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9)

제3권 제1부

by Andy강성

[제3권]

제1부

1


1811년 말부터 서유럽의 군비 강화와 병력 집결이 시작되었고, 1812년에는 이 병력, 즉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군대를 수송하고 식량을 보급하는 사람들을 계산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러시아 국경 지대로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병력도 1811년부터 러시아 국경 지대로 집결하고 있었다. 6월 12일에 서유럽의 병력이 러시아 국경을 넘으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무엇이 이 예상치 않은 사건을 초래했을까? 역사가들은 '순진한 자신만만함으로 올덴부르크 대공이 당한 모욕, 대륙 봉쇄령 위반, 나폴레옹의 권력욕, 알렉산드르의 단호함, 외교관들의 실책' 등이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메테르니히나 루먄체프나 탈레랑만이라도 알현식 후 성대한 연회가 열리기 전에 좀 더 노력해서 좀 더 정교하게 서류를 작성했거나, 혹은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에게 “폐하, 나의 형제여, 나는 올덴부르크 대공에게 공국을 돌려주는 데 동의합니다”라고 썼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테르니히와 탈레랑 출처 구글 이미지]


동시대 사람들에게 사태가 그런 식으로 비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전체 규모 속에서 완결된 사건의 거대함을 성찰하며, 그 단순하고도 무시무시한 의미를 규명하려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 원인들이 불충분해 보인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탐하고, 알렉산드르가 단호하고, 영국의 정책이 교활하고, 올덴부르크 대공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죽이고 괴롭혔다는 것은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역사에서 숙명론은 비합리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불가피하다. 우리가 그런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비합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역사적이고 인류 전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일단 일어난 행동은 돌이킬 수 없고, 그 행위는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무수한 행위들과 엮여 역사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사람은 사회의 위계에서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결부될수록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되고, 그 행동의 숙명과 필연은 더욱 분명해진다.

“왕의 마음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잠언' 21장 1절의 구절 인용)

황제는 역사의 노예다. 역사, 즉 인류의 무의식적・공동적・무리적인 삶은 황제들의 삶의 모든 순간을 자체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이른바 위대한 사람들이란 사건 자체와는 그 무엇보다 관련이 적은 상표처럼, 사건에 명칭을 부여하는 상표이다. 그들 각각의 행동은 스스로에게는 자기 의지에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자기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며, 그것은 역사의 모든 진행 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영원 전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2


5월 29일, 나폴레옹은 드레스덴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3주 동안 공작들, 대공들, 왕들, 심지어 한 명의 황제까지 포함된 궁정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 그는 시동들, 부관들,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여섯 필의 말이 끄는 여행용 마차를 타고 대로를 따라 포젠, 토른, 단치히, 쾨니히스베르크로 향했다. 6월 10일 그는 군대를 따라잡았고, 그를 위해 빌코비스키 숲속의 어느 폴란드인 백작의 영지에 마련된 숙소에서 묵었다.


12일 이른 아침 그는 네만강의 가파른 왼쪽 강변에 설치한 막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빌코비스키 숲에서 흘러나와 네만강에 설치된 세 다리를 건너가는 자신의 군대를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 군인들은 황제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알고, 눈으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산 위의 막사 앞에 프록코트와 모자를 차려입고 수행원과 떨어져 서 있는 형상을 발견했을 때, 모자를 벗어 위로 던지며 외쳤다. “황제 만세!”


6월 13일, 나폴레옹은 그다지 크지 않은 아라비아산 순종 말에 올라타고 네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가운데 하나로 질주했다. 그는 보트들을 연결해 만든 흔들리는 부교들 중 하나를 지나 맞은편으로 건너간 뒤, 말을 왼쪽으로 홱 돌려 코브노 방향으로 질주했다. 강폭이 넓은 빌리야강에 다다라 그는 강변에 서 있던 폴란드 창기병 연대 옆에 멈췄다. “만세!” 폴란드인들 역시 그를 보기 위해 서로 밀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원 표시가 네만강]


얕은 여울을 찾아 맞은편으로 건너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폴란드 창기병 연대장은 잘생긴 노인이었는데, 그는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진 채 말을 더듬으면서 부관에게 얕은 여울을 찾는 대신 자신의 창기병 부하들과 함께 강을 헤엄쳐 건너도 되는지 물었다. 그러고는 창기병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한 뒤 말에 박차를 가하며 강 쪽으로 달려갔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창기병 마흔 명가량이 익사했다.


연대장과 몇몇 사람이 강을 헤엄쳐 건너 맞은편 강변으로 간신히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흠뻑 적은 옷을 입은 채 기어 나오자마자, 이미 나폴레옹은 그곳에 없었으나 나폴레옹이 서 있던 자리를 감격에 차 바라보며 “만세!” 하고 외치면서, 그 순간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여겼다.


저녁 시간에 나폴레옹은 두 가지 명령을 (하나는 러시아로 수송하려고 준비한 러시아 위조지폐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작센인의 총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의 압수된 편지에서 프랑스군의 관리에 관한 정보가 발견되었다) 내리는 중간에 세 번째 명령을 내렸다. 쓸데없이 강으로 뛰어든 폴란드 연대장을 나폴레옹이 직접 거느리던 휘하 명예 군단(레지옹 도뇌르)에 전속시키라는 것이었다.

'파멸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의 이성을 빼앗아라.'(라틴어)


3


한편 러시아 황제는 벌써 한 달 넘게 빌나에서 사열과 기동 훈련을 주관하며 지내고 있었다. 전쟁을 위한 준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황제도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에서 왔던 것이다. 전체적인 작전 계획도 없었다. 3개 군대에는 저마다 총사령관이 있었지만 군대 전체를 통솔하는 총지휘관은 없었고, 황제도 이 직책을 맡지 않고 있었다.


폴란드의 대지주들, 궁정 신하들 그리고 황제가 직접 개최한 많은 무도회와 축하연이 열린 후, 6월에 군주를 보좌하던 폴란드인 시종 무관장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군주를 위해 만찬과 무도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빌나의 영주인 베니히센 백작은 이 연회를 위해 교외의 별장을 제공했다. 그래서 6월 13일, 자크레트에 있는 베니히센 백작의 교외 별장에서 무도회, 만찬, 뱃놀이 그리고 불꽃놀이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6월 13일, 자크레트에 있는 베니히센 백작의 교외 별장에서 무도회, 만찬, 뱃놀이 그리고 불꽃놀이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바로 그날, 나폴레옹이 네만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의 전위 부대가 카자크들을 격퇴하며 러시아 국경을 넘은 그날, 알렉산드르는 베니히센의 별장에서 시종 무관장들이 주최한 무도회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마주르카가 시작될 무렵 보리스는 군주의 최측근 가운데 하나인 시종 무관장 발라쇼프가 군주에게 바짝 붙어 뭔가를 말하자 군주의 얼굴에 놀라움의 표정이 나타났다. 군주가 서둘러 홀을 가로질러 갈 때 보리스는 군주가 발라쇼프와 지나가던 그때 아락체예프의 흥분한 얼굴을 보았다.



보리스가 따라 나갔을 때,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군주는 흥분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선전 포고 없이 러시아를 침범했다고! 내 영토에 무장한 적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만, 나는 그들과 화해하겠소!” 그가 말했다. 군주는 다시 홀로 들어가 30분가량 더 무도회에 머물렀다.


보리스는 프랑스 군대가 네만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맨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고, 덕분에 몇몇 중요한 인물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감춰진 많은 사실을 자신이 알 때도 있다는 점을 보여 줄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고위급 인사들의 평가 견해에서 더 높이 올라가는 기회도 얻었다.


다음 날 나폴레옹에게 보낼 편지가 작성되었다.


폐하, 나의 형제여! 내가 황제 폐하에 대한 나의 의무를 올곧은 마음으로 준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하의 군대가 러시 아 국경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어제 받았소. 페테르부르크에서 발송된 통첩도 지금 막 받았소만, 그 통첩에서 로리스통 백작은 이번 침공의 이유에 대해 폐하께서는 쿠라킨 공작이 여권을 청구한 때부터 나와 폐하 사이를 적대 관계로 여기고 있다고 알려 주었소. 바사노 대공이 여권 발부를 거절한 이유만으로는 내 대사의 행동이 공격의 이유가 되었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소. 그리고 실제로 그는 자신이 공포한 바와 같은, 그것에 대한 내 명령을 갖고 있지 않았소. 게다가 난 이 사실을 알자마자 즉시 쿠라킨 공작에게 맡겨진 책무를 예전처럼 계속 수행하도록 명령한 후, 그에게 나의 불만을 표명했소. 만약 폐하께서 이 같은 오해로 말미암아 우리 국민들의 피를 흘릴 작정이 아니시라면, 그리고 당신의 군대를 러시아 영토 밖으로 철군하는 데 동의한다면, 나는 벌어진 모든 지난 일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사이에 협약도 가능할 것이오. 반대의 경우, 나는 부득이 내 쪽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일으킨 적이 없는 이 공격을 격퇴할 수 밖에 없소. 폐하께서는 여전히 인류가 새로운 전쟁의 재앙을 피하도록 하실 수 있소.
(서명) 알렉산드르


4~7 [나폴레옹을 찾아가는 발라쇼프]


6월 13일 새벽 2시, 군주는 발라쇼프를 불러들여 나폴레옹 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읽어 준 후 이 편지를 프랑스 황제에게 직접 건네라고 명령했다. 발라쇼프를 파견하면서 군주는 무장한 적이 러시아 영토에 단 한 명이라도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결코 프랑스와 화해하지 않겠다는 말을 또다시 반복한 뒤 그 말을 나폴레옹에게 반드시 전하라고 명령했다. 군주는 그 말을 편지에는 쓰지 않았다.


