 참여했다. 그녀는 니콜라이의 재킷에 작은 끈들이 달려 있었는데 보모가 그녀도 그 끈에다 꿰매 버리겠다고 말해서 니콜라이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억나. 네가 양배추 밑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곤 했어.” 나타샤가 말했다. “내 기억에 그때 난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무척 난처했어.”
소파 방에서 대화가 한창일 때 딤믈레르가 들어와 구석에 놓인 하프로 다가갔다. 그가 덮개를 벗기자 하프는 음정이 맞지 않는 소리를 냈다.
“에두아르트 카를리치, 내가 좋아하는 무슈 필드의 녹턴을 연주해 줘요.” 응접실에서 노백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딤믈레르가 연주를 시작했다. 나타샤는 뒤꿈치를 들고 소리 나지 않게 테이블로 다가가 양초를 들어 밖에 내놓고 돌아와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았다. 방 안, 특히 그들이 앉은 소파 위는 어두웠다.
나타샤가 니콜라이와 소냐에게 다가앉으며 소곤소곤 말했다. “이렇게 추억을 떠올리고 떠올려서 다 떠올리고 나면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의 것까지 모두 떠올리는 경지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건 윤회야.” 늘 공부를 잘하고 모든 것을 기억하던 소냐가 말했다. “이집트인들은 우리 영혼이 동물들 안에 있었고 다시 동물들 속으로 들어갈 거라고 믿었어.”
“아니, 난 우리가 동물들 속에 있었다는 건 믿지 않아.” 나타샤는 음악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소곤소곤 말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우리가 천사였고, 이곳에도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모든 걸 기억하는 거지…….”
“만약 천사였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아래로 떨어졌겠어?” 니콜라이가 말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아래로 떨어진 게 아냐. 누가 오빠한테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어……? 내가 예전에 뭐였는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나타샤가 확신에 차서 반박했다. “사실 영혼은 불멸이잖아……. 그러니까 만약 내가 영원히 살게 된다면 난 예전에도 살았고, 영원 전부를 산 거야.”
“나타샤! 이제 네 차례야. 뭐든 불러 다오.” 백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 음모자들처럼 그러고 앉았어.”
“엄마! 별로 내키지 않아요.” 나타샤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 모두는, 심지어 젊지 않은 딤믈레르조차 대화를 중단하고 소파 방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타샤는 일어섰고, 니콜라이는 클라비코드 앞에 앉았다. 언제나처럼 홀 한가운데 서서 소리가 가장 잘 울리는 장소를 고른 나타샤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전에 오랫동안, 그리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날 밤처럼 노래한 적이 없었다. 나타샤가 노래를 다 부르기도 전에 환희에 찬 열네 살 페탸가 가장행렬이 왔다는 소식을 가지고 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타샤는 갑자기 멈추었다.
“바보!” 그녀는 동생에게 소리치고 의자로 달려가 털썩 쓰러져서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곰, 튀르크인, 선술집 주인, 마님 등 무시무시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로 가장한 하인들이 추위와 유쾌함을 몰고 와선 현관방에서 쭈뼛거리며 서로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뒤에 숨으며 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 그다음에는 점점 더 유쾌하고 더 화합된 모습으로 노래와 춤과 군무와 크리스마스 놀이를 시작했다.
30분 후 피즈미를 입은 노부인이 가장한 이들 틈에 끼어 홀에 나타났다. 니콜라이였다. 튀르크 여인은 페탸였다. 어릿광대는 딤믈레르, 경기병은 나타샤, 체르케스인은 코르크를 태워 콧수염과 눈썹을 그린 소냐였다. 가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그럽게 깜짝 놀라면서 못 알아본 척하고 칭찬을 해 주자 젊은이들은 분장이 너무 훌륭하니까 다른 누군가에게도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트로이카에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잘 닦인 길을 달리고 싶었던 니콜라이는 하인들 중에서 가장한 사람들을 열 명 남짓 데리고 아저씨 댁에 가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백작 부인이 말했다. “
“안 돼. 그 댁에는 몸 돌릴 데도 없어. 정 그렇다면 멜류코프 댁에 가렴.” 멜류코바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둔 과부로, 가정 교사들과 함께 로스토프가에서 4베르스타 떨어진 곳에 살았다.
트로이카 두 대는 승용이고, 가운데에 오룔의 경주마를 매어 놓은 세 번째 트로이카는 노백작의 것이고, 키가 작고 털이 덥수룩한 검은 말을 가운데에 매어 놓은 네 번째 트로이카는 니콜라이의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노파 차림 위에 경기병 망토를 덧입고 허리띠를 맨 뒤 고삐를 짧게 쥐고 자신의 썰매 한가운데에 섰다.