6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나팔수 한 명과 카자크 두 명의 수행을 받으며 말을 타고 출발한 발라쇼프는 동틀 무렵 네만강의 러시아령 쪽에 주둔한 프랑스군의 전초 기지인 리콘티 마을에 도착했다. 발라쇼프 일행이 선술집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서자마자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언덕 아래쪽에서 나타났다.


프랑스군 대령 율너가 “나폴리 왕입니다”라고 정중하게 속삭였을 때 발라쇼프는 팔찌와 깃털 장식과 목걸이와 금장식을 휘감은 채 진중하면서도 연극적인 표정으로 마중 나온 기마병과 말 두 마리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실제 그는 나폴리 왕으로 불리는 조아생 뮈라였다.

"어때요, 장군, 사태가 전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요.” 그는 마치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다.

“전하.” 발라쇼프가 대답했다. “전하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러시아 황제께서는 전쟁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발라쇼프와 거닐며 나폴레옹 황제가 프로이센에서 군대를 철수해 달라는 요구 때문에 모욕을 느꼈고, 특히 그 요구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로 인해 프랑스의 품위가 모욕받은 그때 더 그렇다고 언급했다. 발라쇼프는 왜 그가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나폴레옹이라고 확신하는지를 말했다.

“아, 친애하는 장군!” 뮈라가 또다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두 황제께서 서로의 문제를 매듭짓고, 또 나의 의지에 반하여 시작된 이 전쟁이 가능한 한 빨리 종식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오.”


발라쇼프는 뮈라가 한 말로 미루어 매우 빨리 나폴레옹을 직접 알현할 수 있겠다고 예상하며 계속 나아갔다. 하지만 나폴레옹을 만나기는커녕 다음 마을에서도 전초선에서처럼 다부가 거느린 보병 군단의 보초병들이 그를 저지했고, 부름을 받고 나온 군단장의 부관이 그를 마을로 인도하여 다부 원수에게 안내했다.


다부는 나폴레옹 황제의 아락체예프였다. 아락체예프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잔혹했는데, 자신의 충성심을 잔혹함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연이라는 유기체에 늑대가 필요하듯, 국가라는 유기체의 메커니즘에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존재하고, 또 그들이 정부 수장의 측근에 있다는 사실이 비록 비합목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늘 존재하고 늘 나타나며 국가를 유지해 나간다.


발라쇼프는 농가 헛간에서 나무통에 걸터앉아 문서 작업을 하는 다부 원수를 (그는 계산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의 주된 만족과 필요는 삶의 생기와 마주쳤을 때, 그 생기 앞에 자신의 음울하고 집요한 활동을 눈에 띄게 하는 데 있다.

“당신의 꾸러미는 어디 있소?” 그가 말했다. “그것을 내게 주시오. 내가 황제께 보내겠소.”


발라쇼프는 황제의 편지가 든 꾸러미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부는 수신인의 서명을 읽었다.

“나에게 경의를 표하든 말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권리입니다.” 발라쇼프가 말했다.“하지만 나는 영광스럽게도 황제 폐하의 시종 무관장이라는 신분으로 당신께 말씀드립니다…….”

다부는 말없이 그를 흘깃 쳐다보았고, 발라쇼프의 얼굴에 나타난 흥분과 당혹이 그에게 만족을 준 듯했다.

“당신은 응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오.”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호주머니에 봉투를 넣고 헛간에서 나갔다.


다음 날 황제의 시종 무슈 드 튀렌 백작이 발라쇼프를 찾아왔고, 알현을 허락한다는 나폴레옹 황제의 전갈을 전달했다. 나흘 전에는 발라쇼프를 데려간 바로 그 저택 옆에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의 보초병들이 서 있었지만, 이제는 가슴께를 열어젖힌 파란 군복을 입고 털모자를 쓴 프랑스군 척탄병 두 명과 경기병 호위대들이 서 있었다.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르가 발라쇼프를 파견했던 빌나의 바로 그 저택에서 발라쇼프를 맞이했다.


궁중의 장중함에 익숙한 발라쇼프였지만 나폴레옹 황제가 거처하는 궁전의 사치스러움과 호화로움은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튀렌 백작은 많은 장군들, 시종들, 폴란드의 대지주들이 대기하고 있는 대(大)응접실로 그를 안내했다. 많은 사람들이 발라쇼프가 러시아 황제의 궁전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뒤로크가 다가와 나폴레옹 황제가 산책 나가기 전에 러시아 장군을 접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라쇼프는 소응접실로 들어갔다. 그 응접실의 문 하나는 러시아 황제가 그를 파견했던 바로 그 집무실로 통했다. 집무실로부터 다른 굳건하고 단호한 발소리가 울렸다. 나폴레옹이었다.

“안녕하시오, 장군!” 그가 말했다. “당신이 가져온 알렉산드르 황제의 편지를 받았소."

“난 전쟁을 바라지 않고, 또 바란 적도 없소.”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황제가 나를 부득이 전쟁으로 내몰았소. 난 당신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어떤 해명이든 지금이라도 (그는 이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소.” 그러고는 자신이 러시아 정부에 불만을 품은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폐하! 저의 주군인 황제께서는…….” 발라쇼프는 정신을 차리고 말을 시작했다. 알렉산드르 황제는 쿠라킨의 여권 요청이 전쟁을 벌일 만큼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쿠라킨은 군주의 동의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것이고, 알렉산드르 황제는 전쟁을 바라지 않으며, 영국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고 말했다.


발라쇼프는, 알렉산드르 황제는 평화를 바라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협상에 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발라쇼프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는 알렉산드르 황제가 편지에는 쓰지 않았으나, 살티코프에게 보내는 칙서에는 반드시 집어넣으라고 했던, 발라쇼프에게도 나폴레옹에게 직접 전하라고 명령한 그 말을 (“무장한 프랑스 군인이 러시아 영토에 한 명이라도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떠올렸다. 그는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단, 프랑스 군대가 네만강 너머로 철수한다는 조건하에서라고…….


"겨우 네만강 너머로?” 포메라니아에서 철수하라는 네 달 전의 요구 대신 이제 저들은 단지 네만강 너머로만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홱 돌아서서 방 안을 이리저리 오가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내게 네만강 너머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소. 하지만 당신들은 두 달 전에는 지금과 똑같이 오데르강과 비스와강 너머로 철수해 달라고 요구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협상하는 데 동의하고 있소.”


“오데르강과 비스와강에서 철수하라는 것과 같은 제안들은 바덴의 대공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게는 아니오.” 나폴레옹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내가 수백만을 쓰고, 영국과 동맹을 맺은 지금에야 협상을 제의하고 있소. 당신들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나에게 협상을 제의하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영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무슨 목적이었소? 영국이 당신들에게 무엇을 주었소?” 그는 다급하게 말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평화 조약 체결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당성과 힘을 입증하고, 알렉산드르의 부당함과 실책을 입증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는 듯했다.


“알아 두시오, 만약 당신들이 프로이센을 동요시켜 나와 대적하도록 하면, 알아 두시오, 난 그 나라를 유럽 지도에서 지워 버리겠소.” 그는 적의로 일그러진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조그만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열정적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그렇소. 난 당신들을 드비나강 저편으로, 드네프르강 저편으로 몰아내고, 유럽이 죄악과 눈이 멀어 파괴했던 그 장벽을 다시 세울 것이오. 그렇소, 바로 이것이 당신들에게 일어날 일이고, 바로 이것이 당신들이 나를 멀리해서 얻게 되는 것들이오.”


“내 이름으로 알렉산드르 황제에게 확실히 말해 주시오.” 그가 모자를 잡아 들며 말했다.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에게 충실하오. 나는 그를 완벽하게 알 뿐 아니라 그의 뛰어난 자질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소. 난 당신을 더 이상 붙잡아 두지 않겠소, 장군. 당신은 군주에게 보내는 내 편지를 받게 될 것이오.” 그런 다음 나폴레옹은 재빨리 문 쪽으로 향했다.


발라쇼프는 나폴레옹이 더 이상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발라쇼프는 자신도 놀랍게 그날 뒤로크를 통해 황제의 식탁에 초대를 받았다. 만찬에는 베시에르, 콜랭쿠르, 베르티에가 참석했다. 나폴레옹은 유쾌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발라쇼프를 맞이했다. 그에게는 아침의 감정 폭발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자책의 표정이 없었다.그의 생각 속에는 자신이 행한 것들은 모두 선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이 선악의 개념에 부합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행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나폴레옹은 만찬 동안 발라쇼프를 옆에 앉히고 다정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발라쇼프를 자신의 궁정 신하들 중 하나로, 자신의 계획에 공감하고 자신의 성공에 틀림없이 기뻐해야만 할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발라쇼프에게 러시아의 수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모스크바는 주민이 얼마나 되고, 주택은 얼마나 되오? 모스크바가 성스러운 도시로 불린다는 것이 사실이오? 모스크바에 교회가 몇 개나 있소?” 그가 물었다.


만찬 후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폴레옹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나흘 전까지만 해도 알렉산드르 황제의 집무실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곳이 알렉산드르 황제가 거주했던 바로 그 방이라고 하오. 이상하지요, 그렇지 않소, 장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알렉산드르 황제가 개인적으로 나의 적들을 모두 가까이했다는 점이오."

“나도 똑같이 하리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시오. 난 독일에서 그의 친족들, 즉 뷔르템베르크 공국, 바덴 공국, 바이마르 공국의 인간들을 쫓아낼 것이오……. 러시아에 그들을 위한 은신처를 준비해 두라고 하시오!”


“그런데 알렉산드르 황제는 왜 군대의 지휘를 떠맡은 거요? 뭣 때문이오? 전쟁은 나의 전문 분야요. 그의 일은 통치하는 것이지 군대를 통솔하는 것이 아니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런 책임을 떠맡은 거요?”

발라쇼프가 받은 편지는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대화의 자세한 내용이 러시아 황제에게 전해졌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8


모스크바에서 피에르를 만난 후 안드레이 공작은 가족들에게 말한 것처럼, 일 때문에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나톨 쿠라긴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피에르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즉각 국방 대신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몰다비아에 주둔해 있는 군대로 떠나 버렸다.


이 무렵 페테르부르크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항상 자신을 호의적으로 대해 준 옛 상관 쿠투조프 장군을 만났고, 쿠투조프는 자신과 함께 몰다비아 군대로 가자고 그에게 제안했다. 노장군은 그곳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총사령부에서 복무하라는 명령을 받고 튀르크로 떠났다. 하지만 아나톨은 안드레이 공작이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


1812년 나폴레옹과 전쟁을 한다는 소식이 부쿠레슈티에 전해지자 안드레이 공작은 쿠투조프에게 서부 군대로의 전속을 요청했다. 볼콘스키의 활동으로 자신의 무위(無爲)가 비난받는 것이 되어 버려 볼콘스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던 쿠투조프는 기꺼이 그를 놓아주며, 바르클라이 드 톨리에게로 보냈다. 안드레이 공작은 5월에 드리사강 둔치의 진영에서 주둔해 있던 군대로 가기 전에 스몰렌스크 대로에서 3베르스타 떨어진, 자신이 지나가는 길에 있던 리시예 고리에 들렀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드레이 공작이 그들을 보지 못한 이후로 사람들의 내적인 관계는 변해 버렸다. 가족 구성원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남남처럼 굴고 적대적으로 대했다. 이쪽 진영에는 노공작과 부리엔과 건축 기사가 있고, 다른 진영에는 마리야 공작 영애와 데살과 니콜루시카와 보모들과 유모들이 있었다.


노공작은 만약 자신이 병들면 그것은 마리야 공작 영애 탓이라고, 그녀가 일부러 자기를 괴롭히며 신경을 건드린다고, 그녀가 응석을 받아 주며 어리석은 말로 어린 니콜라이 공작을 망쳐 놓는다고 말했다.

“전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제게 물으신다면 제 의견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령 아버님과 마샤 사이에 오해와 불화가 있다 해도 저는 결코 마샤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애가 아버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오해가 있다면 그 원인은 결코 제 누이의 친구가 되지 말았어야 할 형편없는 그 프랑스 여자 때문입니다.”


“아, 선고를 내렸군! 선고를 내렸어!” 노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안드레이 공작에게 보인 것처럼,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꺼져라, 꺼져! 이곳에 네 녀석의 숨기척도 남기지 말거라!”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마드무아젤 부리엔과 티혼 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은 채 아들이 떠났는지만 여러 번 물었다.


"꼭 가야겠어, 앙드레?” 여동생이 물었다.

“나는 갈 수 있어 다행인데…….”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넌 그럴 수 없으니 내 마음이 무척 아프다.”

"난 오빠를 이해해. (마리야 공작 영애는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사람들이 고통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마. 사람들은 그분의 도구일 뿐이야. 만약 오빠가 보기에 누군가가 오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잊고 용서해. 우리에겐 누군가를 벌할 권리가 없어. 그러면 오빠도 용서하는 행복을 깨닫게 될 거야.”


이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쿠라긴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씻기지 않은 분노가 가슴속에 확 치밀어 올랐다. ‘동생이 지금 나에게 그를 용서하라고 설득하는 거라면 그것은 곧 내가 오래전에 그를 벌했어야 했다는 뜻이야.’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은 채 이제는 군대에 있는 쿠라긴과 (그가 아는 바로는) 만나게 될 때의 그 기쁘고도 적의에 찬 순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9


안드레이 공작이 군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6월 말이었다. 군주가 있는 제1군 부대들은 드리사 강가에 방어벽을 구축한 진영에서 머물고 있었다. 제2군의 부대들은 제1군과 합류하기 위해 철수하는 중이었다. 얘기되는 바로는 프랑스군 대병력에 의해 제2군이 제1군으로부터 차단된 것이다. 모두들 러시아군의 전반적인 작전 흐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드리사 강가에서 자신이 배속된 바르클라이 드 톨리를 발견했다. 그는 군주가 있는 곳에서 4베르스타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바르클라이 드 톨리는 볼콘스키를 무뚝뚝하고 차갑게 맞이했고, 그의 임무를 결정하기 위해 군주에게 그에 관해 보고하겠으며, 그동안에는 자신의 참모부에 있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특유의 독일어 억양으로 말했다. 아나톨 쿠라긴은 없었고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쟁 경험을 통해 가장 신중하게 숙고하여 세운 계획들도 전투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으며 (그가 아우스터리츠 원정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모든 것은 예기치 못한 적의 작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고, 모든 것은 누가 어떻게 전투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가에 달렸다는 확신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전투 상황에 대해 자기 나름으로 다음과 같은 이해를 얻었다.


군주가 빌나에 있던 당시에 군대는 셋으로 나뉘었다. 제1군은 바르클라이 드 톨리가, 제2군은 바그라티온이, 제3군은 토르마소프가 지휘했다. 군주는 제1군에 있었으나 총사령관 자격은 아니었다. 군주는 총사령관의 직분을 맡지 않았으나 사실상 황실 본부(책임자는 병참부 장군인 표트르 볼콘스키 공작)를 통해 전군(주)을 지휘한다. 아락체예프, 베니히센 백작, 풀 등 군주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직책이 없더라도 그의 보좌진이다.


[바르클라이 드 톨리와 토마소프 출처 구글 이미지]


그 거대하고 불안하고 눈부시고 자존심 센 세계의 온갖 생각과 목소리 속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보다 세분화된 경향들과 파벌들을 보았다.


첫 번째 파벌은 풀과 그 추종자들로서 전쟁 이론가인 그들은 전쟁 학문이 있으며, 이 학문에는 불변의 법칙, 예를 들어 측면 이동과 우회 등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풀과 추종자들은 국내 깊숙이 퇴각할 것을 요구했고, 그 이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야만, 무지 혹은 흉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파벌에는 독일인 대공들, 볼초겐, 빈친게로데 등의, 주로 독일인들이 속해 있었다.


두 번째 파벌은 첫 번째 파벌과 정반대였다. 이들은 빌나에 있을 때부터 폴란드로 진격할 것과 이미 작성된 계획을 모두 버릴 것을 요구했다. 이 파벌의 특징은 과감한 행동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대표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인들이었고, 바그라티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예르몰로프 등이 이에 속했다. 이들은 수보로프를 회상하며, 생각이나 하면서 지도에 핀을 꽂는 것이 아니라 적들과 맞서 싸우고 물리치고, 그들이 러시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주가 가장 신뢰하는 세 번째 파벌에는 앞의 두 경향을 중재하려는 궁정 신하들이 있었다. 아락체예프가 속한, 대부분 군인이 아닌 이들은 신념도 없으면서 그런 것을 가진 척하고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평소 말하는 바대로 생각하고 말했다. 이 파벌에 속한 사람들은 풀의 계획에 따라 드리사 강가에 진영을 유지한 채, 다른 군대의 움직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작전 계획으로는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었지만 이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은 것처럼 보였다.