니콜라이의 썰매에는 나타샤, 소냐, 마담 쇼스 그리고 하녀 두 명이 탔다. 니콜라이는 소냐를 돌아보고 얼굴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검은 눈썹과 콧수염이 있는 완전히 새롭고 사랑스러운 얼굴이 달빛 속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흑담비 모피 밖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이 얼굴이 전에는 소냐였는데.’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니콜라이는 다시 말들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달빛에 흠뻑 젖어 있고 별들이 흩뿌려진 마법의 평원이었다. ‘자하르가 왼쪽으로 가라고 소리치는데? 왜 왼쪽이야?’ 니콜라이는 생각했다.‘우리가 정말 멜류코프가로 가고 있는 거야? 정말 여기가 멜류콥카야? 우리는 하느님만 아실 곳을 가고 있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하느님만 아실 일이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참 이상하고도 좋구나.’ 그는 썰매 안을 돌아보았다.
“저것 봐, 콧수염과 눈썹이 온통 하얘.” 썰매에 앉은, 콧수염과 눈썹이 가느다란 기묘하고 아름다운 낯선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사람이 나타샤였던 것 같네.’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저 여자는 마담 쇼스이고. 아닐지도 몰라. 수염 난 체르케스인은 누군지 모르겠어. 하지만 난 그녀를 사랑해.’
“다들 춥지 않아요?” 그가 물었다. 그들은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넓고 활달한 여성인 펠라게야 다닐로브나 멜류코바는 안경을 쓰고 단추가 없는 실내복 차림으로 딸들에게 둘러싸여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딸들이 따분해하지 않도록 애쓰는 중이었다. 경기병, 마님, 마녀, 어릿광대, 곰 등이 현관방에서 기침을 하고 추위에 성에로 덮인 얼굴을 닦으며 하인들이 서둘러 양초를 밝힌 홀로 들어왔다. 어릿광대 딤믈레르가 마님 니콜라이와 춤의 무대를 열었다.
사람들이 반지로 놀든, 끈으로 놀든, 은화로 놀든, 지금처럼 이야기를 나누든 니콜라이는 소냐 곁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코르크 콧수염 덕분에 그녀를 온전히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소냐는 이날 저녁 명랑하고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웠다. 니콜라이는 그런 모습의 그녀를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냐는 헛간에 가기 위해 복도로 나갔다. 니콜라이는 응접실이 덥다고 말하며 서둘러 앞쪽 현관 계단으로 갔다. 사실 집 안은 사람들로 붐벼 후덥지근했다. 바깥에는 꿈쩍하지 않는 똑같은 추위와 똑같은 달이 있었다.
‘난 바보야, 바보! 지금까지 뭘 기다린 거야?’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현관 계단을 뛰어 내려가 뒤쪽 현관 계단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집 모퉁이를 돌았다. 그는 소냐가 이곳을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소냐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 걸었다. 그를 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그에게서 두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본 그도 예전에 그녀가 알던 모습이, 그녀가 언제나 조금 두려워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여자 옷차림으로 소냐에게 새롭게 느껴지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냐는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완전히 다르면서도 여전히 똑같아.’ 니콜라이는 달빛을 환히 받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덮은 외투 밑으로 두 손을 넣어 그녀를 안아 바짝 당기고는 코르크 냄새가 나는 콧수염 아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소냐는 작은 두 손을 꺼내 양쪽에서 그의 뺨을 잡았다. “소냐……!” “니콜라……!” 그들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들은 헛간으로 달려갔다가 각자 다른 현관 계단으로 돌아갔다.
모두 펠라게야 다닐로브나의 집을 떠나 되돌아올 때 언제나 모든 것을 보고 알아차리던 나타샤는 루이자 이바노브나와 자신은 딤믈레르와 한 썰매에 타고, 소냐는 니콜라이와 하녀들과 타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니콜라이는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앞지르려 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썰매를 몰았다. 그는 그 기묘한 달빛 속에서 계속 소냐를 응시하며 모든 것을 변모시키는 달빛 아래 눈썹과 콧수염 밑으로, 이젠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한 자신의 예전과 지금의 소냐를 찾았다.
도중에 니콜라이는 마부에게 고삐를 쥐게 하고 잠시 나타샤의 썰매로 달려가 횡목 위에 섰다.
“나타샤.” 그는 프랑스어로 속삭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있잖아, 나, 소냐에 대해 마음을 정했어.”
“소냐한테 말했어?” 나타샤가 갑자기 기쁨에 환히 빛나는 얼굴로 물었다.
“아, 너, 콧수염과 눈썹을 그렇게 그려 놓으니까 정말 이상하다, 나타샤! 기뻐?”