네 번째 파벌은 대공을 가장 중요한 대표자로 내세웠다. 상속자 황태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환멸을 잊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는 뜻밖에 제 일선으로 휘말려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나폴레옹을 두려워했는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현명한 행동은 오직 평화 조약을 맺는 것뿐이고, 저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를 내몰기 전에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 번째 파벌은 바르클라이 드 톨리를 국방 대신이자 총사령관으로서 신봉하는 이들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는 정직하고 유능하며,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지휘권의 통일 없이 전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으니 그에게 실권을 주어라. 그러면 핀란드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지금 바르클라이를 베니히센으로 교체한다면 모든 게 끝장날 것이다. 왜냐하면 베니히센은 이미 1807년에 자신의 무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베니히센을 추종하는 여섯 번째 파벌은 이와 반대로 베니히센보다 더 유능하고 경험 많은 사람은 없다면서, 제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그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아군이 드리사강까지 퇴각한 과정 전체가 말할 수 없이 치욕스러운 패배였으며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계속 증언했다.
"필요한 사람은 바르클라이 같은 자가 아니라 1807년에 이미 실력을 보여 주었고, 나폴레옹조차 정당성을 인정했고, 권력의 소유자로 기꺼이 인정할 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오직 베니히센뿐이다."


일곱 번째 파벌은 군주들, 특히 젊은 군주들의 측근에 붙어 있는 인물들로, 그들은 곧 경애하는 군주가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불신을 떨쳐 버리고 군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뒤, 자기 세력 아래 총사령관의 군 사령부를 조직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경험 많은 이론가와 실무가들과 상의해 가며 직접 군대를 이끌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 방법만이 군대가 최고조의 사기 상태에 이르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사람 수가 99 대 1 정도로 엄청 나게 많았는데, 가장 본질적인 한 가지, 즉 자신을 위한 최대의 이익과 만족만 바라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유리한 지위를 잃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오늘은 풀의 의견에 찬성했다가 내일은 그 적에게 찬성했으며, 또 그다음 날엔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고 군주의 비위를 맞출 목적으로 자기는 널리 알려진 안건에 관해 어떤 의견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군에 도착한 무렵에는 또 하나의 파벌, 즉 자신의 목소리를 서서히 높여 가던 아홉 번째 파벌이 결집하고 있었다. 이 파벌의 국무 대신 시시코프가 군주에게 편지를 썼고, 발라쇼프와 아락체예프는 그 편지에 서명하는 데 동의했다. 편지에서 그는, 군주가 수도의 민중을 고무하여 전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구실을 대며 군주에게 군대를 남겨 놓고 떠날 것을 정중히 건의했다. 그러자 군주는 그것을 군대를 떠날 명분으로 받아들였다.


10


바르클라이가 식사 자리에서 군주가 튀르크에 관하여 묻기 위해 안드레이 공작을 친히 만나보고 싶어 하며, 오후 6시까지 베니히센의 숙소에 출두하라는 말을 본인 볼콘스키에게 전했을 때는 이 편지가 아직 군주에게 전달되기 전이었다. 그날 군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는 나폴레옹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소식이 군주의 숙소로 전해졌다. 이 소식은 그 후에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날 아침 군주와 함께 드리사 요새(Drissa Camp)를 시찰하던 미쇼 대령은 풀(Ernst Heinrich Adolf von Pfuel, 프로이센의 장관을 역임했으며 후일 총리가 되었다)이 축조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을 반드시 파멸시킬 수 있는 전술의 걸작으로 여겨지던 그 요새화된 진영이 무용지물이며 러시아군을 파멸로 몰고 가리라는 것을 군주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강가에 있는 지주의 작은 저택을 숙소로 삼고 있던 베니히센 장군을 찾았다. 베니히센도 군주도 그곳에 없었 다. 군주의 시종 무관인 체르니쇼프가 안드레이 공작을 맞이하며, 군주는 베니히센 장군과 파울루치 후작과 함께 이날 두 번째로 드리사 진영의 요새를 시찰하러 나갔는데, 그 진지의 적합성에 대한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홀에는 문이 두 개가 나 있었다. 하나는 곧장 예전의 응접실로, 또 다른 문은 오른쪽 서재로 통했다. 예전 응접실이었던 그곳에서는 군주의 바람에 따라 군사 회의가 아니라 그가 눈앞에 닥친 난관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하는 몇몇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 약식 회의에 초대받은 이들은 스웨덴 장군 아름펠트, 시종 무관장 볼초겐, 나폴레옹이 도망친 프랑스 국민이라고 부른 빈친게로데, 미쇼, 톨, 결코 군인이 아닌 슈타인 백작, 그리 고 마지막으로 안드레이 공작이 들은 바로는 모든 일의 핵심 인물인 이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풀이 응접실을 지나가다가 체르니쇼프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잠시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안드레이 공작은 그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그가 1805년에 보았던 바이로터, 마크, 슈미트 등 많은 독일인 이론가형 장군들의 모습이 그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풀은 그들 모두보다도 더 전형적이었다.


풀은 키가 크지 않고 매우 야위었지만 굵은 뼈대, 투박하고 다부진 체격, 넓적한 골반, 불거진 어깨뼈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는 주름이 많았고, 눈동자는 움푹 들어갔다. 그는 불안하고 화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들어왔다. 그는 어색한 동작으로 장검을 꽉 쥐고는 군주가 요새를 시찰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요새는 다름 아닌 풀 본인이 자신의 이론에 기초하여 축조한 것이었다.



독일인만이 추상적 관념, 다시 말해 과학, 즉 완전한 진리에 대한 가상의 앎에 근거하여 자신만만해한다. 프랑스인은 자신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리고 남자들에 대해서나 여자들에 대해서나 뛰어 넘을 수 없이 매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해한다. 영국인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 정비된 국가의 국민이고, 언제나 영국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며, 영국인으로서 행하는 모든 것이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만만해한다. 이탈리아인은 쉽게 흥분하고, 또 쉽게 자신과 타인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라 자신만만해한다. 러시아인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며, 또 무언가를 충분히 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만만해한다.


독일인의 자신감은 가장 최악이고 가장 견고하며 가장 역겹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자신들이 고안 해 낸 것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절대 진리인 과학을 알고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풀도 그런 사람이었다. 1806년 풀은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에서 종식된 전쟁의 작전 계획을 입안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 전쟁이 끝날 무렵에도 그는 자기 이론이 틀렸다는 추호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반대로 그의 이해에 따르자면, 그의 이론대로 하지 않은 것이 모든 실패의 유일한 원인이었다. 그는 다른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즉각 굵은 저음으로 투덜대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1


안드레이 공작이 풀을 눈으로 배웅하는 것을 마치기도 전에 베니히센 백작이 다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볼콘스키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자기 부관에게 무언가 지시하며 집무실로 갔다. 지친 표정의 군주가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파울루치 후작이 군주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 드리사 진영을 제안한 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드리사 강가의 진영을 제안한 자 말입니다, 제 생각에 그자를 위한 곳은 오직 두 곳뿐인데, 노란 집이나 교수대입니다."


표트르 미하일로비치 볼콘스키 공작은 군주의 참모장과 유사한 직분을 맡고 있었다. 볼콘스키가 집무실에서 나왔고, 지도를 가지고 응접실로 와 테이블 위에 그것을 펼치고는 모여 있던 신사들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하는 질문들을 전달했다. 문제는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프랑스군이 드리사 진영을 우회하여 이동했다는 소식이 밤사이 접수되었다는 것이었다.


맨 처음 입을 연 사람은 아름펠트 장군이었다. 그는 난데없이 눈앞에 닥친 난관을 피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 가도와 모스크바 가도에서 떨어진 지점에 전혀 새로운,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자신도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욕구를 제외하고)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톨 대령이 스웨덴 장군의 견해를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박했는데, 논의 도중에 옆 호주머니에서 글자가 가득 적힌 수첩을 꺼내더니 그것을 읽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황하게 작성된 기록에서 톨은 아름펠트나 풀의 계획과 정반대의 작전 계획을 제안했다. 파울루치는 톨에게 반박하면서 전진하여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직 그것만이 아군을 지금 처한 불분명한 상황과 덫으로부터 (그는 드리사 진영을 그렇게 불렀다) 끌어낼 수 있었다.


토론을 주관하던 볼콘스키 공작이 풀에게 견해를 말해 달라고 청하자 풀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뭘 묻소? 아름펠트 장군이 뒤가 열려 있는 멋진 진지를 제안했는데. 아니면 저 이탈리아 장군이 제안한 공격도 있잖소. 매우 훌륭하오!(독일어) 퇴각도 있구려. 그것도 좋소.(독일어) 나에게 뭘 물어보오?”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어떤 우연도 드리사 진영의 합목적성을 바꾸어 놓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예상되어 있고, 적이 우회 작전을 펼친다면 적은 섬멸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빠르게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말없이 들으며 이들을 관찰했다. 이들 가운데 누구보다 안드레이 공작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노기등등하고 단호하고 근거 없이 자신만만한 풀이었다. 오직 그만이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않고, 이상에 대한 무한한 헌신으로 무의식적인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풀을 제외한 발언자들의 말에는 1805년 군사 회의 때 없던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비록 감춰져 있지만 바로 천재 나폴레옹에 대한 광적인 공포, 각 사람의 반박 속에 드러난 공포였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 다양한 언어의 말소리, 가정, 계획, 반박, 고함을 들으면서 그저 그들이 다 함께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전쟁에 대한 학문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으므로 이른바 전쟁의 천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군사 행동 중에 오래전부터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생각들이 이제 그에게는 진리로서 완전히 분명하게 되었다.


그들이 천재라고 불리는 것은 그저 군인들이 광휘와 권력에 싸여 있기 때문에, 또 많은 비열한 인간들이 권력에 아첨하면서 권력이 본디 갖지 못한 천재성이라는 자질을 거기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아는 최고의 장군들은 어리석거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가장 뛰어난 장군은 바그라티온이다. 나폴레옹도 이를 인정했다. 보나파르트 역시 명장이다! 훌륭한 사령관은 시야가 좁고, 자기가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굳게 확신해야 한다(그러지 않으면 충분한 인내심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때에만 그는 용감한 사령관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열병식에서 군주가 안드레이 공작에게 어디서 복무하기를 원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존귀한 군주의 곁이 아니라 부대에서 복무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궁정 세계에 머물 기회를 영원히 잃었다.


12


출정하기 전에 로스토프는 부모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부모는 나타샤의 병과 안드레이 공작과의 파혼을 짤막하게 알리면서 (부모는 그 파혼이 나타샤의 거절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전역하여 집으로 돌아오기를 또다시 부탁했다. 편지를 받은 니콜라이는 휴가를 내거나 전역을 신청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부모에게 나타샤의 병과 나타샤가 그녀의 약혼자와 헤어지게 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며, 두 분의 희망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소냐에게 따로 편지를 썼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야. 믿어 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내가 살아 있고, 또 그대가 여전히 날 사랑해 준다면 그때는 내 뜨거운 가슴에 그대를 안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대에게 달려가겠어."

실제로 로스토프를 지체시키고 그가 돌아오는 것과 (그의 약속대로) 소냐와의 결혼을 방해하는 것은 원정이 시작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성격상으로도 연대에서 보낸 생활에 만족했고, 스스로를 위해서 이 생활을 유쾌하게 만들어 갈 줄 알았다.


부대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국가적, 정치적, 전술적 이유로 빌나에서 후퇴했다. 한 걸음 한 걸음 후퇴할 때마다 참모 본부의 이해관계, 추론, 욕망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그러나 파블로그라드 연대의 경기병들로서는 여름철의 가장 좋은 시기에 식량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후퇴하는 행군이 지극히 간단하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 후 스벤챠니로 후퇴하되 운반할 수 없는 식량은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로스토프가 스벤챠니를 기억하는 것은 그 작은 마을로 들어간 첫날 자신이 한 기병 특무 상사를 경질한 데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오래 묵은 맥주 다섯 통을 가져와서 만취한 중대원 전원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벤챠니에서 더 멀리멀리 드리사까지 후퇴했고, 다시 드리사에서 후퇴하여 러시아 국경 가까이에 이르렀다.


7월 13일 파블로그라드 연대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전투에 참여했다. 전날 밤, 전투 전야에 뇌우를 동반한 세찬 폭풍이 있었다. 1812년 여름은 대체로 폭풍이 현저히 많았다. 로스토프는 급하게 지은 임시 막사에서 자신이 후견하는 젊은 장교 일리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연대에 배속된 이 열여섯 살짜리 소년 장교와 니콜라이의 관계는 7년 전 니콜라이와 데니소프 같았다. 일리인은 뭐든 로스토프를 따라 하려 들었고, 마치 여자처럼 그에게 빠져 있었다.


콧수염이 남들보다 두 배 정도 긴 장교 즈드르진스키는 살타놉카 제방이 러시아의 테르모필레였다고, 이 제방 위에서 라옙스키 장군이 고대에나 있을 법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과장하여 말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포화 속에 두 아들을 제방으로 데려가 그들과 함께 돌격한 라옙스키의 활약을 들려주었다. 로스토프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즈드르진스키의 열광에 맞장구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로스토프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1807년 출정 이후 전투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 자신도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두 번째, 그는 전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코 우리가 상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만큼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일리인이 로스토프가 즈드르진스키의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피할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일리인이 밖으로 나갔고, 즈드르진스키도 떠났다. 5분 뒤 일리인이 진흙탕을 철벅거리며 선술집을 찾았다고 임시 막사로 달려왔다.

"그곳에 벌써 우리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마리야 겐리호브나도 그곳에 있습니다.”그녀는 연대 군의관의 아내로 남편의 질투심은 경기병 장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농담거리가 되었다.


13


군의관의 키비토치카가 앞에 서 있는 선술집 안에는 벌써 다섯 명 정도 되는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몸매가 풍만한 금발의 독일 여자 마리야 겐리호브나가 실내복과 나이트캡 차림으로 입구의 반대편 구석에 놓인 널찍한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군의관은 그녀의 뒤에서 자고 있었다. 로스토프와 일리인은 즐거운 환호와 떠들썩한 웃음으로 환영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날 밤 모든 장교들이 정말로 마리야 겐리호브나에게 빠진 것 같았다. 심지어 칸막이 뒤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장교들까지 마리야 겐리호브나에게 구애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카드를 내던지고 사모바르가 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마리야 겐리호브나는 숨기려고 애쓰면서도, 그리고 뒤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뒤척임에 눈에 띄게 두려워하면서도 눈부시고 정중한 청년들로 둘러싸인 자신을 보며 행복감으로 얼굴을 환히 빛냈다.


카드놀이가 시작되자마자 마리야 겐리호브나 뒤편에서 군의관의 헝클어진 머리가 쑥 올라왔다. 그는 벌써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앞 정원에서 돌아온 군의관은 아내에게 (그녀는 이제 행복한 미소를 멈추었고, 겁에 질린 채 선고를 기다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가 그쳤다고, 키비토치카로 자러 가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전부 가져가 버리고 말 거라고 말했다.


군의관이 아내를 데리고 나가 키비토치카 안으로 들어가자 장교들은 젖은 외투들을 덮고 선술집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서, 군의관이 받았을 충격과 그 아내의 명랑함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관 계단으로 달려가 키비토치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리기도 했다. 여러 차례 로스토프는 머리까지 푹 덮어쓰고 잠을 청했다.


14~15


2시가 지나도록 아무도 잠들지 않고 있을 때, 기병 특무 상사가 오스트로브나라는 마을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갖고 나타났다.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비는 그쳤고, 먹구름이 걷혔다. 습하고 추웠는데, 특히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30분 후 기병 중대는 정렬을 마치고 길 위에 서 있었다.

“승마!”라는 명령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은 성호를 긋고 말에 오르기 시작했다.로스토프가 선두로 말을 타고 나가 명령을 내렸다. “진군!”


네 명씩 나란히 선 경기병들은 젖은 도로 위에 기병도를 철컥거리고,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면서 앞서가는 보병대와 포병 중대를 뒤따라 자작나무가 늘어선 대로를 따라 나아갔다. 기병 중대는 행군을 서두르는 보병과 포병을 우회하여 언덕 아래로 내려갔고, 주민 없이 텅 빈 마을을 지나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다. 말들이 땀에 흠뻑 젖고, 사람들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경기병들은 같은 장소에 한 시간가량 서 있었다. 포성도 울리기 시작했다. 오스테르만 백작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기병 중대 뒤로 지나가다가, 말을 세우고 연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언덕의 대포를 향해 떠났다.

오스테르만이 떠나자 그 뒤를 이어 창기병 부대에서 명령이 들렸다.

“종대를 지어 공격 대형으로!” 창기병들은 창에 단 깃발들을 펄럭이며 진군하기 시작했고, 언덕 아래 왼편에 보이는 프랑스 기병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경기병들이 창기병의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산병선으로부터 먼 거리의, 목표물을 맞히지 못한 총알들이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창기병들은 프랑스 용기병들에게 달려들었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연기 속에 뒤엉켰고, 5분 후 창기병들은 그들이 서 있던 장소가 아닌 뒤쪽으로 재빨리 물러났는데, 더 왼쪽이었다. 밤색 말을 탄 주황색 창기병들 사이로, 그리고 그들 뒤로, 회색 말을 탄 파란색 프랑스 용기병들의 거대한 무리가 보였다.


로스토프는 사냥꾼의 예리한 눈으로 아군 창기병들을 추적하는 파란색 프랑스 용기병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창기병들과 그들을 추적하는 프랑스 용기병들의 무질서한 무리가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만약 지금 경기병들을 이끌고 프랑스 용기병들을 공격한다면 저들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공격한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이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이미 늦다고…….


로스토프는 말을 몰아 기병 중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그가 돌격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그와 똑같이 느낀 기병 중대 전체가 그를 뒤쫓아 말에 박차를 가했다. 로스토프도 자신이 어떻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몰랐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사냥할 때처럼 생각도, 고려해 보지도 않고 행했다. 로스토프는 늑대 앞을 가로막기 위해 질주했을 때의 느낌으로 돈 지방의 말을 전속력으로 몰아 프랑스 용기병들의 흐트러진 대열 앞을 가로막듯 뛰어들었다.