“너무 기뻐. 너무 기뻐! 난 전부터 오빠한테 화가 났거든. 오빠에게 말은 안 했지만 오빠가 소냐에게 보여 준 행동은 나빴어. 니콜라,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난 혐오스러운 인간일 때가 있곤 하지만 소냐를 내버려 두고 혼자 행복해지는 건 양심에 꺼려져.” 나타샤는 말을 계속했다. “지금 난 너무 기뻐. 자, 소냐에게 달려가.”
니콜라이는 여동생에게서도 예전에 보지 못한 새롭고 특별하고 매혹적으로 부드러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나타샤, 뭔가 마법 같지, 어?”
“응.” 그녀가 대답했다. “오빠, 아주 잘했어.”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멜류코프가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들려준 후 두 아가씨는 방으로 갔다. 그들은 옷을 벗고서, 그러나 코르크 수염은 지우지 않고서 한참 동안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어떤 결혼 생활을 할지, 남편들끼리 어떻게 친해질지, 얼마나 행복할지를 말했다.
나타샤의 테이블에는 두냐샤가 준비해 둔 거울들이 저녁부터 계속 놓여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언제 이루어질까? 난 두려워.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그렇게 되면 너무 좋잖아!” 나타샤가 일어나 거울로 다가가며 말했다.
“앉아 봐, 나타샤. 어쩌면 넌 그를 보게 될지도 몰라.” 소냐가 말했다. 나타샤는 초에 불을 붙이고 앉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보는데,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일까?” 그녀가 말했다.“자, 앉아 봐, 소냐. 넌 오늘 꼭 해야 해.” 그녀가 말했다. “단, 날 대신해서……. 오늘 난 너무 무서워!”
소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눈을 깜박이며 막 일어서려 했을 때 “꼭!”이라고 말한 나타샤의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그래, 그를 봤어.” 소냐가 말했다.
“어땠어? 어땠는데? 서 있어, 아니면 누워 있어?”
“아니, 내가 본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가 누워 있는 게 보였어.”
“안드레이가 누워 있어? 그이가 아프니?” 나타샤가 겁먹은 눈으로 친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 반대야. 매우 즐거운 얼굴이었어. 그리고 그가 나를 돌아보았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말한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냐! 그가 언제 돌아올까? 난 언제 그이를 보지! 오, 하느님! 그이 때문에, 나 자신 때문에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 난 모든 게 두려워…….” 나타샤는 그렇게 말하고 소냐의 위로에 한마디 대꾸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촛불을 끄고 나서도 오랫동안 침대 위에 꼼짝 않고 누워 얼어붙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차디찬 달빛을 바라보았다.
13
크리스마스 주간이 지나자마자 니콜라이는 어머니에게 소냐에 대한 사랑과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밝혔다. 소냐와 니콜라이 사이에서 일어나던 일을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이 고백을 예감하던 백작 부인은 아들의 말을 묵묵히 다 듣고 나서, 그는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자기도 아버지도 그런 결혼은 축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백작은 머뭇대며 니콜라이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계획을 단념하라고 부탁했다. 니콜라이가 자신의 언약을 바꿀 수 없다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고는 무안한 듯 이내 말을 중단하고 백작 부인에게 가 버렸다. 아들과 충돌할 때마다 어김없이 백작은 집안 형편을 혼란에 빠뜨린 죄책감을 아들 앞에서 떨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부유한 신붓감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지참금이 없는 소냐를 선택한 아들에게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며칠 뒤에 백작 부인은 소냐를 불러 그녀 자신도 소냐도 예상치 못한 잔혹한 태도로 아들을 유혹하고 은혜를 저버린 것에 대해 조카딸을 나무랐다. 니콜라이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어머니와 담판을 지으러 갔다. 니콜라이는 어머니에게 자신과 소냐를 용서하고 결혼을 승낙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소냐가 괴롭힘을 당하면 당장 비밀리에 결혼해 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연대에서 자기 일을 정리한 후 퇴역하고 돌아와 소냐와 결혼하겠다는 확고한 계획을 품은 니콜라이는 부모와 의견 충돌이 있는 상태에서 슬프고도 심각한, 그러나 스스로 느끼기에 열렬한 사랑에 빠진 모습으로 1월 초 연대로 떠났다. 니콜라이가 떠나자 로스토프가는 어느 때보다 슬픔에 잠겼다. 백작 부인은 정신적 충격으로 몸져누웠다. 백작은 결정적인 대책을 요구하던 열악한 집안 형편으로 어느 때보다도 근심에 싸여 있었다.
백작 부인의 건강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가는 것을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었다. 지참금을 마련해야 했고 집을 매각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올겨울 니콜라이 안드레이치 공작이 거처하던 모스크바에 먼저 들르리라 예상했다. 나타샤는 그가 이미 왔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백작 부인은 시골에 남고, 백작이 소냐와 나타샤를 데리고 1월 말 모스크바로 떠났다.
<제2권 제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