거의 모든 프랑스 용기병들이 뒤로 물러났고 로스토프는 그 중 회색 말을 탄 프랑스 장교를 뒤쫒아 포로로 잡았다. 경기병들은 황급히 포로를 데리고 말 머리를 돌려 달렸다. 로스토프는 가슴을 옥죄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서 다른 경기병들과 함께 되돌아왔다.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그 장교를 포로로 사로잡고 그에게 일격을 가한 일로 인해 그에게 열린 것이다.


오스테르만-톨스토이 백작이 복귀한 경기병들을 맞이했고, 로스토프를 가까이 불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로스토프의 행동을 군주에게 아뢰고 게오르기 십자 훈장을 청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군 복무에서 행운의 수레바퀴는 그를 위해 돌아갔다. 오스트로브나 전투 이후 그는 승진했고, 그에게는 경기병 대대가 맡겨졌으며, 용감한 장교가 필요할 때마다 그가 뽑혔다.


16~17


나타샤의 병에 관한 소식을 들은 백작 부인은 자신도 아직 쇠약했지만 페탸와 온 집안 사람들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왔다. 그리하여 로스토프 일가는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집을 떠나 자신들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모스크바에서 살게 되었다. 나타샤의 병이 너무도 심각했기 때문에 그녀나 부모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병의 원인이 된 일들, 즉 그녀의 행동, 약혼자와의 결별에 대한 생각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났다.


나타샤의 증상은 거의 먹지 않고 거의 자지 못하고, 기침을 하고 늘 기운이 없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의학의 도움 없이 환자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서 그녀를 도시의 답답한 공기 속에 붙들어 두었다. 그런 이유로 1812년 여름에 로스토프가는 시골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젊음은 자체의 힘을 발휘했다. 나타샤의 슬픔은 지나가는 삶의 인상들로 이루어진 얇은 층에 조금씩 덮여 갔고, 슬픔은 더 이상 그녀의 가슴에 머물러 고통이 되는 것을 멈추고, 과거의 일이 되어 갔다. 그리고 나타샤는 육체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나타샤는 평온해지긴 했으나 더 명랑해지지는 않았다. 즐거움의 모든 외적인 조건, 즉 무도회, 마차 드라이브, 음악회, 연극을 피했을 뿐 아니라, 웃음 뒤로 눈물이 느껴지지 않게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노래할 수 없었다. 소리 내어 웃거나 혼자 있을 때 노래를 해 보려고 하면 곧장 눈물이 숨을 막히게 했다. 그녀는 집안 사람들을 피했고, 동생 페탸와 있을 때만 편안해했다.


그녀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한 사람만을 반겼다. 피에르였다. 사람들이 베주호프 백작만큼 더 다정하고 더 조심스럽고 더 진지하게 그녀를 대하기는 불가능했다. 나타샤는 그의 태도에 깃든 다정함을 무의식적으로 느꼈고,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큰 만족감을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다정함을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그가 일부러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베드로제 정진(精進)이 끝날 무렵 로스토프가의 오트라드노예 저택의 이웃인 아그라페나 이바노브나 벨로바가 모스크바의 성자들에게 경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왔다. 그녀는 나타샤에게 정진을 제안했고, 나타샤는 기쁜 마음으로 그 생각을 붙잡았다. 백작 부인은 나타샤의 이러한 열성을 마음에 들어 했다. 성과 없는 치료 이후 그녀는 마음속으로 딸에게 기도가 약보다 더 효험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두려워서 의사에게 숨기기는 했으나 나타샤의 바람에 동의하고, 벨로바에게 딸을 맡겼다.


그녀가 예배 문구의 뜻을 이해하는 순간에는 그녀의 사적인 감정이 독특한 음영을 띠며 그녀의 기도와 결합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갈망은 오만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순간 그녀의 영혼을 다스리는 (그녀가 느끼기에) 하느님을 믿고 그분에게 자신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욱더 달콤했다.


그녀가 자신의 온 마음을 기울여 한 기도는 회개의 기도였다.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하는 석공들, 거리를 치우는 문지기들만 마주칠 뿐 집안 사람들은 모두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 시각, 나타샤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죄들로부터 자신을 교정할 수 있는 가능성, 새롭고 순수한 삶과 행복의 가능성의 새로운 감정을 경험했다. 그녀가 이런 생활을 하며 지낸 일주일 내내 이 감정은 하루하루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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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행복의 날은 왔다. 그녀는 수개월 만에 자기 앞에 놓인 삶에 짓눌리지 않고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이제는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백작 부인.” 의사는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재빨리 금화를 움켜쥐면서 말했다.“따님은 조만간 다시 노래도 부르고, 장난치며 뛰어놀게 될 겁니다. 이 마지막 약이 따님에게 아주, 아주 효험이 있군요. 따님의 혈색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18


7월 초 모스크바에는 전쟁의 동향과 관련된 불안한 소문들이 점점 더 번져 나가고 있었다. 군주가 국민에게 격문을 띄웠다거나, 군주가 군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7월 11일까지 성명서와 격문이 입수되지 않았던 탓에 그것들과 러시아 정세에 관한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다. 7월 11일 토요일, 성명서가 입수되었지만 아직 인쇄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로스토프가를 방문한 피에르는 라스톱친 백작으로부터 구하게 될 성명서와 격문을 갖고 다음 날인 일요일 만찬 식사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일요일에 로스토프가 사람들은 평소처럼 예배 보기 위해 라주몹스키가(家) 저택에 있는 교회로 출발했다. 그 교회에는 모스크바의 모든 지체 높은 분들과 로스토프가의 모든 지인들이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군중 속에 있을 때는 늘 그렇듯 마음이 고통스럽고 아득했다.


체구가 작은 고상하고 온화한 노인이 온화한 엄숙함으로 예배를 집전했다. 왕의 문이 열리고 천천히 휘장이 드리워졌다. 그곳에서 신비롭고 나직한 목소리가 무언가를 소리 내어 읽었다. 나타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가슴속에 고이면서, 기쁘고도 괴로운 감정이 그녀를 흔들어 놓았다.‘제게 가르쳐 주소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제 자신을 영원히, 영원히 바로 세울 수 있을지…….’ 그녀는 생각했다.


부제(副祭)가 설교대에 나왔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넓게 벌려 제의 밖으로 긴 머리카락을 꺼내 정돈한 뒤 가슴에 십자가를 대고 큰 목소리로 엄숙하게 기도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평화 속에서 주님께 기도합시다.”

'하나의 세계로서, 계급의 차이도, 적대감도 없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형제애로 한마음이 되어 기도할 거야.''우리 위에 사는 모든 육체 없는 존재의 영혼들과 천사들의 세계를 위하여.’ 나타샤는 기도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나타샤는 마음속으로 그 말을 따라 반복했다.‘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에 절 맡깁니다.’ 그녀는 생각했다.‘저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제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저를 받아 주소서, 저를 받아 주소서!’ 나타샤는 감동을 받은 간절함으로 가느다란 팔을 늘어뜨리고 성호도 긋지 않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기치 않게 예배 도중에, 둥근 보라색 벨벳 모자를 쓴 사제가 걸어 나와 머리카락을 똑바로 하고 힘겹게 무릎을 꿇었다. 모두들 똑같이 따라 하며, 의아한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종무원으로부터 방금 도착한 기도문이었다. 러시아를 적의 침략으로부터 구해 달라는 기도문이었다.


“권능의 주 하느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보소서, 적들이 당신의 땅을 어지럽히고 온 세상을 불모지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대적하여 일어섰습니다. 보소서, 무법자들이 무리를 지어 당신의 소유물을 파괴하고 당신의 순결한 예루살렘, 곧 당신이 사랑하는 러시아를 파괴하려 합니다. 당신의 사원을 더럽히고 당신의 제단을 파괴하고 우리의 지성소를 능욕하려 합니다. 오, 주여, 저 죄인들이 언제까지, 언제까지 기뻐하겠습니까? 저 범법자들이 언제까지 권력을 휘두르겠습니까?

당신의 신실한 군대 앞에서 그들이 바람 앞의 먼지처럼 되게 하소서. 당신의 강한 천사가 그들을 모욕하고 몰아내게 하소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물이 그들을 덮치게 하소서. 그들로부터 감춰진 올가미가 그들을 얽어매게 하소서. 당신 종들의 발아래 저들이 넘어지게 하시고, 우리 전사들이 저들을 짓밟게 하소서. 주여! 많은 사람들 속에서든 적은 사람들 속에서든 인간을 구원하는 당신의 힘은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대적하는 인간은 승리하지 못합니다.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보이시고 당신의 구원을 베푸소서. 당신 종들의 마음이 당신의 은혜에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의 적들을 격파하시고 그들을 멸절시켜 속히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의 발아래에 무릎 꿇게 하소서. 당신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의 방패요, 도움이요, 승리입니다. 우리는 당신께, 곧 성부, 성자, 성령께 지금, 그리고 영원히, 그리고 영원 세세토록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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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의 영혼이 활짝 열린 상황에서 그 기도는 그녀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자신이 그 기도에서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정직한 영, 믿음과 소망으로 마음을 굳건히 하는 것, 사랑으로 마음을 북돋는 것에 대한 간구에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렸다. 그러나 적들을 짓밟게 해 달라고는 기도할 수 없었다. 바로 몇 분 전만 해도 사랑하고 기도해 줄 더 많은 적을 갖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간의 죄 때문에, 특히 자신의 죄 때문에 인간에게 닥치는 벌 앞에서 경외와 전율이 뒤섞인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하느님에게 그들 모두와 그녀를 용서해 달라고, 그들 모두와 그녀에게 삶의 평화와 행복을 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하느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19


피에르가 로스토프가의 저택을 나와 나타샤가 보여 준 감사의 눈빛을 떠올리고 하늘에 떠 있던 혜성을 바라보며 새로운 무언가가 그에게 열렸다고 느낀 그날부터, 끝없이 그를 괴롭혔던 의문, 즉 지상 모든 것의 공허함과 비이성적임에 대해 떠오르던 의문이 멈추었다. 항상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그를 순식간에 정신 활동의 다른, 밝은 영역으로,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여전히 방탕하고 무위한 생활을 계속 했다. 그러나 최근에 전쟁의 극장으로부터 점점 더 염려스러운 소문들이 들려오고, 나타샤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녀가 더 이상 그에게 예전처럼 세심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자,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층 더한 불안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파국의 징후들을 모든 것에서 초조하게 탐색하곤 했다.


프리메이슨 교단의 한 형제가 나폴레옹에 관한 다음과 같은 예언을 피에르에게 열어 준 적이 있었다.

「요한의 묵시록」 13장 18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다.“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이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그리고 같은 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 짐승은 큰소리를 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지껄일 입을 받았고 마흔두 달 동안 세도를 부릴 권세를 받았습니다.”


L’empereur Napoleon'(나폴레옹 황제)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 숫자 표기법'에 따라 써 보면 이 수들의 총합이 666142이고, 나폴레옹이 「요한의 묵시록」에 예언된 그 짐승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quarante deux(마흔둘)라는 단어, 즉 큰소리를 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짐승에게 주어진 기간을 알파벳대로 써도 quarante deux를 가리키는 그 수들의 합은 666이 되고, 이로부터 나폴레옹의 권력의 한계는 그가 마흔두 살이 되는 1812년에 올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피에르를 매우 놀라게 했다.


그리고 무엇이 과연 그 짐승, 즉 나폴레옹의 권력에 끝을 가져올 것인가라는 질문을 수시로 자신에게 물으면서, 단어들을 수들과 계산으로 기술하는 똑같은 원리로 그를 사로잡은 의문에 답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이 계산에 몰두하여 자기 이름인 Comte Pierre Besouhoff(피에르 베주호프 백작)를 써 보았다. 수의 합이 크게 벗어났다. 그는 맞춤법을 바꾸어 s 대신 z를 쓰고 de를 덧붙이고 관사 le도 덧붙여도 보았으나, 여전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자신이 구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자기 이름 안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답에는 반드시 국적이 언급되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Le Russe Besuhof(러시아인 베주호프)라고 쓴 다음 수들을 셈하자 671이 나왔다. 불과 5가 남을 뿐이었다. 5는 e를 뜻했는데, L’empereur라는 단어 앞의 관사에서 생략되기도 하던 바로 그 e를 가리킨다. 비록 문법에는 맞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e를 생략하자 찾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L’Russe Besuhof는 666이 되었다. 그 발견이 그를 흥분시켰다.


피에르는 기도문 낭독이 있던 일요일 전날, 로스토프가 사람들에게 자신과 잘 알고 지내는 라스톱친 백작으로부터 러시아 국민에게 보내는 격문과 군대의 최신 소식을 받아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른 아침 라스톱친 백작에게 들른 피에르는 군대에서 이제 막 도착한 특사를 그 집에서 우연히 조우했다. 그 편지들 중에 니콜라이 로스토프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그 밖에도 라스톱친 백작은 방금 인쇄된 모스크바를 향한 군주의 격문, 군에 하달된 최근 훈령, 최근에 자신이 발행한 전단을 피에르에게 건네주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힘으로 피에르에게 흥분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 감정은 혜성이 출현한 이후, 특히 전쟁이 시작된 이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피에르는 군에 입대할 생각을 하곤 했지만 다음과 같은 것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첫째, 그는 영구한 평화와 전쟁의 근절을 주창하는 프리메이슨 조합 소속이었다. 둘째, 군복을 입고 애국심을 부르짖는 많은 모스크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행보를 취하는 것이 왠지 양심에 걸렸다. 그가 입대 계획을 실행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은 어떤 일도 시작할 필요 없이 예정된 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명확하지 않은 생각 때문이었다.


20


로스토프가에서는 일요일이면 늘 그렇듯 지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다. 피에르는 로스토프가 사람들을 먼저 만나기 위해 좀 더 일찍 서둘렀다. 그가 로스토프가에서 처음으로 본 사람은 나타샤였다. 아니, 그녀를 보기 전에 이미 대기실에서 망토를 벗으며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홀에서 솔페지오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당신이 오시니, 정말 기뻐요! 난 오늘 무척 행복하답니다!” 그녀는 피에르가 그녀에게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예전의 생기에 차 말했다.“당신도 니콜라가 게오르기 훈장을 받은 걸 아시죠. 오빠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내가 훈령을 보낸걸요.”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 응접실로 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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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훈령에서 봤어요. 그 사람은, 볼콘스키는 (그녀는 이 낱말을 빠르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러시아에 있고 다시 군에서 근무하고 있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에게 버틸 힘이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에 서두르듯,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그가 언젠가는 날 용서할까요? 나에 대한 악감정을 갖지 않게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에르가 말했다. “그 사람에게는 용서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만약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때마침 응접실에서 페탸가 달려왔다. 페탸는 이제 발그레한 뺨과 붉고 도톰한 입술을 지닌 잘생긴 열다섯 살 소년이었고, 나타샤를 닮았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최근 친구인 오볼렌스키와 경기병이 되기로 비밀리에 결심한 터였다. 그는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 피에르에게 달려온 것이다. 그는 피에르에게 경기병 부대에서 자기를 받아 줄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피에르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떻소, 몽 셰르, 어찌 됐소, 성명서는 구했소?” 노백작이 물었다.

“구했습니다.” 피에르가 대답했다. “내일 폐하께서 오실 것이고…… 사람들 말로는 1천 명 중 열 명꼴로 징병을 한다더군요. 우리 군이 다시 후퇴했습니다. 벌써 스몰렌스크 부근까지 왔다는군요.”

“오, 하느님! 오, 하느님!” 백작이 말했다. “그런데 성명서는 어디 있소?”

“격문! 아, 그렇지!” 피에르는 주머니에서 문서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서를 찾으러 대기실에 간 소냐가 피에르의 모자 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했다. 피에르가 모자의 안감 안쪽에 애써 넣어 두었던 것이다. 피에르는 읽으려 했다.

“아니, 식사 후에.” 노백작이 말했다. 그는 그 낭독에서 큰 기쁨을 얻으리라 예견하는 듯했다.


식사 후 백작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진지한 얼굴로 낭독의 대가인 소냐에게 격문을 읽어 달라고 청했다.

우리의 첫 왕좌의 도시 모스크바여!
적이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영토에 침입해 왔다. 그가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을 파괴하러 오고 있다.


소냐가 특유의 가느다란 목소리로 읽었다. 백작은 눈을 감고 몇 곳에서는 간간이 한숨을 쉬며 들었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위험과 군주가 모스크바에, 특히 명문 귀족에게 거는 기대를 읽은 후, 소냐는 목소리를 떨면서 (무엇보다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여 그녀의 낭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문구들을 낭독했다.


우리는 지체 없이 이 수도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다른 지역에도 우리의 민중 한가운데에 설 것이다. 이는 현재 적의 진로를 차단하고, 적이 나타나는 곳마다 그들을 격파하기 위하여 다시 새로 조직되고 있는 우리의 모든 민병대를 지휘하고 협의하기 위해서다. 적이 우리를 쉽게 쓰러뜨릴 것으로 오만하게 생각하는 그 멸망은 저의 머리로 되돌아설 것이요, 예속에서 벗어난 유럽은 러시아의 이름을 칭송할 것이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백작이 물기 어린 눈을 뜨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마치 강한 초산염이 든 작은 병을 코에 바짝 대기라도 한 것처럼, 코를 킁킁거리느라 여러 번 말을 멈추었다.“폐하께서 말씀만 하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헌납할 것이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아빠는 정말 멋져요!” 그녀는 아버지에게 입을 맞추며 말하고는 피에르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런, 애국자가 나셨군!” 신신이 말했다.


바로 그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페탸가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빠, 결정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괜찮으시다면 엄마에게도요. 절 군대에 보내 주실 것을 결정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그게 전부예요…….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니에요, 아빠. 저보다 어린 페댜 오볼렌스키도 입대할 거예요. 무엇보다 어쨌든 전 지금 같아선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백작 부인은 겁에 질려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두 손을 움켜쥐고 남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당신이 말을 지나치게 해서 애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런, 이런!” 백작이 흥분에서 깨서 말했다. “여기 또 전사가 났군.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해라. 넌 공부해야지. 분명히 말하마.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주제에 입대하고 싶다니! 자, 난 분명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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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키릴로비치, 담배나 피우러 갑시다…….” 백작이 격문을 집어 들고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피에르는 혼란과 갈등에 빠져 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반짝이며 생기발랄한, 상냥한 것 이상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그를 주시하는 나타샤의 눈동자가 그를 그런 상태로 몰고 갔다.

“아닙니다, 집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가려는 거예요?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요?” 나타샤는 피에르의 눈을 도전적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져서 시선을 떨구었다.


21


페탸는 단호하게 거절당한 후 자기 방으로 가서 혼자 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혀 고통스럽게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그가 침울한 얼굴로 조용히 차를 마시러 나오자 다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다음 날 군주가 도착했다. 페탸는 군주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서 시종 같은 사람에게 (페탸는 군주가 언제나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다) 직접 ‘저는 로스토프 백작입니다. 비록 어리긴 하지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어리다는 것이 충성에 방해될 수 없습니다. 저는 준비가……’라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트로이차 성문에서 승용 마차들이 포석을 요란하게 울리며 아치형 입구를 지나는 동안, 아마도 그가 얼마나 애국적인 목적을 품고 크렘린에 가는지 모를 사람들이 어찌나 세게 벽 쪽으로 미는지 그토록 단단히 결의를 다지고 온 그도 온순해져서 멈춰 서 있어야 했다. 승용 마차들이 다 지나가자 군중이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페탸도 광장으로 떠밀고 갔다.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우스펜스키 대교회에서 (군주가 방문한 경우에 하는 기도 및 튀르크와 평화 조약이 체결된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합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군중은 주위로 넓게 흩어졌다. 지금 그는 자신의 높은 곳, 대포 받침대에 앉아 군주와 군주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갑자기 강변에서 대포 소리가 (튀르크와의 평화 조약을 기념하는 축포였다) 들렸다. 그러자 군중은 대포 쏘는 것을 구경하러 쏜살같이 강가로 달려갔다. 페탸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귀족 도련님의 보호를 맡은 하급 사제가 놓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군복을 입고 띠를 두른 네 명의 남자가 대교회 문을 나왔다. “우라! 우라!” 군중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어느 분이에요, 어느 분?” 페탸가 주위 사람들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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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군주의 뒤를 따라 달려갔고, 궁전까지 그를 배웅한 후에야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페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데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비록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꽤 많은 군중 틈에 끼여 군주가 식사하는 내내 궁전 앞에 서 있었다.


군주의 만찬 자리에서 발루예프가 창을 내다보고 나서 말했다.

“백성들이 여전히 폐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군주는 비스킷을 먹으며 발코니로 나갔다. 군중은 그 한가운데 있던 페탸와 함께 발코니로 몰려갔다.

“천사님, 우리 아버지! 우라! 아버지!” 군중과 페탸는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아낙들과 페탸도 포함된 몇몇 나이 어린 이들은 행복감에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페탸는 너무 행복했지만 집에 돌아가야만 해서, 또 이날의 즐거움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고 여전히 우울했다. 크렘린을 나온 페탸는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인 오볼렌스키의 집 쪽으로 갔다. 오볼렌스키는 열다섯 살이었고, 페탸와 마찬가지로 군대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집으로 돌아온 페탸는 자신이 군대에 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도망가겠노라며 단호하고 확고하게 선언했다.


22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인 15일 아침, 슬로보츠키 궁전 앞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승용 마차가 늘어섰다. 홀들이 꽉 찼다. 첫 번째 홀에는 제복 차림의 귀족들이, 두 번째 홀에는 파란색 카프탄을 입고 턱수염을 기르고 메달을 단 상인들이 있었다. 귀족들, 피에르가 클럽에서든 집에서든 매일같이 보던 그 사람들이 모두 제복을 입고 있었다.


피에르는 이른 아침부터 이제는 그의 몸을 꽉 죄는 불편한 귀족 제복을 입고 홀에 있었다. 그는 흥분해 있었다. 귀족뿐 아니라 상인까지 여러 계급을 포함한, 말하자면 삼부회같은 이례적인 회의는 그가 오래전에 저버렸던 사회 계약설과 프랑스 혁명에 관한 일련의 생각들을 그에게서 불러냈다. 그가 격문에서 보았던 문구, 즉 '군주가 국민들과 협의하기 위해 수도로 온다'는 문구가 그의 이러한 견해를 확인해 주었다.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군주의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그다음 모두들 이야기를 나누며 뿔뿔이 흩어졌다. 일반적인 관심사 외에도 군주가 들어올 때 귀족 대표단은 어디에 설 것인가, 군주를 위한 무도회는 언제 열 것인가 등을 논의하는 말들이 피에르에게 들려왔다. 그러나 사안이 전쟁과 귀족 회의의 목적으로 넘어가자 논의는 곧 주저하게 되고, 불명확하게 되었다. 모두들 말하기보다 듣기를 원했다.


퇴역 해군 장교복을 입은 늠름하고 잘생긴 중년 남자가 한 홀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스몰렌스크 사람들이 군주에게 민병대원들을 제공했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떻다는 겁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 것입니까? 모스크바의 고귀한 귀족들은 스스로 필요성을 발견하면, 다른 방법으로 황제 폐하께 자신들의 충성을 표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민병대원들이 국가에 쓸모가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지요!"


“난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피에르가 말했다. “우리가 폐하께 여쭤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 군대와 군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각하께서 우리와 커뮤니케이션해 주시기를 지극히 정중하게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그러나 피에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세 방향에서 그를 공격했다.

"첫째, 나는 우리에게 이 문제에 관해 폐하께 여쭤 볼 권리가 없다는 점을 당신에게 알려 주는 바이오. 둘째, 비록 러시아 귀족 계급에 그런 권리가 있다 해도 폐하께서는 우리에게 답변하실 수 없소. 군대는 적의 움직임에 상응해서 이동합니다. 그러므로 군대는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하는…….”

"게다가 지금은 의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일어섭시다”


피에르는 자신이 흥분한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어떤 것도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말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음성과 표정에서 더 잘 나타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욕망의 감정이 그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변명하고 싶었다.

“난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될 때 희생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그는 다른 목소리들보다 더 크게 외치려고 애쓰며 말했다.


23


그때 턱이 튀어나오고 빠르게 움직이는 눈을 가진 라스톱친 백작이 장군 제복을 입고 어깨에 띠를 두른 채 양옆으로 갈라진 귀족 무리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지금 황제 폐하께서 오실 것입니다.” 라스톱친이 말했다. “방금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난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서 많은 것을 논하는 것이 쓸데없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우리와 상인 계급을 소집해 주셨습니다.” 그가 이어 말했다. “저쪽에서 수백만 루블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는 상인들의 홀을 가리켰다) 우리 임무는 민병대를 만들어 제공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입니다!”


테이블 앞에 앉은 대귀족들 사이에서 협의가 시작되었다. 협의는 조용함 그 이상의 상태로 진행되었다. 서기에게 모스크바 주민도 스몰렌스크 주민과 마찬가지로 농부 1천 명당 열 명의 병사와 군장 일체를 제공한다는 모스크바 귀족의 결의를 기록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폐하다! 폐하다!” 하는 말소리가 갑자기 홀에서 다른 홀로 빠르게 전해졌다. 모든 무리들이 출구로 몰려들었다. 양쪽에 벽처럼 늘어선 귀족들 사이의 넓은 통로를 따라 군주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공손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호기심이 나타났다.


“여러분!” 군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군중은 잠시 소란스럽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러시아 귀족의 성심을 한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소. 그러나 오늘은 그 성심이 내 기대를 넘어섰소. 조국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감사하오. 여러분, 우리 함께 행동합시다.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군주는 잠시 침묵했다. 군중이 그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환희에 찬 외침이 들렸다.

“그래, 무엇보다 소중하지…… 차르의 말씀이야.”


군주는 귀족의 홀에서 상인의 홀로 지나갔다. 그곳에선 10분 정도 있었다. 피에르는 군주가 감동의 눈물이 고인 눈으로 상인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두 상인을 거느린 채 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피에르도 아는 뚱뚱한 징세업자였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며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목숨도 재산도 다 가져가십시오, 폐하!”


순간 피에르는 자신에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픈 열망 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입헌주의적인 발언이 비난받아 마땅하게 여겨졌다. 그는 그 치욕을 씻을 기회를 찾았다. 마모노프 백작이 1개 연대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된 베주호프는 그 자리에서 병사 1천 명과 유지 비용을 대겠다고 라스톱친 백작에게 선언했다.


로스토프 노인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눈물 없이는 아내에게 들려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페탸의 청에 동의하고 직접 그의 지원서를 쓰기 위해 갔다. 다음 날 군주는 떠났다.소집되었던 귀족들은 전부 제복을 벗었고, 다시 자택과 클럽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관리인들에게 민병대에 관한 지시를 내렸고,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일에 놀라워했다.


<제3권 제1부 끝>